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생각 저런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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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생각, 저런생각]
개악된 장애인고용촉진법
분리정책에는 차선책이 없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고용촉진법에 의해 3백인 이상 사업장에 고용해야 할 의무고용인원 4명2천여명의 장애우 중 고작 9천 98명만이 고용되어 있다고 한다.
특히 장애우고용을 위해 일선에 있는 장애인고용촉진공단이 직업을 알선한 장애우 수는 1 천5백여명인데 이는 장애우 한 명을 취업시키기 위해 2천만원이 투자되는 모순을 보여 장애인고용촉진공단이 제대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왜 장애우 고용이 늘지 않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관련책임자들의 답변은 한결같이 고용촉진법이 시행된 지 4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욕심을 내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고용 책임자들은 장애우 고용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를 장애인고용촉진등에 관한 법률에 떠넘기고 있다. 이 법이 기업을 운영하는 사업주들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용율을 낮추든지 아니면 고용부담금을 적게 내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고용촉진법을 개정해서 직업재활시설에 생산설비와 원료, 기술 등을 제공하고 생산관리 및 생산품의 판매를 전담하는 사업주 또는 직업재활시설에 도급을 주어 그 생산품을 납품받는 사업주에 대하여 부담금을 감면해 주면 장애우 고용이 활성화 될 수 있다는게 그들의 말이다.
고용 책임자들은 이러한 내용을 말로만 그치지 않고 위와 같은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한 고용촉진법 개정안을 지난해 정기국회에 상정했으나 그때마다 연계고용제의 문제점 때문에 여야가 합의를 보지 못했었다. 그런데 연계고용제가 장애우 고용정책에 있어 분리정책으로 고착될 가능성 때문에 적극 반대했던 두명의 국회의원이 일정상 법률심사 소위원회에 참석하지 못하는 바람에 그냥 이 법이 통과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번 임시국회 기간 중에 관례를 깨고 연계고용제를 주요내용으로 한 민생법안인 장애인고용촉진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번 개정안 통과로 인해 나타날 가장 큰 문제점은 일반사업장에 장애우가 고용된다는 것이 사실상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연계고용을 통해 이미 의무고용인원을 확보했기 때문에 굳이 일반 사업장에서는 장애우를 고용하지 않아도 법적 의무고용 인원을 채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쉽게 예측할수 있다. 지금까지 고용촉진부담금을 부담하면서까지 장애우를 고용하지 않았던 기업에게 이제는 도덕적으로든, 제도적으로든, 면제부를 주게 됐다.
장애우와 비장애우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통합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이다. 장애인고용촉진 법률이 처음 만들어 졌을 때도 사회연대책임과 통합고용을 전제로 만들어졌다. 입법과정에 참여했던 팔자로서 그 당시 생생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때 당시 노동부 담당사무관과의 논의과정에서 적어도 장애인고용촉진법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러움 없는 법으로 만들자고 서로 격려한 것이 기억에 새롭다. 그런데 세계는 변하고 있고 다른 분야도 세계화다 하면서 진보적으로 바뀌고 있는데 왜 하필이면 우리 장애우 고용분야는 시대를 역행하는 제도로 바뀌고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장애우에 대한 분리정책은 어떠한 이유로도 반대한다. 분리정책에는 차선책이 없기 때문이다. 장애우 고용책임자는 장애우와 비장애우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할 때라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사회통합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정열/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실장
정부예산 대비 0.1%인 장애우 복지예산
예산없는 제도는 전시행정이다.
우리는 대형사건이 터질 때마다 며칠동안 탄식과 분노를 쏟아 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연스럽게 잊어버린다. 책임지겠다던 사람들은 자리만 옮겨 앉을 뿐이다. 구속되었던 담당자들도 대부분 가벼운 경고조치로 면죄부를 주고 만다. 그래서 몇 달이 지나면 또 대형참사가 터지곤 한다.
우리나라는 사고왕국이다. 최근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다시 또 일순간에 5백여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죽고 9백명이 넘는 사람들이 심하게 다쳤다. 우리 언론은 살아난 몇 사람에 대해 국민적 영웅으로 미화시키기에 열을 내면서 수천명의 유가족들의 슬픔이 살아났지만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겪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애써 회피하고 있다.
그리고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교통사고가 제일 많은 나라에 속한다. 교통사고로 인해 하루에 40여명이 사망하고 1백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장애를 가진다는 통계가 발표됐다. 그래서 공영방송인 KBS에서는 올해를 교통사고 반으로 줄이기 원년의 해로 삼자는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기도 하다.
또한 산업재해도 늘어나는 추세이다. 우리나라 산업재해율은 싱가포르의 0.38%에 비해 4배가 많은 1.76%이다. 1년에 3만여명이 팔다리가 짤리거나 직업병 후유증으로 일상생활에 막대한 지장을 받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다가 다쳐치료도 제대로 못받아 장애를 입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안전사고로 인한 연간 손실액이 91년 한해만도 3조 5천억원으로 우리나라 총 사회복지예산보다도 많은 국민총생산액의 1.7%에 달하고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산부인과학회의 조사에 따르면 기능장애를 동반한 기형아 출산율이 2.8%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한해에 2만여명이 기형아로 태어난다는 통계이다. 전에는 성별에 관심이 많았으나 이제는 아들인지 딸인지 보다는 건강한 아기의 출산에 대한 산모들의 관심이 70%가 넘는다고 한다. 그만큼 공해나 각종 약물오남용이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수 없다.
부실공사로 인한 대형사고, 교통사고, 산업재해, 약물오․남용, 환경의 문제등 이러한 것들은 산업화 과정에서 경제성장 우선주위가 만들어낸 산물로서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각종 문제를 사회문제로는 인식하면서도 개인이 고통을 겪을 수박에 없는 장애문제는 사회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장애문제는 개인에게 찾아오는 순간의 불행으로 끝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 사회가 장애를 가지고 있는 한 평생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 무거운 짐인 것이다.
매년 이맘 때쯤이면 정부예산 편성을 둘러싼 움직임이 활발해진다. 그래서 재경제원 주변이 북적거리고 있다. 그런데 항상 복지예산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정부예산에서 차지하는 복지예산 비중은 전체예산 중에서 6.4%에 불과하고 있다. 이는 스위스의 63%는 물론이고 방글라데시의 12%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더욱이 장애우 복지예산은 일본의 3%에 1/30정도 밖에 되지 않는 정부예산 대비 0.1%로 인구의 10%가 장애우인 상황에 볼 때 형편없이 낮은 예산 규모이다.
그런데 최근에 정부에서 발표하는 정책을 보면 대부분 사회복지와 관련된 것들이 많다. 하지만 발표되는 정부정책의 양과 예산 비중과는 반비례인 것 같다. 세계화 추진 속에서 복지예산을 대폭 늘리겠다는 발표와는 달리 실질적인 정부예산편성을 보면 복지 예산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형편이다.
경제 성장과정 속에서 우리사회는 많은 문제를 노정시켰다. 산업화과정에서 사회구조적으로 발생한 문제로 인해 개인에게는 장애라는 또 하나의 굴레를 안겨주고 있다. 때문에 장애우 문제는 그 책임을 개인이나 민간기업에 떠넘기기보다는 국가가 해결해야할 당연한 문제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예산증액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적어도 장애우 복지예산이 정부예산 대비 1%는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지만이 장애우 문제를 해결하는 흉내라도 낼 수 있다.
김정열/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실장
충격준 소쩍새마을 사건
정부가 나서야만 한다
얼마전 MBC시사 프로그램 PD수첩에서는 충격적인 소쩍새마을의 비리를 폭로했다. PD수첩에 따르면 장애우, 고아, 오갈데 없는 노인 등 버림받고 소외 받는 사람들 1백여명이 모여사는 강원도 원주의 조그마한 공동체 소쩍새 마을의 설립자이고 운영자인 일력스님이 자비의 화신이라는 세간의 평가와는 달리 성추행을 일삼고, 폭력을 휘두르며, 유기를 지시하는 파렴치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PD수첩이 폭로한 일력스님의 구체적인 비리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먼저 그는 스님이 아니면서도 불교 최대 종파인 조계종 스님을 사칭하는 사기죄를 저질렀으며 국민학교 3학년에 다니는 여아를 비롯 자신이 돌보고 있는 여자아이들을 수시로 성추행하고, 그것도 모자라 자원활동자까지 성추행 하는 인간말종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 또한 정신질환 증세를 보이는 백아무개씨를 귀찮다며 내다 버릴 것을 지시하고, 자신을 말을 듣지 않으면 술에 취해 사람들에게 가스총을 휘두르는 폭력도 서슴치 않고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는 7만여명에 달하는 후원자들이 불우한 사람들을 돌보라고 보내주는 후원금으로 충주 시내 유흥업소를 드나들며 여자와 잠을 자기도 해 도저히 공동체 운영자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인물이다.
이런 인물이 무려 13년동안 소쩍새마을에서 제왕으로 군림해 왔으니 소쩍새마을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마음고생이 무척 심했을 것임을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렇듯 충격을 준 소쩍새마을 사건을 보면서 일력의 비리에 분노하는 것과 아울러 또 한가지 느낀게 있다. 그건 소위 무인가 시설인 공동체가 운영자의 마음먹기에 따라서 부의 축적 수단으로 변질될 수도 있구나 라는 우려감이다.
소쩍새마을은 이런 우려가 현실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소쩍새마을에서 후원자를 관리하는 직원의 말에 따르면 일력은 통장에 무려 1백억원 정도의 후원금이 있고, 매달 2억원에서 3억원 정도의 후원금이 들어온다고 자랑했다고 한다. 실제로 소쩍새마을 후원자가 7만여명에 달하고 있음을 볼 때 일력의 자랑은 충분히 근거가 있다고 보여진다.
그런데 상당한 액수의 후원금은 소쩍새마을 사람들을 위해 전혀 쓰이지 않았다. 건물은 비닐움막 7동이 고작으로 그것도 무허가 건물이라 언제 철거당할지 모르는 딱한 사정에 놓여있고, 점심은 꼭 라면이나 수제비로 때우는 등 소쩍새마을 사람들은 너무나 열악한 환경에서 연명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들어오는 후원금은 많은데 소쩍새마을 사람들은 어렵게 살아야 할까?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은 소쩍새마을의 한 자원활동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일력이 후원자들 집에서 먹는 반찬보다 소쩍새마을에서 먹는 반찬이 더 좋으면 어떻게 후원자들이 우리를 후원해 주겠냐면서 좋은 반찬을 내놓지 못하게 해 썩혀버린 고기도 많았다"는 것이다.
의문이 풀렸다. 열악한 주거 환경도, 형편없는 식사도 모두 일력의 후원금을 노린 탐욕에서 비롯됐음을 알수 있는 것이다. 이쯤되면 일력을 장사꾼으로 여기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그동안 비단 소쩍새마을 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장애우 시설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들을 많이 보아왔다. 그들은 그들의 공동체가 정부에서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악용해 후원자들에게서 후원금을 받아내는 일에 혈안이 되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정작 수용된 장애우들에게는 인간 이하의 대접을 해주면서 운영자만 배를 불리는 이런 파행적인 운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도 제2의 소쩍새마을이 이땅에 존재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인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인가? 그 일차적인 원인은 정부의 무관심에 있다. 정부는 자신이 돌봐야 할 소외된 사람들을 철저하게 민간에 떠넘기고 있다. 정부는 복지시설을 설립하고, 지원을 해준다지만 수요에 못 미치고 있음을 정부 자신도 잘 알 것이다. 하지만 실정이 이렇다고 무조건 복지시설을 늘리라는 것이 아니다. 복지시설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해결책은 소외된 사람들이 격리되지 않고 우리 사회의 이웃으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일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으니 자꾸만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소쩍새마을 사건만 해도 그렇다. 국민의 정부라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대책을 내놔야 했다. 정 그게 어렵다면 관심이라도 보였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정부와 언론은 이번 사건을 일력 개인의 자질문제로 귀착시키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식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소쩍새 마을과 같은 공동체는 전국적으로 줄잡아 1천여개가 넘는다. 이들 공동체는 하나같이 자립기반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소규모 공동체는 필연적으로 후원금에 의지해 운영될 수밖에 없다. 문제의 소지가 늘상 있는 것이다.
물론 선한 뜻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불우한 사람들을 돌보는 공동체운영자들도 많다. 그렇지만 그들도 재정상 어려움 때문에 정부의 지원을 바라는 것은 한결같다. 이제 정부는 그동안의 무관심에서 벗어나서 소외된 사람들의 문제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 그래야지만이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제2의 소쩍새마을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게 소쩍새마을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이태곤/ 본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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