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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3] 성폭력 특별법, 신체장애우만 법으로 보호한다?

본문

[시사]

 

성폭력특별법, 신체장애우만 법으로 보호한다?

 

지난 11월 1일 내려진 서울지법의 판결은 장애우계나 여성계를 똑같이 경악케 했다. 성북구 월곡동의 모 섬유공장에서 일하던 이 아무개(16) 군 등 2명은 7월 29일 정신지체인 정 아무개(16)양을 건물 옥상으로 끌고 가 성폭행한 것을 비롯 모두 4차례에 걸쳐 같은 범행을 저질러 구속됐다. 양측의 가족들이 합의해 버리자 검찰이 다시 기소를 했으나, 현행 성폭력특별법의 "신체장애"로 명시된 장애인관련 조항에 "정신장애"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소가 기각되어 그냥 풀려난 것이다.
형법상 강간과 강제추행은 친고죄, 즉 피해자측의 고소가 있어야 기소가 가능하지만 성폭력특별법에서 장애인에 대한 준강간의 경우 친고죄의 적용에서 제외시켜 검찰 등의 제3자라도 고소가 가능하나 현행법의 맹점은 다른 곳에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맹점 숨어있는 성폭력특별법
현행 성폭력특별법 8조에는 "신체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음을 이용하여 여자를 간음하거나 사람에 대하여 추행한 자는 형법 제297조(강간) 또는 298조(강제추행)에 정한 형으로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재판부(형사합의 21부, 재판장 민형기 부장판사)는 현행법이 "신체장애" 부분만 규정하고 있어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따라 유추 해석할 수 없다는 이유로 검찰의 구속기소에 대해 기각한다는 판결을 내려버린 것이다.

92년도에 성폭력특별법 제정추진위원회가 발족한 후 수 차례의 공청회와 그간 언론사를 통해 알려지게 된 여성장애우 관련 성폭력 사건들은 여성장애우에 대한 법적인 특별대책이 필요하다는 여론을 유도해 냈고, 그 결과 여성단체나 당시 민자당, 민주당이 제출한 제정안에 공통적으로 장신장애와 신체장애우에 대한 법적 보호에 의견을 같이했다.
94년 마침내 법은 제정되었다. 그러나 결국 법안은 아무도 의도하지 않은 내용으로 현재와 같이 결정됐다. 장애우는 친고죄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성과물에 미진하지만 그저 만족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장애우계도 "신체장애인"이라는 문구를 주목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이러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법제정추진위원회에 결합해 장애인관련 조항을 대한 의견개진을 해왔던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김정열 소장은 "제정 당시 법안심의를 위한 최종안에도 분명히 정신장애우와 신체장애우를 포괄한 개념의 용어가 분명히 명시되어 있었다"고 의아해하며 "법제처에서 장애인복지법에 준용하는 법적 용어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그냥 신체장애우로 바뀐 듯하다"고 말했다.

 

성폭력특별법 개정에 거는 기대
여전히 그 판결에 대해 많은 논란이 개진되고 있다. 서울지법 관계자는 "성폭력특별법 8조에 장애우관련 조항이 있지만, 현행법상으로는 그런 판결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애초 법조문에 신체장애우로만 된 것은 입법상의 실수이므로 개정으로 바로 잡아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신지체인복지관 한 관계자도 "신체장애와 정신지체는 범주상의 엄연한 차이가 있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제정당시의 상황으로 볼 때 "신체장애"라는 개념은 전체 장애우로 이해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현재 정신지체가 장애인복지법상의 법체계상에서 포괄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번 서울지법의 판단과 같이 정신지체를 정신장애의 범주에 포함시킨다면 정신지체장애는 장애가 아니라는 판단이 내려지게 된다. 따라서 성폭행 사건에 있어서도 정신지체나 정신질환 등의 정신장애우는 일반 비장애우와 똑같이 처리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어쨌든 올해 국회 회기를 통해 성폭력특별법 개정작업을 준비중이던 여성단체와 신한국당과 국민회의 양 당의 국회의원들에게 그 사건은 특별법안상의 장애우관련 조항은 반드시 개정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환기시키기도 했다.
국민회의는 사전에 장애인관련 용어가 잘못돼 있음을 발견하고 "장애인복지법 제2조의 규정에 의한 장애인에 대하여 그 장애를 이용하여 간음하거나 추행한 자도 제1항의 예에 의한다"라는 조항을 신설한 바 있다.
정부와 신한국당은 애초 8조의 경우를 그대로 하고 "전항의 죄는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는 조항을 삽입했었다. "반의사 불법죄"인이 조항은 피해 장애여성의 사생활보호를 위한 것이라는 취지에서 고안된 것이나 오히려 가해자가 범죄사실을 은폐시키는 데 악용할 수 있다는 비판이 드높게 제기되자 철회되고, 최근 여론에 따라 8조의 "신체장애로"를 "신체 또는 정신상의 장애로 인하여"라는 문안으로 바뀌었다.
현재 이 개정안은 상임위원회에서 12월 말까지 세 차례에 걸쳐 심의될 예정이다. 이번에는 "정신장애" 부분이 분명히 개정이 될 것으로 기대되나 최근 부천에서 또다시 터져 나온 성폭행 사건은 잠시라도 더 기다릴 수 없는 절박한 인식전환의 필요성에 할 말을 잃게 만든다.

50대의 남자가 친구의 부인과 두 딸을 성폭행하고 그 중 정신지체 장애우인 미성년자 백 아무개(17) 양을 임신(3개월)까지 시킨 것이다. 부모와 두 딸이 모두 지능이 떨어진 정신지체장애우라는 사실을 악용해 가해자 이 아무개(51) 씨는 93년 7월경부터 온가족이 잠을 자고 있는 단칸방에 침입해 수면 중인 여성들의 옷을 벗기고 추행을 하는 파렴치한 행동을 수 차례나 계속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백 양이 결국 임신까지 하게 되자 이웃에도 알려지고 경찰이 수사에 착수해 이 씨는 미성년자 간음과 준강간미수 혐의로 구속됐다. 피해자인 백 양의 어머니와 두 딸이 고소인으로 되어 있으나 이들이 수사에 직접 결합하기는 어려워 현재 친척들이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부천 남부경찰서 형사과 관계자는 "백 양의 경우 법적 등록절차를 마친 장애우도 아니고 지금에서야 신경정신과 의사의 의견서를 첨부하기도 어려워 장애우라는 사실을 당장 증명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현재는 친척들이 이 씨를 처벌하겠다는 의사가 강경하지만 대부분의 이런 사건들처럼 결국 합의 끝에 풀려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씨와 같은 파렴치범도 가족들간의 합의만 있다면 풀려나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재판을 하더라도 최근의 판례가 있기 때문에 정신지체장애우임에도 불구하고 장애관련 조항의 적용을 받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신지체 장애우는 가해남성이 손쉽게 접근해 돈을 주며 계속적으로 유인하거나 협박을 통해 은폐하기가 쉬워 가장 심각하게 성폭행의 위험에 노출되어 왔다. 따라서 성폭력특별법의 입법 취지가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장애영역이다.

계속해서 터져 나오고 있는 정신지체 장애여성의 성폭행 사건을 볼 때 과연 어디에서 장애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존엄성을 보호받을 수 있을지, 과연 개정법안은 이러한 문제를 깨끗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 모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글 / 한혜영 기자

 

작성자한혜영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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