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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사회복지 민영화, 아직은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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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민영화, 아직은 이르다

 

우리나라의 현 사회복지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민영화"의 논리는 서구 복지국가의 훌륭한 실패(?)를 역사구조적 맥락상의 검토없이 국가의 책임만을 회피하려는 겉만 화려한 포장지다. 도대체 한 번도 준 적 없으면서 자활의지를 국민으로부터 앗아간다고 그들은 고민하고 있다. 서구의 경우, 국가독점자본주의의 한계적 성장에 그 원인이 가장 컸지만, 아무튼 우리나라의 전체예산 규모에 해당하는 방대한 국가주도형 하드웨어-특히 교정분야나 정신병원의 경우 그렇다-의 유지에 대한 현실적 어려움과 수혜자에게도 사회적 스티그마와 함께 실질적 효과성에 대한 소프트웨어 상의 문제제기로 지역사회재활, 지역사회보호, 주택정책의 민영화 등의 논리가 이론적·실천적 양 영역에서 주도권을 확보할 수밖에 없었던 실정이었다.
이러한 세계적 분위기 속에서 우리나라에 등장한 것이 소위, 공사역할분담이 조화로운 "21세기 복지공동체의 구축"라는 구호이다. 그런데 본 구호대로 복지의 사회구조화가 적절히 완결된다면 별 문제겠지만, 여기서 공적 영역에서 제기되는 민영화란 직접적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차원이고 민간부문이란 복지의 자본논리 침투라는 그 본질적 한계가 노정되어 있는 것이다.

 

 

국민복지기획단 복지안의 문제점
또한 경제수준의 1/10도 채 안되는 세계 120위권의 복지수준에서는 무엇보다도 국가가 국민의 복지권 보장을 위한 실질적 주체가 되어, 도시빈민을 위한 생계보장이나 의료보장의 현실적 확보가 시급한 실정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안없이 책임이양을 세계적 추세라는 명목으로 자충수를 던지고 있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국민복지기획단이 구상하고 있는 21세기 복지한국의 비전에 대한 문제점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첫째, 본 구상을 제기한 기획단의 핵심인사의 면면에서 드러난다. 여러 사람 거명할 것 없이, 본 기획단의장이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이 모 대기업체의 경제연구원장 출신으로 대표적인 성장우선론자에 해당한다.
둘째, 성장과 복지의 조화라는 차원이다. 역대정권의 성장논리는 파이논쟁으로 요약되어 왔다. 즉, "나누어줄 것도 없는데 무엇을 나누느냐"라는 선성장후분배의 입장은 노동계급의 저항을 효과적으로 저지하고 노동력 착취를 위한 가장 효율적인 무기로 작용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 정도 파이가 커지면 나눌 것이며 그 방법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 여기에는 결국 상당한 정치논리와 위정자의 의지가 주요 변수로 작용할 수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결국, 소외된 계층의 아픔을 도외시한 채 언제든지 사회복지가 선성장 우선논리에 밀려날 수 있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셋째, 지방자치단체에 사회복지적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에 대한 지적이다. 먼저 해방 후 40여년간을 중앙집권형 국가형태로 유지되어 왔었고, 본격적인 지자제가 실시된 지는 겨우 2년에 불과한 상태이다. 서울시만 하더라도 각 구별 재정자립도는 천차만별인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사회복지의 재정책임을 지방정부에 이양한다는 논리는 지역별 부익부빈익빈을 가속화시킬 것이며, 이는 "사회통합"이라는 사회복지의 궁극적 목표에도 부합되지 않는 것이라고 하겠다.
넷째, 현재의 공공전달체계가 미흡한 상황에서 민간영역의 적극적인 복지참여 유도만을 강조하는 입장은 가능한 한 정부의 책임영역을 축소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이렇게 정부의 복지역할이 전무한 상태에서 민간부문의 복지역할을 강조한다는 것은 정부의 책임회피를 의미하는 것이며, 민간부문에서 시장논리에 따라 복지구매를 할 경우 계층간 복지수혜의 불평등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다섯째, 수혜자 중심의 사회보험제도 구축에 전념하겠다는 것인데, 물론 복지국가의 수준을 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국기에 의한 복지비 지출비율과 함께 사회보장제도의 완비에 있다. 그런데 사회보험 위주의 복지정책 방향이 가장 문제시되는 것은 중산층 이상의 수혜자만을 겨냥하는 데 있다고 하겠다. 정작 수혜를 받아야 할 저소득층이나 농어촌근로자 등은 소외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 복지정책의 미래 역시 부담능력이 있는 계층들을 주대상으로 설정하고 있으며, 요즘 국가경쟁력 제고가 강조되는 분위기가 이를 더욱 가속화시킬 것은 자명한 일이라고 하겠다.
여섯째, 본 기획단이 복지공동체의 구축을 이루기 위해 복지지출 규모가 1996-2010년까지 복지투자 증가율을 일반재정 중가율의 1.2배로 유지하겠다고 공표했고, 또한 1996-2000년까지 공적부조 및 사회복지서비스 예산의 증가율을 대폭적으로 확대할 것으로 설정하였다. 하지만 올 예산 수립과정에서 당장 터져 나온 것이 복지부문예산의 우선삭감 주장이었고, 그래서 일부 학자와 전문가들이 정부 제일종합청사에 모여 항의농성을 전개하였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본 기획안이 결국 얼마나 허구적이며, 정치권의 흐름 변화에 따라 얼마나 단 번에 무너질 수 있는 것인지를 반증하는 사례라고 하겠다.

 

무력감 느끼고 있는 사회복지사
이상과 같은 복지공동체 구축을 강조하는 입장은 그럴듯한 미사여구로 덮어씌운, 겉은 화려하지만 그 속알맹이는 정부의 복지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하겠다. 그리고는 그것도 부족해 우리 국민은 사회봉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오명을 국가 스스로 공공연히 내비치며, 민간의 적극적인 사회봉사를 유도하기 위해 순수 자원봉사 본래의 정신을 훼손하는 각종 인센티브 기제를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무책임한 21세기 전망과 동일연장선상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것이 소위 우리나라의 "사회복지관 모델"이라고 하겠다. 국가는 생색만 내고 모든 운영부담은 민간영역으로 넘겼다. 그 결과 복지관은 문화센터의 아류에도 못 끼면서도 그 프로그램만은 유사한 형태도 흘러가고, 개개 주민들의 무기력에서 파생하는 제반 문제들이 결코 개인적인 것이 아닌 사회구조적 결함의 차원이라는 지역사회문제의 적극적인 쟁점화나 문제해결을 위한 지역사회조직 및 행동화라는 본질적인 목표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지역사회 내에 실제로 머물러 있으면서도 지역사회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존재로 표류하고 있는 실정이며, 생동감 넘치는 다이내믹이 이처럼 침체된 조직 내에서 짙은 패배감에 찌든 사회복지사들의 현실은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라고 하겠다.
결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정치적인 이유로 형식적인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단기간에 많은 복지관의 건립이 필요했고, 민간영역에선 돈은 있지만 명성이 필요하거나 또는 순수한 사회복지의 실천을 교회전도의 한 방편으로 변질 선택한 종교기관의 무분별한 침투를 허용함으로써, 돈이 되지 않는 프로그램은 무용지물인 낭비적인 것으로 인식되거나 혹은 전도가 곧 사회복지라는 해괴한 논리가 이 사회를 뒤덮고 말았다. 사태가 이러하다 보니, 각 법인의 부패와 이를 감시감독하고 예방할 국가에게는 복지기금에 대한 국가무책임에서 파생되는 사정 감사권의 상실로 인해, 적당한(?) 부정은 묵인되거나 능력으로 인정받는 왜곡된 가치의식이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고, 사회복지사들은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어쩔 수 없는 무력감과 패배의식을 지닌 채 막연히 출근만 하는 기계부품적 단순 직업인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이러한 이유로, 일부에서는 전문직이라는 사회적 외피를 현실화하기 위해 심리사회적 영역으로 적절한 수사학적 어구를 동반한 채 자기변명하면서 도피적 몸부림을 치고 있으며, 또 다른 일부에서는 이와 같은 사태 해결을 모색하지만 본질적으로 변화를 두려워하는 구조적 체화(體化)로 인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하며 방황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변화에의 들끓는 에너지는 주체할 없어 자괴적 독백으로 긴 한숨과 핏기없는 술잔에 희망을 쓸어담고 들이킨다.

 

창조적 사회복지운동으로 거듭나야
이러한 현실을 타개할 방법은 없는가? 분명히 있다고 본다. 즉 이제는 사회복지사가 평화와 공조만을 외치는 체제내의 순한 양으로만 머물러 있어선 안된다. 물론, 이러한 사회덕목은 좋은 것이고 또한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평화와 공존은 양 세력간의 균형을 의미하며, 적어도 우리 사회복지사들이 조직적 행동화를 통한 헤게모니를 장악하여 동등하고 대등한 힘있는 상대자로 성장해야만 이룩되는 윤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결국 국가차원의 복지구조적 왜곡에 따라 파생된 지역 하부단위의 복지파생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밑에서 위로 치고 올라가는 상향적 지역주민운동과 사회복지가 결합할 필요가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만, 한국사회를 주도해온 사회운동의 성과를 배우고 익혀 체득하고, 이를 기반으로 본격적인 정부 및 부패된 사회법인에 대한 강력한 대항세력으로 사회복지노동자들이 거듭나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의 달성을 위해서는 개인적인 분파된 모습으로의 접근은 현실을 더욱 꼬이게 할 것이다. 그렇다면 전략적 방도는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우선, 지역단위의 뜻있는 사회복지사들이 지역모임을 활성화시켜 지역차원의 사회쟁점을 뜨거운 감자로 부각시켜 나가면서, 지역단위 모임의 대표자들이 계속적인 회합을 통해 적어도 시 단위 이상의 산별 노동조합을 결성해 내는 것이다. 그 동안 단위사업장 수준에서의 노동조합은 있었지만 계란으로 바위치는 격이란 것을 실감했었다.
심지어 어떤 사회복지법인은 노조에 가입하지 않을 것을 사회복지사들의 근로계약조건으로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전교조가 출범할 당시 이러한 열악한 교육환경에서 단순히 기계적 암기를 강요하기 위해 또 하나의 기계적 전달자로 전락할 수 없음을 이슈화했던 것처럼, 우리 사회복지계도 인간의 삶의 질 고양을 위한 대행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엔 더 이상 사회복지사의 윤리와 양심에 비춰 머물러 있을 수 없음을 부각할 필요가 있다.
결국 현실에 답답함을 절감하는 의식있는 사회복지사들이 기관 내의 여타 전문직종과 연대하여 하나의 산별 사회복지노동조합을 결성해낼 때만이 전체 사회복지사가 사회복지운동가로 거듭날 수 있으며, 민중의 사회적 권리를 실현하는 당연한 대행자로서 또한 대변자로서,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와 부패한 법인을 상대로 장기적인 투쟁을 전개할 역량을 갖추게 된다고 확신한다.
다음으로 이 사회복지노동조합이 주도가 되어 지역사회복지관을 주민주체형 지역복지운동의 메카로 거듭나도록 압박해가야 할 것이다. 사회복지종사자들은 주민과 더불어 가난한 지역주민들에게 실질적 혜택이 돌아가는 지역복지프로그램을 입안하고 실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제도적 장치의 한 예로 건강한 지역주민대표자에게 사회복지관 예산운용과 프로그램 현황을 감시 감독할 수 있는 지역사회인가권(social sanction)의 구체적 제도화를 도입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지역운동을 통한 압박을 가속할 수 있도록 복지정책최고결정권자를 직접적인 운동의 대상으로 설정하는 범국민복지운동의 전개가 필요하다. GDP 대비 사회복지부문의 예산비중이 5%를 넘어서면 국가의 행정체제가 복지친화적 구조로 변모된다고 한다. 외국의 경우 국민소득 8,000달러 수준에서 이미 5% 복지수준을 달성했음을 상기할 때, GDP 대비 최저 5% 이상을 확보하기  위한 범국민 사회복지운동을 전개해 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들이 단순히 투쟁을 위한 투쟁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대안을 제시하는 창조적 사회복지운동으로 거듭나도록 하는 다양한 노력들이 또한 필요할 것이다. 아무튼 사회복기권에 대한 권리적 인식을 국민에게 주지시키면서, 복지마인드가 결여된 채 현상유지에만 급급해하는 정책최고결정권자들이 움직이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도록 지속적이고 동시다발적인 사회복지운동의 가열찬 전개가 요망된다.

 

글/이문국

작성자이문국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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