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일본장애우 복지에서 무엇을 배울것인가?1] 장애연금으로 최저 생활은 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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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일본 장애우복지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장애연금으로 최저 생활은 보장한다.
지난 8월 22일부터 26일까지 일본 나고야 시에서 제 2회 한일 장애우 교류대회가 열렸다. 이번 교류대회를 계기로 새삼 관심을 끈 것은 일본의 장애우 복지제도이다. 일본의 장애우 복지는 무엇을 지향하고 어디로 가고 있을까? 그 답을 일본 장애우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에서 찾아보기로 한다. 먼저 나고야 시와 오사카시의 장애우 생활 현장을 둘러본 글을 싣는다.
바람직한 공동체 왓빠모임
일본 정부 공식 통계는 일본의 전체 장애우를 469여명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 중 지체장애우가 280만 명(시각, 청각, 장애우가 다 포함돼 있다)으로 제일 많고, 정신장애우가 150만 명(일본은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정신질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장애우로 인정하고 있다). 정신지체인이 39만 명이다.
그리고 일본의 장애우 복지제도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장애연금 지급과 자립작업장 지원제도이다. 일본의 중증장애우들은 정부로부터 많으면 8만 엔에서 적으면 5만 엔 가량의 장애연금을 매달 지급 받는다.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약 60만원에서 40만원 사이의 연금을 받는 셈이다. 이 연금 외에도 자원봉사자를 유급으로 쓸 수 있고, 별도의 생활보호를 받을 수 있으며, 정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하는 약간의 장애 수당을 더 지원 받는다. 한마디로 일본 정부는 장애우의 최저 생활을 보장해 주고 있다고 보면 된다.
또 하나 일본 장애우 복지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수산시설이라고 부르는 장애우 자립작업장에 대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전폭적인 지원이다. 일본에서 현재 전국적으로 무려 4천3백여 개의 장애우 자립작업장이 있다고 한다. 이 자립작업장 모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운영비를 대준다. 그래서 어느 나라보다 장애우 자립작업장이 활성화되어 있는 나라가 일본이다.
이 같은 사전 인식을 가지고 일본의 장애우 복지현장을 둘러보자. 먼저 나고야시 외곽에 있는 왓빠모임을 방문해 보기로 한다.
왓빠모임은 우리나라로 치면 규모가 큰 장애우 공동체이다. 왓빠모임에는 장애우 비장애우 합쳐 110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는데, 비율은 70%가 장애우이고 30%가 비장애우이다. 운영은 일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운영비의 50%를 보조하고 나머지는 자체적으로 해결한다.
왓빠모임은 자체적으로 자립작업장과 장애우 그룹홈, 그리고 인쇄소와 생필품을 파는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장애우 취업센터 운영도 왓빠모임의 중요한 사업이다. 이렇게 왓빠모임이 여러 곳의 사업장을 운영하는 것은 모두 다 장애우 고용을 늘리기 위해서라는 한 가지 목표에 맞춰져 있다.
왓빠모임이 펼치고 있는 여러 가지 사업 중 아무래도 왓빠모임을 대표하는 것은 빵을 만드는 자립작업장이다. 왓빠모임은 일본에서 제일 규모가 큰 장애우 빵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40여명의 정신지체 장애우가 건물 1층에 있는 자립작업장에서 하루 20만엔(150만원) 어치의 빵을 만들어 판매한다. 왓빠모임 관계자 설명에 따르면 나고야시에 왓빠 모임이 만들어진 것은 25년 전이고, 빵을 만들기 시작한건 13년 전부터이다. 그렇게 오랜 세월 빵을 만들어 왔기 때문에 지금은 정신지체 장애우들이 비장애우들의 도움이 없어도 빵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한다.
빵을 만들 수 있다. 그러면 판로 확보는 어떻게 할까?
그 질문에 관계자는 "왓빠모임에서 만든 빵은 초기에는 장애우들이 만든 빵이기 때문에 지저분할 것이다. 라는 선입견 때문에 판매에 애를 먹어야 했다. 그렇지만 순수 무공해 국내산 밀가루만 재료로 사용하는 결과 왓빠모임의 취지와 빵 공장에 대한 소개가 일본 언론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얼마 안가 소비자들의 선입견을 극복해 낼 수 있었다." 고 대답한다. 지금 왓빠모임에서 만든 빵은 나고야 시내 곳곳에서 판매되고 있다.
왓빠모임이 가지고 있는 또 한 가지의 특징은 장애우 비장애우 모두 똑같은 월급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왓빠모임에서 일 하고 있는 정신지체 장애우들은 한 달 평균 15만엔(112만원)에서 20만엔(150만원)의 월급을 받는다. 비장애우들도 마찬가지로 그 정도의 돈을 월급으로 받는다. 차이가 있다면 장애우들은 장애연금이 포함된 액수를 월급으로 받고, 비장애우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뿐이다. 일본 회사의 대졸 초봉이 20만엔 정도인 걸 감안하면 왓빠모임 장애우들의 평균임금이 꽤 높은 수준에서 책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신지체 장애우들이 이처럼 평균치의 소득을 보장받는 것은 곧 장애우들의 자립 생활이 가능함을 의미한다.
왓빠모임 관계자 설명에 따르면 "왓빠모임의 장애우들 중 일부는 모임내 그룹 홈에서 생활하고, 일부는 집에서 출퇴근을 하는데 모두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있고 자립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똑같다."고 강조한다.
장애우의 자립생활과 관련해 왓빠모임 설립자인 사이또 겐죠 씨의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지금도 모임 대표자로 있는 사이또 겐죠 씨는 비장애우이다. 비장애우인 그가 왓빠모임을 설립하게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고등학교에 다닐 때 장애우 수용시설에 자원봉사를 나가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사이또 겐죠 씨는 "당시 장애우 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장애우들이 사회와 격리돼서 생활하는 것에 분노를 느꼈으며, 그 자체가 차별이기 때문에 무척 화가 났다. 그래서 장애우들이 시설에서 나와 우리와 똑같이 사회에서 어울려 사는 자립생활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 생각 끝에 동료 두 명과 왓빠모임을 만들게 됐다."고 말한다.
물론 왓빠모임은 초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지금처럼 기반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왓빠모임의 취지인 장애우 비장애우 구별 없이 똑같이 일해 똑같이 나눈다는 원칙을 저버린 적이 없다. 얼마나 철저하게 그가 그 원칙을 지켰냐면 그는 작년 한 해 국회의원보좌관으로 일한 적이 있는데, 그때 연봉으로 받은 1천만엔(7천5백만원)을 고스란히 왓빠모임에 넣었다. 그런 다음 왓빠모임에서 20만엔의 월급을 받아 생활했다. 지금도 변함없이 그의 월급은 20만엔이다.
정신지체인 13명 고용되어 있는 오즈까 제면소
나고야시 공단지대에 있는 오즈까 제면소는 장애우 자립작업장은 아니다. 말 그대로 국수공장인 오즈까 제면소가 눈길을 끄는 것은 전체 64명 직원 중에서 13명이 정신지체 장애우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설명하면 법적으로 지키게 되어 있는 일본의 장애우 의무고용율은 1.6%이다. 일본 기업이 이 의무고용을 지키지 않기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다. 통계에 따르면 일본의 장애우 고용율은 1.44%에 그치고 있는데, 이러한 장애우 고용 실정에서 오즈까 제면소는 법정 고용율을 훨씬 웃도는 장애우 고용, 그것도 정신지체장애우들만을 고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적어도 장애우 고용에 있어서는 다른 기업과 구별되는 모범적인 기업이 아닐 수 없다.
상식적인 얘기지만 이렇게 많은 수의 정신지체장애우들을 직원으로 고용하고 있는 일을 할 수 있게끔 배려하는 데에는 다른 무엇보다 고용주와 비장애우 직원들의 관심과 애정이 필요한 법이다. 특히 고용주의 의식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이 점에서 오즈가 제면소 사장 오즈까 미찌끼 씨는 깨인 사람이다.
그가 정신지체 장애우들을 직원으로 채용하게 된 계기는 왓빠모임 대표 사이또 겐죠 씨와 비슷하다. 일본의 장애우 수용시설엔 거의 다 정신지체 장애우가 수용돼 있는데, 5년 전 한 수용시설장에게서 다음과 같은 부탁을 받았다는 것이다. "장애우들이 시설에 수용돼 있으면 평생 갇혀 지내게 된다. 그러니 당신 회사에서 다만 몇 명이라도 일하게 해 달라."
마침 그때는 오즈까 미찌끼 씨도 어느 정도 기반을 잡고 있었던 때여서 사회에 공헌하는 길이 무엇이 있는가를 찾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에 부탁을 받게 되자 그는 주저하지 않고 정신지체 장애우를 고용했다. 물론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국수공장은 숫자 개념이 있어야 일이 가능한데 정신지체 장애우들은 숫자 개념이 없었다. 그렇지만 반복되는 일을 지루해 하지 않고 해내는 데에는 정신지체 장애우들이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정신지체 장애우들의 어느 면을 더 높이 샀는지는 다음의 그의 말에서 나타난다. "우리와는 달리 성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성과를 바탕으로 한 명 두 명 계속해서 장애우들을 채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채용한 인원이 13명이 된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이 "자선사업가는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강조한다. 그래서 그는 장애우 부모들에게 "일단 장애우들을 취업 시켰으면 전적으로 회사의 방침에 많기 맡기고 간섭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즈가 제면소에서 일 하는 장애우들은 회사에서 평균 8만엔(6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고 있다. 여기에 장애연금을 합쳐서 15만엔(112만원)에서 20만엔(150만원)의 월 평균 소득을 보장받고 있다. 제면소에서 일 하는 비장애우들이 받는 월급과 비슷한 액수이다. 그리고 일본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기업에서 장애우들을 고용하면 정부로부터 고용지원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 그 시기는 1년 6개월이다. 그 시기가 지난 후에는 전적으로 회사에서 장애우 월급을 책임진다. 오즈까 제면소에서 정신지체 장애우들과 함께 일하는 미찌끼 사장, 그는 "마음고생 하는 만큼 장애우들의 자립이 이루어지니까 그걸로 만족한다."고 강조하며 말을 맺었다.
소규모 자영업도 자립작업장으로 인정
일본 제 2의 도시 오사카시에서 제일 먼저 가본 곳은 시가 운영하는 장애우 자립생활지원센터이다. 이 센터는 장애우에게 상담과 자립생활 훈련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이 복지관 1층에는 장애우 전용 목욕탕이 있다. 장애우와 가족들이 와서 한 번 목욕하는데 1백엔(7백50원)을 받고 있다고 한다. 복지관 건물 2층에는 자립생활 체험실이 있는데 이곳은 중증장애우들이 지역에서 자립생활을 하기 전 체험을 통해 자신감을 얻게 하기 위해 운영되는 곳이다. 체험실 안에서는 장애우가 혼자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는데 전혀 불편이 없도록 여러 가지 편의시설이 완비돼 있다.
이 복지관의 또 하나의 특징은 장애우들에 대한 상담을 장애우 직원이 맡고 있다는 것이다. 장애우가 장애우 문제를 상담하니까 장애우들이 마음 편하게 상담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복지관 관계자의 설명이다.
오사카시에서 두 번째로 가본 곳은 마쓰시꾸 서점이라는 조그만 헌책방이었다. 그 서점은 장애우 자립작업장이었다. 헌책방이 장애우 자립작업이라는 것에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오래전부터 장애우 5명 이상이 일하고 있으면 그곳이 무슨 일을 하건 모두 장애우 자립작업장으로 인정하고, 지원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실제로 장애우 자립작업장 중에는 미용실도 있고, 카페도 있으며, 창고 운영은 물론이고 술집도 있다. 서점 운영자 마즈바 씨에 따르면 이런 소규모 자립작업장에 일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1년에 600만 엔(3천8백만 원) 가량을 지원한다.
오사카시 이쿠노구에 있는 이께이께고이고이센터(가자가자 오자오자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센터는 중증장애우에게 자원봉사자를 파견해 주는 곳이다. 이곳은 민간 기구로 3년 전에 설립되었다고 한다. 이 센터는 "장애우가 주인이다."라는 표어를 내걸고 있다.
현재 이 센터에서는 4명의 상근 직원이 11명의 중증장애우를 위해 일 하고 있다. 이 센터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보조를 받지 않고 운영이 가능한 것은 일본 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유급 개호(유급 자원봉사자 파견) 제도 덕분이다.
일본 정부는 11년 전부터 고령자와 중증장애우에게 유급 자원봉사자를 파견해 주고 있다. 가령 1급 중증장애우가 한 달에 유급으로 자원봉사자를 쓸 수 있는 시간은 153시간이다. 이때 파견되는 자원봉사자는 1시간당 1390엔(1만1천원)의 수당을 받는다. 이 수당에서 150엔(1천2백 원)을 떼고, 이용하는 장애우들이 약간의 돈을 내 이 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말하자면 이 센터는 자원봉사자와 장애우를 연결해 주고 약간의 수수료를 받는 곳인 셈이다.
오사카시에서 마지막으로 가본 것은 성애원이라는 보육시설이었다. 기독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이 보육원은 장애아와 비장애아를 통합 보육하고 있는 곳이었다. 일본은 어느 나라보다 보육시설이 많은 나라이다. 공립이건 사립이건 모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원을 해주기 때문에 보육시설이 활성화되어 있다. 그래서 일본의 0세부터 5세까지의 아이들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대부분 보육원에서 하루를 지낸다.
그런데 20년 전에는 장애아들이 일반 보육원에 들어갈 수 없었다. 행정당국과 보육시설이 장애아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비장애아 부모들이 거부하는 이유는 우리와는 약간 다르다. 비장애아 부모들은 "장애아와 비장애아가 같이 있으면 교사들이 장애아에게만 신경 쓰기 때문에 통합 보육을 반대하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규제가 철폐된 것은 장애아 부모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찍부터 비장애아들과 같이 생활하는 게 아이들 장래에 유익하다는 판단을 내린 부모들은 차별 철폐를 주장하며, 아이들을 일반 보육시설에 보내자는 운동을 조직적으로 펼쳤다. 그 결과 현재 일본 대부분의 보육시설에는 장애아가 있다. 성애원에도 그룹별로 서너 명의 장애아가 비장애아들과 함께 생활하며 하루를 지내고 있으며 정부는 장애아 3명당 1명의 교사 인건비를 지원해 주고 있다고 한다.
보육시설 얘기가 나온 김에 일본의 장애우 교육에 대해 언급해 보기로 한다.
일본은 70년대까지만 해도 장애우가 양호학교(특수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당연한 일로 여겨졌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특수학교는 점진적으로 없어지는 추세이며 통합교육이 활성화 되고 있다. 그렇게 된 데는 부모 운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운동은 이제 일반학교에 아이들을 보내자는 차원을 넘어서 정신지체장애우들의 일 할 권리를 확보하자는 쪽으로 옮겨지고 있다고 한다. 그 결과 시설대신 그룹 홈이 활성화되고 있으며, 부모들의 압력으로 동경도 같은 경우는 시설 복지정책 대신 그룹 홈 지원 정책으로 장애우 복지정책을 선회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재일 한국인 장애우에 대한 차별 해결돼야
그렇지만 일본의 장애우 복지가 이렇게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마침 일본 장애우 복지 현장을 둘러보는 기간 중에 일본 언론에는 시가 현에 있는 한 장애우 자립작업장의 비리 사실이 연일 크게 보도되고 있었다.
정신지체 자립작업장의 책임자가 장애우 연금을 착복하고, 장애우에게 폭력을 행사해서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시설 비리 외에도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 한국인 장애우에 대한 차별도 일본 장애우 복지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면이다.
재일 한국인 장애우에 대한 차별이 시작된 것은 1982년이다. 이 해에 일본 출입국관리법이 개정됐는데 그 골자는 재일 외국인도 일본인과 똑같은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법은 단서 조항을 가지고 있었다. 즉 그 해에 스무 살이 넘은 재일 외국인은 사회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조항에 따라 5천명에 달하는 재일 한국인 장애우들은 일본 장애우들에게 지급되는 장애연금을 받을 수 없게 됐다.
한국인 장애우들이 그동안 "연금제도의 국적차별을 완전 철폐시키는 전국 연락회의"를 만들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시위도 하고, 청원도 했지만 아직까지 일본 정부는 이 차별을 고수하고 있다. 최근 민단과 조총련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같이 활동하고 있지만 여전히 해결 전망이 어둡다는 게 이 단체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런 재일 한국인 장애우에 대한 차별만 제외하면 일본의 장애우 복지는 꽤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다고 보인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우리나라가 일본의 장애우 복지에서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 그건 정부가 연금으로 장애우의 최저 생활을 보장해 주는 제도, 자립작업장의 개념을 소규모 자영업에까지 확대해서 지원해 주는 제도, 유급 자원봉사자 파견제도 그리고 장애우 수용시설과 특수학교를 줄이고 대신 장애우가 사회에 통합되어서 살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 주는 복지 제도 등일 것이다.
글/이태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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