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과햇살] "내게 바둑은 인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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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과 햇살]
"내게 바둑은 인생이죠"
- 시각장애우 송중택씨의 바둑사랑
시각장애우가 아마 초단의 실력을 보유하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현재 평택에서 평강안마시술소를 경영하고 있는 송중택(37세)씨가 그 주인공이다.
10살 때 어깨 너머로 바둑을 처음 배운 송중택씨는 선천적인 시각장애우는 아니다. 만성 녹내장으로 17세쯤부터 차츰 시력이 나빠져 20세 때에는 완전히 시력을 잃게 됐다고 한다. 그 후 바둑을 두지 않다가 그의 서른 세번째 생일날 아내가 선물한 시각장애우용 점자 바둑판을 받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바둑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내가 바둑판을 선물할 만큼 바둑을 좋아했지만 그는 바둑을 직접 둘 수는 없었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에 시각장애우용 점자바둑판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로 점자바둑판을 제작하는 업체가 없는 것이다. 국내에서 점자바둑판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일본에 가서 점자바둑판을 사온 사람들인데, 송중택씨도 그런 경우이다.
"일본에서는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해서 점자바둑판을 만들고, 시각장애우 바둑대회도 열린다"는 사실을 전해주는 송중택 씨의 마음은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나라엔 시각장애우들이 여가를 보낼 만한 오락거리가 너무도 없기 때문이다.
점자바둑판은 바둑돌이 돌출 돼 있고, 바둑돌 뒷면에 열 십자로 홈이 파여 바둑판의 교차점에 바둑돌을 끼울 수 있다. 그리고 흑돌에는 가운데 약간 돌출 된 부분이 있어 손으로 만져서 밋밋하면 백돌, 걸리면 흑돌 하는 식으로 흑백을 구별한다. 또 바둑판 위의 선 끝에는 알파벳과 숫자가 새겨져 있어 몇 번째 선이지를 구별할 수가 있다. 바둑판의 글자는 송중택씨가 직접 새긴 것이다.
그러면 계가는 어떻게 할까. 상대가 두고 나면 손으로 돌을 만져서 확인하고 마지막 계가는 수시로 한 머릿속 계산을 정리하는 정도라고 한다. 한국기원 평촌지원의 허윤 지원장의 말을 빌면 "송중택씨의 계가력을 눈뜬 사람보다 정확하다"고 한다. 그러나 송중택 씨가 손으로 바둑판을 훑을 때, 일반인 중에는 시야를 가린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마음 맞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마냥 기다리고만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실력을 쌓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컴퓨터 통신을 이용한 바둑 연습이다. 하이텔에 접속하면 한국기원에서 제공하는 최신 기보를 볼 수 있는데 시각장애우가 컴퓨터로 바둑을 두기 위해서는 음성카드를 설치해야 한다. 상대가 바둑을 두면 그 위치는 음성으로 나온다.
송중택 씨는 옆에 점자 바둑판을 수고 상대가 둔 바둑돌을 그대로 바둑판에 옮겨 놓고 자신의 돌을 놓는 1인 2역을 하곤 한다. 좀 번거로워 보이기도 하지만 바둑을 배우고자 하는 그의 열정은 그만한 일쯤 아무것도 아니다.
지난 1월부터 강만우 7단에게 개인교습을 받고 있다. 그렇게 실력을 더 쌓아 가을 안양에서 열리는 아마추어 바둑대회에 출전할 예정이다. "이번 기회는 나에 대한 도전이자 시각장애우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송 씨는 기염을 토한다. 더불어 아이들이 자라면 바둑을 가르칠 생각이라고 한다. 흔히 아이들과 아버지와의 대화 부족으로 발생하는 갈등, 아버지가 장애우인 것에 대한 거리감을 바둑을 통해 해소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바둑은 단순한 취미생활이 아니라 가정의 화목과 개인의 자아를 완성하는 삶의 일부임에 분명했다.
글/ 이나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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