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2] 희망없는 삶, 자살로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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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희망없는 삶, 자살로 마감
직장 때문에 고민해
김영배 씨가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 것은 4월 29일 오전 11시 30분께다. 그는 부산시 영도구 동삼 3동 주공아파트 103동 옥상에서 40여 미터 아래로 투신자살한 것으로 추정됐다. 발견 당시 그가 몸을 던진 옥상에는 1년 6개월 전 집을 나설 때 갖고 간 가방과 신발 한 켤레, 그리고 노트 한권이 남아 있었다.
그는 노트에다 18장에 이르는 장문의 유서를 남겼는데, 유서는 "이제는 더 이상 견딜 힘이 없다. 모든 걸 이쯤에서 정리하고자 한다. 다시 태어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닌 나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모습으로 태어나고 싶다..."로 시작되고 있다. 이어 그는 "이 짧은 인생을 살면서 느낀 게 있다면 세상은 모든 게 물질만 있으면 사랑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 혼자 힘으로 일어서기는 너무나도 힘들었다."라고 세상과 자신의 처지를 극명하게 비관하는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그의 가족들에 따르면 소아마비 장애를 가진 그가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실직과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비관이다. 특히 먹고 살 수 있는 직장을 구하기 힘든 냉혹한 현실은 그를 죽음으로 내몬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대학 진학을 위해 독학으로 공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거듭 대학 입시에서 실패하자 대학 진학 대신 직업을 갖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장애를 가지고 있는 그가 들어갈 수 있는 직장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오랜 시간을 직장을 구하기 위해 애태운 그는 결국 들어가고 싶어 했던 직장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가내수공업 형태의 가방공장에 생산직 사원으로 취직했다.
가방공장에서 그는 단순작업을 했다. 그리고 보수도 상상 이하의 저임금을 받았다고 한다. 이때부터 그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다른 직장을 갖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비관정도는 점점 더 심해져만 갔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여기에다 그는 심한 가슴앓이를 하고 있었다. 그 가슴앓이는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 때문에 시작된 것이었다. 가족들에 따르면 가방공장에 다니면서 그는 한 여인을 좋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좋아하기만 했을 뿐 단 한 번의 고백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가 한 여인을 좋아했다는 사실은 그의 유서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그는 유서에서 "내가 마음을 둔 여자에게 절대 원망은 하지 않는다. 내 자신이 못나 잡지 못하는 걸 누구에게 원망을 해야 할까."라고 괴로운 심정을 내비치고 있다.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고 싶다
이렇게 이른바 짝사랑을 하게 되면서 그는 자신의 장애와 변변치 못한 직장 때문에 고민하는 날들이 늘어갔다. 결국 그는 다니기 시작한 지 5년째 되던 해 가방공장을 그만둔다. 이 가방공장은 생전에 그에게 허락된 유일한 이 자리였다. 그 후 그는 그 어떤 직장도 구할 수 없었다.
새로운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형 집에서 실의에 찬 나날을 보내던 그는 94년 10월 조그만 사업을 하겠다고 형을 졸라 5백만원을 받아낸다. 그런 다음 그 길로 가출, 가족과 연락을 끊고 전국을 떠돌아다닌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가 전국을 떠돌아다니면서 무슨 일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의 유서에는 "집을 나온 지 1년 반 모든 이들과 대화를 나누어 보았다. 그들은 잠시 스쳐가는 사람들 일지라도 어느 누구도 나에겐 다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단지 내 자신이 못나 그들에게 못해주었을 뿐..."이라고 만 적혀 있을 뿐이다.
방랑생활을 하던 그는 돈이 떨어지자 형 집이 있는 부산 동삼동으로 돌아왔다. 그런 다음 형을 속인 게 미안했던 듯 형 집엔 들어가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길을 택했다.
삶에서 그 어떤 희망도 찾을 수 없었던 그. 그는 유서에서 "사람들은 다 꿈을 갖고 산다. 현실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 더 크게 더 행복하게 살고 싶은 사람 등등. 그러나 나는 그런 꿈이 아닌 불안한 장래를 바라보지 않고, 많이 가진 건 없어도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그런 가정을 꾸미며 살고 싶었다. 그것조차도 이 상태에서는 이루지 못함을 느꼈을 때 모든 게 의욕이 나지 않는다. 산다는 게 왜 이렇게 슬픈 건지 모르겠다."며 좌절된 소망을 적고 있다.
그의 유서는 "이 죽음이 나에게는 진정한 마음이 평온함이 아닐까도 생각해 본다.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머리 속에 그리면서 영원히 엄마와 살 수 있는 저 하늘로 날아간다. 근심 걱정 없는 곳으로 새가 되어서 날아가고 싶다."는 독백으로 끝을 맺고 있다.
글/ 이태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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