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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근절되지 않는 격리수용

[함께걸음 창간 6주년 특집2/다시 인권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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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경남에 있는 한 시설에서는 강제노역과 영양실조로 장애우들이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직접 그 시설을 방문해 과연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알아보았다.

<잊혀진   사건>

 지난 몇 년 장애우가 수용돼 있는 시설을 생각하면 관심은 저 멀리 남쪽 지방에 머물곤 했다. 아마 89년이었을 것이다. 신문 지상에는 머리를 빡빡 깎인 원생들 서너 명이 창문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는 사진이 실려 있고 "영양실조와 강제 노역으로 원생 여섯명 사망"이란 활자를 크게 뽑았었다.

 사건의 내용인즉 경찰 출신인 원장이 경남 산골에다 장애우 시설을 지으면서 시설건립에 정신지체 장애우들을 동원해 벽돌을 나르게 하고, 급식을 제대로 주지 않아 그중 원생 여섯명이 강제 노역과 영양실조로 사망했다는 내용이었다.

 악명 높았던 부산 "형제복지원"사건이 채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던 때라 이 사건 역시 당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지만 얼마 안가 곧 잊혀졌다. 사후 처리결과도 마찬가지로 오리무중이었다.

 그런데 왜 내게만은 이 사건이 잊혀지지 않고 끈질기게 남아 있었던 것일까?
 그렇게 된 것은 그 사건이 일어나기 얼마 전 취재차 방문했던 거울의 한 정신지체 시설에서 받았던 인상이 그 사건과 겹쳐져 내내 맴돌았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실제로 자물쇠가 채워져 있는 소위 "감금방"에서 장애우가 신음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뿐만 아니라 영양실조로 누렇게 얼굴이 뜬 원생들이 먹을 것을 달라고 손을 내미는 모습도 목격했고 심한 악취와 형편없었던 급식 장면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한 마디로 사람대접을 못 밭는 장애우들, 그 인권말살의 현장에 대한 기억에 마침 경남 사건이 겹치자 가보지는 않았지만 신문기사만 보고도 왜 장애우들이 사망했고, 장애우들을 사망으로 몰아간 환경이 어떠한지를 단박에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부실한 급식>

 그렇다면 그 후 사건이 일어난 지 4년이 지난 지금 그   원은 어떻게 변했을까?
 시간을 내어 그   원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그   원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은, 사전에 알아본 바에 의하면 그 원의 폐쇄성이 극도로 강해 취재에 응해줄 리가 없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편법으로 이 방문을 강행했기에 원의 익명성을 보호해주기 위함이다.

 또 하나 사실을 고백하자면 원에 머문 시간은 고작 1시간 남짓이었다는 점이다. 앞에서 말한 보이지 않는 제약 때문에 필연적으로 짧은 방문에 그치고 말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진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아무튼 갔다. 동행으로 그   원을 정기적으로 찾아 봉사활동을 했던 한 장애우를 만났기에 가능한, 우여곡절이 많았던 방문이었지만 1시간을 방문하기 위해 무려 8시간을 차를 타고 찾아갔다.

   원은 부산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1시간을 더 가서, 거기서 다시 차를 타고 30분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인적 없는 산골이라 설마 거기에 재활원이 있을 줄은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대로변에서는 보이지도 않는 후미진 구석에 아트막한 산자락을 끼고 자리 잡고 있었다. 물론 후미진 산골이다 보니 눈을 씻고 찾아봐도 주변에 인가는 두세 채 밖에 찾아볼 수 없었다.

 먼저 눈에 띈 것은 대형 건물이다. 흡사 병원처럼 흰 건물과 파란 건물 여러 동이 버티고 서 있었다. 그중 한 건물, 주로 뇌성마비 장애우들이 수용돼 있는 방들을 찾았다.

 마침 저녁식사 시간이었는지 급식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보육사는 보이지 않고 "보조"라고 불리는 정신지체 장애우들이 분주히 오가며 식사를 나르고 있었다. 메뉴는 밥과 당면 한 가지, 말하자면 당연 비빔밥인 셈인데 다른 반찬은 전혀 없었다.

 급식이 부실한 게 일상화된 탓인지 한 뇌성마비 장애우가 사물함에서 마가린과 간장을 꺼내 밥에다 넣고 비벼 먹는다. 그 뇌성마비 장애우에 따르면 간장과 마가린을 사다 놓고 먹는다고 하는데 심한 중증 뇌성마비 장애우들은 그것도 없어 그냥 주는 밥만 먹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잔인함 그 지체인 격리 수용>

 내친김에 김아무개라는 뇌성마비 장애우와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3년째 원에 있다는 그 장애우는 부모가 자신을 원에 맡겨놓고 찾아오지는 않은 채 자신의 생활비로 한 달에 15만원을 원에 준다고 밝혔다. 같은 방에 수용돼 있는 여러명의 장애우들도 자신과 마찬가지 처지라고 말한 그 장애우는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자   원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토로했다.

 우선   원의 문제는 보육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 방에 10여명이 넘는 중증 뇌성마비 장애우들이 수용돼 있는 뇌성마비 수용동의 경우 방이 6개인데 보육사는 고작 2명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보조라고 불리는 정신지체 장애우가 각 방에 1명씩 배정돼 시중을 들고 있는데 식사와 빨래 하다못해 용변처리까지 보조들이 맡고 있었다. 그것도 뇌성마비 장애우들 방에만 보육사들이 있지 정신지체 장애우들이 수용돼 있는 아래층 방들에는 움직일 수 있다고 그나마 보육사도 배치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장애우말 이었다.

 두 번째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어 하루종일 그냥 무료하게 보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그 장애우는 고통으로 호소했다. 대개 유사한 시설에 있기 마련인 특수학교도 없어 말 그대로 하루종일 천정만 바라보고 누워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궁금한 점인 감금방의 존재를 물어보자 그 장애우는 "원생들이 말썽을 부리면 가두는 독방이 있다"고 감금방이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 장애우와 이야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아래층에 떨어져 있는 정신지체 장애우 수용동을 찾아갔다. 흡사 감옥처럼 쇠창살이 둘러쳐진 방들에 장애우들이 없어 의아해 했는데 정작 장애우들은 강당처럼 생긴 복도에 모여 웅성거리며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었다. 그런데 몇몇 장애우는 한눈에 보기에도 정신치제 장애우가 아니었다. 그 중 한 장애우를 보고 동행한 봉사자가 아는 체를 했다. "왜 여기에 와 있어요?" "응. 위에 공사한다고 그래서 내려와 있어."

 정신지체 수용동에도 자물쇠가 채워진 감금방이 있었다. 쇠창살 너머로 들여다보니 그 안에서 한 장애우가 넋 나간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하나같이 남루한 옷차림과 영양실조로 누렇게 부황이 든 얼굴들, 수용돼 있는 정신지체 장애우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이었다.
 더 이상 원에서 머뭇거리면 직원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 서둘러 원을 나왔다. 먼 길을 걸어 나오면서 동행한 봉사자에게서 들은   원에 대한 보충 설명은 이러했다.

 예전 사건이 일어났을 때 원장이었던 아무개씨는 지금 원 이사장으로 있고 대신 부인이 원장으로 앉아 있으며 아들이 총무로 있는 등 전체 20여명 직원 중 친인척이 10여명에 달한다는 것이었다. 노역도 근절되지 않아 91년 다시 원 건물을 신축 할 때 원생들이 직접 벽돌을 날랐다고 그 봉사자는 일러주었다.

 원생들 3백여명에 비해 시설이 너무 커 그 까닭을 물어보자 "모르긴 몰라도 경남 부산지역에 있는 장애우 시설에서 상당수 장애우들이 이리로 이원 될 예정으로 있기 때문에 건물을 신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그 봉사자는 말했다.

 그 봉사자 말대로   원은 1천여명은 족히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비어 있는 방들이 원생들이 수용돼 있는 방보다 더 많았는데 이는 봉사자 말이 아니더라도 조만간 많은 수의 장애우들이 그곳으로 들어오게 되리라는 것을 뜻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여전히 정부의 시설정책은 격리 수용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인적 드문 산골에 장애우 시설을 짓도록 인가하고 그 시설에   원ㅇ의 경우에서 보듯 많은 수의 장애우들을 철저하게 외부와 격리시켜 수용하는 정책, 이보다 더한 잔인함이 어디 있는가.

   원에서 확인한 실상은 바로 이 잔인함 그 자체였다.

작성자이태곤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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