[특집 2] 서울시 부랑인들이 실려 가는 곳, 은평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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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다시 돌아보는 빈민 장애우의 현실
서울시 부랑인들이 실려 가는 곳, 은평의 마을
서울시내의 장애우를 포함한 거리의 부랑인들은 부정기적으로 경찰과 구청의 단속의 대상이 된다. 이들 부랑인들이 공무원들에 의해 단속되어 봉고차에 실려 가게 되는 곳은 대개 은평구 구산동에 위치한 "은평의 마을"이다.
은평의 마을의 역사는 1961년 서울시가 부랑인을 수용하기 위해 만든 "갱생원"에서 시작한다. 역 주변을 배회하는 모습이 도시 미관상 좋지 않았기 때문에 서울시는 처음에 그들을 집단 수용하였다. 그러나 수적으로 적기만 한 서울시 공무원의 인원으로는 갱생원의 원생들을 감독하기 위해 야간 근무까지 하는 데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갱생원의 운영은 1981년 마리아 수녀원으로 넘겨지게 되었다. 자유가 없고 어두운 과거 갱생원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서 마리아 수녀원은 1996년 7월 1일 "은평의 마을"로 명칭을 바꾸고 여러 개선책을 추구해 나가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부랑인들의 입소과정에 대해 한빅토리아 수사는 "단속차에 실려온 사람들은 동사무소에 알려 가족이 있는지 알아보고, 연고지가 없는 경우에는 건강 진단을 한 후 병이 있으면 병원으로 보내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부분 가족이 없는 것으로 밝혀진다. 그 중 결핵 환자와 알콜중독자, 그리고 정신질환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는데 병의 종류에 따라 각각 다른 병원에 보내진다. 정신질환과 알콜중독자는 은평의 병원(前서대문 정신병원)으로, 결핵 환자는 서부 시립병원으로, 외과 환자는 보라매공원 내 남부 시립병원으로 보내진다.
"모든 조사가 끝나면 본인이 원할 경우 은평의 마을에 살게 되는데 하루 평균 7∼8명이 입소한다"는 것이 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렇게 해서 현재 은평의 마을에 살고 있는 부랑인은 2천3백 명, 81년에 5백 명이었던 데 비하면 5배 정도 늘어났고 현재에도 계속 늘고 있다.
그 중 정신지체인을 포함한 장애우와 노약자가 1백44명이다. 이들은 다른 방에 격리되지 않고 다른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일단 이곳에서 기거하기로 결정한 부랑인은 반드시 은평의 마을의 규칙을 지켜야 한다.
이곳의 하루 일과는 특별한 행사가 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개 다음과 같다. 아침 6시에 기상해서 식사를 하고 오전·오후 2시간씩 쇼핑백을 접는 작업을 한다. 그 후에는 축구나 게이트볼 같은 단체 운동을 2시간 가량 한다. 점심을 먹은 후의 오후 프로그램은 다양한데 비디오 시청, 소양교육, 노래방 이용 등의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다시 6시에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9시에 취침을 한다. 그리고 일주일에 세 번 정신과 진료와 내과 진료를 받는다.
"은평의 마을의 운영은 수용 보호한다는 개념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최대한 배려하고 오갈 데 없는 이들을 장기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외출, 휴가제도도 활용하고 있다. 퇴소를 원할 경우에는 언제든지 내보내주고 그동안 일한 품삯도 지급한다"고 원 운영상황에 대해 관계자는 당당하게 설명한다.
그러나 은평의 마을에 입소를 거부하는 부랑인들도 많다. 끼니걱정을 잊을 수 있는 이곳 생활보다는 구걸로 생계를 잇는 자유로운 생활을 선택한다. 각종 생활규칙이 없는 거리가 오히려 더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거리에서 만난 단속반에 걸려 또 다시 이곳으로 오게 된다.
단속 공무원과 부랑인 사이의 이 숨바꼭질은 은평의 마을을 중심으로 해서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글/ 노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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