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장총련 출범, 장애계의 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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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장총련 출범, 장애계의 분열
장애계가 장총련 출범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장대현에서 몇몇 단체가 탈퇴해 장총련을 출범시킴으로써 이제 장애계는 피할 수 없는 분열의 길로 접어들었다.
장총련은 무엇 때문에 출범했고, 이 시점에서 장총련 출범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장총련 논의에서 출범까지 전 과정을 취재했다.
장애계 알력, 장총련 출범으로 이어져
최근 장애계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지난 9월 11일 맹인복지연합회, 농아복지회, 지체장애인협회, 정신지체인애호협회, 이 네 개 단체가 주축이 된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회장 나종천, 이하 장총련)가 창립대회를 갖고 공식 출범했다.
그 전인 8월 20일 , 단일 조직을 자랑하던, 영원히 깨지지 않을 조직으로 여겨지던 시각장애우계가 분열의 길을 밟았다. 안마사협회가 맹인복지연합회에서 탈퇴하는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이 있기 얼마 전에는 청각장애우들 세계에서 김기창 화백의 신화가 무너지는 일이 일어났다.
농아복지회 회장 선거에서 김기창 씨 측에서 밀던 후보가 낙선하고, 비주류인 안세준 회장이 당선됨으로써 수백의 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리는 일이 일어났다.
농아복지회 회장 선거가 있기 전에는 또 어떤 일이 일어 있었는가. 4월에는 전국적인 조직을 가진 장애인먼저운동실천협의회가 창립대회를 가졌다. 상임대표는 홍두표 한국방송공사 사장으로 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 이 단체를 이끌어 가고 있는 사람은 조일묵 재활협회 회장이다. 조일묵 회장이 이 단체 설립으로 장애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인물로 급격하게 부상함으로써, 장애계의 헤게모니를 놓고 장기철 지체장애인협회 회장 등과 알력을 빚은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렇게 대충 정리를 해놓고 보니 96년은 장애계에 있어서 어느 해 보다도 변화가 많았던 한 해로 기억될 것이 틀림없이 보인다. 그 변화가 이 땅 장애우들에게 과연 무엇을 가져다 줄 지는 시간이 좀 더 지나봐야 알겠지만, 변화 자체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이미 답이 나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시점에서 그 답을 거칠게, 한마디로 정의 내린다면, 그건 "장애계의 분열"이다.
장애계가 급소하게 분열의 길로 치닫고 있다. 이젠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기는커녕 서로가 서로의 가슴에 총구를 겨누고 , 상대방에게 굴복하기를 요구하는 전쟁터의 상황이 돼버렸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장애계가 삭막해졌을까? 그 의문을 풀기 위해 이제부터 객관적이 상황을 한 번 점검해보자. 장애계에는 소위 장애우를 위한 단체와 장애우단체가 공존하고 있다 전자의 대표적인 단체가 재활협회라면 후자의 대표 인 단체는 지체장애인협회(이하 지장협)이다. 이 두 단체는 그동안 누가 장애계를 대표하는 가를 놓고 대립을 계속해 왔다. 여기에 올해 들어 나종천 씨로 회장이 바뀐 맹인복지연합회(이하 맹복)가 가세했다. 맹복은 지장협 쪽에 섰다.
그런데 이 두 그룹은 속으로는 상대방에게 삿대질을 했을망정, 겉으로는 동반자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적어도 작년과 올해 초 까지만 해도 양쪽 단체가 같이 가입한 장애인복지를위한공동대책협의회(이하 장대협)안에서 두 그룹의 공조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재활협회의 조인묵 회장.. 지장협의 장기철 회장, 맹복의 나종천 회장 등은 이른 아침 열린 장대협 대표자 회의에 꼬박꼬박 참석해 머리를 맞대고 장애우 복지를 의논했던 것이다.
그렇게 밀월관계를 유지하던 어느 날, 정확하게는 5월 2일이다. 맹복의 나종천 회장이 느닷없이 장대협에 "범장애인계 대표기구 설립 제안서"라는 것을 내놨다.
나 회장은 이 제안서에서 "장애계 내부는 물론 대외적으로도 충분히 대표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새로운 단체의 설립이 필요하다."라고 전제한 후 "새 단체는 장애우 당사자의 참여와 주도가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장애인 복지법상의 4대 장애 유형(지체, 시각, 청각, 정신지체)별 전국단위 대표기구를 중심으로 운영을 하고 이들 단체장 중 대표자를 추대하는 것이 이상적이다."라고 밝혔다. 이 제안서 행간을 풀어보면 나 회장은 장애우 대표기구는 장애우를 위한 단체가 아니라 장애우 단체로 구성돼야 하며, 따라서 장대협을 장총련으로 전환하고 대표기구 의장은 그때까지 장대협 상임대표를 맡고 있던 조일묵 회장 대신 4개 장애우 단체장 중 한 명이 맡아야 한다는 표현을 완곡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이 제안서에 대해 장대협은 "장대협의 골격을 계속 유지하는 대신 다음 상임대표는 장기철 회장 아니면 나 회장이 맡는 방향"으로 입장 정리를 하고 수습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지만 나 회장의 맹복은 자신의 제안서가 장대협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더 이상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장대협을 탈퇴했다. 그리고 나서 얼마 안가 지장협도 뚜렷한 이유 없이 마찬가지로 장대협을 탈퇴했다.
결국 나 회장의 제안서는 맹복과 지장협이 사전 협의에서 장대협을 탈퇴한 후 따로 단체를 만들 것을 기정사실화 한 후 여론을 의식해 명분축적용으로 던진 실현성 없는 카드였음이 드러난 셈이다. 그러면 왜 장기철 회장과 나종천 회장은 그 시점에서 장대협을 탈퇴했을까?
두 단체의 탈퇴 시점을 전후해서 벌어진 장애계 상황을 살펴보면 그 해답을 단초를 얻을 수 있다.
먼저 맹복의 나종천 회장이 처한 상황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겠다. 나 회장은 금년 2월 전임 지영관 회장의 잔여 임기를 채우는 회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했다. 그때 선거에서 나 회장이 내 논 12번째 공약이 바로 장애우 총연합회 결성이다. 장애계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나 회장의 임기는 올해 말까지인데, 내년1월 재선거를 앞두고 공약 이행과 더불어 총연합회 회장을 탈락시키지는 못할 것이라는 계산, 즉 배수진을 치기 위해 장총련 결성을 서둘렀다는 분석을 하고 있다. 또한 나 회장이 정치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기도 하다.
지장협은 왜 장대협을 탈퇴했는가. 나 회장이 장총련 결성 제안서를 내 논 시기를 전후해 바로 장애인먼저운동실천협의회(이하 먼저 운동)가 설립되어 활동을 시작했다. 보건복지부가 제안해서 만들어진 이 단체의 운영권을 놓고 재활협회와 지장협, 구체적으로는 조일묵 회장과 장기철 회장이 격돌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결과는 재활협회의 판정승으로 나타났고, 그렇게 되면서 장 회장의 심기가 몹시 불편했을 것은 명약관화 하다.
그전부터 조일묵 회장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던 장 회장으로서는 먼저운동의 출범을 계기로 조일묵 씨가 상임대표로 있는 장대협에서 조 회장과 머리를 맞댈 더 이상의 이유가 없어진 셈이다.
안마사협회 맹복에서 탈퇴
장총련은 출범 하면서 "이제 비장애우가 주도하는 장애우 복지는 끝나야 한다."고 내외에 선언했다. 이 말을 쉽게 풀면 "이제 장애우 복지는 장애우가 대표로 있는 장애우 단체가 주도권을 쥐고 풀어 갈테니 조일묵 회장으로 대표되는 비장애들은 뒤로 한걸음 물러나 달라"는 주문의 공개적인 표현이다. 장총련은 이어 "그 동안 비장애우가 장애계를 주도하면서 많은 폐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폐해가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적시되지 않았으나, 장애계에 장총련의 이런 주장에 공감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그동안 장애계에 사안이 발생하고, 정부에 의해 새로운 사업이 던져지면, 장애우를 위한 단체와 장애우 단체가 서로 양보하고 도와주는 풍토가 조성되지 않고, 대립을 거듭한 끝에 번번이 장애우 단체가 밀리는 양상이 펼쳐졌다는 것이다. 이 점은 누가 장애계 대표로 인정을 받느냐는 대표성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동안 장애우의 날을 비롯해 각종 장애 관련 행사에서는 장애우 단체의 장보다는 장애우를 위한 단체의 장이 장애계 대표로 인정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런 양상이 지속됨으로써 장애우 단체 장 들이 자존심에 심한 상처를 입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따라서 장애계 분열의 일차적인 책임이 장애우를 위한 단체, 그리고 특정인사에게 있다는 것은 부인 못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꼭 이런 식으로 갈라서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장애우 단체가 장애우를 위한 단체에 가지고 있는 피해의식이 장총련 출범 이유의 전부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장총련 출범에 뭔가 다른 의도가 있지 않은가? 라는 의구심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의구심은 정체는 무엇인가?
장총련 출범을 바라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한 것은 그 출범의 조급성이다. 장총련 표현에 따르면 명실 공히 한국의 4백만 장애우를 대표하는 조직을 만드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4개월여였다. 이 짧은 기간에 거대한 조직을 탄생 시켰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물론 장총련이 애초에 여론수렴은 염두에 두지 않았고, 4개 단체가 모두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기 때문에 장총련 결성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 그리고 올해 들어 장애우 단체 자체의 변화(농아복지회와 정신지체인 애호협회의 회장이 바뀌었다)가 촉발 됨 됨으로써 장총련 결성이 쉽게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장총련 출범 준비 과정에서 여러가지 바람직스럽지 않은 일이 일어났던 것 또한 사실이다 먼저 장총련 결성을 주도했던 나종천 회장은 장총련을 준비하던 와중에 장애계에서 불패의 신화로 여겨지던 시작장애우계 조직의 분열을 지켜봐야 했다. 그동안 맹복의 중추 세력으로 여겨지던 안마사협회가 8월 21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맹복에서 탈퇴한 것이다.
안마사협회와 맹복의 분열에 얽힌 사연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바로 시각장애우들의 보건소 취업을 놓고 양쪽이 대립한 끝에 갈라섰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이다. 여기서 이해를 돕기 위해 그 과정을 풀어 설명해 보면 다음과 같다.
겉으로 드러난 분열의 시작은 5월 초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장애우 복지 증진을 위한 국정좌담회에서 시작됐다. 나종천 회장이 참석한 국정좌담회는 회의 결과 발표를 통해 시각장애우계의 건의를 수렵하는 차원에서 "맹인 안마사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맹인 안마사들을 보건소 및 의료기관등에 취업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방안이 발표되자 안마사협회는 즉각 반발했다. "정부 방안대로 추진 될 경우 현행 공무원법 아래서는 시각장애우들이 기능직 공무원으로 취업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먼저 보건 직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있게끔 관계법령을 개정하고 보건소 취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힌 안마사협회는 이어 "안마사에 관련된 사항은 안마사협회의 고유사항이기 때문에 안마사협회가 결정해야 하는데, 전문성도 없는 사람이 안마사협회 의결도 거치지 않고 안마사들에 관련된 정책을 정부에 건의해 물의를 빚고 있다."며 나종천 회장을 강하게 비판했다. 안마사협회는 나 회장을 비판하는데 그치지 않고 9월 12일 회원들을 동원해 맹복 건물 앞에서 시위를 벌임으로서 사태의 심각성을 증명했다. 시각장애우들이 연합회를 상대로 시위를 벌이는 전무후무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러한 안마사협회의 나 회장 불신 배경에는 전문성 논란 외에도 나 회장이 내년 1월 맹복 회장 선거를 의식해서 무리하게 실적 쌓기에 급급함으로써 안마사들 자존심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겨줬기 때문에 안마사협회 장애우들이 강하게 반발했다는 분석도 있다. 즉 정부에 의해 안마사들의 보건소 취업 방안이 거론되는 과정에서 안마사들에 대한 사회 인식 개선과 직업윤리 확보가 언급됨으로써 결론적으로 안마사들이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당했다는 것이다.
이런 자존심 문제 외에도 현실적으로도 안마사협회가 나 회장이 추진한 안마사의 보건소 취업을 받아들이지 못할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한 장애계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만약 정부 방안대로 안마사들의 보건소 취업이 이뤄진다고 치자. 과연 몇 명이나 취업할 수 있겠는가? 전국에 있는 보건소에 다 취업한다고 해도 그 수는 3백 명을 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다음 정부의 수순이다. 정부는 안마사들에게 보건소 취업의 길을 열어놨다는 것을 빌미로 분명히 안마시술소를 단속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안마사들은 생존권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안마사협회는 보건소 취업을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것이다."
지방 장애우총연합회 장총련에 강력하게 반발
보는 관점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장애계에서 그동안 안마사협회는 맹복의 중추 세력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렇게 인식되어 왔던 것은 맹복의 산하단체 중에서 안마사협회 회원 수가 제일 많고, 여기에다 더해 재력도 가장 막강한 조직이었기 때문이다. 안마사협회는 안마시술소 허가권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런 조직의 탈퇴는 맹복의 입장에서 보면 심각한 타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겉으로 맹복은 애써 태연하다.
맹복 최동익 사무국장은 이번 사태에 대해 "우리는 안마사협회 주장대로 추진한 적이 없는데 언론에서 오보를 하는 바람에 문제가 발생했다."며 "MBC 텔레비전에서 안마시술소에 있는 안마사들을 빼다가 보건소에 취직시키겠다고 보도를 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주장한 후 "서로 간에 오해가 생겨서 문제가 발생한 만큼 지금은 오해가 풀려 원만하게 수습되는 과정에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안마사협회는 맹인계 44개 단체 중의 하나에 불과하고, 주류가 아니기 때문에 회원 단체가 탈퇴한 것은 아쉽지만 영향력은 미미하다."고 주장했다. 과연 맹복과 안마사협회 두 단체 중 어느 쪽 주장이 맞는지는 시간이 좀 더 지나봐야 알 것 같다. 그런데 장애계 일각에서는 이번 시각장애우계의 분열을 놓고, 지난 2월 맹복 회장 선거 때 이미 분열이 예정돼 이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2월 선거 때 당시 주류로 인식되던 안마사협회는 기호 1번으로 조 아무개 후보를 내세웠다. 여기에 기호 2번으로 출마한 후보가 나종천 회장이었다. 시각장애우계 한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분위기는 조 아무개 후보의 당선이 확정적이었는데 막판에 순수 서울 맹학교 출신들 모임인 백송회에서 나 회장을 미는 바람에 나 회장이 당선됐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미 분열이 예정돼 있었다는 것은 지나친 추측일지 몰라도, 이번 시각장애우계의 분열에 2월 선거가 어느 정도 영향력을 미쳤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여겨진다.
이런 과정을 거쳐 시각장애우계가 분열했다. 그렇다면 어느모로 보나 나중천 회장은 장총련 출범에 앞서 내부 결속부터 추진해야 옳았다. 하지만 나 회장은 내부 문제는 아랑곳없이 장총련 출범을 밀어 붙였다. 그러면 장총련 출범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가. 그렇지 않다. 장총련 출범이 가시화되면서 창립대회 바로 전날까지 장총련은 일부 지방 장애우 총연합회의 강한 반발에 부딪쳐 심한 몸살을 앓아야 했다.
장총련은 출범을 준비하면서 지장협, 맹복, 농아복지회, 정신지체인애호협회, 이 네 개 단체를 중심으로 지방 조직을 만들고, 지역 조직의 대표는 네 개 단체 대표 중 한 사람이 맡는 것을 양보할 수 없는 방침으로 내외에 천명했다.
장총련의 이러한 방침은 필연적으로 이미 구성돼 있는 지방 장애인총연합회(구체적으로는 광주, 부산, 경북, 이하 지방 장총연)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방에서 이미 장애우 단체 대표로 인정을 받아 행정기관과 창구를 개설하고 있고, 그에 따라 나름대로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세 개 시, 도, 지방 장총연 입장에서는 장총련 지부 설립으로 가시화될 지역 장애우 단체의 분열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방 장총연은 서울 장총련의 지부 설립 방침이 알려지자 6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대책회의를 갖고, 8월 26일 "장총련의 지부 설치를 절대 반대한다."는 요지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지방 장총연은 이 성명서에서 "장총련이 기존 지역 연합의 의견은 무시한 채 서울의 4개 단체만으로 총연합회를 구성하고 4개 단체의 지역 지부 중심으로 총연합회의 지부를 결성하겠다는 것은 지방자치 시대에도 역행하는 처사일뿐더러 단합을 위한다면서 또 하나의 단체를 만들어 장애우 단체의 분열을 보장하고, 4개 단체의 지방 세력을 키우겠다는 욕심이 명백한 이상 기존의 지역 연합회에서는 결코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지방 장총연 대표들은 성명서 발표에 그치지 않고 8월 27일 서울로 상경해 보건복지부와 국무총리실을 방문해 장총련의 지부 설립을 막아줄 것을 요구하는 한편,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물리력을 동원해 9월 11일 장총련 창립대회를 막겠다고 장총련에 통보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지방 장총연 대표들은 보건복지부 관계자로부터 장총련에는 법인 허가를 내주지 않고, 예산도 지원하지 않으며, 장총련 관련행사에 정부 측 인사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구두 약속을 받아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지방 장총연의 거센 반발에 부딪친 장총련은 창립대회 전날인 10일, 정관 부칙 신설을 통해 "기존에 설립 운영중인 지역연합회에 대하여는 그 실체를 인정하고 추후 협의를 통하여 상호연대를 모색한다."며 사실상 지방 연합회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조치를 취했다. 이는 4개 단체로만 지부를 만든다는 장총련의 처음 취지를 무색케 하는 조치였다.
현재 3개 지방 장총연은 부산 25개 단체, 광주 17 단체가 가입해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듯이 그 지역 장애우 관련 단체들은 거의 다 회원단체로 가입돼 있다. 그뿐 아니라 연합회장도 4개 단체와는 상관없는 사람이 맡고 있고, 지체장애우 단체 대표도 지장협이 아닌 다른 단체 대표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장총련이 전국적인 단체로서 인정을 받는데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장총련 설립에 대한 반발은 지방 연합회뿐만 아니라 지역 장애우 임의 단체들에서도 나오고 있다. 대구 지역의 한 장애계 관계자는 "장총련이 노리는 것은 장애우 단체의 창구 단일화인데 절대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만일 장총련에 사단법인 인가가 나오면 우리 임의단체들도 협의체를 구성해 사단법인 인가를 받은 다음 장총련을 견제하자는 움직임이 있다. 사단법인 인가는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내준다. 우리도 협의체를 구성하면 사단법인 인가를 받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장총련 설립으로 건전하게 활동하는 소규모 장애우 임의단체의 설 땅이 없어질 게 가장 걱정된다."며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장총련의 위험한 실험, 과연 성공할 것인가?
장총련은 이런 여러 가지 문제가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무엇을 얻기 위해 출범했을까? 그리고 장애계 분열이 명백하게 예상되는 시점에서 왜 그렇게 조금하게 출범을 서둘렀을까? 여기서 다시 한 번 언급하면 장총련이 바라는 것은 장애계의 장총련으로의 창구 단일화다. 하지만 그게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장총련 자신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과연 무엇인가. 많은 장애계 관계자들은 장총련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출범한 것을 주목하고 있다. 장총련 설립에 정치적인 색채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장총련 창립대회 당일인 9월 11일 행사장인 세종문화회관에는 여권 대권후보로 거론되는 최형우 의원을 비롯, 백남치, 이재오 의원 등 여당의원들이 주로 참석했다. 야당의원들은 단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장총련은 "야당의원들도 초청했지만 참석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여당의원 일색인 참석인사 면면은 장총련 설립에 정치적인 의도가 있지 않은가. 라는 의구심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특히 참석인사를 대표해 축사를 한 최형우 의원은 8월 28일부터 30일까지 열린 지장협 지부 지회장대회에 참석해 "여러분의 지도자 장기철 회장은 신한국당 직능대표로 국회에 반드시 등원해야 하며, 나 또한 장 회장이 국회에 등원하는데 최대한의 노력을 다 하겠다 ."라고 발언했음이 지장협에서 발행하는 월간 새보람에 의해 확인되고 있다.
최형우 의원 말대로 이루어진다면 4년 후 장기철 회장은 여권 장애우 직능대표로 국회에 진출할 것이 유력시된다. 그렇지만 여권에 뭔가 기여를 하지 않고 여당 직능대표로 국회에 입성할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한가? 이런 의문을 던져보면 장총련 설립에 왜 정치적인 의혹이 있는가를 알 수 있다.
당장 내년부터 장총련의 활동이 주목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관련해 장애계 한 관계자는 "장총련 설립이 16대 국회 직능대표를 겨냥하고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제한 후 "지금 장총련 대표는 나종천 회장이지만 2년 후에는 현재 상임부회장인 장기철 회장이 장총련 회장으로 있게 될 때 16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뤄지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관계자는 특히 장기철 지장협 회장을 주목하는 이유로 장 회장의 그간 행보를 들고 있다. 장기철 회장은 설립 때부터 당시 민정당 의원인 양 아무개 의원, 역시 민정당 실세였던 이 아무개 의원, 그리고 현재 신한국당 백남치 의원, 최형우 의원까지. 유독 여권 의원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어 왔다는 것이다.
물론 취약한 이 땅 장애우 복지현실을 볼 때 야권보다는 여권과 대화 통로를 갖는 것이 장애우 복지를 이끌어 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장애우 단체가 여권과 밀착한다면, 선거 때 표를 몰아주고 그에 대한 대가를 기대하는 그야말로 관변단체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그렇게 되면 건전한 장애우 운동은 설 자리를 잃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장총련이 정치적이 조직이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장총련 관계자들도 이를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때문에 앞에서 언급한 우려는 다만 우려로 그칠 수도 있다. 이런 우려가 기우로 그친다면 한국의 장애우 운동은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 장총련이 장애우 운동보다는 특정인의 정치적인 수단을 이루는 데 기여한다면 장총련은 이 땅 장애우들의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어쨌든 장총련 출범으로 드러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면 그건 장애계의 분열이 시작됐고, 그 분열을 안고 장총련이 지금 위험한 실험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총련은 과연 장애계 대표 조직으로 우뚝 서 것인가? 현재로서는 장총련의 향후 활동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터뷰 / "비장애우가 주도하는 복지는 끝나야 한다.
나종천 장총련 회장
장총련 회장으로서 장총련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가.
==우리 장총련은 장애우들의 의견을 잘 수렴해서 그 의견이 정부나 사회에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중간 가교 역할을 해내는 일을 할 것이다.
정총련 설립이 너무 조급하게 이루어졌다는 지적이 있다.
==나는 평소 우리나라 장애우 복지가 장애우를 위한 단체에 의해 심하게 왜곡됐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비장애우 시설장과 단체장들이 우리나라 장애우 복지를 더디게 만들고 있다. 장애우 복지는 재가장애우복지와 사회통합을 위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것을 장애우 단체가 나서서 하면 더 효과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장총련을 설립하게 됐다.
장총련 설립에 장애인먼저 운동이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장애인먼저 운동과 장총련 설립과는 무관하다.
현실적으로 장총련이 설립되면서 장애계의 분열 양상이 나타났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과거에 제대로 합쳐진 적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장총련 설립으로 장애계 분열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 장대협과는 어떻게 관계설정을 해나갈 계획인가.
==장애인복지법상에 장애유형 구분이 다섯가지로 나와 있다. 언어와 청각의 묶어도 되기 때문에 네 개 유형별 단체가 있다고 보면 된다. 나는 장애우 운동에 있어서의 주축은 이 네 개 단체가 담당해야 된다고 본다. 물론 장총련은 이 네 개 단체 뿐만 아니라 모든 장애우 단체에 문호를 열어놓고 있다 원한다면 다른 장애우 단체들도 장총련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장애계 일부에서는 장총련이 특정인의 정치적인 목적과 연관이 있지 않느냐는 지적을 하고 있다.
==그건 본질이 아니다. 본질은 장애우들이 단결해야 사회변화를 촉발할 수 있는 힘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압력단체 노릇도 해야 된다고 본다. 여기까지가 본질이고, 그 외에 누가 국회에 진출하니 마니 하는 것은 비본질이다. 그 부분은 나로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부분이다. 나는 국회의원이 되어야 장애우 복지를 잘 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나 회장도 정치적인 지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말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에 지나지 않는다.
시각장애우계 내부 얘기를 들어 보겠다. 이번에 나 회장이 장총련 만드는데 주도적으로 나선 것은 내년 1월에 있을 맹복 회장 재선거를 의식한 것은 아닌가.
==내가 장총련을 만든 것이 대의원들한테 좋은 일로 비쳐지면 내년 선거에 내가 당선 되는데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그렇지만 내년 선거 때문에 내가 장총련을 만들었다는 석은 말도 안 된다. 장총련을 만드는 것은 내 선거공약 이기도 하기 때문에 나는 공약을 이행한 것 뿐이다.
안마사협회가 맹복에서 탈퇴한 것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일부에서는 나 회장이 독선적으로 맹복을 운영하고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그 문제는 얘기하고 싶지 않다. 우리쪽에서 문제가 생긴 게 아니니까. 나는 안마사협회에 감정도 없고, 비판할 생각도 없다. 다만 이번 일이 시각장애우계의 분열로 비쳐지는 문제에 해 대해서는 나에게 책임이 있다고 느끼고 있다.
장총련을 설립하면서 초대 회장은 나 회장이 하고, 다음 회장은 지장협 장기철 회장이 하기로 약속돼 있다는데.
==그런 얘기 한 적 없다. 다만 장 회장이 상임부회장이니까 순서상으로 그렇게 갈 가능성은 높을 것이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다.
장총련은 출범하면서 정부의 협조를 전혀 받지 못했다. 왜 그렇게 됐나.
==잘 모르겠다. 그 문제는 나대신 보건복지부에다가 왜 그러는지 물어봐 줬으면 좋겠다.
글/이태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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