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3] 퇴진 압력으로 휘청거리는 지장협 장기철 회장
본문
[초점]
퇴진 압력으로 휘청거리는 지장협 장기철 회장
올해로 창립 11주년을 맞는 지체장애인협회(이하 지장협)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장협 회장이 최대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볼 수 있는 이번 지장협 사태는 현재 장애계에 매우 심각한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실정이다.
퇴진 압력으로 휘청거리고 있는 장기철 회장, 그의 거취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지장협 사태의 내막을 알아보았다.
잠재해 있던 내부 불신
1986년 지장협이 설립된 이래 지장협 하면 장기철 회장이 연상될 정도로 10년이 넘게 강한 카리스마를 유지해온 장 회장을 궁지에 내몬 이번 위기는 밖이 아닌 지장협 내부에서 촉발되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지장협 시도 지부장 13명이 연대 서명을 한 후 기자회견을 열어 장기철 회장 퇴진을 요구한 작년 12월 24일은 지장협 창립 10주년을 사흘 앞둔 시기였다.
창립 10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시도 지부장들은 장기철 회장의 노고를 치하하기는커녕 거꾸로 퇴진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장 회장은 어떤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는 것일까?
표면적인 사건의 발단은 지장협 제천지회 국고 보조금 유용사건으로 시작되었다.
작년 11월 지장협 제천지회 회원들이 지회장 장 아무개 씨를 횡령혐의로 경찰에 고소하면서 드러난 지장협의 국가 보조금 유용사건의 내막은 이렇다.
지장협 중앙회는 지난 94년 사용처를 명시해 국고에서 지원받은, 제천지회 장애우 자립작업장 기계 구입비로 사용해야 할 4천3백여만원을 지원하지 않고 가짜 영수증만 챙긴 후 임의로 중앙회의 운영경비로 썼다가 경찰수사에서 적발되었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 횡령이라고 볼 수도 있고, 유용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아무튼 이 사건이 문제가 되자 지장협 중앙회는 2년이 지난 작년 11월 부랴부랴 4천3백여만원을 제천지회에 내려보내 수습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 사건이 12월 초 언론에 보도되고 복지부의 특별감사가 시작됨으로써 장기철 회장은 궁지에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명분상 지부장들의 장 회장 퇴진요구는 바로 이 제천지회 사건을 계기로, 책임을 묻는다는 차원에서 촉발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사실은 지장협 시도 지부장들이 치부라고 할 수 있는 내부비리를 덮어두지 않고 오히려 사건의 파장을 키우는 대응을 하면서 즉각적으로 장 회장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이는 그동안 장기철 회장의 조직장악력과 카리스마를 생각할 때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결국 장 회장에 대한 지부장들의 불신은 최근에 형성된 것이 아니고 이미 오래 전부터 지장협 내부에 잠재해 있다가 제천지회 사건을 계기로 외부에 드러났다고 볼 수밖에 없겠다.
지부장과 직원, 장회장 퇴진 요구
지장협 15개 지부 중 동향 출신임을 이유로 서명을 하지 않은 광주, 전남 지부장을 제외한 13개 시도 지부장들은 12월 23일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참 개혁을 바라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발표한 "최근 협회의 심각한 사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라는 성명서에서 그 불신의 실체를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지부장들은 "우리는 지장협 중앙회가 제천지회와 공모해 국고지원금을 유용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는 바이다. 작금의 사태는 장애우복지의 향상을 갈망하는 4백만 장애우에 대한 명백한 배신행위이며 협회 구성원 모두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한 후 "우리는 지금 이번 사태가 일회적이고 우연적으로 발생한 사건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그간 조직을 운영해온 방식을 되짚어보면 이번 사건은 회장 일인의 무지와 비민주적인 독선이 낳은 필연적 결과이며 충분히 예견이 가능했던 사태라 할 수 있다"고 장기철 회장을 전면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이 성명서는 이어 "지난 추운 겨울에도 불편해 하는 회원들과 가족들을 동원해 정치세력화한다는 명목과 한 개인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시켜주기 위해 서명운동에 나서 최선을 다해보았으나 그 결과는 또 어떠했던가? 전국구는 따 놓은 당상이라며 호언장담했던 중앙회장은 이에 단 한마디의 변명이나 회원들의 고생과 노고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고 장 회장의 정치 지향적인 형태를 꼬집은 후 결론적으로 "장기철 회장은 4백만 장애우와 회원들에게 무릎꿇고 사죄함과 동시에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전 장애계의 발전을 위해 자진 사퇴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바이다"라고 장 회장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지부장들은 성명서 발표와 함께 법원에 회장직무정지 가처분신청을 내겠다고 밝혀 주목을 끌었다.
장기철 회장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비단 지부장들에게서만 나온 것이 아니었다. 1월 8일 나온 지장협 참 개혁을 바라는 중앙회 직원 일동의 성명서는 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장 회장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이 성명서는 "그동안 지장협이 장애우복지를 위해 노력해 왔음에도 그러나 묘하게도 장애계는 전국 최대의 조직과 대표적인 장애우단체라 할 수 있는 우리 협회에 대한 객관적 평가에 있어서는 매우 부정적이거나 심지어 거부반응을 보여 왔다. 이에 대해 우리들은 오랫동안 그 원인을 찾고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했다. 그런데 우리는 최근 대외적으로 퍼져있는 협회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개선하고자 하는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이었다는 점과 그 원인이 협회 전체에 대한 거부반응이라기보다는 장기철 중앙회장 개인에 대한 거부감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기에 이르렀다"고 장 회장에 대한 장애계의 폭넓은 불신을 지적한 후 "백 번 양보하여 장기철 중앙회장의 주장처럼 중앙회 운영의 어려움으로 인해 산하조직에 지원되어야 할 국고보조금과 연수원 건립기금 등을 운영경비로 써버렸다고 하자. 어떻게 그 예산을 회원과 이사회의 동의도 없이 회장 개인의 독단으로 처리할 수 있으며 향후 이를 갚고 부채를 경감할 수 있는 계획도 없이 써버릴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라며 제천사건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다.
이 성명서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지장협이 연 예산의 10% 이상을 판공비로 쓰고 있다는 의문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자체 회관조차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나 방대한 조직 운영에도 불구하고 10년이 넘게 비좁고 초라한 임대사무실(현재까지 임대료가 1억3천만원이나 밀려 있음)을 못 벗어나고 있는 실정은 재정열악 등 그 어떠한 이유를 들먹여도 납득이 어렵다할 것"이라는 지장협 운영의 난맥상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이 성명서는 이어 지부장들 성명서와 마찬가지로 "4백만 장애우의 정치세력화를 대내외적으로 표방하고 있는 장기철 회장은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결국 장애우복지의 질적 향상을 가로막고 있는 실적 위주의 사업에 몰두함으로써 외화내빈을 초래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뿐만 아니라 장애우복지 서비스의 질적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연구와 대안 제시에 열중하기보다는 이벤트성 행사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데 밤낮을 보내야 하는 자괴감에 양식 있는 장애우 직원들이 떠나가는 것을 지켜보아야 하는 아픈 경험을 우리는 갖고 있다"며 우회적으로 장 회장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장 회장 "퇴진할 수 없다" 버텨
한편 장 회장에 대한 지부장들과 직원들의 퇴진 압력이 높아가는 와중에서 보건복지부의 지장협에 대한 특별감사 결과가 나와 관심을 끌기도 했다.
보도에 따르면 제천사건 외에도 지장협은 연수원 건립기금을 무단 전용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연수원 건립 목적으로 회원들로부터 모금한 기금 9천7백여만원을 이사회 의결 등 절차 없이 해당액 전액을 관리운영비로 집행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이사회 의결 절차 없이 94년도 이후 총 53회에 걸쳐 3억4천만원을 차입금으로 집행해 지장협 운영의 부실화를 초래했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비리에 대한 조치사항으로 복지부는 장기철 회장과 박병선 사무총장은 경고, 그리고 제천사건의 책임을 물어 장영봉 지장협 제천지회장은 해임조치할 것을 요구하는 징계조치를 취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장협 운영에 대한 문제점 지적은 이번 특별감사 외에도 95년 정기검사에서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당시 감사결과에 따르면 지장협은 장애우 종합 연수원 건립기금 중 일부를 사전 조치 없이 타사업비 명목으로 부당 사용한 것과 장애우 자립작업장 6개소에 지원할 장비를 구입하면서 경쟁계약에 의하지 않고 수의계약에 의거 구매하는 등 계약업무에 불철저한 사항, 그리고 장애우 자립작업장 선정 및 관리를 불철저하게 하여 횡성군 자립작업장은 장비 구입 후 운전자금 부족으로 장비를 방치하고 있다는 등의 지적을 받았다.
그러면 이러한 복지부의 감사결과에 대한 지장협은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을까?
지장협은 현재 예산유용은 인정하지만 횡령은 아니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지장협의 한 관계자는 "지장협 1년 예산이 10억인데 정부지원은 4억원에 그치고 있다. 지장협은 따로 수익사업이 없기 때문에 예산 유용과 차입금에 의지해서 운영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어 연수원 건립기금을 관리운영비로 사용한 사실에 대해서는 "연수원 기금 유용은 복지부 지적과는 달리 이사회를 거쳐서 집행했다"며 하자가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지장협 같은 거대 조직은 뒷말을 안 남기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다하는 게 생리"라며 "특히 정치에 뜻을 가지고 있는 장기철 회장이 불미스런 흔적을 남길 리 없다"고 단정하고 있다. 즉 재정에 관련된 사항은 모두 사무총장이 알아서 처리하기 때문에 장 회장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지장협 장기철 회장은 현재 퇴진을 완강하게 거부하며 "7월 총회에서 재신임 받지 못하면 물러나겠다"고 배수진을 치고 있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아집 버려야
장기철 회장 퇴진을 둘러싸고 한 달이 넘게 벌어지고 있는 지장협 내 공방전은 최근 이병길 강원도 지부장 대신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김덕수 전남 지부장이 사퇴하고 7월 회장 선거를 위한 대위원회 준비위원회 구성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장 회장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주춤거리고 있지만 여전히 장 회장 퇴진 여부가 관건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장기철 회장은 외부세력의 개입과 음해설을 흘리며 맞서고 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지장협 사태는 심각한 내분 양상을 띠어가는 느낌이다.
내분과 관련해 한 가지 흥미 있는 사실은 지장협 지부장들 임명권은 장 회장이 쥐고 있기 때문에 지부장들도 물러설 형편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부장들은 여기서 장 회장 퇴진을 성사시키지 못하면 나중에 자신들이 당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때문에 현재로서는 지장협은 장 회장이 물러나든지 아니면 지부장들이 물러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떤 식으로 결말이 나든 지장협이 사태의 후유증을 심각하게 앓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국내 최대 장애우 조직을 자랑하는 지장협은 이미 이번 사태로 만신창이가 됐다. 특히 장기철 회장이 설혹 자리보존에 성공한다 해도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장기철 회장은 퇴진을 거부하는 것일까. 이점은 이번 지장협 사태를 바라보면서 장애계 관계자들이 갖는 의문과 연결된다.
즉 이미 도덕적으로 치명타를 입은 장기철 회장이 퇴진을 거부하며 버티는 속내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인데, 이에 대한 해답은 장 회장은 부인하고 있지만 지부장들과 직원들의 성명서에서 공통적으로 지적된 장기철 회장의 정치 지향적인 형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장기철 회장이 국회의원 뱃지에 대한 집념이 유달리 강하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그는 지난 91년 행상장애우 사태 때도 도덕적으로 치명타를 입었지만 회장 자리는 내놓지 않았다. 그런 그의 남다른 집념은 가능성을 보여 작년 10월 장 회장은 마침내 공개석상에서 신한국당 최 아무개 의원에 의해 16대 국회 때 직능대표로 영입하겠다는 언질을 받아냈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지장협 회장에서 물러난다면 장 회장의 그간 노력은 물거품이 되기 때문에 장 회장은 퇴진을 거부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장 회장은 지금 퇴진 여부와는 상관없이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번 사태에서 보듯 장애계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된 실정에서 설상가상으로 작년에 야심적으로 추진한 장애인총연합회조차 맹인복지연합 회장에 파트너였던 나종천씨에서 유정종씨로 바뀜으로써 총연합회 유지 자체도 불투명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장기철 회장이 선택할 길은 많지 않아 보인다. 장 회장이 장애계의 공로자로 인정받으려면 우선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아집을 버리고 사태 해결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 장애계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글/ 이태곤 기자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