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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1층이 있는 삶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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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경사로를 왜 제공하지 않을까?

미국의 한 스타벅스 매장. 휠체어로 접근할 수 있는 낮은 카운터, 맹인 안내견, 가게 정문마다 위치한 장애인 접근성에 대한 안내판이 눈에 띕니다. 영국의 스타벅스 매장에서는 벨을 누르면 점원이 밖으로 나와 주문을 받기도 합니다. 스타벅스는 공식 사이트에서 “모든 사람이 환영 받고, 존중받으며 가치를 인정받는 장소로서 따뜻함과 통합을 경험할 수 있는 커피숍, 그리고 접근가능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우리가 기업으로서 해야 할 일일 뿐 아니라, 국제적인 사회적 책임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 우리나라에서는 어떨까요? 2011년 7월 서초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서초구 스타벅스 23개 매장의 편의시설을 점검한 결과, 휠체어 출입이 불가능한 곳은 전체 매장의 30%를 웃돌았습니다.2) 그 중 8개 매장은 경사로가 없거나 엘리베이터 이용이 곤란해 매장에 접근조차 불가능했습니다. 스타벅스 코리아의 공식 사이트에는 미국처럼 접근성과 장애통합에 대한 약속이 공식적으로 언급돼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스타벅스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카페, 음식점, 슈퍼, 미용실 등은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이 흔히 가는 공중이용시설입니다. 하지만 휠체어를 타는 지체장애인들에게는 결코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경사로조차 제공되지 않는 공중이용시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의 시설주들이 장애인을 위한 경사로를 제공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부분 ‘의무’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중이용시설의 규모와 건물이 지어진 시기에 따라 법에서 의무를 부담시키기도 하고, 의무를 면제시켜주기도 합니다. 최근 경산시에서 장애인을 위한 경사로를 설치하였다가 도로점용허가불허처분을 받은 서점의 경우에도 소규모 시설이라 편의시설 설치의무를 부담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의무가 아니더라도 장애인을 위해 설치를 했으니 칭찬 받아 마땅한데 오히려 보행자의 통행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철거하라는 명령을 받아 문제가 됐습니다.3) 도대체 법이 어떻게 돼 있는 것일까요?

 

관련 법률의 내용과 문제점

장애인등편의법에서는 ‘장애인이 일상적인 생활을 위해 주택을 포함해 각종 건축물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 즉 시설물 접근권을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4)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도 시설물 접근·이용 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습니다.5) 우리나라가 비준해 국내법과 동일하게 우리에게 적용되는 장애인권리협약 제9조에도 시설물 접근권이 명시돼 있습니다.

위 협약을 만든 장애인권리위원회는 2014년 우리나라 정부에 시설물 접근권 개선 권고를 내리기도 했습니다.6)

장애인등편의법에서는 장애인의 시설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공중이용시설의 시설주에게 편의시설 설치의무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공중이용시설이 대상시설은 아니고 시행령에서 바닥면적 합계를 기준으로 일정규모 이상의 시설에만 편의시설 설치의무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음식점과 슈퍼마켓은 바닥면적 300㎡, 미용실은 500㎡ 이상이어야 편의시설 설치의무를 부담합니다.

바닥면적으로만 예외를 인정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법에서 경과규정을 두어 법 시행일(1998. 4. 11.) 전 설치된 공중이용시설은 편의시설 설치 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시설물 접근에 있어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을 의무가 부과된 시설물은 장애인등편의법에서 정한 시설 중 2009. 4. 11. 이후 신축・증축・개축하는 시설물입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시설물의 대상과 단계적 적용범위를 장애인등편의법령 규정에 따르고 있으므로 장애인등편의법과 시행령이 가진 문제점을 동일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소규모 공중이용시설의 시설주, 옛날에 지어진 건물의 시설주는 경사로와 같은 장애인 접근 시설을 구비해두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구비하지 않아도 되는 편의시설을 제 돈을 들여 구비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이용하는 공중이용시설 중 95% 이상은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 곳이라는 점입니다. 구체적으로 전국 슈퍼마켓 100개 중 98개 이상, 음식점은 100개 중 96개 이상, 이・미용실은 100개 중 99개가 소규모 공중이용시설로 나타났습니다.7)

법에서 장애인의 시설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공중이용시설에 원칙적으로 편의시설 설치의무를 부과하고, 예외적으로 소규모 또는 과거에 지어진 시설에는 의무를 면제해 주도록 규정을 두었는데, 현실을 보면 대부분의 시설이 예외에 해당해 편의시설 설치의무를 부담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소규모 공중이용시설의 시설주들이 영세해 편의시설 설치의무를 부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시설주에게 예산 부담이 과도한 정도인지는 시설주의 재산상태, 사회적 역량 외에 지원제도의 뒷받침에 따라 다르게 판단될 수 있는데, 일률적으로 편의시설 설치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것은 부당합니다. 특히 공중이용시설에 가장 중요하게 요구되는 편의시설인 도로와 출입로 사이에 단차를 없애거나 경사로를 설치하는 것은 크게 비용이 소요되지 않고 기술적으로도 어렵지 않는데, 시설주의 과도한 부담을 이유로 광범위한 예외를 인정할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또한 건축연도를 기준으로 일률적으로 예외를 인정하는 규정을 둔 결과, 제주신라호텔처럼 충분히 편의시설을 설치할 수 있는 시설이 1998년 이전에 지어졌다는 이유로 편의시설 설치의무를 제대로 부담하지 않는 문제점이 있습니다.8)

마지막으로 노래방, 당구장, DVD 감상실 등 장애인들이 오락을 즐길 수 있는 시설은 아예 장애인등편의법상 편의시설 설치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고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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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나 영국의 법은 건물의 규모나 지어진 시기에 따라 의무를 면제하지 않습니다. 1992년에 발효된 미국 장애인법은 1992년 이전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하더라도, 쉽게 경사로를 만들 수 있거나, 장애물을 없앨 수 있다면 반드시 장애인 접근성을 보장하도록 의무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시설주가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50,000달러(약 5,7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하고, 여러 차례 위반 사실이 적발되면 100,000달러(약 1억1,4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합니다. 미국 법원은 수백만 원이 들더라도 경사로 설치가 물리적으로만 가능하다면 의무가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이 의무를 벗어나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미국 법무부에서 발간한 가이드라인에는 출입구, 통로, 화장실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아주 자세하게 쓰여 있습니다. 주차구역 6개 중 1개는 장애인 주차장이어야 하고, 출입구에는 경사로가 있어야 하고, 통로의 넓이는 3피트 이상이어야 하고, 장애인이 선반에 손이 닿지 않으면 직원이 물건을 가져다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보니 그대로 따르기도 쉽습니다. 하지만 어떤 건물은 건물과 건물 사이가 좁아 경사로를 설치하기 어려울 수도 있고, 비용이 정말 많이 들 수도 있고, 구조적으로 장애물 제거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경우에도 시설주가 의무를 부담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물건을 살 수 있도록,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대안을 제공해야 합니다. 계단 때문에 카페에 들어갈 수 없다면 점원이 밖으로 나와 주문을 받고 커피를 가져다주어야 합니다. 미용실이 2층에 있다면 영업시간 후 미용 서비스를 고객의 집에서 제공해야 합니다. 대안을 제공할 수 있다면 어떤 ‘창의적인’ 방법이라도 가능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각 상점이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고객들에게 알려야 하고, 직원들도 그러한 서비스를 반드시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독일에서 오래된 건물의 시설주들은 장애인 접근성을 갖추어야 할 의무가 없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건물의 규모와 상관없이 동일한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 점에서는 우리나라보다 선진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일본의 법제는 우리나라와 비슷해 보이지만, 작은 건물에 대해서 최소한 ‘노력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는 점이 특징입니다. 법에는 없지만 조례나 가이드라인에서 작은 시설에 의무를 요구하는 등 장애인 접근성을 신경 쓰고 있는 점이 눈에 띄기도 합니다.

오래된 건물의 시설주는 건물을 개조하는 데 돈이 많이 들지도 모르고, 소규모 시설의 시설주는 큰 시설의 시설주보다는 재정 부담을 많이 느낄 것입니다. 외국이라고 사정이 다르지는 않겠지만, 장애인이 최대한 비장애인과 같은 서비스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원칙에 모두가 동의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나라의 장애인구는 250만 명 정도로, 전체 인구의 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동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는 지체장애인구가 129만 명, 시각장애인구가 25만 명, 청각장애인구가 25만 명입니다. 100명 중 3명은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기 불편하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바꾸면 좋을까?

외국의 사례를 참고하여, 다음과 같이 법을 바꾸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먼저 장애인등편의법에서 소규모 시설에 관해 일률적으로 의무를 면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시행령에서 바닥면적 제한을 삭제해서 규모와 상관없이 모든 공중이용시설에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부담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때 시설주들의 재정상황과 시설의 현황을 고려해 소규모 공중이용시설에 관한 별도의 편의시설 종류 및 설치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예를 들어 소규모 시설는 편의시설 중 주출입구 접근로, 주출입구 높이 차이 제거, 출입구 부분만 의무로 두고, 복도나 계단 또는 승강기 등은 권장사항으로 둘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법에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은 노래연습장, 당구장, DVD 감상실, 기타 이와 유사한 시설도 설치의무 대상 시설물로 포함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장애인차별금지법을 개정해 시설물의 접근・이용의 차별금지 적용을 받는 시설물을 공중이용시설 전부로 하되 법 시행일(2009. 4. 11.) 이전에 설치된 시설물은 ‘비교적 쉽게 정당한 편의 내용 및 설치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해 준수하도록 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설령 편의시설을 설치하기 곤란한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도 대안적 조치를 강구할 의무를 부과해야 합니다. 현실에서는 상가 내에서 업종을 변경하거나 가게 주인만 바뀌는 경우에는 실내건축만 바꾸는 경우(리모델링)가 많은데, 실내건축 시에도 시설주에게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부과하되 일률적으로 부과하면 과도한 부담이 될 수 있으므로 비교적 쉽게 편의시설 설치 세부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 경우에 한정해 의무를 부과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법을 바꾸면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시설주에게 편의시설 설치나 개선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할 수 있도록 법에 근거를 두고, 실제로 편의시설 설치 및 정비를 위한 보조금을 지급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1층이 있는 삶’을 위해

예전 대통령 선거에서 어떤 정치인이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슬로건을 제시해 많은 직장들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도 들어갈 수 있는 카페를 찾기 위해서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1층이 있는 삶”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위에서 제시한 대로 법을 개정하면 최소한 1층이 있는 삶을 제도적으로 보장할 수 있습니다. 경산시 서점과 같은 분쟁도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법 개정 자체도 쉽지 않고, 개정되더라도 이것이 정착되는 과정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실태조사 과정에서 시설주 20명을 심층 면접한 결과, 장애인 고객에 대한 편의시설 설치나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였고 소수의 장애인을 위해 비용을 쓸 수는 없다는 인식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인식개선’입니다. 우리 사회가 지체장애인도 공중이용시설을 함께 사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면, 시설주들이 그들도 고객이라는 인식을 갖는다면, 시설주들이 편의시설 설치를 시혜적인 조치가 아니라 자신들의 의무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시설주들을 대상으로 장애인 인식개선, 편의시설 설치에 관한 교육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건물을 짓기 전부터 장애인의 시설 접근권을 생각한다면 1층 출입구에 불필요한 턱이나 계단을 만들지 않을 것이고 휠체어 동선까지 생각한 디자인을 처음부터 적용해 건축 후에 편의시설 설치를 하기 위해 불필요한 비용을 들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부는 장기적으로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기반으로 한 국가종합계획을 수립해 일관된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 우리의 생활에서 원칙이 된다면 ‘1층이 있는 삶’은 저절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글은 사단법인 두루가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상황실태조사 연구용역으로 수행한 “일정기준 미만의 공중이용시설에 대한 장애인 접근성 실태조사”의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1) https://news.starbucks.com/views/Starbucks-Commitment-to-Access-and-Disability-Inclusion
2) 2011. 9. 15. 에이블뉴스 기사, “스타벅스, ‘장애인 편의시설 개선’ 약속”
3) 2017. 4. 3. 함께걸음 기사 “당신의 경사로는 합법입니까?”http://www.cowalk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450
4) 제4조(접근권) 장애인등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장애인등이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과 설비를 동등하게 이용하고,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5) 제18조(시설물 접근·이용의 차별금지) ①시설물의 소유·관리자는 장애인이 당해 시설물을 접근·이용하거나 비상시 대피함에 있어서 장애인을 제한·배제·분리·거부하여서는 아니 된다.
6) 제9조(접근성) 17. 위원회는 나아가 건축물의 접근성에 대한 기준이 건축물의 크기와 용적 또는 건축연도에 의하여 최소한으로 제한되어 있는 점에 대하여 우려한다. 18. 위원회는 한국 정부가 모든 공공시설과 작업장에서, 크기나 용적 또는 건축연도와 관계없이 협약 제9조와 접근성에 관한 일반논평 제2조에 따라 접근성의 기준을 적용할 것을 권유한다.
7) 2014년 통계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소매점 중 수퍼마켓(음・식료품 및 담배소매업)의 경우 총 106,013개소 중 103,957개소의 바닥 면적 합계가 300m2 미만이고, 음식점의 경우 총 456,959개소(일반음식점 343,414개소 및 기타음식점 113,545개소) 중 441,234개소(일반음식점 328,873개소 및 기타음식점 112,361개소)의 바닥 면적 합계가 300m2 미만이었습니다. 이・미용실의 경우 전국 108,523개소 중 107,665개소의 바닥 면적 합계가 300m2 미만으로 법에서 정한 기준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8) 2016년 6월경 객실예약을 위해 전화로 문의한 바, 장애인 전용객실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작성자글. 최초록, 이주언/사단법인 두루 변호사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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