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인원 보육사 정광용씨 구속은 조작이다!
본문
본지에 수차례 보도됐던 혜인원 보육사 정광용씨 구속사건이 조작됐다는 주장이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혜인원 전 원장 김순희 씨는 최근 양심선언을 하고, 불법적인 법인매각과 정광용씨 구속이 어떤 조작을 통해 이루어졌는지를 고백했다. 본지는 그 내용을 입수해 공개한다. 참고로 아래의 내용은 김순희씨가 작성한 진술서를 바탕으로 김정회 씨와의 인터뷰를 거쳐 재구성한 것임을 밝혀둔다.
불법으로 이루어진 법인 인수과정
내가 혜인원 이사장 서 아무개씨를 만난 것은 1993년 4월 25일 이다. 당시 나는 서울 수유리에서 무의탁 출소자보호소인 "사랑의 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날 나는 평소 친분이 있던 김아무개 목사로부터 서씨를 소개받아 만나게 되었다. 그때 서씨는 장애우 복지시설을 운영하려고 경기도 양평군에 장소를 물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첫 만남에서 서씨는 나에게 복지시설을 설립하는데 도움을 줄 것을 부탁했고, 나는 흔쾌히 서씨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날 이후 나는 서씨와 복지시설 설립 부지를 알아보러 다니던 중 1994년 7월31일 내가 관계하는 선교회 총무 우 아무개씨로부터 "2천4백평 부지를 가진 장애우 시설이 6억원에 매물로 나온 게 있는데 인수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 제안을 받고 8월1일 동료목사인 박 아무개씨와 함께 경기도 광주에 있는 혜인원을 방문했다.
생각 이상으로 시설이 괜찮았으므로 그날 나는 서씨의 남편이 운영하는 종로 소재 아무개 치과의원을 찾아가 서씨를 설득했다.
내 설득에 따라 혜인원에 가본 서씨도 흡족해 하며 그날 "혜인원을 인수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 다음날부터 혜인원 인수작업이 본격화 됐다. 나와 박 목사, 그리고 서 이사장이 혜인원설립자이며 전이사장인 최창수 씨가 요구하는 금액은 6억원이었다. 우리는 어떻게든 가격을 낮추려고 협상을 벌였고, 그 때문에 시일이 지체돼 인수작업은 이십일을 넘게 끌었다.
결국8월23일 최창수 씨와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인수대금으로 5억원을 주었는데 그중 최 이사장이 법인전입금으로 사용한 5천만원과 국고 전용금1억원, 도합1억5천만원의 빚을 서이사장이 떠맡아 책임지기로 하고, 3억5천만원중 2억5천만원은 수표로, 5천만원은 1994년11월 22일자로 된 약속어음을 발행해서 주는 것으로 하고, 합의를 끝냈다. 돈은 며칠 후 서이사장이 최창수 씨에게 직접 건네줬다.
이렇게 해서 혜인원 인수작업을 끝낸 나와 박 목사는 다음날부터 광주군청을 운영원 인수자금에 대해서는 일절 묻지 않았다. 인수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돼 우리는 8월31일 자로 혜인원의 새 주인이 될 수 있었다.등기상 권리자도 최창수씨 대신 서씨로 바뀌었다.
혜인원을 인수한 후 우리는 이사장은 서씨, 원장은 박 목사가 맡기로 하고 원을 운영했다. 그러나 운영과정에서 서씨와 박 목사는 잦은 갈등을 빚었다. 그 갈등은, 서씨는 혜인원 매매과정에서 법인에 2억원 정도의 가압류가 들어와 있는 것을 모르고 원을 인수했는데 박 목사는 이 사실을 이미 알고도 모른척하지 않았느냐는 것과, 마침 혜인원 소유였던 정신병원 매각건과 관련하여 이천 세무서로부터 세무조사가 진행되면서, 이세무조사가 박 목사가 세무서에 연락해 시작되지 않았느냐는 서이사장의 일방적인 의심 때문에 촉발되었다. 결국 박 목사는 94년 10월 원장직을 그만두고 혜인원을 떠났다.
"노조 설립을 막아라"
대신 내가 10월10일사로 혜인원 원장이 되었다. 그런데 내가 원장이 되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10월22일 오전11시경, 정광용 씨를 비롯한 혜인원 보육사 4명이 혜인원에 노동조합을 설립하기 위해 노조 설립신고서를 광주군청에 제출했다는 소식이 광주군청 사회과 시설 담당자 석 아무개씨로부터 나와 서이사장에게 통보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시간이 지나지 않은 오후1시경 광주군청에서 노동계를 담당하고 있는 고 아무개씨가 혜인원을 방문해 노조원 중 한명인 박미혜 보육사방에서 문제의 보육사들을 모아놓고 노조 설립포기를 종용했으나 보육사들은 듣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날인 10월23일 서이사장이 나를 서울 화곡동 혜인원 방아무개 상임고문집으로 불렀다. 그 자리에서 노조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던 중, 서이사장이 나에게 "어떻게든 노조설립을 막으라"고 지시하면서 노조설립을 추진하면서 당시 혜인원2층 남자 원생들 방을 맡고있던 박미혜, 이진숙 두 여보육사를 해고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남자 원생들 방은 남자보육사가 맡아야한다"라는 방침을 보육사들에게 통보할 것과, 정광용위원장을 해고시키기 위해서는 "정씨가 친권포기 각서 등 법인 서류를 외부에 반출시킨 것을 문제삼을 것"을 지시했다.
이런 서씨의 지시를 받고 혜인원으로 돌아온 나는 다음날인 24일 오전 박미혜와 이진숙을 불러 "남자방은 남자 보육사가 맡기로 했으니 사직서를 내라"고 해고를 통보했다. 하지만 두보육사는 노조탄압이라며 강력하게 항의한 후 사직서 제출을 거부했다.
그날 오후 광주군청 시설 담당 석아무개씨가 혜인원을 찾아왔다. 석씨가 나에게 직원들을 소집하라고 해 내가 방송으로 직원들을 소집했다. 그 자리에서 석씨의 노조 설립을 추진하는 직원들을 지목하며 "노조를 설립하려면 혜인원을 떠나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 다음날인 25일 오전 서 이사장이 다시 직원회의를 소집했다. 그 자리에서 나와 서이사장은 "절대 노조를 인정할수 없다"라고 통보한 후 비노조원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노조에 가입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쓸 것을 강요했고, 곧바로 직원들에게서 일일이 서약서를 받았다. 그 서약서는 서 이사장이 가져갔다.
10월 26일 오전 11시 30분경, 노조위원장인 정광용 보육사가 "노조 설립문제로 광주군청엘 가야겠다"며 내게 외출 허가를 내줄 것을 요구했다. 나는 "외출은 절대 안된다"며 이를 거부했다. 그러나 정광용 씨는 내말을 무지하고 무단외출을 감행했다. 나는 이 사실을 서이사장에게 알렸다.
정씨가 외출을 나간 지 얼마 후 한직원으로부터 정씨가 담당하고 있는 동백방원생인 변재욱이가 복통 때문에 앓아 누워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동백방에 가보니 재욱이는 간호사가 준 약을 먹고 완쾌되어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내려왔다.
그런데 잠시 후 서 이사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보고 빨리 광주군청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호출을 받고 광주군청으로 가는 데 길에서 서 이사장이 탄 차를 만나게 되었다. 내가 차를 멈추자 차에서 내린 서이사장이 나를 부르더니 "광주군청 사회복지과 과장과 시설담당 석 아무개씨가 정광용 씨의 무단외출을 확인하러 3시경 혜인원에 오기로 했으니 재욱이를 빨리 병원에 입원시키라"라고 말했다. 내가 "나아서 놀고있는 아이를 어떻게 병원에 입원시키냐"고 이의를 제기하자 서이사장은 "하라면 하지 무슨 잔소리가 그렇게 많냐"고 면박을 줬다.
나는 별 수 없이 서 이사장의 지시대로 서둘러 혜인원으로 돌아가 재욱이를 데리고 광주읍내에 있는 제일정형외과에 갔다. 재욱이를 진찰한 병원에서는 "복부에 가스가 차 있는데 관장을 시키면 괜찮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재욱이를 입원시키지는 못하고 병원에서 준 관장약을 받아들고 혜인원으로 돌아왔다.
내가 원에 도착하자 원에는 군청 사회복지과 과장과 시설담당 석 아무개씨가 이미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내게 정보육사의 무단외출과 재욱이의 발병에 대한 확인서 초안을 잡아주며 "이 확인서를 군청으로 보내라"라고 지시한 후 돌아갔다. 내가 지시대로 확인서를 작성해서 군청으로 보내자 그날 오후 군청에서 공문이 날아왔다. 공문내용은 " 보육사인 정광용 씨가 무단외출을 하고, 원생이 아픈데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니 이건에 대해 조치를 취하고 보고를 하라"는 것이었다.
광주군청으로부터 공문을 받은 서이사장과 나는 미리 짜여진 각본대로 27일 오후 7시경 혜인원에서 임시 이사회를 열어 정광용 보육사에게 무단외출과 법인서류 유출등의 네가 혐의를 씌어 해고를 결의했다. 그리고나서 다음날인 28일 오후7시경 다시 혜인원에서 임시 이사회를 연 다음 그 자리에 정보육사를 불러 공식적으로 해고를 통보했다.
"3개월만 구속 시키면 된다"
그런데 정씨를 해고시키고 나서 별문제가 없으리라던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정보육사가 부당노동행위혐의로 서 이사장과 나를 노동부지방사무소에 제소할 움직임을 보이고, 장애우 관련 언론에 정씨의 해고가 불법이라는 기사가 실리면서, 전문노련 등의 노동자단체에서 항의방문을 오는 등 문제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군청 관계자들이 서이사장과 나를 불러 "부당노동행위 제소는 해고된 지 3개월이 지나면 제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일러주면서 "어떻게든 정씨를 3개월 정도만 구속시키면 노조가 와해되니 그렇게 조치하라"고 정씨를 형사고발한 것을 수차례 종용했다. 그들은 정광용 씨에게 동료보육사 이영수씨의 신원증명서를 외부에 유출시킨 것과, 친권포기각서 등 법인서류를 월간 함께걸음에 제공해 보도하게 한 것 등의 혐의를 씌우면 충분히 구속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군청에 권유에 따라 서이사장과 나는 11월 13일 광주경찰서 근처 모사법서사 사무실에서 5만원의 돈을 주고 군청에서 지적해준 사실을 혐의사실로 나열해 절도죄로 정 보육사를 고발하는 고소장을 작성했다.
그런 다음 작성한 고소장을 경찰서에 접수시키려고 광주경찰서 민원과를 찾아갔다. 그런데 내가 고소장을 접수시키려하자 서류를 훑어본 담당자가 "여기서 접수를 시키면 시일이 오래걸린다"며 "정광용 씨의 주소지인 서울 강서경찰서에다 고발장을 접수시키라"고 말했다.
그래서 서 이사장과 나는 11월16일 서울 강서경찰서앞 모 사법서사 사무실을 찾아가게 됐다. 거기서 이미 작성된 고소장을 보여주자 사법서사는 "이 내용만으로는 구속이 어렵다"며 다시 고소장을 작성할 것을 권유했다. 그 과정중에 나는 같이 동행한 원생에게 빵을 사다주려고 잠시 사법서사 사무실을 나갔는데 돌아와 보니 고소장은 "정광용 씨가 드라이버로 서류함의 열쇠구멍을 파손하고 이영수씨의 신원증명서와 법인 서류들을 가져갔다"는 내용으로 바뀌어있었다.
나는 혜인원의 서류함이 파손된 사실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불안해서 서이사장에게 "무슨 증거가 있냐?"고 물어 보았다. 서이사장은 "내가 책임질테니까 걱정말라"고 대답하며 "어서 고소장에 도장을 찍어라"라고 채근했다. 별수 없이 나는 서이사장을 믿고 고소장에 도장을 찍었다. 당시 고소인은 내 이름으로 되어있었다. 고소장을 작성한 나와 서이사장은 강서경찰서 민원실에 고소장을 접수시키고 형사앞에서 진술서를 작성했다.
그로부터 3일후인 19일 강서경찰서 이 아무개 형사로부터 "정광용 씨를 연행했으니 빨리 들어오라"라는 전화연락을 받았다. 나는 그길로 강서경찰서에가 정광용 씨와 대질 심문을 받았다. 그런 다음 경찰서를 나오면서 서이사장의지시대로 강서경찰서 운동장에서 이 아무개 형사에게 현금 30만원이 든 봉투를 건네줬다. 그날 정광용 씨는 "증거를 보충하라"는 판사의 지시로 구속영장이 반려돼 구속되지 않고 풀려나왔다.
11월21일 경찰의 보충심문이 있어 보육사 한화자 씨와 이영수, 그리고 서이사장이 강서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나중에 들은 바에 따르면 이 아무개형사는 보육사들에게 강압적으로 대하면서 조작된 사실을 증언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11월24일 서이사장이 강서경찰서를 찾아갔다. 경찰에서 이아무개형사를 만나고 돌아온 서 이사장은 나에게 "이 아무개형사에게 29만원이 든 봉투를 건네줬다"고 말했다.
11월26일 보충수사를 한다며 이 아무개 형사가 혜인원을 찾아왔다. 이 아무개 형사는 정광용보육사가 절도를 했다는 유력한 증거물로 당시 사무실 한켠에 있던 부숴진 서류함을 찍어갔는데, 그 파손된 서류함은 엿새적인 20일 내가 부순 것이었다. 내가 부순 서류함이 3월에 정광용 씨가 부순 것으로 둔갑한 것이다. 그날 나는 이아우개 형사를 바래다주면서 성남관광호텔 앞에서 10만원권 수표한장을 또 건네줬다. 참고로 밝히자면 이아무개 형사에게 준돈은 법인 서류에는 모두 내가 법인으로부터 판공비를 받은 것으로 기재돼있다는 것이다.
구속영장 사본으로 구속된 정광용씨
며칠 후 이아무개 형사로부터 "정광용 씨에게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는 전화연락을 받았다. 그러나 정광용씨 소재를 알 수 없어서 검거에는 실패했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또 며칠 후인 12월9일 오전 광주군청 시설 담당 석 아무개씨로부터 "오늘 정광용 씨가 부군수 면담을 하기 위해 군청에 올 예정이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소식을 접한 서이사장은 내게 "강서경찰서에 가면 이 아무개 형사가 구속영장을 줄테니 가서 받아오라"고 지시했다. 서이사장의 지시를 받은 나는 이 아무개 형사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구속영장을 받으러가겠다"고 말하자 이아무개형사는 "다른사람에게 구속영장을 줄 수 없다"며 서 이사장과는 다른 말을 했다.
내가 이아무개 형사와 통화한 내용을 서 이사장에게 보고하자 서 이사장은 "그러면 내가 갔다 오겠다"며 직접강서경찰서에 갔다. 얼마 후 돌아온 서이사장 손에는 구속영장사본이 들려있었다. 서이사장은 구속영장사본을 나에게 줬고, 나는 현아무개 혜인원 총무와 함께 광주군청 앞 도로로 가서 정광용 씨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광용 씨가 나타났다. 나는 112에 전화를 해 "절도 용의자가 나타났다"고 신고했다. 잠시 후 근처 경안파출소에서 경찰 두 명이 쫓아왔다. 나는 경찰에게 구속영장사본을 건네주며 "용의자가 군청에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나서 나는 차를 돌려 혜인원으로 돌아왔다. 그날오후 나는 정광용 씨가 절도죄로 구속됐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편집자주>
그 동안 본지는 수차례 걸쳐 혜인원사건을 보도했다.
그 보도의 연장선상에서 볼 때 이번 김순회 씨의 양심선언은 당시 미진했던 몇가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생생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무리가 안다. 특히 법인 매각과정과 정광용 씨 구속건은 당사자의 한 사람이었던 김순회 씨의 증언 외에는 달리 확인할 길이 없는 사항이기에 더욱 중요한 증언이라고 보여진다.
김순회 원장의 참여연대에서의 양심선언은 지난 3월 20일에 있었다. 그전인 3월15일 김순회 원장은 정광용씨 재판과정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지 않고, 혜인원에 남아있는 유일한 노조원 홍 아무개보육사를 해고시키라는 서이사장의 지시를 거역한 게 빌미가 돼 법인 이사회로부터 해임통지를 받았다. 해임된 김순회 씨는 인터뷰에서 "목사로서 부정한 일에 협력해 그동안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며 자신의 잘못을 참회했다.
김순회 씨는 4월3일 정광용 씨에 대한 고소를 취하한다는 내용의 고소취하서를 작성해 법원에 제출했다. 하지만 절도죄는 친고죄가 아니기 때문에 정광용 씨는 풀려나오지 못하고 있다. 4월초 현재 정광용 씨에 대한 재판은 4차 공판을 끝낸 상태이다.
정광용 씨가 풀려나올 경우"무고죄로 고발되는 것도 감수하겠다"고 밝힌 김순회 씨는 "서이사장이 혜인원을 인수하고 난 후 해고한 직원이 10여명이 넘는다"며 "원생들을 위해서라도 서이사장은 혜인원에서 손을 떼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김순회 씨는 정광용 씨 구속건 외에 혜인원의 몇가지 비리에 대한 양심선언을 아울러했다. 김순회 씨가 지적한 혜인원 비리는 작년 12월27일 신영증권에서 받은 후원금 5백만원을 법인 통장에 기재하지 않고 서이사장이 임의로 사용한 사실, 법인전입금으로 지불해야할 공사비6백5십만원을 시설운영자금으로 대체해서 사용한 사실, 두 명의 직원을 보육사로 허위보고하여 군청으로부터 예산을 받은 사실 등이다.
이런 김순회 씨의 양심선언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본지는 서이사장과 접촉을 시도했다. 하지만 서이사장은 4월초 현재 몸이 아프다며 병원에 장기 입원해 있어서 접촉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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