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사회복지시설 울리는 후원금의 은밀한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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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병 어린이들의 대부로 알려졌던 이상용씨가 최근 자선수술비모금을 빙자해 출판업자와 결탁, 거액의 시민 후원금을 유용했다는 혐의가 드러나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지난해 소쩍새마을 사건에 이어 올해 또다시 터져 나온 후원금 착복과 관련된 이번 사건은 남 모르게 작은 사랑의 손길을 펴왔던 대다수 국민들로 하여금 허탈감을 넘어선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이에 함께걸음은 사회복지단체 및 시설에서 후원금의 비중과 이에 대한 관리체계의 문제점을 알아보았다.
작년엔 소쩍새 마을, 올해는 이상용
한국어린이보호회와 이상용씨 사건을 바라보는 각 사회복지단체와 시설 관계자들의 심정은 참으로 복잡 미묘하다. 앞으로는 선행을 한답시고 이 시대의 마지막 양심인양 행세를 했으나 실은 자선을 담보로 개인적인 치부에 몰두함으로써 자신들의 이미지와 자긍심에 먹칠하는 인사들은 단죄해야 마땅하겠지만 그런 비리 사건이 터지면 사회복지단체들을 싸잡아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당장 후원금 모금이 뚝 떨어져버리는 것이다.
충현복지관에서 일하는 한 사회복지사는 최근 어떤 사람에게 명함을 내밀자 "이상용이랑 똑같은 일 하는 사람이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이렇게 이상용씨 사건 이후 전체 사회복지종사자들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인식에 불신감이 숨어있지는 않는지 그는 섬뜩하기조차 했다.
PC 통신에는 이상용씨를 동정하는 내용과 함께 모든 자선단체에 대한 회계감사를 실시해야 한다는 격앙된 목소리의 성토도 일고 있다. 난방비 때문에 지출이 더 커지는 겨울,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외쳐보지만 혼잣말이 될 뿐 여론에 무방비로 공격당하며 올해를 보낼 걱정에 허리띠를 더욱 조여 매야만 한다.
후원금, 정부지원을 받는 대규모 인가시설 뿐만 아니라 사업비의 전액을 후원금과 수익사업에 기대어 살림살이를 꾸려가야 하는 임의단체나 비인가시설에게 있어서는 생명줄에 다름없기 때문이다.
후원금 없으면 쓰러진다
사회복지시설, 특히 정부지원도 받지 못하는 비인가시설이나 임의단체의 경우 든든한 배경이 없는 한 스스로의 수입만으로는 살림을 꾸려나가기가 힘들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소쩍새마을 사건 이후 보건복지부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95년도의 경우 전국 293개소의 무허가시설의 한 시설당 총수입은 평균 4천550만원으로, 이중 자체 수입에 의한 것은 32.9%에 불과했다. 정부보조 7.8%, 후원금과 같은 외원보조가 13.2%, 민간보조가 25.6%였는데, 그나마 정부보조는 무허가시설 수용자 중 생활보호법상 거택보호요건에 해당되는 사람에 대해 생계보호비로 받는 예산수준이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각 시설에서는 빚을 지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법인시설도 운영경비의 20%를 충당할 수 있는 수익용 기본재산을 소유한 법인은 27%에 불과하며, 심지어 부채를 지고 있는 법인이 16%, 1개 법인당 평균 부채액도 6천727만원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나사렛대학교 김종인 교수(재활학과)는 "대규모 인가시설 중에 겉으로는 운영이 잘 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곳이라도 내부를 깊숙히 들여다보면 이자 갚기도 급급한 형편인 곳이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소규모 시설은 사정이 더하다. "매달 예산이 마이너스지만 후원회원들에게 매번 그런 상황을 공개하기도 부끄럽고 심적인 부담을 느끼게 할까봐 제대로 사실을 알리지도 못한다"고 정신지체장애우 공동체 시설 맑음터의 권원란 원장은 재정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일부 장애우시설에서 재정적인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시도하고 있는 자립작업장의 경우 노동부측에서는 경제 마인드를 도입해서 잘만 운영하면 소규모 공장형태로 충분히 이윤창출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초라한 실상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론으로나 가능한 일일 뿐이다.
베데스다 선교회 양동춘 목사는 "교회를 상대로 성화액자를 제작해 판매도 해봤지만 비지니스는 비지니스맨들이나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절감했을 뿐"이라고 털어놨다. 전문적이지 못한 섣부른 수익사업으로는 이미지만 실추시킬 뿐 실질적인 재정확보에는 별다른 도움이 안돼 이 단체는 결국 100% 후원에 의존하고 있다.
맑음터의 권 원장도 판로개척에 대한 어려움을 설명하며 "장애우공판장에 식구들이 제작한 고가의 수예품들을 납품해봤지만 일반인들이 장애우들 상품은 싼 것만 찾아 판매가 부진하다고 들었다"며 "일반 시장을 개척할 인원을 충당하고 싶지만 인건비를 맞출 수가 없어 알음알음으로 판매하는 수준이다"라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장애우시설에서 주로 시도하는 일들도 영세한 자본으로 시작하기 쉬운 농작물 경작, 축산, 구두닦이, 장갑생산 등이어서 그 수익실적도 턱없이 열악하기만 할 따름이다.
"그래도 인가이용시설은 후원금이 떨어질 경우 사업을 줄이면 그만이지만 수용시설은 당장 먹고 살길이 막막해지는 생존의 문제가 닥친다"고 한 시설 관계자는 설명한다. 들어오는 수입이 떨어지면 시설의 모든 식구들이 먹을 것과 난방비를 줄여가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래서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는 시설도 생기는 것이다.
복지관에 대한 정부 지원은 전체 운영비의 41%일뿐
이용시설의 경우도 어려움은 마찬가지다. 뇌성마비복지회 후원담당 김은정씨는 "현재 정부 지원금은 종사자들의 인건비 수준으로 턱없이 모자라 사회복지사들의 이직률이 높아지게 된 것"이라고 지적하며 "인건비와 사업비를 충당하는 데 있어 후원금의 비중은 상당히 크다"고 설명했다.
한 조사연구에 의하면 사회복지관에 대한 정부보조금은 전체 운영에 필요한 경비의 41%의 수준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총 지출예산의 48%를 차지하는 인건비 소요액보다도 낮은 것이다. 게다가 보조금이 복지관 유형별로 일괄 지급됨에 따라 이용료 수익금의 비중이 큰 복지관에 더 많은 보조가 이루어지는 결과를 초래하여 형평성을 잃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따라서 각 단체와 시설에서 후원회원들을 끌어들이는 데 기울이는 노력은 필사적이다. 임원과 직원들의 각각의 인맥과 연줄을 최대한 동원해 인정에 호소하는 한편 유가지의 회지 구독이나 캠프 등의 행사에 희망자와 후원자를 일대 연결해 후원을 유도해내기도 한다. 대학가에서 흔히 이용되는 하루찻집이나 하루술집도 사회복지관련 단체들에게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용한 자금동원방법이다. 저금통을 보급, 동전이 가득 모이면 사회복지시설에 다시 갖다주도록 유도하고 연말이면 카드판매를 시도하는 등 갖가지 방법도 동원되고 있다.
또 일부 규모가 있는 시설에서는 백화점과 연계하여 "장애우돕기" 바자회 행사에 이름을 빌려주고 그 수익액의 일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 백화점들의 떠들썩한 홍보와 실질적인 수익액에 비해 행사 후 시설로 전해지는 이익금의 액수는 소액이어서 시설 관계자들로부터 "순 사기"라는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 물품협찬을 받아 시설 내 앞마당에서 직접 바자회를 여는 곳도 있으나 이것이 때로는 야시장화 되면서 주정시비까지 일어 사회복지시설의 이미지마저 먹칠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열악한 재정을 보면 수익사업을 해야하는데 이렇게 본말이 전도되는 상황까지 벌어지게 되면 직업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된다고 시설 종사자들은 토로하고 있다.
후원동원 방면에 있어서는 신화처럼 남아있는 소쩍새마을 전 원장 일력(본명 정승우)의 경우 매스컴을 적극활용, 눈물에 호소한 경우이다. MBC 인간시대에 장애우와 부랑자들을 돌보는 성자로 일력이 소개된 직후 자원봉사 관광버스가 줄을 잇고 엄청난 후원금이 들어오게 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 같다고 소쩍새마을 한 관계자는 전한다.
이후 일력은 측근은 자주 방송국에 보내 방송출연을 간청해서 여러 프로그램에 소개되기도 했다. 일력과 소쩍새마을이 유명해진 것은 바로 이러한 배경이 있었으나 또한 그 몰락도 방송을 통해 이루어졌으니 자기 시설의 살림을 챙기기보다는 사리사욕을 위한 후원 늘리기에만 골몰한 시설장의 말로가 어떤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모여진 후원금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는 각 시설과 단체의 상황에 따라 다르다. 일정 규모 이상의 시설에서는 후원회원들과 관리의 편의를 위해 지로체계로 매달 금융결제원을 통해 회수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 내역이 전부 공개되는 것도 아니다. 평택의 한 복지관 직원은 "96년 1월부터 기탁된 후 원금은 총 7백여만원 정도인데 그 사용내역을 후원관리 담당 직원도 모르고 후원자들에게 전혀 공개하지도 않는다"며 관리상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소규모 공동체와 같은 비인가시설은 후원회원수도 상대적으로 소수이고 전산으로 관리할 프로그램체계를 구비하기가 어렵다고 토로하고 있다. 따라서 그곳의 후원회원들은 자동이체나 온라인입금을 통해 시설의 대표자 명의로 된 은행통장으로 송금을 한다.
맑음터 권원란 원장은 "내부 재정사정을 뻔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일일이 결산보고를 하지 않아도 믿고 꾸준히 후원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그런 믿음이 있기 때문에 후원금과 관련한 비리사건이 터졌어도 정기회원 수의 변동은 그다지 없다"고 전한다. 그러한 믿음들도 소중하지만 앞으로 시설 운영진들의 투명한 후원관리 뿐만 아니라 후원자들이 시설운영 주체로서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의견개진을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김종인 교수는 "미국의 비영리시설 운영관련 법조항에는 시설 이사장 등 책임지는 국고지원 여부에 상관없이 재산등록을 통해 자산이나 프로그램지원비내역 등을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후원관리를 전산화하고 시기별로 후원자들에게 그 내역을 공개하는 등 어느 기관보다도 투명한 회계를 실시한다면 설혹 한 시설에서 후원관련 비리가 터져나오더라도 다른 전체 기관들이 동시에 후원자들의 손길이 떨어져나갈까 걱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아픔에 동참하는 감사를 실시해야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는 이상용씨 사건이 있은 후 사회복지단체 및 시설에서 벌어지는 후원금 착복 등 비리를 접수하는 창구를 열었다. 담당자 박순철씨는 "후원금 착복 등의 내용은 내부 종사자들이 가장 잘 알 것이기 때문에 비리신고는 내부자 고발의 형식이 강해 개인적인 불이익에 대한 부담이 있어 실질적인 접수사례가 많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지만 사회적으로 경종을 울린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최근 국회를 중심으로 불거져나온 효정원 사건을 돌아보면 해당관청의 감사라는 절차가 얼마나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진행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베데스다 양동춘 목사는 "이번 이상용씨 사건을 계기로 앞으로 감사가 강화된다고 해도 단순히 비리를 적발하는 실적위주의 감사가 아니라 각 사회복지단체나 시설이 갖고 있는 재정적인 어려움 등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는 아픔에 동참하는 감사가 되었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보다 근본적으로 사회복지사 뿐만 아니라 시설장에 대해 인식개선을 중심으로 한 재교육을 실시하여 시설을 자신의 사적 재산으로 인식해서 공금을 유용하지 못하도록 인식을 전환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지 오래다.
또한 국가의 사회복지 지원정책이 그 시설의 이용자와 수용자의 머리 수에 해당하는 지원만을 할 것이 아니라 장애우 개개인의 연금의 수준을 높여 자신이 원하는 시설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경제적 지위를 확실하게 제공하는 방향으로 획기적인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시설 운영 프로그램에도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낼 수 있을 것이고 시설들은 고객인 장애우를 유치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양질의 프로그램 아이디어를 고안하는 데 힘쓰게 될 것이라는 의견이다.
정부는 장애우관련 사회복지법인 시설들을 중심으로 기부나 후원을 한 사람은 연말 세금정산 때 일정 비율을 감면해주는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정부가 담당해야 할 복지사업을 대신하고 있는 후원자들에 대한 그나마의 배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국의 결연 대상 불우이웃 24만여 명 가운데 후원자들과 실제 결연을 맺는 수는 27%인 6만4천여 명에 그치고 있는 것처럼 우리 사회의 나눔의 정신은 아직 전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비해 크게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과연 이상용씨 사건이 이제 후원금 관련비리사건의 마지막 사례가 될 것이지, 비리가 근절되지 않는다면 그나마의 후원자도 점점 더 유지하기가 어렵고 결국 사회복지단체의 위상도 설 곳이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를 막기 위한 운영자의 각성과 사회복지종사자들간의 공동의 대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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