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고 씻기고 입히기나 잘해라?
본문
희생과 봉사라는 꼬리표를 달고, 365일 24시간 부모의 보살핌을 받을 수 없는 쉽지 않은 아이들 10여명과 생활하는 보육사, 현재 장애우 수용시설에서 한 명의 보육사가 담당하는 아동의 수는 7∼8명에서 20명까지다.
보통 가정에서 스스로 모든 신변처리가 가능한 비장애아동 셋을 두었을 때 엄마의 역할과 노동량을 생각하면 아무리 경증이라 해도 최소 7명을 보살피는 보육사들의 노동량은 결코 적지 않다. 자신의 생활과 여가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대인들, 이제는 8시간 노동이라는 근로조건조차 무색하여 주 5일 근무를 실시하는 곳이 늘어가고 있는 사회 흐름속에서 보육사라는 직종만 유달리 6, 70년대의 노동조건을 고수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꿋꿋이 자기 자리를 지키며 새로운 변화를 꿈꾸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보육사에게 남은 것은 강제 사직?
현재 라파엘의 집에서 1년째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이현미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던 중 무엇인가 인생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보육사가 되었다.
하지만 이현미 씨의 소망과는 달리 의정부에 있는 일시보호소에서 겪었던 2년간의 첫 보육사 생활은 그녀의 27년 인생 중에 가장 마음 아픈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93년 3월부터 근무하기 시작했는데, 그곳에는 버려진 아이들이 다른 시설로 가기 전까지 보호하는 곳이었죠. 갓난아이부터 13살 정도의 아이까지 20명 정도의 아동을 저 하고 다른 한 분의 보육사가 돌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해 8월 제가 휴가를 간 사이에 조금 큰 아이가 2개월 된 신생아를 떨어뜨려 사망하는 일이 생겼고 그때 남아 있던 보육사 선생님이 그 책임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1년을 받고 사직했습니다."
그때까지도 이현미 씨는 그 보육사에 대한 조치가 그저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 후로도 아이들의 죽음이 이어지면서 그 일은 당장 자신의 현실로 닥쳐오게 되었다.
그 일이 있은 바로 열흘 후 3살짜리가 다른 아이와 놀다가 층계에서 떨어져 사망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미 안구 암으로 한족 눈을 잃은 아이였기 때문에 암으로 사망한 것으로 유야무야 처리가 되었다.
하지만 그 다음해 2월 , 7개월짜리 아기가 다른 갓난애들을 목욕시키는 사이에 원인도 알 수 없는 죽음을 맞게 되고, 자신의 손으로 돌보던 아기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여러 가지 문제들이 닥쳐오기 시작했다.
"아빠가 복역 중이라 키우기 어려워 2살짜리 형과 함께 엄마에 의해 맡겨진 아이였습니다. 생전 처음 경찰서라는 곳을 드나들며 조사를 받고, 아이가 사망한지 5개월 후인 7월에 과실치사로 기소유예 통보를 받았지만 그 충격과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처음 입소당시 어떤 상황에도 형사상 처벌은 없도록 하겠다는 각서를 쓴 아기 엄마가 민사소송을 걸어왔던 것이다. 그리고 재단 측에서 5천만 원을 배상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재단은 징계위원회를 열어 이현미 씨에게 해임의사를 비추었으나 너무나 애정이 컸던 이현미 씨는 나나지 않게 해 달라고 통사정을 했다고 한다.
"제가 운이 없는 사람인가 봐요. 겨우 남을 수 있게 되었는데 95년 구정에 정신질환을 앓던 12살짜리 남자 아이가 인큐베이터 속의 아기를 모두 잠든 새벽에 담장 밖으로 버려 얼어 죽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마침 그날 인큐베이터가 있는 방에서 잠을 잔 사람이 저였어요."
정신 질환인 아이가 형사의 손을 잡고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아이를 버린 곳을 직접 안내했기 때문에 이 사건을 쉽게 해결 되었다.
하지만 지난 번 5천만원에 대한 징계로 인해 3개월 감봉 처리가 되어 있던 이현미씨에 대해 재단과 원장, 총무 등은 강력하게 사임 할 것을 권유했다.
"2년 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고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생긴 일들이었기 때문에 절대 그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95년 3월 30일 결국 꼬박 2년을 채우고 이현미씨는 그 시설을 떠났다.
"그 당시에는 너무 어렸고, 사회를 몰랐어요. 원장이나 총무, 심지어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원들 까지 나는 못 봤다, 없었다 하면서 모든 책임은 저에게 떠맡기고 빠져나가기 바빴는데 저는 순진하게도 나하나 고생하고 말지 하는 생각으로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도 없었다고 하고 뒤에서 시키는 대로 말했거든요"
이현미 씨는 지금도 간혹 그때 생각이 나면 몸서리가 처진다고 한다. 2년동안 아이 넷의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그때 시설의 근본적인 문제들은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보육사라는 일개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지려고 그것도 모자라 강제로 사직까지 시켰던 재단 측에 대해 왜 그때 좀 더 강하게 대응하지 못했을 까라는 후회가 생긴다고 한다.
어려움 끝에 이제는 라파엘의 집에 작은 뿌리를 내리고 5명의 시각장애아동을 돌보고 있는 이현미 씨는 유독 자신이 운이 나쁘기도 했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보육사를 경시하는 인식이 변화하지 않는 다면 이런 불이익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연속 근무가 낳은 불치병 "시설병"
사회에서 어울려 살아가지 못하고, 혹은 시련이나 커다란 아픔 때문에 시설로 찾아든 사람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봉사와 사랑을 강요하며 직원복지 같은 것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먹이고 재워 주기만 하면 말없이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들 대부분의 시설장들은 이 그릇된 사고를 결코 버리려하지 않는다고 일선 보육사들은 입을 모은다.
그리고 그 잘못된 사고에 길들여진 사회는 스스로의 사명감으로 이 직업을 선택한 많은 보육사들에게 찬사를 보내기 보다는 "젊은 처녀가 왜 왔을까", "무슨 결함이 있나 봐" 하는 등 이상한 시선을 보내기 일쑤이다.
홀트일산복지타운에서 근무하는 박은정 씨는 "시설에는 "시설병"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몇 년씩 이 안에서만 생활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와 격리되어 버리기 때문에 생기는 일종의 직업병이죠."
"시설병"의 증상은 상당히 심각하다. 평생 시설에서 생활하겠다고 결심하고 6년이 넘게 이 안에서 생활한 원로 보육사들은 외부 사회를 포기한 채 시설이라는 그 공간 안에 스스로를 가두게 된다. 그리고 보육사들의 그런 소극적인 사고는 시설의 문제점이나 보육사들의 직원 복지 문제를 덮어 버리게 되는 매우 좋은 구실이 되고 있다.
박은정씨는 "홀트일산복지타운의 노조에서는 24시간 근부가 "시설병"으로 대표되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만큼 24시간 근무를 철폐하고 12시간 교대 근무를 요구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그때 나이 많은 보육사들이 24시간 근무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해 일관된 목소리를 내기가 힘들어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라며 시설병이 낳고 있는 더 큰 문제는 이런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한편, 교남소망의 집에서 근무하는 황길자 씨는 "숨어서 봉사하겠다는 기존 보육사들의 소극적인 사고가 결국은 사회에서 스스로 보육사라는 직업에 대한 위치를 추락시키는 것입니다. 이제는 시설도 변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존 보육자들을 포함해 우리 스스로가 당당하고 자신 있게 변화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시작일기예요."
요즘 각 시설에서는 새로 들어오는 적극적 사고를 가진 보육사들과 소극적인 사고로 변화를 거부하는 기존 보육사들의 소리 없는 전쟁들이 계속 되고 있다.
하지만 양쪽은 결코 적이 아니다. 24시간 근무해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보육사의 개선되지 않는 처우 문제 속에서 모두가 피해자일 뿐이다.
먹이고 씻기고 입히기나 잘해라
보육사들이 근로자로써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부분은 역시 24시간 근무와 외박 휴가 등의 문제이다. 많은 문제들이 야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대부분의 시설은 24시간 근무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에 대해 현재 몇몇 시설은 국가에서 정한 규정에는 어긋나지만 야간 당직 출퇴근 제도 , 24시간 교대 근무, 12시간 교대 근무 등으로 나름대로 그 돌파구를 찾고 있다.
24시간 교대로 그러니깐 하루씩 출퇴근 하며 근무하는 교남소망의 집 원장은 "엄밀히 이야기 하면 저희는 진정한 교대 근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한 보육사가 맡고 있는 아동이 10명인데 하루씩 쉬는 대신에 옆방 아이들 까지 한번에 20명의 아동을 돌보고 있는 셈이죠. 다행히 교육이 가능한 경증 아동이 많기 때문에 가능하지만 제대로 하려면 보육사가 2배로 충원되어야 할 것입니다."라며 현 상황에서 보육사를 충원 할 수 없는 것을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다.
교남소망의 집 황길자 씨는 "20명이지만 하루를 쉬고 다시 아이들을 만나면 새로운 기분으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계속 아이들과 있으면 보육사가 상태가 좋지 않을 때 그런 것들을 풀 곳이 없어 다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죠." 라며 출퇴근 제도가 훨씬 바람직하다고 강조한다.
서울 우성원과 부천 예림원등은 야간에 당직을 세우고 출퇴근 근무를 하고 있다. 그리고 서울 라파엘의 집은 12시간은 아이들의 교육을 위한 보육사를 배치하고 밤 12시간은 편안히 돌보아 줄 수 있는 보육사를 배치해 2교대로 근무하고 있다.
홀트 일산 복지 타운 박은정 씨는 "현재 시설 차원에서는 12시간 교대 근무를 추진해도 인원수 충당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12시간 교대 근무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라며 국가에서 추진하는 것이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고 한다. 24시간 연속 근무의 문제는 노동력의 문제와 함께 보육사의 전문성을 높이는 데에도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일주일에 한번 치료레크레이션을 배우는 부천 혜림원의 이경아 씨는 "지금 당장은 일주일에 한번 시간을 내는 것이 아이들에게 소홀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멀리 보았을 때 결국은 적극적인 서비스를 아이들에게 제공하기 위한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하며 다행히 혜림원이 보육사들의 발전에 대해 개방적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덧붙인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부분의 시설장은 "먹이고, 씻기고, 입히는 것이나 잘해라"라고 이야기하며 "공부하고 싶으면 나가라"는 태도를 취하기 때문에 보육사들이 자신의 발전과 전문적인 직업인으로서의 성취를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은 엄두도 내기 힘든 상황이다.
보육사 처우개선 결국은 아이들의 문제
"시설은 대부분 족벌로 이루어져 있어요. 자기들끼리 다 해먹는 거죠. 보육사들은 단지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으로 취급될 뿐 소외시키고 있어요. 솔직히 얼마가 들어오고, 나가는지, 또 다른 시설의 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문제가 무엇인지 전혀 알 수 가 없어요." 이름을 밝히길 꺼리는 한 보육사는 시설의 문제를 이렇게 지적했다.
일선 보육사들이 지적하는 공통된 문제 중 또 하나는 정보의 부재이다.
외부의 관련 자료나 책자들은 보육사에게 직접 전달되기 전에 시설 관리자에 의해 차단되어 버리고 외부에서 세미나가 있어도 사무실 직원 몇 명이 참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홀트타운 보육사 박은정 씨는 작년 1년에 1회 개최된다는 "시설연합회 경기지부" 주최의 세미나에 참석했는데 관광만 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세미나 전체일정을 관광회사에 일임한 상태였어요. 보육사들은 공부할 필요 없고 관광이나 하라며 무시하는 처사 같아 굉장히 기분이 나빴어요."라며 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정보에 대한 갈증을 조금이라도 풀고 싶어 만들어지는 책자가 있다.
"시설직원의 하나 됨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에서 발행하고 있는 "세상열기"는 보육사들의 문제에 조심스럽게 다가서고 있는 격월간지이다.
이 모임의 회장인 김도진 씨는 "시설 보육사들을 하나로 묶어내어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조직의 필요성을 알릴 수 있는 홍보매체로 자연스럽게 보육사들 스스로 문제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책자입니다."라며 아직은 겨우 6백부가 발간될 뿐이지만 이 책을 시작으로 앞으로 현직 보육사들을 사례집을 구상하고 있다고 포부를 밝혔다.
시설이라는 결코 크지 않은 공간 속에서 내 손을 필요로 하는 10여명의 아이들과 함께 부대끼며 사회와 자연스럽게 격리되는 보육사들, 그들은 이 일을 선택한 사명감에 대해 너무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과중한 노동 속에서 폐쇄된 시설의 모순들과 싸워야하고 또한 그 안에서 나를 찾기 위해 자기 자신과의 끊임없는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
한 일선 보육사는 "이제는 더 이상 봉사나 사랑이 라는 관념이 아닌 현실적인 직업인으로 내 일에 대한 긍지와 사명감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보육사라는 직업을 가진 한 사회인으로 당당히 서야 합니다."라고 희생이 아닌 직업인으로서의 보육사를 이야기한다.
4˜5 명의 아동을 2˜3명의 전문지식을 익히고자 끊임없이 제공하는 보육사가 전문적인 서비스를 바탕으로 교육하고 보살피는 것, 결국 보육사들이 주장하는 처우개선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자신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을 좀 더 당당히 키워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