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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에 적합한 정보가 주어진다면

참정권 특집. 장애인을 위한 투표는 없다 - 발달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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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를 위해 줄을 서고 있는 '도란도란' 시설 이용자들

지난 5월 9일, 장미대선으로 불렸던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진행됐다. 선거일이 결정되고 짧은 선거기간 동안 국민들은 올바른 투표를 위해, 후보들은 각자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공약, 토론회, 뉴스 등 풍부하게 몰아치는 정보를 모든 국민이 습득할 수는 없었다. 장애 특성상 선거에 악용되거나 배제돼 온 발달장애인들은 장미대선에서도 권리를 충분히 보장받지 못했다.

 

교육부터 투표까지

선거가 확정되고,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발달장애인 시설 ‘도란도란’으로 대통령 선거 후보자들의 공약집이 도착했다. 공약집은 비장애인들에게 배포되는 것과 같은 버전이었다. 도란도란 강하니 원장 외 종사자들은 공약 자료들을 어떻게 시설 이용 발달장애인들에게 제공할 것인지 고민한 끝에, 이용인들 모두가 오가며 열람할 수 있는 게시판에 붙여놓기로 결정했다. 모든 후보자들의 공약 자료를 나란히 붙여두니 게시판이 꽉 찼다. 이용인들은 게시물이 붙자 오가며 자료를 들춰보곤 했다. 하지만 꼼꼼하게 페이지를 모두 살피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용인들은 뉴스, 토론회, 라디오 등의 미디어 정보에 더욱 집중했다.

강하니 원장과 종사자들은 투표소에서 투표하는 과정을 연습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교육을 문의했다. 선관위의 첫 답변은 “선거 기간이 짧아 촉박한 공식적인 일정에 문의한 교육이 포함돼 있지 않다”라는 거절이었다. 교육 진행이 가능하다는 답변은 한 번의 거절 후에 돌아왔다. 사전에 약속한 교육 당일, 중앙선관위에서 3명의 직원이 도란도란을 찾았다. 선관위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 교육 영상 및 자료를 통해 교육이 진행됐다. 투표를 해야 하는 이유 등의 설명과 질의응답이 완료된 뒤, 기표소를 설치해 직접 투표 과정을 밟았다.

선거를 앞두고 이용인들은 종사자들과 함께 투표소로 가는 길을 익혔다. 도란도란에서 도보 10분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투표날에는 모두 함께 오전 10시에 출발해 투표를 하고 단체 사진을 찍는 일정을 잡았지만, 길을 충분히 익힌 일부 이용인들은 투표를 한다는 기대감에 못 이겨 이른 아침부터 혼자서 투표소를 찾아 투표를 마치기도 했다.

5월 9일 오전 10시, 도란도란 현관 앞으로 이용인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종사자들도 투표를 위해 이용인들과 함께 이동했다. 투표장소에 도착한 일행은 신분증 확인과 서명을 위해 모두 줄을 섰다. 종사자들은 배치된 감독관에게 상황 설명을 하고,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기표소가 보이는 투표장 내부에 서서 이용인들의 투표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용인들은 순서대로 기표소로 들어가 기표를 마치고 나왔다. 한 이용인이 비어있는 기표소를 두고 다른 이용인이 기표하고 있는 기표소 뒤에 서서 차례를 기다려, 감독관이 비어있는 기표소로 안내하는 작은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그 외에는 모두 매끄럽게 투표를 마쳤다. 이용인들은 기표소 앞에서 상기된 얼굴로 각자 인증샷을 찍고 투표소 건물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은 뒤, 도란도란으로 돌아갔다.

 

발달장애인에 적합한 정보 제공이 우선

도란도란을 통해 본 발달장애인들의 투표 과정에는 큰 무리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발달장애인의 투표권을 보장하기에 아쉬운 지점들이 있었다. 강하니 원장이 가장 큰 문제로 꼬집은 것은 ‘쉬운 정보 제공’이다. “공약 자료를 게시판에 모두 붙여놓았지만 비장애인들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자료를 통해 발달장애인들이 공약을 이해할 것이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모든 공약을 발달장애인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자료로 바꾸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후보별 핵심 공약이나 장애인 공약만이라도 그림을 포함한 쉬운 자료로 제작해 배포했으면 좋겠다. 투표 과정 안내 책자 정도의 수준으로만 만들어도 발달장애인들이 공약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강하니 원장은 시설에서 발달장애인의 투표를 악용하는 일이 쉬운 만큼 시설종사자나 가족에게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공약 설명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오해의 소지가 있고, 무의식적으로 지지하는 후보와 지지하지 않는 후보에 대한 설명이 달라져 특정 후보자 지지를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발달장애인 개인의 독립적 판단을 위해서는 객관적으로 만들어진 쉬운 정보 제공이 우선돼야 하는 상황이다.

발달장애인이 기표하기 어려운 투표용지도 지적됐다. 현재 투표용지는 글자와 숫자로만 이뤄져 있는데, 이런 구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글자에 약한 발달장애인 특성상 숫자를 외워야 한다. 도란도란에서도 투표 연습 시 숫자를 보고 손가락으로 칸을 따라가 찍는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발달장애인이 정확히 기표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가장 안전한 방법은 투표용지에 후보자 포스터와 동일한 사진을 삽입하는 것이다. 강하니 원장은 “발달장애인들은 정보를 이미지로 익히는 경우가 많아 번호와 이름과 얼굴 매치가 어려울 수 있고, 혼자서 기표소에 들어가 투표를 한다는 긴장감이나 낯선 환경 등 때문에 현장에서 외운 숫자가 기억이 나지 않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며 사진을 포함한 투표용지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제한되면서도 관리 미흡한 투표 동반인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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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짐바브웨의 발달장애인을 위한 투표지

신체 장애인에게는 허용되는 투표 동반인이 발달장애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것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공직선거법 제157조 6항에 의하면 시각 또는 신체의 장애로 인해 자신이 기표할 수 없는 선거인은 그 가족 또는 본인이 지명한 2인을 동반해 투표를 보조하게 할 수 있다. 이처럼 ‘시각 또는 신체의 장애’로 대상자를 한정하기 때문에 발달장애인은 공식적으로 동방인을 활용할 수 없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장애인인권침해 예방센터(이하 인권센터) 조주희 팀장은 “실제로 발달장애인 자녀와 함께 투표소를 찾은 부모님이 현장에서 당황하는 발달장애인 자녀를 도와주려고 하니 선관위 관계자가 막은 사례가 있다”며 “발달장애인이 기표 시 직접 선택한 사람을 제대로 찍을 수 있도록 보조하는 역할을 해주는 동반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해외에서는 발달장애인이 동반인을 지정해 선관위 직원과 함께 동행하는 제도를 시행하기도 하는데, 발달장애인이 원할 경우 해당 제도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선관위 측에서 “발달장애인은 동반인과 기표소에 동행할 수 없다”고 밝히는 것과는 다르게 실제 투표소 현장에서는 경우에 따라 발달장애인이 동반인과 함께 기표를 진행하기도 했다. 제19대 대통령선거 당일 활동한 감독관에 의하면 발달장애인 자녀와 함께 투표소를 찾은 부모가 기표소에 함께 들어가 기표를 돕기도 했다. 해당 감독관은 “현장에서 발달장애인 자녀에 대해 설명하고 부모가 같이 기표소에 들어가는 경우들이 발생했으며, 일부는 감독관도 없이 단 둘이 기표소에 들어가기도 했다”며 “미리 신청하고 허가를 받은 것도 아니고, 가족관계증명서가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아무런 제지 없이 동반 기표가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감독관 사전 교육이나 투표 당일의 교육에 장애 관련 내용이 전무했다는 점이 이같은 상황에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인권센터 조주희 팀장은 “쉬운 정보를 제공해 발달장애인들이 선거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습득할 수 있고, 해당 자료를 활용한 교육과 TV 등 발달장애인들이 흔히 접하는 미디어를 통한 활발한 홍보를 진행한다면 발달장애인들도 소중한 한 표를 던질 수 있다”며 “발달장애인에게 적합한 투표 환경을 만들어주는 해외 사례도 적지 않으니 정부가 의지를 가진다면 얼마든지 개선 가능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도란도란 강하니 원장 또한 “발달장애인이 기본권을 박탈당하지 않도록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참정권은 장애인이 본인의 삶에 결정권을 행사하는 의미를 가진 매우 중요한 권리”라고 말했다.

작성자글과 사진. 조은지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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