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사랑방6-독자이야기] 소리없는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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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사랑방] 독자이야기
소리없는 약속
한적한 산길을 차로 달린다. 숲속길이 매우 고요하다. 불과 몇분 사이에, 차창 밖으로 달리던 자동차와 성남 시가의 빌딩이 숲 아래로 사라지고, 남한산성이 나타난다.
봄이면 꽃으로 향기로, 젊은 연인들의 환상과 데이트 코스가 되는 곳이라며 핸들을 잡은 친구가 얘기해 준다. 빌딩 숲 가까이에 이런 자연이 있음은 모두에게 큰 축복이다.
모임이 있는 양평의 P콘도로 가는 길이다. 연락을 받은 것은 며칠 전이었다. 직장일에다 낯선 곳까지의 장거리 운전이 부담스러워 망설이던 중이었다. 눈치를 챈 후배가 제 차로 가자고 하는 바람에 어쩌지 못하고 따라 나섰다. 나를 포함하여 선배격인 몇 사람이 선발대로 출발했다.
말로만 듣던 콘도에서의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 주관하는 장애우대학을 수강하기 위해., 10기생으로 만난 것이 지난 4월이다. 나같은 장애우를 포함하여 비장애 대학생과 청년들까지 40명 가까운 인원이 모였었다.
수강생중 나이가 많은 나는 강의를 듣는 것 외에 함께 어울려 노는 것은 생각지 않던 일이었다. 매번 강의가 끝난 뒤 뒤풀이가 이어졌고, 술잔을 나누며 자정을 넘기는 것이 다반사가 되었다. 연장자라는 예외가 허용되는 것도 아니어서 그때마다 곤혹을 치렀지만, 젊은이들의 놀이문화를 같이 즐기는 것이 싫지는 않았다.
이 모임에 동참하는 우리는, 모든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고, 장애우도 예외일 수 없다는 데 뜻을 같이하고 있다. 척박한 이 땅 위에 장애우복지를 실현하고자 하는 꿈이 있다.
불과 13주동안 우리가 얻은 것은 많았다. 무엇보다도 서로를 걱정해 주는 우정이 싹튼 것이 귀한 소득이었다. 생일을 맞은 회원을 위해 조촐하게 축하파티도 열어주고, 몇 순배 술이 돌고 난 두 두 팀으로 나뉘어 윷놀이판도 벌어졌다.
또 선물교환에 이어 마지막 프로그램이라며 백지 한 장씩을 돌렸다. 지난 1년 동안의 자신의 생활리듬을 설명하는 순서였다. 기장인 한태호부터 애틀란타 올림픽 출전 준비와 사격에서 금메달을 따기까지의 치열했던 과정을 바이오리듬으로 그려 설명했다.
그는 장교로 군 복무중 장애를 입은 국가보훈대상자다. 홀트아동복지회의 보육사로 일하고 있는 모습을 잔잔한 물결모양으로 그려낸 정의도 있었고, 사회복지사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할 포부를 이야기하는 의자도 있었다. 좋은 사람들과 만나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기쁨이었다는 막내둥이 영일이의 말에 일제히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내년에는 더 자주 모이자며 뜻깊은 동기모임의 마지막을 알리는 축배의 잔을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용문사에 들렀다. 불상을 응시하며 저마다 무엇인가를 기원하고 있다. 모르긴 해도 "우리사회가 장애우에게 차별이 없는 성숙한 사회가 되게 하소서"라고 했을 것이다.
흰 눈발이 비치기 시작했다. 넉넉한 자연 속에서 더 없이 순수한 젊은이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골짜리로 울리는 건강한 웃음소리, 소담스럽게 내리는 눈, 분명 축복이자 하늘이 우리에게 내려주는 소리없는 약속이었다.
글 / 전하연 (장애우 대학 10기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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