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법정에 선 생활보호대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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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 선 생활보호대상자 ‘삶의 질’
- 6만 5천원과 ‘인간답게 살 권리’-
편집부
빈민장애우가 많이 포진해 있는 생활보호대상자의 열약한 삶의 질이 마침내 법정에 서게 됐다. 이는 한국 사회복지사에 한 획을 긋는 중대한 사건으로 판결 여하에 따라 어두웠던 빈민장애우들의 삶에 햇살이 비칠 전망이다. 최근 생활보호대상자 급여수준에 관해 헌법소원이 제기된 것을 계기로 논란이 되고 있는 생활보호대상자의 인간답게 살 권리와 빈민장애우들의 내일을 가늠해 본다.
<외줄을 타는 심정으로>
성남시 분당 12평짜리 영구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소아마비 장애우 김대수(36)씨는 요즘 거의 매일을 기적처럼 살고 있다. 역시 소아마비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내 문정희(34)씨와 초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아들 한솔이, 그리고 이제 7살이 된 딸 정임이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김씨가 사는 게 기적이라고 한숨짓는 것은 생활을 지탱할 수입이 없기 때문이다.
양하지 소아마비 장애로 휠체어에 의지해서 살 수밖에 없는 김씨는 얼마전까지 아니 문씨가 부업지리로 얻어 온 구슬꿰기를 부부가 달라붙어 종일해야 하루 5천원의 수입을 벌었다. 그런데 아내가 허리디스크로 몸져 눕게 되자 이 수입이 끊겼고, 이동수단이 없는 김씨로서는 밖에 나가 돈을 벌 길이 없었기 때문에 별수 없이 아내와 함께 누워 천정만 쳐다보고 있다.
김씨는 지금까지 생활을 지탱해온 것은 이 하루 5천여원의 수입이 절대적이었다. 거택보호자로 책정돼 한 달에 6만 5천원을 동사무소로부터 받고 있지만 이 6만 5천원으로는 10여만원에 이르는 아파트 임대료와 공과금 그리고 관리비를 내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아무리 부식비를 절약한다지만 김치를 안 먹을 수는 없고, 최소한의 부식비와 한솔이의 학용품비를 지출하고 나면 수중에 남는 것은 고작 2만여원, 이 2만원도 잔병치레가 심한 딸 문정이의 약값으로 들어갈 때가 많아 김씨는 그야말로 하루하루를 공중에 걸린 외줄을 걷는 심정으로 위태위태하게 살아왔다.
그나마 수입이 끊어진 지금, 이제 김씨에게 남은 것은 절망뿐이다. 근처 교회에서 도와줘 근근이 끼니는 이어가고 있지만 아내 약 값이며 임대료며 아들 학용품비며… 줄줄이 다가오고 있는 돈 구멍(?)을 어떻게 메워야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작년 보사부 통계에 따르면 시설수용보호자를 제외하고도 전국적으로 14만 1천 6백여 명의 장애우들이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돼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전체 생활보호 대상자의 15%나 된다.
이중 상당수가 김씨처럼 생활보호대상자 중에서도 1급인 거택보호자로 책정돼 1인당 정부미 10킬로그램과 매월 6만 5천원의 생활보호급여를 받고 있다. 문제는 김씨의 예에서 보듯 달리 생활수단이 없는 빈민장애우들이 한 달 6만 5천원의 보호급여로는 ‘삶의 질’을 따지기 이전에 도저히 생활 자체를 이어나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는 그동안 ‘예산 부족’등의 이유를 내세워 빈민장애우들의 고통스러운 실상을 철저하게 외면해 왔다. 그러나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에 생활보호대상자인 노부부가 헌법이 보장되는 ‘인간답게 살 권리’를 위해 생활보호급여를 인상해 달라는 헌법소원심판청구를 냄으로써 사회복지정책의 국가 책임과 그 내용의 한계에 대한 논쟁은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게 됐다.
<팔십 노부부의 권리투쟁>
지난 2월 22일 이남진 변호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이사)는 거택보호자 심창섭(89), 이금순(83)씨 부부의 법정대리인 자격으로 헌법재판소에 “현행 생활보호사업지침상의 생활보호대상자 생계보호 기준은 헌법에 보장된 행복을 추구할 권리 및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침해한 것이므로 위헌”이라는 내용의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보건사회부 장관을 피청구인으로 한 이 헌법소원에서 이 변호사는 “인간다운 생활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의미하며,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는 국가에 대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만한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국가에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고 지적하고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 역시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보호를 요청할 수 있다.”고 생활보호대상자의 법적 권리를 밝혔다.
또한 “이와 같은 헌법정신에 따라 생활보호법은 보호대상자에 대한 보호수준을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현재 가구당 생활보호 급여비로 지급되는 6만 5천원이 헌법에서 규정되고 있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생활보호법에서 보호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생활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급여 수준인지 검토되어야 할 것”이라고 현행 생활보호대상자 급여 수준이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다운 삶의 보장을 저해하고 있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이변호사는 따라서 “생활보호법상의 생활보호가 국가의 경제적 능력 여하에 따라 그 급여 유무 및 수준이 결정되는 반사적 이익이 아니라 국가의 의무로서 그 권리자인 국민에게 제공되는 것이며 국가의 의무 불이행이 있을 경우 권리자는 적극적으로 권리 주장을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법적 권리이기 때문에 권리로서 생활보호대상자의 ‘삶의 질’을 추구하기 위해 헌법소원을 제출한 것”이라고 밝혔다.
생활보호급여 수준의 위헌여부에 대한 헌법소원이 제기되자 헌법재판소 제 1지정판부(재판장 조규광)는 3월 7일 이 사건에 ‘1994년 생계보호기준 위헌확인’이라는 이름을 붙인 뒤 재판부에 심판 회부를 결정해 사상 처음 국가의 사회복지정책 내용에 대한 판단이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한편 생활보호대상자 급여수준에 대해 위헌 여부를 가리는 헌법소원이 제기되자 피청구인인 보건사회부는 4월 1일 헌법재판소에 낸 ‘헌법소원에 대한 답변서’를 통해 “생활보호법상 생계보호기준은 행정조직의 업무처리에 대한 내부적인 지침에 불과하기 때문에 헌법수원의 대상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생계보호기준에 의한 보호급여처분으로 기본권이 침해되지 않았으므로 1994년 생계보호기준 위헌확인청구는 기각되어야 한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참으로 인간다운 생활을 위하여>
보사부는 답변서를 통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물질적인 최저생활의 차원을 넘어서 문화적인 최저생활까지 보장하고 있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밝히고 “보호대상자에 대한 보호의 수준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활보호법 제 5조 1항의 규정은 바람직한 보호수준을 목표로서 제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구체적 권리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생활수단을 일일이 국가가 급여해 주고 국민의 일상생활 전부가 국가의 사회보장 제도에 의해서 규율되는 복지국가를 전제로 하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충분한 재정 및 예산상의 여건이 확보된 뒤에만 가능한데 우리나라는 이러한 체제 및 여건이 갖추어져 잇지 않기 때문에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는 ’구체적 권리‘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보사부는 따라서 “1994년 생계보호기준에 의한 보호급여치분이 인간다운 생활을 침해하는지의 여부는 보호급여처분 수준과 최저생계비와 단순비교를 통해 판단할 것이 아니라 국가의 재정능력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국가는 그동안 어려운 재정여건 하에서도 생계보호수준을 지속적으로 향상시켜 왔고 생계보호 외에도 직업훈련 및 취업알선, 영구임대아파트 우선입주권부여, 생업자금융자, 수도료, 전화료, TV수신료 등 각종 공과금의 감면 등 생활보호대상자들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므로 청구인들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침해하였다고 할 수 없다.”고 헌법소원 청구의 기각을 요구했다.
그러나 청구인인 심창섭, 이금순씨 부부의 한 달 가계부를 살펴보면 과연 정부가 주장하듯 생활보호대상자들이 인간다운 생활을 하고 있느냐는 보다 분명해진다.
심씨 부부의 월수입은 생계보조사당 6만 5천원과 노령수당 3만원을 합해 현금 9만 5천원 그리고 배급쌀 10킬로그램이 전부다. 심씨 부부는 이 돈으로 부식과 가스값 4만 6천원, 연탄값 3만원 그리고 약값 1만원 전기, 수도세 9천원을 내고 나면 단 한 푼도 남지 않는 그야말로 ‘극한상황’에 처해있다.
이번 헌법소원을 주도한 한국사회정책학회(회장 손준규 교수·동국대 사회학)는 지난해 겨울 연세대에서 열린 학술세미나를 통해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기본 생계비를 93년 기준 1인당 월 10만 5천원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양’에서 ‘질’ 생각할 때>
생활보호급여 수준에 대한 헌법소원이 제기되자 장애우, 노인 등 당사자들은 물론 학계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갖고 사태의 변화를 지켜보고 있다.
헌법소원문을 작성한 이남진 변호사는 “우리 사법부의 풍토를 생각할 때 법리적인 해석으로만 따진다면 그리 낙관적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고 밝히고 “판결이 나기까지 앞으로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손준규 교수(동국대 사회학)는 이번 헌법소원이 갖는 의의에 대해 “단순히 법적인 판단만을 받아내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사회 모든 사라들이 관심을 갖고 동참할 수 있는 사회운동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히고 장애우, 여성, 어린이 등 관련 단체의 관심과 참여를 요구했다.
일본에서는 이미 1957년 생활보호대상자였던 아사히 쯔도무(朝日 茂)에 의해 당시 생활부조액 6백엔이 일본헌법 25조의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에 부족한 위법이라는 행정소송이 있었다.
1957년 동경지방법원과 동경고등법원을 거쳐 67년 5월 최고법원에 이르기까지 약 10여 년간 지속된 이 소송에서 동경지방법원은 1960년 제 1심 판결을 통해 ‘일본헌법 25조와 생활보호법 3조는 단순히 국가의 사실상의 보호행위에 의한 반사적 이익을 받는데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국가에 대해 보호의 실시를 청구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판시 비용인상을 주장한 아사히씨측에 승소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1963년 동경고등법원에서 열린 제 2심 판결은 “생활보호비용은 국민의 세금에 의한 것이므로 국가의 재정, 국민소득, 생활수준, 국민태도를 무시할 수 없다.”고 전제하고 “생활보호법이 보장하는 생활수준이 높은 것으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해도 결정적으로 부족하다고 인정하기가 어렵다.”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이에 불복 최고재판소에 상고한 아시히씨는 재판이 진행되던 1964년 11월 4일 지병인 폐결핵으로 51세 사망했으며 소송당사자의 죽음으로 재판 역시 끝나고 말았다.
전후 10년 이상을 끈 ‘아사히 소송’은 그 재판이 계속되면서 일본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으며 빈곤문제에 대한 새로운 사회인식을 가져와 노동자, 환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 대거 참여하는 사회운동으로 발전해 이후 일본의 사회복지정책의 방향을 ‘양’에서 ‘질’로 바꾸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40여 년 전 일본에서와 마찬가지로 새롭게 시작된 사회복지정책에 대한 국가책임과 내용 그리고 그 한계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주장하는 노부부의 요구는 어떤 ‘판결’을 받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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