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걸음 창간 6주년 특집3/다시 인권을 생각하다]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나락, 중증재가장애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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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나락, 중증재가장애인들
김정희 (부름의 전화 대장)
<10년, 그리고 장애인의 현실>
93년으로 유엔이 정한 장애인 10년이 끝이 나고 "아·태 장애인 10년"이 선포되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강산이 변한 다는 그 10년에 장애인 문제는 과연 얼마나 변화되었을까?
세금 감면, 전화요금 감면, 지하철 무임승차, 철도요금 50%할인, 생계비 지원, 특히 장애인아파트 분양과 영구임대 아파트 건립은 장애인 생활을 크게 향상시켜 주었다.
시민의시도 크게 향상되고 있다. 7년 전 "부름의 전화" 자원활동자가 휠체어 사용 장애인과 함께 수많은 계단에서 구슬땀을 흘릴 때도 시민들은 마치 외계인이라도 만난 듯 돌아서서 가버렸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 그 지하철 계단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자진하여 휠체어를 밀어주려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이 모든 일들이 모두 장애인 10년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니 이런 변화가 장애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으며 어쩌면 전시행정이라는 비난을 피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나마 이런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장애인들은 전체 장애인 중에 극히 일부의 장애인에 국한되어 있고 대다수의 장애인들은 인간 이하의 삶이라고 할 만큼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으며 시민의식 변화 역시 행정적인 제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언론과 자원활동자들의 끝없는 땀방울의 결과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물론 장애인 문제 해결이 행정적인 제도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행정적인 문제와 동시에 시민의식 변화에도 노력이 있었어야 할 줄 안다.
부름의 전화에는 날이면 날마다 연중무휴로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부르는 소리에 가지가지 사연이 담겨 있다. 그래서 울고 웃는 사연들은 해가 갈수록 쌓여만 가고 그 많은 사연들은 모두가 눈물이고 감동이고 좌절이지만 그 중에서 몇 개만 소개하려 한다.
<안타까운 현실 셋>
32살의 언어장애가 심한 뇌성마비 청년이 전화를 걸어왔다. 가족 한 사람 없이 혼자 살고 있는데 "누구인가 밥을 해주지 않으면 굶을 수밖에 없으니 제발 한 달에 한 번만이라도 밥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한 달에 한 번 밥을 해주면 하루나 이틀은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남은 날들은 어떻게 하겠느냐"고 했더니 아무런 대책이 없다며 쓸쓸히 전화를 끊어버렸다. 아직은 만나보지 못했으니 그 전후 사정을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엄동설한에 어찌 살아 있을까? 두려운 마음에 가슴이 조인다.
생각하면 할수록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 또 하나 있다. 옥수동 가파른 언덕에 박아무개라는 뇌성마비 장애인이 살고 있다. 그가 살고 있는 집은 집이라고 하기 보다는 헛간이라는 표현이 좋을 듯싶다. 언어장애가 너무 심해 그 청년과 전화통화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몇 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어머니가 보살펴주었지만 작은 집 하나 남겨두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정신지체인 누나와 두 사람이 살고 있다. 누나는 심한 정신지체장애인으로 날만 밝으면 어디로인가 돌아다니다 밤 늦게 돌아온다고 한다. 옆집 사람들이 가끔씩 밥을 해주어 굶어죽는 것은 면하고 있으나 그 청년의 소망은 오늘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강서구 신월동에 남편에게 매 맞는 뇌성마비 장애인이 있다. 그 뇌성마비 장애인은 남편에게 매를 맞고는 꺼져갈 듯한 음성으로 전화를 걸어온다. 그녀는 32살에 동료들의 부러움을 사는 비장애인 남자와 살림을 시작해 6년을 살며 남매를 낳았다. 아이들이 너무도 예쁘게 생겨서 보는 사람마다 칭찬이 대단하지만 그 부인은 어떻게 하면 남자와 헤어질까를 궁리하고 있다.
친정 동생이 마련해 준 9백만원으로 전세방을 얻어 살림을 시작했지만 지난 6년간 날이면 날마다 새벽 2∼3시가 되어야 집으로 들어와서는 닥치는 대로 살림을 부수고 아이들을 괴롭히고 친정집에서 돈을 가져오지 않는 다고 방문마저 걸어 잠그고 매질을 하니 휠체어 장애인이 무슨 수로 그 모진 매를 피할 수 있겠는가.
승용차까지 몰고 다니는 남편은 "차라리 이혼을 하고 전세돈을 빼 그 돈으로 사업을 해서 잘 살게 해주겠다."고 마음을 달래지만 전세방마저 없애버리면 아이들과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길고 긴 사연을 적어 보내온 편지 한 통을 받았다. 그 편지를 읽으며 너무도 기구한 운명에 몇 번이고 눈시울을 적셔야만 했다. 거여동에 사는 최아무개라는 하반신 마비 장애인의 편지였다.
육신이 멀쩡해도 고아가 살아가기에는 힘든 세상인데 휠체어를 사용하는 하반신마비 그것도 고아의 삶이 어떠했을까를 상상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처럼 하반신마비 소아마비 장애인을 만나 사랑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며 열심히 살며 "이것이 행복인가"라는 느낌마저 갖게 될 정도로 즐거운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밤을 낮으로 알고 잠자는 시간까지 아끼며 악세사리 납땜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이 가물가물해지더니 의식을 잃었는데 며칠 후 깨어보니 병원이었다고 한다. 신장을 이식하지 않으면 일주일에 두 번씩 혈액 투석을 해야하는데 만약 이렇게 하지 않으면 더 이상 살지 못한다고 했다.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노력해 보았으나 그 바람에 전세돈마저 날려 버렸다. 그렇게 생활이 어렵지만 공장을 운영한다고 영세민 혜택마저 받을 수 없다고 한다. 그 공장이라는 것이 마치 동물의 우리같이 허술하고 습기 차고 어두운 악세사리 조립 자립장으로 중증장애인 3명과 같이 작업을 하고 있는 곳이었다. 어떤 돈 많은 사람이 운영하는 공장의 화장실보다 못한 보잘 것 없는 그런 곳인데도 말이다.
이들 부부의 당면문제는 어떻게 하면 한 달에 40만원이 넘는 인공투석을 살 수 있는가였고 누구인가 신장을 기증해 줄 수 있는 기적을 바라기에는 너무 염치없다고 머리를 가로저을 줄 아는 사람들이다.
<장애인에게 기회를 주는…>
얼마 전에 어떤 구청 사회복지과에서 장애인을 위하여 민원업무를 전화를 신청하면 처리된 민원을 직접 배달해 준다고 발표하는 것을 보았다. 세상 많이 변했구나! 흐뭇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과연 중증재가장애인에게 그 방법만이 최선이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중증재가장애인이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마저 빼앗는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신속하고 편리한 것도 좋은 방법이겠지만 진정으로 장애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장애인 스스로가 아무 때고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자신의 의사에 따라 갈 수 있는 사회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애인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했던 그 사회복지과 사무실이 3층 계단 위에 버티고 있는 현실을 과연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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