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독일 장애우 복지제도에서 얻은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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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독일 장애우 복지제도에서 얻는 교훈
뼈아픈 과거 경험에서 교훈을 얻을 줄 알았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장애우들을 위한 독일의 복지제도가 어떻게 그런 환상적인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었고, 왜 그런 조치에 대해 비장애우들이 별다른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지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장애우 복지제도 발달한 독일
지금은 선진국이라고 해서 모든 나라 사람들이 서유럽이나 미국을 부러워한다.
이들이 단지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 많은 돈을 사회적 약자나 아니면 사회적으로 전혀 쓸모없어 보이는 사람들, 그리고 어느 면에서는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사람들에게도 사람 대접을 해주기 위해 쓰기 때문이다. 그런 돈을 물론 좋은 일 좀 해보고자 하는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선진국에서는 이런 자선행위에 보람을 느끼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착한(?) 단체가 유난히도 많아 보인다. 독일의 예를 들면 어느 면에서 너무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런 관심이 깊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독일의 장애우 후원체계는 사회적 장애요인을 약화시켜 장애우들이 비장애우와 똑같은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생활환경을 창출함으로써 장애우를 독립된 활동체로 만드는데 역점이 두어져 있다. 이런 관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비장애우에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장소 이동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후원활동의 최우선 순위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의 모든 시내교통수단, 즉 버스, 택시, 전철, 선박의 종사자들은 휠체어를 탄 사람이 도움을 요청할 경우 어떤 상황에서도 그 사람이 자리를 잡고 앉을 때까지 운행을 중단하고 그의 장애우의 승차를 도와야 할 의무가 있다. 베를린의 경우 독일에서 유일하게 인구 3백만이 넘는 대도시이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장애우 운송시스템(텔레부스라고 불린다.)을 운영하는 것이 보다 경제적이라는 판단 아래 주정부에서 직접 약 1백여 대의 승합차와 기타 정부택시를 확보하고 있다. 여기에 소속된 운송수단을 이용하려면 이용일 전에 전화로 출발지와 출발시간 및 목적지와 귀환시간을 신고하면 컴퓨터 처리를 통해 자동적으로 이용 가능한 차량이 배정된다. 신청자가 휠체어 이용자일 경우 운전기사와 보조기사 2명이 배당되어 이들이 장애우를 휠체어에 태운 채 집 밖으로 날라가는데 이때 자기 집이 몇 층에 있는지를 반드시 사전 신고하도록 되어 있어 계단이 있는 곳에 사는 사람을 기사 혼자 나르러 왔다가 낭패를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보통 승합차는 4대 이상의 휠체어를 접지 않고도 싣고 또 각 1인의 동행자를 동승시킬 수 있도록 개조되어 있는데, 장애우 운송차량은 승합차든 택시이든 버스전용차선을 이용할 수 있다. 차량주문시간이 닿지 않은 급한 볼일이 있을 경우 베를린 주는 증명서를 소지한 장애우 1인당 3백 마르크(약 16만원)한도 내에서 영수증 조건부로 택시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기차에는 반드시 장애우 전용차량이나 좌석이 배치되어 있고, 그 비싸기로 유명한 요금을 50킬로미터 이내에는 무료, 그 이외에는 반액 할인하는데 이때 동행자가 있을 경우 동행자의 기차요금은 무료로 하여 누구나 장애우 동행에 대한 혜택을 누리게 함으로써 장애우를 돕는 일에 재정적 부담이 가지 않도록 배려한다.
모든 직장에는 장애우 고용할당제가 적용되는데, 장애우의 출퇴근이나 근무 시에 이용할 시설을 설치할 경우 무이자 대부나 아니면 보조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물론 이런 시설을 장애우만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장애 정도가 심해 소득활동을 할 수 없을 경우 정도에 따라 장애우 보호자에게는 기본 부양비가 지급되는데 그 액수는 독일 근로자 최저 소득을 조금 밑도는 수준에서 책정된다. 장애우가 차량을 구입할 경우 역시 그 장애정도에 따라 구입비와 개조비를 부분 또는 전액 지급하고, 보험과 세금을 상당 부분 공제한다. 기타 소득 및 자산, 자가 영업에서 나오는 개인소득도 장애정도에 따라 1만 마르크에서 5만 마르크에 이르는 액수에 대해서는 세금을 물리지 않는데 이 액수는 독일인 1인당 평균 소득의 50%에서 200%에 달하는 수준이다.
쇼핑이나 산책, 취미활동과 같은 일상생활에서 신체적 도움이 필요할 경우 관할 기초단체에 신고하면, 민간봉사중인 병역의무자나 사회활동가를 일정시간 파견하고, 이사할 때에는 그 비용과 인력을 구청에서 거의 전액 부담한다. 각 공공시설이나 정거장, 고속도로 휴게실에 설치된 장애우 전용화장실의 열쇠는 전국이 통일된 규격을 사용하여 거주지 관청에서 지급받은 열쇠로 국내의 모든 전용화장실을 출입할 수 있다.
대학입학자격시험 및 석사과정까지의 모든 학력인정시험에는 장애우 가중치가 부여되고, 학력이수기간의 연장이 용이하다. 주택임대에서 우선권이 부여 되며, 각 구청은 장애우용 아파트를 일정 수 확보하거나 아니면 요청이 있을 때는 기존 주택을 개조해 줄 의무가 있다.
장애우에 대한 범죄는 가중처벌을 받기 때문에 한때 네오나찌 테러가 장애아들을 겨냥했을 때 단순히 정치적 비난을 넘어선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장애우 복지의 배경 이해해야
이런 나라들의 정부나 아니면 정권을 잡고자 노력하는 모든 정당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권력 활동을 정당화하는 상투적 구호로 걸핏하면 동원하는 말에 이른바 "인도적 목적"이라는 것이 있다. 남의 나라에 군대를 파견해 내전에 간섭해도 "인도적 목적에 입각해서" 그랬다는 것이고 우리 한국사람 중에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그만인 그런 하찮은 자기 나라 사람이 어디 관광 갔다가 실종 됐다든가 테러 단체에 납치된 사건이라도 벌어지면 "인도적 관심 때문에" 그 사람이 평생 번 돈 보다 더 많은 돈을 써 가면서 그런 불운에 빠진 사람을 구출하고자, 전 외교 역량을 기울인다.
자기가 재미 보려고 제 발로 걸어갔다가 재수 없이 그런 일을 당한 사람의 팔자소관으로 돌려 모른 체 하면 그만이고, 그런 일에 쓸 돈이 있으면 성한 사람이나 편히 다니게 길 하나 더 닦고 다리 하나 더 놓으면 좋은 일 아닌가, 그런데도 이란 인질극을 해결하지 못한 카터 대통령은 1980년 재선에 실패하는 쓴 경험을 맛보아야 했고, 80년대 후반 동유럽에 남아 있는 자기네 별 볼일 없는 교포들을 죽어라 하고 끌어들인 독일의 콜 총리는 민족통일의 도화선을 마련한 사람으로 20세기가 끝날 때까지 장기 집권할 전망이니, 이 인도적 목적이라는 것에 신경 써야 할 선진국 정치인들의 신세는 장애우 문제 따위에 눈 돌리지 않아도 되는 한국 정치인에 비하면 보통 고달픈 신세가 아닌 것이다.
이렇게 보면 선진국 정치란 권력을 획득하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성한 사람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별 볼일 없는 사람들, 그 가운데서 소위 장애우들 신세한탄까지도 소홀히 하지 않는 그런 정치가 되는데,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됐는지 주의를 기울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만약 이 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른바 선진국의 장애우 복지제도를 전적으로 국가적인 자선 내지 혜택에 나온 것으로 오해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역사의 교훈 되새겨야 한다.
장애우에 대해 사회적 배려를 하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의 밑바닥에는 장애우란 그 장애 자체만으로도 이미 사회나 국가뿐만 아니라 그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이웃에 그가 장애우만 아니었더라면 지지 않아도 되는 부당한 부담을 지운다는 통념이 뿌리박혀 있다.
히틀러가 집권했을 당시 독일은 전 유럽을 상대로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전투에 이용하기는커녕 식량이나 전투장비 하나 생산하는데도 쓸모없을 뿐만 아니라 집안에서 성한 자들이 먹을 밥이나 축내는 신체 및 정신 장애우들을 합법적으로 도살할 수 있는 법령을 만들어 실행에 옮겼다.
이 결과 전쟁이 끝날 당시 비단 유대인뿐만 아니라 독일 장애우들도 근 40만이 집단수용소에서 "합법적으로 학살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숫자는 전쟁 전 종교 및 자선단체에서 인도적으로 부양하고 있던 장애우들뿐만 아니라 집에서 가족들이 보호하고 있던 장애아들도 전부 나찌 정권의 "청소" 대상으로 처분되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그나마 인정 때문에 장애아들의 부담을 감내하고 있던 가족들도 정부에서 하는 합법적 일이라는데 위안을 받아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별 심리적 저항 없이 이 집안의 골칫덩어리들을 순순히 나찌관료들에게 넘겨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나라 장애우들까지 말살시키면서까지 달라붙은 전쟁 사업이 국가의 전면파탄으로 끝나고 난 뒤에 독일인들은 바로 그 전쟁의 결과 근 4백만에 가까운 아까운 젊은이들이 새로운 장애우가 되어 전선에서 귀환하는 운명의 장난을 겪어야 했다.
나찌 체제 아래서 저지른 천인 공로한 만행을 놓고 독일인들을 비난하는 것도 좋겠지만, 우리 입장에서 더 주목할 것은 전후 독일인들이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에서 배운 교훈에 따라 자기들의 삶의 방식과 생각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칠 줄 알았다는 사실이다.
역사의 교훈이라는 것이 있다면 분명 이런 것이다.
즉 장애우들을 소외시키고, 나아가 그 장애우들을 말살시키는 사회는 바로 그 방식으로 자기 사회를 장애우로 만든다는 것이다. 성한 사람과 장애우를 칼로 두부 가르듯이 나눈 다음 성한 자를 위해 장애우를 없애야 한다고, 독한 마음을 가진 자들을 성한 사람을 죽을 곳에 내모는 일도 서슴없이 저질렀다. 그러나 나라를 통째로 말아먹은 전쟁을 치른 뒤 독일인들은 사람들이 마음먹기 따라서는 성한 자와 장애우들의 차이가 종잇장 하나 보다 얇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시 말해서 멀쩡히 제 발로 걸어서 남의 나라 사람들을 죽이러 간 젊은이들 자신이 관에 누워서 아니면 한줌 재가 되어, 또는 기껏해서 목발을 짚고 돌아왔을 때, 과연 자신들이 무엇 때문에 집안의 장애우까지 죽여가면서 새 장애우를 만들어야 했는지를 한 번쯤 자문했을 터이다. 이런 비싼 대가를 치르고 비로소 독일 사회는 장애우를 살리는 방식이 궁극적으로 는 성한 자도 사는 방식이 된다는 진리를 깨달았던 것이다.
뼈아픈 과거 경험에서 교훈을 얻을 줄 알았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장애우들을 위한 독일의 복지제도가 어떻게 그런 환상적인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었고, 왜 그런 조치에 대해 비장애우들이 별다른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지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 전쟁뿐이겠는가, 고도의 산업문명을 자랑하는 현대 사회에서의 일상생활은 잠깐의 부주의로 멀쩡한 사람을 일순간에 망가뜨릴 문명 이기로 가득 차 있다.
과중한 노동 강도, 산업재해, 교통사고 등으로 인한 "새로운 유형의 장애우"와 사회발전의 부산물로 나타나는 고령인구 비율의 증가로 "인생 종말형 장애우"가 양산됨으로써 신체 장애의 문제는 점차 비장애우와 무관한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한 번은 닥칠 인생주기의 한 국면으로 재조명되어야 할 필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것이다.
글 / 홍윤기(서울대 철학과 석사과정을 마치고 독일에 유학해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신문 유럽통신원으로 일했다. 현재 이화여대 철학과 강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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