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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특집 1] 삶이 고단한 여성장애우들의 현실

본문

[특집]

 

여성장애우들 빗장을 열어라!

삶이 고단한 여성장애우들의 현실

 

지난 10월 11일부터 13일까지 3일 동안 서울 보라매공원 내 재활협회강당에서 "96 여성장애우대회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여성분과 "빗장을 여는 사람들"(이하 빗장) 주관으로 열렸다. "여성장애우와 가정"이란 주제로 열린 이번 대회는 94년 12월 빗장이 출범한 이래 끊임없이 제기해온 여성장애우 문제를 점검하고 사회의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한 대회였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과 장애 우라는 이중적인 차별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여성장애우들, 그들은 어떤 현실을 살고 있을까? 여성장애우대회를 계기로 그들의 문제를 진단해 보았다.

 

 

차별 속에서 고통 받는 여성장애우들
각종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장애우들 중 반 이상이 여성장애우로 추정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5% 2백만이라는 결코 적잖은 수의 여성장애우들, 그들은 여성과 장애우라는 이유로 이중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여성이면서 장애우라는 두 가지 핵심적인 차별요소를 안고 살아가는 여성장애우들은 "차별이 낳은 차별" 속에서 더한(+) 것이 아닌 곱해진(×) 고통을 안고 힘겹게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여성장애우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관심을 끌고 있지 못한 실정이고, 그래서 변변한 정책 하나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빗장"이 북경세계여성대회 비정부 포럼에 참여하고 "한국 사회의 여성장애우 문제와 해결방안" 등을 내놓는 등 다양한 활동으로 관심을 환기시킨 바 있으나 현실적으로 여성장애우 문제에 대해 진전된 사항은 아무것도 없다.
가정 내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각자 처한 사회 현실 속에서 다양한 형태의 차별에 처해 있는 여성장애우들, 빗장을 걸고 분을 굳게 닫을 수밖에 없는 그들의 현실은 과연 어떠한가? 몇 가지 사례를 통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뇌성마비 장애우 이숙영(23세) 씨의 경우는 가정에서의 차별 때문에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사례이다.
이숙영 씨(23세)는 2남 1녀의 장녀로 조부모, 부모님과 함께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다. 그런데 이숙영 씨의 조부모는 이 씨의 장애를 확인한 4살 때부터 집안에 며느리가 잘못 들어와서 이러한 일이 생겼다고 이 씨의 어머니를 학대하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장녀인 이 씨를 동생들 보는 앞에서 때리고 구박하는 등 그녀를 못살게 굴었다.
이 씨의 동생들도 그녀를 무시하고 친구들 앞에서 소개하기를 꺼려했다. 다행히 이 씨는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나 성장과정에서 소외로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미워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 끝에 급기야 지난봄에는 할머니와 심한 말다툼 끝에 옷세탁에 쓰는 세제 물을 들이켜고 자살을 기도했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그 후 심한 두통과 소화불량에 시달리고 있으며 지난 7월초에는 가출해서 20여 일 동안 자원활동하는 선배의 집에 기거한 적도 있다. 더욱이 충격적인 사실은 그녀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옆집 오빠(당시 중3)로부터 성폭행당한 경험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숙영 씨는 "다음 세상에 태어난다면 깨끗하고 건강한 몸으로 살고 싶다"고 절규하고 있다.
이렇게 여성장애우가 여성이고 장애우이기 때문에 가정과 사회에서 버림을 받고 있는 경우는 이숙영 씨의 예외에도 많다.
엄수연(35세) 씨, 그녀는 소아마비 장애 때문에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았다. 가난한 집에서 셋째로 태어난 그녀는 열두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장애우 수용시설에 보내졌는데, 그녀는 지금도 자신이 버려졌을 때 어머니가 한 말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네가 남자로 태어나기만 했어도 어떻게든 너를 키웠을 것이다. 하지만 어려운 살림에 여자인 너를 키울려니 엄두가 나지 않는구나. 미안하다. 엄마를 용서해라." 엄수연 씨에 따르면 버려질 당시에는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생각해 보니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남아선호 풍토 때문에 자신이 버려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집안 형편이 좋지 않고, 거기다 내가 장애를 가졌지만 내가 남자로만 태어났어도 버림받지 않았을 수 있었을 거예요. 여자로 태어난 것이 죄인 거죠."라고 말한다.
현재 시설에서 나와 조그만 가방공장에 다니고 있는 그녀는 "혼자 세상을 살아가려니 너무 막막하다."며 한숨을 내쉬고 있다.
하지은(28세) 씨는 장애등급 2급의 청각장애우로 1년 전부터 자원활동하는 대학생으로부터 한글, 산수 등 초등학교 교과과정을 배우고 있다. 그녀는 5세 때 심한 열병을 앓고 난 후 청각장애를 가지게 되었는데 2남 3녀 중 막내였던 그녀는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다.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은 하지은 씨의 오빠들은 대학을 나왔고, 두 언니들도 고등학교를 나왔다. 그렇지만 그녀는 부모가 보내주지 않아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지금 와서 그녀의 부모는 "우리가 너무 일찍 너를 포기만 하지 않았어도 너를 학교에 보냈을 것이다. 우리는 너를 공부시키는 것보다 귀를 낫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 병원, 한의원 등을 찾아다녔는데, 별 효과가 없었다."며 미안해하고 있다.
그녀는 현재 재화 업체인 금강제화에 다니면서 비록 늦었지만 수화에 아주 능한 자원활동자로부터 구구단을 익히고 있다. 무슨 거창한 계획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배우고 싶다는 소박한 꿈, 바로 그 꿈 때문에 주경야독의 어려운 길을 걷고 있다.
가정을 벗어난 여성장애우가 당면한 심각한 고민 중 하나는 바로 결혼 문제이다.
박주희(30) 씨는 휠체어를 타는 지체장애우로 지난 6월 우여곡절 끝에 건장한 체격의 한 남성과 결혼을 했다. 2년 전 한 가톨릭 모임에서 두 사람은 운명적인 만남을 한 후 사랑을 키워왔는데, 결실을 맺기에는 두 사람 앞에 놓인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았다.
시댁식구들의 반대는 말할 것도 없고 그녀의 부모님도 남자 쪽 집안이 반대하는 혼사는 시키지 않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보이셨다.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었다.
"뭐가 부족해서 두 다리를 못 쓰는 여자와 결혼을 하려느냐? 그런 여자가 무언들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 좀체 반대의 기색을 수그러뜨리지 않던 시댁식구들과 기절까지 하신 시어머니, 그 사이에서 남편은 물론 그녀가 겪은 정신적인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물론 지금은 이런 험난한 결혼으로의 과정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는 두 사람의 행복한 보금자리를 가지고 있지만.
사랑이라는 연장을 가지고 결혼이라는 결실을 맺기 위해서 편견이라는 피눈물나는 아픔을 감수해야 했던 여성장애우가 어디 박주희 씨뿐이겠는가? 마치 꼭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처럼 여성장애우들의 결혼에는 반드시 상대편 집안의 반대가 따른다.
여성장애우가 반대 없이 결혼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예로 꼽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도 박주희 씨처럼 우여곡절을 겪긴 했지만 결혼에 성공하는 예는 여성장애우들의 전체 실정에 비쳐볼 때 그나마 나은 편에 속한다.
통계에 따르면 여성장애우 중 반 수 이상이 결혼을 하지 못하고 혼자 살고 있다. 여성장애우 스스로 위축돼 결혼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지만 결혼생활이 여성에게 지워주는 짐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결혼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출산과 가사의 일, 거기다 시부모까지 모셔야 하는 우리나라의 결혼형태에서 여성장애우가 설 자리는 그만큼 좁은 것이 사실인 것이다.
그러면 결혼을 하지 못하는 여성장애우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한경주(34세) 씨, 소아마비 장애우인 그녀는 자수기술을 가지고 있다. 앉아서 하루종일 천에 수를 놓는 그 직업이 자신의 평생 직업이 될 줄 알았던 그녀는 요즘 황당해하고 있다. 수자수가 노임이 싼 기계자수로 대치되면서 일감이 없어진지 오래이다. 때문에 다른 직업을 가져야 하는데 선뜻 여성이고 장애우인 그녀를 받아주겠다는 직장이 없다. 거기다 나이도 많다보니 마땅히 들어갈 만한 직장이 없는 실정이다. 혼자서의 삶을 설정하고 있는 그녀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먹고살기 위해 직장을 가져야 하는데 그게 마땅치 않아 심한 심적 고통을 겪고 있다.

 

빗장을 열고 완전한 사회참여를
위에서 열거한 사례들은 여성장애우가 삶의 현장에서 겪고 있는 아주 작은 예일 뿐이며, 또한 전체 여성장애우의 문제를 알리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인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심각한 사회문제인 여성장애우 문제가 우리 사회 전면에 부각되지 않고 있고, 여성장애우의 권리실현에 대한 목소리가 작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은 우선 그동안 여성문제를 고민하는 여성계나 장애우문제를 고민하는 장애우계에서조차 여성장애우 문제를 논외의 영역으로 등한시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여성계나 장애우계의 여성장애우 문제 외면은 정부나 사회로 하여금 여성장애우 문제 자체를 아예 외면하고 책임을 회피하게 하는 근거를 제공했다.
문민정부가 들어서서 "삶의 질"을 강조하고 있지만 여성장애우들의 삶의 여건이 나아지고 있다는 징후는 보이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고통만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여성장애우 문제와 해결이 이뤄지려면 먼저 정부나 사회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고 여성장애우 스스로 빗장을 열고 당당한 삶의 주체로 서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여성장애우 모임 빗장은 여성장애우 문제가 해결되려면 정부 차원의 여성장애우들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와 정부의 여성장애우 전담기구 설치, 여성장애우의 경제적인 자립을 위해 남녀고용평등법 조항 중에 취업활성화를 위한 조항 삽입과 사회 인식 개선 등을 꼽고 있다.
이 땅의 모든 여성장애우들이 편견과 제약이라는 빗장을 과감히 열고 뛰쳐나와 우리 사회의 역사 속의 당당한 주인공으로 자리하는 그날을 기대하는 것은 비단 기자만이 아닐 것이다.

 

글/조옥 기자

 

작성자조옥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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