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화 논의 왜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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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장애우가 서있는 자리를 단적으로 살펴본다면 아직도 중심가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시설의 어디쯤이 될 것이다. 장애우복지 전체 예산의 67%를 차지하는 비율에서 알 수 있듯이 시설중심의 정책, 이것이 한국 장애우복지의 역사이며 현주소인 것이다.
21세기를 얼마 남겨놓고 있지 않은 97년 함께걸음은 연중기획으로 국내에서 탈시설화가 진행되기 위한 여러 가지 가능성과 그 대안을 찾아보고자 한다.
시설이 장애우 만든다
「모정(母情)상실이 정신지체(Mental Retardation)의 원인이 된다」는 한 실험 연구결과가 나와 주목을 끈 적이 있다. 한국에서 30여 년간 장애아동을 돌보고 있는 이 외국인 연구자가 75년부터 81년까지 입소한 아동 중에 연령과 건강, 아이의 신체조건이 비슷한 영·유아 10명을 선정, 5명은 복지시설에 수용, 양육케 하였고, 5명은 위탁 양육 가정을 발굴, 각각 대리모를 두어 아동을 돌보도록 한 것이다.
6년 후 복지시설인 정신지체 아동시설에 수용된 5명의 아동 중에 4명이 정신지체 증상을 보인 반면 위탁가정에서 자란 아동은 5명 중 1명만이 약간의 발달지체 현상을 보이긴 했지만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인 모든 면에 있어서 모두 안정되고 정상적이었다.
그러니까 이 결과는 대형화된 복지시설보다는 위탁 양육 가정에서 아이들이 자라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문화적 신조」나 「교육 기회의 미제공」도 아동발달에 있어서 장애요인이 돼 후천적인 정신지체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아 실험연구의 방법이나 대상 선정에 논란이나 문제 제기가 없지 않다. 아동이라는 고유한 "생명"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실험 대상으로 삼은 것에 대한 윤리적, 도덕적, 사회적 책임과 복지시설과 위탁양육가정에서의 보호수준 및 양육편차 등에 대한 고려 사항이 거론되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사랑으로 자라야 한다"는 보편적인 가치와 당위성을 입증한 것과 위탁 가정이 복지시설보다 더 나은 보육 형태라는 사실을 찾았다는 데에 그 의의는 실로 크다.
전후 한국사회복지는 고아원에서 출발
▲탈시설화논의-고아원 |
우리나라에 있어서 시설 복지사업은 영세성, 낙후성, 프로그램의 비전문성 그리고 운영의 폐쇄성과 비효율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사회복지사업에 있어서 가장 주도적인 사업으로 인식되어져 왔다.
그것은 여느 나라에서의 주민복지욕구를 기초로 한 복지시설의 설립이 아니라 대다수의 시설이 6·25전쟁이라는 사회적 위기상황에서 소위 「고아원」에서 출발하게 되었기 때문이다.대부분의 수혜자들이 의·식·주 해결에 급급했지만, 양적 증가도 대단히 필요했기에 우리는 시설 복지사업의 기여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이 임기응변식으로 마련된 사회복지사업을 이야기하고 마치 그것의 확대 실시가 복지실현의 「바로미터」인 양 정책 입안을 세울 때가 많다.
현행 우리의 사회복지사업법에는 사회복지시설을 설치하려는 경우 ① 운영 주체로서 국가, 지방자치단체, 법인 및 기타 영리법인 ② 상시 30인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의 설비 및 규모 ③ 일정 규모 이상의 목적사업용 기본 재산과 연간 운영비의 20% 이상을 충당할 수 있는 수익용 기본재산을 갖추어야 하는 등 시설의 설립요건에 제한을 두고 있다. 이 규정의 이면적 해석은 일반적으로 5억 원 이상의 재산을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이 법인 설립의 요건이 되고, 운영권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5억 원 이상의 재산가만이 운영권자로 가능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시설의 역사에서 고찰해 볼 수 있듯이 사회복지시설의 설치 요건의 가장 핵심이 재정적인 지원이다. 1952년 4월 사회부장관 통첩 "사회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법인 설립 허가 신청에 관한 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미 시설을 운영할 재단법인 설립 기준으로서 기본재산을 부동산 1백만 원, 운영 자금으로 동산 30만 원으로 정한 바 있고, 1957년 2월 장관 통첩으로 부동산은 1천만 원, 동산은 1백만 원 이상으로 인상되었던 것이다.
장애우복지시설의 경우, 전문화된 법조차 없이 1950년대에서 80년까지 아동복지법과 생활보호법, 사회복지사업법에 의해서 시설이 관리·운영되어 왔다. 보건사회통계연보에 따르면 1955년 15개의 신체장애아시설에 1,384명이 수용되어 있었고, 1975년 「우리나라 사회복지시설 육성 및 개선에 관한 소고」에서는 장애우 시설에 관한 내용으로 그 당시 27개 시설에 약 4천 명이 수용되어 있으나, 대부분이 수용시설이었고, 그나마도 성인시설은 전상자들의 재활을 위해 마련된 두 곳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5년간 6배로 늘어난 시설 수용자 수
초기 우리나라의 장애우복지시설은 시설복지 중심이라는 사실은 엿볼 수 있다. 그 수에 있어서도 1955년 15개소에 1,384명이 수용된 것이 1980년에는 무려 6배가 늘어난 92개소에 11,205명이 되었다는 점에서도 엿볼 수 있다.1981년 UN이 정한 「세계 장애인의 해」를 계기로 심신장애자복지법이 제정돼, 장애우 복지시설의 독자성과 특수성을 표방하게 되고 장애우시설에는 「재활시설」이라는 명칭이 붙게 된 것이다.
아울러 법시행과 함께 「장애인종합복지관」이라는 새모형의 장애우 이용시설이 1984년부터 등장, 현재 지역사회재활을 중심으로 재가복지의 모형을 개발해 나가고 있는 것은 발전의 주춧돌로 여겨지지만 지역간의 심한 불균형과 지역사회의 장애우 욕구에 맞는 프로그램의 개발, 시행 등에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수용시설이나 이용시설 양대 시설 복지사업에의 진전은 88년 장애인올림픽과 장애인복지법으로의 개정을 들 수 있는데, 통계를 보면 명확하게 그 수치를 읽을 수 있다. 1988년 이용시설인 종합복지관 16개소를 포함해서 127개 시설이었던 것이 1995년 종합복지관과 장애종별복지관 37개소를 포함해서 233개소로 늘어난 것이다.
이용시설도 수적 증감되었지만 수용시설도 2배 이상 계속 늘어 이 시설도 2배 이상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증가에도 불구하고 95년 정부에서의 통계로 123개소의 무허가 장애우 복지시설에 2,279명이 수용·보호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인시설보다도 무허가시설에의 환경이나 보호수준이 열악하고 재활시설로서의 사명과 역할을 다하지 못함에도 장애우나 그 가족들은 무허가시설에 입소를 원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입소할 수밖에 없는 형편도 많다.
무허가시설의 63.3%가 연고
장애우 입소경위를 비교해 보면 허가시설(법인시설)과 무허가시설은 크게 대비되는 것이 있다. 허가시설은 무려 87.1%가 행정관서 등의 타의에 의해서 입소가 되는데, 무허가시설은 63.3%가 연고가 자진 입소로 나타나고 있다. 무허가시설의 조건이 미비해도 중증장애아를 버리지 않고도 상담과 신청주의에 의해 입소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나라 시설복지의 구조적 모순과 폐해성을 다음 몇 가지 점에서 찾을 수 있겠다.
첫째, 실비를 입소자가 부담하고 입소할 수 있는 체제가 있긴 하지만 대다수 입소 장애우는 「기아」나 「요보호 장애우」에 한해서 입소가 되는 등으로 이중 호적 취적과 장애우 인권의 사각 지대가 되기 일쑤였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장애우의 수용시설 이용권이나 선택권이 부여되지 못하고 있다.
둘째, 대다수 수용시설에 버려진 장애아가 입소에 따른 상담으로는 입소자의 병력이나 가족구성관계,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 등 복지욕구 파악이 어렵고, 사회복지시설의 대규모화나 장기수용으로 입소자의 개별상담이나 보호·훈련치료 등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
셋째, 사회복지시설의 운영의 주체가 시설운영자인 것처럼 되어 있고, 시설에 수용된 원생은 수혜자로 일방적으로 시혜되고 있다는 점이다.
넷째, 복지시설의 대형화는 입소자의 사회 복귀 의욕 상실과 함께 소위 「시설병」 등의 부작용을 보이는 예도 많아 소규모 시설 내지는 가정중심양육은 계속 개발되어야 할 사회복지의 과제이다. 그러나 가정에서 부모가 양육이나 치료와 훈련을 실시하는데 곤란한 경우가 없지 않고, 시설 보호나 복지가 불필요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중증장애우가 살아야 할 땅이 좁은 시설이 아니라 넓은 사회인 것이다.
시설지원 대신 장애수당을
미국에 있어서도 60년대까지는 주로 기독교의 박애정신으로 장애우를 시혜적 차원의 복지로 일관해 왔다. 결정적 계기는 1964년 여성 및 소수 민족 차별 금지법 제정과 함께 장애우의 권리도 인정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민권적 차원에서 일어나게 되었고, 1973년 재활법 시행으로 장애우의 사회 통합에 큰 변화를 보게 되었다.
아울러 70년대 말까지 대형 복지시설 중심의 재활사업에서 지역사회 중심 내지는 개인 중심 재활사업으로 전환한 것도 「장애우의 완전한 인권 보장」을 이루는 지름길이 된 것이다. 그런데 실제적으로 미국이 대형복지시설에서 지역사회재활(CBR)로 바꾸게 된 것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대형복지시설에의 장애우 수용이 엄청난 재정부담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성은 떨어지는 결과를 보였다는 것이 80년대 말까지의 정책 평가의 마지막 분석이었다.
한 예로 미국 하와이에 있는 「와이노마(wainoma) 정신지체와 지체장애우 재활센터」에는 1983년 3백여 명의 재활원생과 그 당시 직원 573명이 있었는데, 현제는 원생 120명과 직원 80여 명으로 구성·운영되고 있다.
예산비율이 한 원생당 한 달 약 2천 달러(한화 약 160만원)가 소모되어 재정지출에 큰 부담을 느끼게 되었고, 그래서 연구·개발한 것이 개인에게 주어지는 장애수당으로 지역사회에서 생활하고 재활기관과 프로그램을 선택하고 직장에 종사하도록 그 방향을 바꾼 것이다.
미국에서 일어난 자립생활운동의 가장 중심철학은 장애우 스스로의 결정권과 의존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것과 함께 정치적 권리와 경제적 권리와 힘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운동은 결국 대형시설에 머물도록 하지 않고 「독립생활의 집」이라는 새로운 모형의 주거 형태도 창출했으며, 고용 형태도 종래의 복지시설에서 운영하던 장애우만의 고용 형태인 보호작업장에서 비장애우와 함께 고용하는 지원고용으로 바뀌었다.
미국 장애우법(ADA)과 장애우기술지원법 등의 시행과 더불어 미국의 영세 중증장애우에게 주어지는 사회보장 차원의 수당 제도는 탈시설화의 크나큰 「동기부여금」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휠체어로 서울로, 휠체어로 사회로
일본에서 1970년대 장애우의 사회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내놓은 "휠체어로 동경에 휠체어로 사회로"라는 운동이 있다. 휠체어를 타고 동경이나 사회로 나갈 수 없는 태도나 의사소통, 그리고 건축물의 장벽을 제거해야 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우리도 현재 「장애우 먼저」라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지만, 먼저라는 구호 자체가 시혜적이어서 우리는 못마땅해 하면서도 「탈시설화」운동과 방향을 함께 모색하기를 권하고 싶다.
"휠체어로 서울로, 휠체어로 사회로"라는 슬로건을 우리 것으로 정립하는 움직임도 필요하겠고, 미국의 자립생활운동의 정신도 우리의 것으로 개량·수용할 필요는 없을까 점검해야 할 때이다.
더욱이 더 이상 장애우는 동정적 수혜의 대상이 아니라 권익이나 인권이 보장되고, 명실공히 선택권이 주어지는 소비자로서 인정되어야 함도 당연한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시설을 갖춘 시설복지보다도 재가복지, 가족복지 나아가 장애우 스스로의 참여와 통합이 더 나은 복지 성취와 인권 보장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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