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농성으로 불거져 나온 에바다 농아원 비리 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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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학생들이 집단 농성을 일으킨 에바다농아원 사태는 농아원측의 운영 비리에 대한 원생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결국 원장이 공금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됐지만 학생뿐만 아니라 많은 교사와 학부모, 복지관 직원들이 농아원과 학교, 복지관 등 에바다복지회 전반의 파행 운영에 강한 의혹을 제기해 파장은 계속되고 있다.
원장과 학생들의 주장 달라
11월 27일 새벽 5시경에 일어난 학생 60여 명의 농성과 이에 대한 경찰의 권총진압 소식을 듣고 현장인 평택의 에바다학교(평택시 진위면 하북리, 에바다농아원 내 소재)를 찾았을 때, 농아원 최실자 원장(에바다장애인복지관 관장 겸임)은 농성이유에 대해 "체육교사인 권 아무개 교사가 유도로 종목을 바꾸기를 원하는 김 아무개 학생을 탁구를 계속하라며 폭행해 학생들이 농성을 일으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원장은 또 "오늘 농성을 수사한 경찰들이 이 농성이 단순한 학생들의 행동수준이 아니라 외부인물의 조정이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 자리에 함께 있던 최성창 교장(에바다복지회 이사장, 최 원장의 남동생)은 "경찰이 사건을 조사 중이며, 현재의 단계에서는 할 말이 없으니까 학교에 들어가 취재도 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곧이어 만나본 학생들이 주장하는 농성 이유는 사뭇 달랐다. 최 원장을 비롯한 원측의 부정과 공금횡령 등의 비리 때문에 자신들이 농성을 했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설명하는 농성의 진행상황은 다음과 같다(신 모 교사의 통역으로 경찰 조사 후 한 교실에 모여 있던 학생들과의 집단 인터뷰가 이뤄졌다).
26일 김영삼 대통령에게 원장과 재단 측의 공금횡령 등의 비리를 고발하는 진정서를 보낸 다음날 오전 농성을 벌이기로 계획하고 그 다음날 대자보를 붙이고 농성 사실이 원장이나 직원들에게 너무 일찍 알려질까 봐 보모 6명을 세탁실에 감금하고 캐비닛 등으로 입구를 막은 후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옷장의 봉을 들고 있었는데, 경찰들이 권총을 정면으로 겨냥하며 들이닥쳐서 자신들을 연행했다고 주장했다.
기자인터뷰 중 들어온 원장을 학생들이 내쫓아
학생들 26명은 5시 50분경 경찰로 연행돼 조사를 받고 아침 9시경 학교로 다시 돌려보내졌다. 그런데 10여 명이 수갑이 채워지고 여학생을 비롯한 26명이 경찰서로 연행되는 과정과 조사를 받는 동안 계속 경찰로부터 구타를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기자가 확인한 바로도 얼굴과 손목에 구타와 수갑이 채워진 흔적이 있는 학생이 다수 있었으며, 한 학생은 그 과정에서 많이 맞은 후 심한 구토 증세를 보여 병원에 입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 맨 처음 신고를 받고 출동한 평택경찰서 진위지소 한 경찰은 "두 번 권총을 사용했다"며 "경찰관 두 명이 신고를 받고 달려갔을 때 네 명의 학생이 가게에서 절도를 하고 있어 이를 중지시키기 위해 권총으로 위협을 해야 했고, 보충인원 8명이 온 후 함께 들어가 학생들의 소요를 막기 위해 권총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총기의 정면조준에 대해서는 "당시 현장이 굉장히 폭력적이었기 때문에 농성학생들을 위협하기 위해 권총을 하늘로 향해 겨냥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학생들은 시위 이유에 대해 "원장이 임금도 제대로 안주면서(농아원 내 자립작업장으로 제본소가 있음) 밤늦게까지 일을 시킬 때가 많고 주민등록증과 장애인수첩을 위조해 공금횡령을 하는 등 자신들 몫의 돈을 빼돌려온 것을 이제까지 참을 만큼 참았다"며 원측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이 아무개 학생(고3)은 또 "농성 후인 오전 10시경 나만 불러서 다른 선생님이 시켜서 어쩔 수 없이 진정서를 그렇게 썼다는 내용으로 다시 쓰라고 원장이 몇 시간 동안 강요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렇게 학생들과의 집단 대담이 진행되고 있는 교실에 들어온 최실자 원장은 농성학생들에게 기숙사로 돌아가라고 말했으나 학생들은 오히려 힘으로 원장을 교실 밖으로 밀어내고 문을 잠그기도 했다. 이날 학생들은 "원장 퇴진이 관철될 때까지 수업을 거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일부 학부모님들은 "교문 입구에 간판조차 없어 마을 사람들이 고아원인줄로만 알고 학교가 있는지도 모른다."며 "경찰도 학생들 대부분이 부모가 있는 학생인줄 몰라 더욱 마음 놓고 폭행을 한 것 같다"며 분개해 했다. 한 학부모는 시설들을 기자에게 차례로 보여주며 "학교 유리창이 깨진 후 1년이 다 돼서야 유리창을 갈았고 교실 바닥도 누수가 돼서 누전사고가 났는가 하면 교실장판이 썩고 들고 일어나 계속 학교 측에 진정을 했는데도 고쳐줄 생각도 하지 않아 학부모들이 여러 차례 돈을 깔아야 했다"고 폭로했다.
또 학부모들은 농아원내 기숙사의 보모 7명 가운데 청각장애우가 5명에 달하고, 더구나 건청인 중 한 명은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여학생이라며, "보모가 청각장애우면 위험한 사태가 발생해도 듣지 못해 사고를 예방하기 어려운데 아무래도 이들의 보수가 월 15만원에 불과해 인건비가 싸게 먹히기 때문에 원 출신 가운데 청각장애우를 보모로 고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자리에 함께 있던 한 교사가 "학교에 다니면서 보모로 일한 경험이 있는 학생을 조사해 봤더니 15명 정도나 됐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학부모들이 사건 후 공동으로 작성한 진정서에는 "학생들을 위한 도서관 시설조차 없고 도서들이 태부족하며, 기술교육 및 컴퓨터교육을 위한 시설이나 기자재가 전무한 실정"이라며 예산 부족을 이유로 운동회나 소풍, 수학여행 등의 학교행사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소풍도 운동회도 없는 학교
이 학교는 89년에는 십일조 일괄 원천징수, 기부금 강요 등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는 교사와 학교측간에 마찰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상황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고 교장이 거의 출근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누나인 최실자 원장이 모든 학교행정을 주관하는 등 월권을 행사해 왔다고 교사들은 주장하고 있다.
교사들은 "원장은 학교 직원체계에서는 서무직원으로 되어 있는 데도 교감의 의사도 무시하면서 학생상벌이나 담임배정 뿐만 아니라 학교의 행사도 모두 자신의 지시에 따르도록 교사들에게 강요하면서 막강한 실권을 행사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한 교사는 "학생들이 이렇게 들고 일어날 정도라면 썩을 만큼 썩었다는 증거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는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복지회의 족벌경영부분이다.
앞서 나왔듯이 최 원장과 최 교장은 남매 사이인데 교사와 학부모들은 "셔틀버스 기사 말고는 전부 원장과 교장 남매의 친인척으로 알고 있다"며 농아원의 직원들이 몇 명인지 이들의 직급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며 문제를 지적했다.
최 원장의 무단 간섭과 파행운영은 현재 그가 관장으로 재직 중인 에바다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최 관장은 직원들 간의 잡음이 불거지자 10명의 직원에게 11월 26일까지 사직서를 제출할 것을 일방적으로 종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직원들은 11월 25일 노조를 설립하고 이를 부당해고라며 현재까지 사직서 제출을 거부하면서 관장 측과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근무하지도 않는 6명의 직원임금 횡령
학생농성과 관련해 원의 운영 비리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평택경찰서는 29일 공금횡령 혐의를 잡고 최실자 원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해 구속했다.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바에 따르면 근무하지도 않는 최 원장의 언니 최신향씨를 비롯해 6명을 장부상에 직원이라고 허위로 기록하고 원생 수 부풀리기 등으로 1억원 가량을 착복한 혐의다.
평택경찰서에 압수된 자료에 의하면 경기도지사의 직인만 찍힌 장애수첩 뿐만 아니라 원생들의 장애인수첩과 주민등록증이 두 개씩 위조된 자료가 다량 발견됐다. 따라서 원의 이런 비리들이 그동안 감사에서도 별다른 지적들이 없었던 점으로 보아시나 도청 공무원들과의 유착관계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수사가 계속됨에 따라 복지관 직원과 학교 교사, 학부모들은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원장을 비롯한 복지회측의 전반적인 운영 비리에 대한 자료수집과 제보를 계속하고 있다.
그동안 문제가 됐던 시설의 전형적이고 총체적인 비리의 판박이양상으로 보이는 이번 에바다농아원 사태의 끝에는 또다시 되돌이표가 붙지 않도록 해당 관청의 강력한 지도감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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