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암도, 그리고 이덕인씨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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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아암도에서 장애인 노점상 이덕인 씨가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다. 함께걸음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열악하기만 한 장애인들의 생존권 문제를 짚어 보았다.
실종된 지 3일만에 시신으로 떠올라
지난 95년 11월 28일 인천시 연수구 옥련동 송도 매립지, 속칭 아암도에서는 무슨일이 있어났나?
이 날 오전 20시 밀물 때 아암도에는 상의가 벗겨진 한 구의 남자 시체가 떠올랐다. 그 시체는 발견 당시 갯벌에 엎어져 있었으며, 뒷모습은 포승줄로 포박을 당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시신을 뒤집어 똑바로 눕히자 놀랍게도 시신의 두 손은 끈에 묶여 있었다. 또한 시산의 얼굴과 뒷머리, 양쪽 어깨, 팔 등에는 상처와 피멍이 가득했다. 그런 상태로 시신은 하늘을 향해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이 시신의 신원은 곧바로 확인됐다. 시신이 발견된 지점에서 50미터 정도 떨어진 철탑망루에서 철거에 항의해 밤샘 농성을 하고 있던 노점상들이 이 시신의 신원을 확인했다. 시신으로 떠오른 인물은 바로 4일 전만 해도 그들과 같이 농성을 하고 있던 소아마비 장애인 노점상 이덕인(29세)씨였다. 시신이 발견되기 3일 전인 25일 밤, 사법시험 준비를 위해 동료들과 헤어져 철탑을 내려간 이덕인 씨는 이렇게 차디찬 시체가 되어 돌아왔다.
어떤 이유로 이덕인 씨는 시신이 되어 거기 누워 있어야 했을까?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그동안 아암도 부근에서 벌어졌던 사태의 전말을 추적해 보자.
작년 5월초 지자제 선거를 앞두고 인천시는 원래 군사지역인 아암도 부근 방파제 철책선 20킬로미터를 단계적으로 개방해 한강 고수부지처럼 시민 휴양지로 조성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그 계획에 따라 시범지역으로 철책선 1킬로미터가 철거 된 게 5월 중순이었다. 철책선이 철거되자 바닷가와 바로 맞붙어 있는 이 지역은 곧 인천의 새로운 휴양지로 떠올라 시민들의 각광을 받는다.
그에 따라 시민들이 몰려들면서 아암도 부근에는 하나 둘 포장마차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전해지는 사실에 따르면 초기에 아암도에 포장마를 설치한 그룹은 ‘미주파’ 라는 인천지역 폭력조직이었다. 이들에 의해 처음에는 10개에 불과하던 아암도 포장마차는 달을 넘긴 7월 초 40여 개로 급속하게 늘어난다. 그렇게 된 데는 까닭이 있다.
작년 3월, 장애인 노점상 최정환 씨 분신사망 사건을 계기로 전국 장애인한가족협회(회장 채종걸)와 전국노점상연합회(회장 이필두)가 연합해 만든 장애인자립추진위원회(회장 양연수, 이하 장자추)는 당시 서울 청계천 8가에 이어 새로 노점상을 할 장소를 물색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들에게 장사가 될 만한 새로운 장소로 떠오른 곳이 바로 인천 아암도 부근이었다.
일단 장소가 확정되자 장자추는 미주파와 협상을 벌였고, 협상 끝에 20대 20씩 총 40개의 포장마차를 설치하기로 합의를 이끌어 내면서, 정확하게 7월 3일 장자추는 인천 지역 장애인 10여 명과 전국노점상연합회 회원 10여 명으로 구성된 회원들의 포장마차를 아암도 부근에 설치하는데 성공했다. 이때 합류한 장애인 중에 바로 이덕인 씨가 끼어 있었다.
물론 아암도 부근의 포장마차는 관할 구청의 설치 허가를 받아 들어선 것은 아니었다. 이 때문에 포장마차가 들어설 때부터 관할 연수구청과 끊임없는 마찰이 이덕인 씨의 죽음을 부른 셈인데, 포장마차가 들어설 당시에는 수수방관하던 연수구청이 포장마차가 완전히 자리를 잡은 다음에 강경철거에 나선 것은 불합리한 처사라는 비난을 받고 있기도 하다.
사인을 둘러싼 의혹
여기서 잠깐 아암도 포장마차가 철거되는 과정을 살펴보기에 앞서 이번에 사망한 이덕인 씨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이덕인 씨는 살아 있다면 올해 서른 살이다. 부모가 인천 연안부두에서 역시 포장마차를 해 근근이 먹고 사는 가난한 집안의 3남2녀 중 셋째인 그는 가족들에 따르면 인천에서 동인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른 장애인들과 마찬가지로 직업을 갖기 위해 인쇄소와 금은세공학원, 그밖에 광고 기획사를 비롯한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했지만 여의치 않자 최근에는 "집안을 일으키려면 내가 공부하는 방법밖에 없다"며 사법고시 준비를 해왔다고 한다.
서울대 법대에 다니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고시에 대비한 공부를 해오던 그는 고시원에 들어갈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형인 이덕창 씨와 함께 아암도에 들어갔다가 이번에 변을 당한 것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성격상 필연적으로 아암도 부근 포장마차는 행정당국과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생존권을 주장하는 장애인을 비롯한 노점상들과, 포장마차 설치가 불법임을 내세워 철거 고수 방침 내세운 연수구청과의 대치는 철거 당일인 11월 24일 까지 네 달여 동안 내내 이어졌다.
그러다보니 아암도 부근 포장마차는 매우 열악한 상황에서 장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장애인들의 전언이다. 한여름에는 매일 1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아암도를 찾았는데 연수구청은 시민을 위한 편의시설 미설치는 물론 쓰레기조차 치워주지 않았다. 전기도 자체적으로 발전기를 설치해서 사용했다고 한다.
여기에다 몇 개 언론이 아암도 부근 포장마차를 부정적으로 다룬 기사를 잇달아 내보냈다. 나중에는 장자추가 미주파를 흡수해서 장사를 했음에도 폭력조직 개입설이 기사화 됐고, 기업형 노점이라느니, 바가지요금이라느니 라며 여론을 부정적인 쪽으로 몰아갔다. 이런 언론의 보도는 연수구청으로 하여금 강경철거에 나서게 된 결정적인 구실로 작용했다.
그동안 연수구청은 사전 정지작업으로 야암도 부근 포장마차에 두 차례에 걸쳐 철거 계고장을 보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에 맞서 노점상들은 작년 10월 속칭 골리앗이라고 불리는 10미터 높이의 철탑 망루를 아암도 부근에 설치했다.
그렇게 팽팽한 대치를 거듭하던 지난 11월 24일 오전 7시, 인천시와 연수구청은 경찰병력 1천 4백 명, 철거 용역반 4백여 명, 구청직원 3백여 명과 포크레인을 동원해 흡사 대규모 군사작전에 버금가는 강제 철거에 나섰다. 그런데 인천시가 철거에 나설 당시 아암도 노점상들은 전날 철거가 있을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덕인 씨를 비롯한 장애인 8명과 노점상 20여 명이 철탑 망루에 올라가 있던 상태였다.
철거 용역반에 의한 아암도 포장마차 철거는 불과 5시간 만에 끝났다. 그 후로는 철탑망루에 올라가 농성을 벌인 노점상들과 경찰과의 긴긴 대치가 이어졌다. 철탑 망루에 올라가 있던 노점상들은 인분을 던지는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거칠게 항의 했지만 경찰은 소방차를 동원한 물대포 쏘기라는 강경대응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25일 저녁 9시 문제의 이덕인씨가 망루 뒤쪽으로 내려와 바다로 뛰어 들었다. 여기까지는 동료 노점상들이 분명히 목격했다. 그런데 바다로 뛰어든 이덕인 씨는 곧 행방불명이 됐다. 그 날 이후 어디서도 이덕인 씨의 자취를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3일 후인 28일 이덕인 씨는 차디찬 시체로 떠올랐다.
이덕인 씨는 과연 어떻게 사망 했는가? 이덕인 씨가 주검으로 떠오르자 이덕인 씨가 어떤 과정을 거쳐 사망했는지를 둘러싸고 아암도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었던 이덕인 씨이고 보면 의문은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었는데, 일단 현재까지 이덕인 씨 사인을 둘러싼 주장은 대략 두 가지로 나뉘어 제기되고 있다.
먼저 단순 익사라는 인천시 주장이 있다. 인천시는 이덕인 씨 시신이 발견된 다음날인 29일, 시신이 안치돼있던 인천 길병원에 경찰을 투입해 시신을 탈취한 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부검을 의뢰한 결과를 바탕으로 이덕인 씨가 "아암도 반대쪽인 연안부두 쪽으로 헤엄쳐 가다가 탈진해 익사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에 대해 이덕인 씨 사망을 계기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에서는 이덕인 씨가 공권력에 의해 구타당해 바다에 버려졌다는 타살 혐의를 제기하고 있다. 그 근거로 비대위가 내세우는 것은 시신에 나 있는 상처이다. 진술한 것처럼 이덕인 씨 시신 곳곳에는 맞아서 생긴 것처럼 보이는 멍이 가득하다. 또한 만약 인천시 발표대로 익사 했다면 바다에서 이리저리 떠밀려 암초에 긁힌 상처가 있어야 하는데 이덕인 씨 시신에는 돌에 긁힌 상처는 찾아볼 수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리고 아암도에서 연안부두까지 직선거리가 4.4킬로미터 되는 점을 들어 이덕인 씨가 그 먼 거리를 헤엄쳐 가려 했을 리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여기에다 새정치국민회의 진상조사단은 최근 진상조사단 조사 보고서를 통해 "사체 발견 당시 밧줄이 다소 풀어지기는 했으나 두 손이 포박된 상태로 묶여 있었던 사실, 이덕인 씨가 옷을 입은 상태로 물에 들어갔는데도 사체 발견 시에는 상의가 벗겨진 상태였다는 사실" 등을 들어 "이덕인 씨가 헤엄쳐 나가다 익사 하였다고 하기 보다는 타살이 아닌가 의심이 가고 타살이라면 그 당시 노점 현장을 포위하고 있었던 경찰에 의한 것이라고 의심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정황을 종합해 비대위 관계자는 "새정치국민회의 진상조사단에서 찍은 사진에 의하면 아암도 부근에 조개 채집하는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어통수라는 큰 구멍이 있는 게 확인됐다. 근처 지리를 잘 알고 있던 이덕인 씨는 그 구멍으로 빠져 나오려다가 공권력에 붙잡혀 희생당한 게 분명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덕인 씨 사인이 타살임을 주장하는 비대위는 현재 시신 재부검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관계자들에 따르면 시신은 이미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부검 당시 장기를 드러내고 상처 부위를 떼어 내는 등 샅샅이 해부돼 사실상 재부검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열악한 생존권
이덕인 씨 사망 사건을 계기로 촉발된 아암도 사태는 때맞춰 터진 두 전직 대통령 구속 정치적인 사건에 묻혀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하지만 아암도 사태가 불러온 파장은 매우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다. 현재까지 아암도 사태의 여파로 총 11명이 구속돼있는 실정이다. 그 중에는 장애인 노점상 이안중 씨와 장자추 위원장 양연수 씨가 포함돼 있다. 인하대생 7명은 경찰의 시신 탈취에 대항하다가 구속된 경우이다.
이들 구속자 문제도 심각하지만 아암도 포장마차 철거로 당장 생계수단이 없어진 장애인 노점상 15명의 생계문제도 시급한 현안으로 제기되고 있다. 자비를 들여 포장마차를 설치한 장애인 노점상들은 현재 다른 생계수단을 갖지 못해 막막한 실정에 놓여 있다.
그런데도 철거를 감행한 인천시와 연수구청은 나 몰라라 뒷짐을 지고 있다. 철거 당사자인 연수구청 건축과에서는 "이덕인 씨 사망은 철거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게 아니라 철거 후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책임이 없으며" 장애인 노점상 생계 문제는 "장애인들이 조직폭력배와 노점상연합회라는 운동권 단체에 이용당한 경우이므로 보상해 줄 수 없다"며 별도의 대책을 세우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연수구청의 입장은 그럴 수 있다 쳐도 장애인 단체들의 소극적인 대응은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장애인 노점상 사망이라는 시급한 현안이 발생했음에도 인천지역 장애인 단체들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학생들과 전노련을 비롯한 재야 운동 단체에서는 이덕인 씨 사인 규명을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그동안 다섯 차례에 걸친 대규모 시위를 통해 진상 규명과 빈민 생존권 보장을 요구했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사인 규명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아암도 사태가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물어볼 것도 없이 장애인의 생존권이 매우 열악한 지경에 놓여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 하게 만드는 사건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동안 잇달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장애인들과 사인이야 어쨌든 이번에 사망한 이덕인 씨는 생존권 문제로 연결돼 있다.
이번 사건으로 정부에서는 장애인 복지를 위해 여러 가지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그 복지 정책이 현실에서는 전혀 실효성이 없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분명하게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왜 장애인들은 노점상으로 나서야 했을까?
정부는 이제라도 한 장애인 노점상의 항변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장애 관련 양 법안이 있지만 전혀 실효성 없는 법안일 뿐이다. 일예로 고용촉진법에 의해 취업한 장애인들은 대부분 비장애인들이 기피하는 3D 업종에 취업이 될 뿐이다. 거의 다수가 단순조립공으로 일하는데 회사에서는 월급이라고 많아야 50만 원 정도 주면서 큰 혜택이라도 주는 것처럼 생색을 낸다. 이 정도 월급으로는 도저히 생활을 해나갈 수 없고, 또 하나 나는 막말로 이런 아니꼬움을 참아가면서 일을 할수 없어서 노점상으로 나서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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