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한국 특수교육 100주년’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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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특수교육 100주년’ 유감
김주용 (명혜학교 교사)
<어떤 근거로?>
1994년을 들어서며 우리는 난데없이 ‘한국 특수교육 100주년’을 맞이하였다. 그런데 현재 이 100주년을 진정 벅찬 마음으로 기쁘게 맞이하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의심스럽다. 그보다는 오히려,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 억지로 맞이하고 있다는 의구심과 불쾌감을 갖는 사라들이 많은 것이다.
역사는 공유(共有)할 때 참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공유란 어느 한 편의 일방적 선언이나 설득으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그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합의하고 인정할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최소한 ‘한국 특수교육 100주년’은 특수교육계 전체의 합의와 인정을 받은 적이 없는 극히 일부 사람들의 충격 선언이다.
일찍이 우리 교육계에서 ‘특수교육사(特殊敎育史)’를 놓고 한 번이라도 진지한 학문적 논의를 해 본 적이 있었던가. 그리하여, 불완전 하지만 누구에게나 ‘바로 이것이다.’라고 떳떳이 내 놓을 만한 한국특수교육사를 정립한 바가 있었던가. 그렇지도 않다면 어떤 근거로 일부에서는 올해를 ‘한국특수교육 100주년’으로 당당히 내세우고 대대적인 기념행사까지 추진하고 있는지 그 당사자들에게 묻고 싶다.
<세종대에 관학으로 실시된 특수교육>
역사는 오늘을 사는 사라들의 정신이다. 왜냐하면, 오늘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위의 기원이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역사는 현재 인간행위의 정당성과 가치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역사의 이러한 성격은 곧 올바른 자기 역사를 모르고서는 올바른 사상과 가치관을 정립할 수 없고, 따라서 미래 세계에 대한 뚜렷한 이상을 지닐 수도 없음을 일러준다. 역사는 그만큼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재를 지탱하며 미래에 대한 자신과 용기를 갖게 하는 무형의 거대한 바탕이고 뿌리인 것이다.
역사를 세우는 것은 정신을 갖기 위함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나라 특수교육엔 우리의 것으로 정착된 견고한 정신이 없다. 아니, 우리는 아직 특수교육의 정신을 찾지 못하였다. 우리 교육의 터를 이루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우리 특수교육의 정신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동안 우리는 정작 중요한 우리 특수교육의 역사는 뒷전에 둔 채, 현실 위주의 기술적인 발달에만 치중하여 왔던 것이다.
그리하여, 세종대에 벌써 관학으로 특수교육이 실시되었다.(1445년 세종 27년 書雲觀)는 대구대 임안수(林安秀) 교수의 학위 논문(1986)까지 발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단군(檀君) 이래의 장구한 역사를 일축한 채, 국운이 기울대로 기울었던 19세기 말, 반 강제적인 외세의 조류를 타고 건너 온 홀(R.S.Hall)여사의 의맹교육을 우리 특수교육의 역사적 기원으로 호도하려는 어이없는 일들이 저질러지기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보는 우리의 마음은 착잡하다. 이것은 역사 인식에 대한 우리의 무지일 뿐만 아니라, 민족의 자존심과 주체성을 팽개쳐 버린 무책임하고 수치스러운 행위라고밖에 달리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 특수교육 100주년’에 동의할 수 없다. 누가 100주년을 선언하였든 그들은 곧 이 선언을 철회하여야 한다. 우리나라 특수교육이 올해로 몇 주년이 되는지에 대해 현재로서는 아무도 단언할 수 없다.
<올바른 특수교육사 정립 시급>
한편, 100주년이라는 기간이 다년간의 학술적 준비나 전체의 인식 공유를 위한 대대적인 노력 한 번 없이 극히 일부의 발상으로 정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마치 특수교육계 전체의 경사인 양 앞장서 알리고 부산해 하는 한국특수교육협회의 독단적 태도는 더더욱 받아 들이기 어렵다. 실제로 협회에서는 올해를 한국 특수교육 100주년으로 간주하여 대규모 기념행사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회원의 대부분인 현장의 교사들은 물론 관계자들조차 그러한 배경을 제대로 알지 못하며 이끌리듯 행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한국 특수교육 100주년’에 대한 이와 같은 일방적이고 경솔한 협회의 태도는 어떤식으로든 수정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선 전체 특수교육계의 입장이 아닐 뿐만 아니라, 협회가 차지하는 대외적인 위상을 고려하더라도 추진 중인 사업들이,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도 않은 우리 특수교육의 역사를 축소, 왜곡하고 훼손하는 돌이키기 힘든 우를 범하는 행위이며, 그 잘못은 우리나라 특수교육계와 일반 교육계는 물론 사회 전체에도 커다란 사적(史的) 오해를 심어 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교류가 빈번한 국제 사회에서도 우리나라가 정통성 없는 특수교육 기원의 표본국으로, 없는 치부를 만들어 제공하는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므로, 사실상 이번 협회의 사업은 그 사적(史的)인 성격을 ‘우리나라에서 R.S.Hall의 맹교육이 시작된 1894년을 기리는 것’으로 명확히 제안함은 물론, ‘한국특수교육 100주년’이라는 명칭도 분명히 ‘R.S.Hall의 맹교육 100주년’ 등으로 바꿔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번 일을 전 특수교육인들이 크게 각성하고 한국 특수교육의 바른 역사 정립을 위한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학자들은 사학에 뜻이 있는 전문 인력을 기르기에 힘쓰며, 그동안 산발적으로 또는 개인적으로 연구되어 온 사적(史的) 지식과 자료들을 모으고 새로운 사료(史料) 발굴에도 매진함은 물론, 특수교육학회를 통한 정기적인 학술 토의를 마련하여 그에 대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해석과 분석을 가하는 등 활발한 사업을 벌여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앞으로는 무조건 외국의 학문과 외국의 정신만을 따르는 식민주의적, 사대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정통성 있는 우리 특수교육을 창조하고 펼쳐 나가는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다시 한 번 ‘한국 특수교육 100주년’을 제안한 주체와 한국특수교육협회에 100주년의 철회를 역사의 이름으로 요구하며, 현재 전면에서 우리나라 특수교육을 이끌어 가는 책임있는 사람들의 교육적 양심과 소신있는 태도를 강력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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