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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3] 복지의 현주소, 호적없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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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다시 돌아보는 빈민 장애우의 현실


 복지의 현주소, 호적 없는 사람들

 


  거리를 떠돌거나 시설에 있는 장애우 가운데에는 어렸을 때 가족에게 버려져 자신의 본래 이름이나 가족에 대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거나 정신지체 등의 이류로 자신의 신원을 밝히지 못해 현재 호적이 없는 사람의 비율이 결코 적지 않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운 좋게 몇몇 사람만 호적이 새롭게 만들어지게 된다. 이런저런 문제 때문에 평생을 호적도 없이 초라한 삶을 어렵게 영위해간다. 호적이 없는 사람들이 겪는 현실적인 문제점과 취적을 할 수 있는 절차를 알아보았다.

 

 

  호적이 없다는 것은 쉽게 말해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에게나 하나씩 주어지는 주민등록번호가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교육대상자가 될 수 없고 성인이 되어도 각종 국가시험을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다. 수표 한 장 쓸 수 없고 각종 선거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죽은 뒤에도 문제다. 신원미상이라는 딱지가 붙여진 채 초라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단적으로 말해 사회적인 관계를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면 모를까 호적이 없으면 기본적인 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천사의 집에서 생활하는 29명 가운데 1/3가량인 9명이 호적이 없다. 대부분은 교회 앞에 버려졌다가 교회 관계자들이 어쩌지 못하고 이곳으로 오게 된 사람들이다. 물론 이들 중에는 원래 호적이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중증정신지체장애우의 경우 대화 자체가 불가능해 연고자나 이전의 행적을 추적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며 천사의 집에서 살아간다.
  원장 장순옥씨는 "호적 추적이 어렵고 새로 만들기도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정들이 모두 다 딱해 이들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아프기라도 하면 병원에도 갈 수 없어 제일 문제"라고 호소했다. 무의무탁한 사람이고 어쨌든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임에도 호적이 없기 때문에 정부로부터 아무런 생계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고양시에 위치한 또 다른 비인가시설 "사랑의 집"에서 생활하고 있는 뇌성마비장애우 김재석씨의 경우는 어쩌면 상황이 더 좋은 편이다. 심한 언어장애가 있어 원활한 의사소통이 어렵지만 그래도 머리가 또렷해 어느 정도까지는 지난날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씨와 사랑의 집 이성혁 총무의 말을 토대로 기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서류상으로 그는 78년도에 마리아 수녀원에서 향림원으로 옮겨진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 후 향림원이 없어지는 관계로 다시 81년 9월에 다니엘학원으로 옮겨져 94년까지 생활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을 토대로 그의 나이가 서른 살쯤 되지 않았을까 추정만 하고 있다.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사람들


  일반적으로 인가수용시설의 경우 정부지원은 원생의 인원수에 따라 예산이 책정된다. 그리고 해당 원생의 존재를 밝히는 데 주민등록번호는 중요한 증빙사안이다. 따라서 신원을 증명하는 호적을 만드는 작업은 시설 운영관계자가 연고자가 없는 사람을 수용하게 됐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이다. 그런데 김 씨의 경우 여러 시설에 있었음에도 호적이 없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 씨를 기억하는 다니엘학원의 관계자는 "예전에 같은 상황의 원생이 여럿 돼 호적을 만들려고 했지만 절차가 너무 까다롭고 돈도 적지 않게 드는 데다 얼마 되지 않는 직원들이 일일이 서류를 들고 다니기도 어려워 중간에 포기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다니엘학원의 경우는 법인 자체의 설립목적이 국가공공기관에 의해 넘겨진 미아나 기아들을 수용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에 해당 관청에서 반드시 호적이 있지 않아도 서류에 기재된 대로 해당 인원에 대한 지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김 씨가 애초에 생활했던, 서울 성동구에 있던 향림원은 지금은 없어져 김 씨의 행적을 더 이상 추적하지는 못했다. 80년경 정리된 원은 86년도에 다시 향림재활원으로 경기도 광주에 설립됐으나 당시 관계자는 없고 원이 정리될 때 서류들도 모두 원생들을 따라갔기 때문에 그곳에서 호적이 만들어졌는지의 여부를 알아볼 수는 없었다.
  결국 어렸을 때 호적을 만들 수 없었던 그는 현재에도 이런저런 절차상의 어려움 때문에 여전히 호적이 없는 상태이다. 사랑의 집에서 생활하면서 목회자의 길을 걷겠다는 꿈을 갖게 됐지만 실현여부는 불투명할 따름이다. 신학대학에 가기 위해 열심히 검정고시 준비를 해봐도 시험볼 자격조차 그에겐 없기 때문이다.

 

 

일정 기한의 구제조치 절실


  사랑의 집은 지난해 법무부 산하의 공주치료감호소에서 연락이 와서 그곳에 있던 사람을 사랑의 집으로 데려가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법무부 차관 명의로 10년 이상 보호했으나 사회생활에 별다른 하자가 없는 사람은 내보내라는 조치가 있자 그곳으로 연락을 해온 것이었다. 법무부에서 취적조치 등의 신원보장만 해준다면 받겠다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사랑의 집 이성혁 총무는 "국가 대 국가기관끼리라면 취적관계 절차를 보다 더 쉽게 할 수 있을 것이고, 시설 생활자를 받을 때 그건 당연한 절차라고 생각해 요청했으나 그런 국가기관조차 귀찮고 어려우니까 거절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비인가시설의 경우 존립 자체가 관청의 압력의 대상인 상황에서 어느 날 공무원이 와서 물어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이 있으면 여러 가지로 곤란해지기 때문에 이전까지는 어쨌든 신원이 확실한 사람만 받게 됐었다"고 얘기했다.
  건강할 때면 모르지만 사고로 사망을 했을 경우 신고를 하려 해도 호적이 없으면 그때까지 보호하고 있던 사람들이 궁지에 몰리게 되는 상황이 되어 버리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호적이 없다는 이유로 여러 시설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람들 중 일부는 대개 국가 법인체 시설, 시립복지원, 요양원 등의 국가기관에 보내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곳에서는 사회적인 관계가 이루어질 일이 없어 호적 없이 생을 마감하게 돼도 어쩌면 별다른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김재석씨의 경우는 검정고시를 봐야 한다는 결정적인 계기가 있어 주위 사람들이 백방으로 호적을 만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솔직한 고백이었다.
  과연 이들은 현행법상 아무런 구제책이 없는 것일까. 많은 시설 관계자들은 취적절차가 너무 까다로워 몇 번 시도하다가 포기하게 된다고 하소연한다. 요구하는 서류가 너무 많아 무한정 그 일에 시간을 할애하기가 현실적으로 곤란할 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비용도 들어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사랑의 집 이 총무는 "한시적인 시기 동안 동성동본자의 혼인을 인정해 혼인신고서류를 접수받는 것처럼 일정 시기 동안에 간소한 절차만으로 호적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구제책이라도 실시했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나이를 한 살 올리거나 낮추는 일이나 이름을 바꾸는 일에도 까다로운 판결절차를 받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더구나 호적을 만드는 문제는 절차를 너무나 쉽게 한다면 이중 호적자가 생기고 이것이 범행에 사용될 우려가 높다는 반박도 만만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요즈음은 불법 체류 중인 중국 연변 교포들 가운데 주위 사람들과 협작하여 호적을 만드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어 조사절차가 더욱 엄격해진 경향이 있다. 더구나 남북분단의 상황에서 성인이 됐음에도 호적이 없는 사람은 간첩으로 종종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래저래 취적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다.
  그러나 문제해결을 풀어가는 실마리는 또 다른 측면에서 막혀 있는 듯했다. 가정법원의 한 관계자는 "서른이 넘도록 호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동안 국가를 위해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사람"이라고 잘라 말했다. 과연 그것이 2천년 대를 맞는 오늘날에도 아파도 병원 문 앞에서 발길을 돌리게 하는 이유가 될 수 있을까. 호적 하나에도 국가의 존재이유와 책임을 묻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 한혜영 기자

 

 

 

호적을 만드는 절차

 

  호적을 만들려면 관할구청에서 무적증명서 2통, 동사무소에서 주민등록 미신고확인서 2통을 떼고 서울가정법원이나 각 지방법원에서 성본창설허가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성본창설신청서 양식은 매우 간단하긴 하지만 법원에 구비되지는 않았다. 가정법원 관계자는 대서소에서 마련해와야 한다고 했지만 간단히 자신이 원하는 성과 본을 적고 도장을 찍어 제출하면 된다. 그것이 완성되면 신분표라는 문서를 3통 작성하고 보증인 2명의 인감증명서 민 주민등록표등본을 첨부한 인우보증서를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서류들을 첨부하여 다시 취적허가신청서를 작성하여 제출한다. 이 과정에서 법원에서 경찰서에 사실 확인여부를 추적할 것을 요청하게 되고 경찰서는 그 결과를 법원에 통보하는 절차도 거치게 된다.
  가정법원에서 만난 한 고아원 출신의 남성은 서류작성을 법무사에 맡겨 호적을 만들어 나가고 있었는데 여기에 10만원의 비용이 든다고 했다. 그러나 다른 양식은 모두 구할 수 있고 법원에 모델이 되는 전시하고 있기 때문에 직접 작성해도 무방할 듯하다. 변호사를 선임하는 경우 1백만원 안팎의 비용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는 것이 주위 법조인들의 설명이다.

 

작성자한혜영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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