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1]장애인 편의시설 확보를 위하여
본문
장애인 편의시설 확보를 위하여
<1. 서론>
모든 건물에는 그 소유주와 사용자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건물 소유주와 사용자는 항상 같은 사람은 아니다(아마도 유일한 예외가 주택, 그것도 세를 놓지 않고 집 주인이 사는 주택의 경우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용자의 필요나 만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소유주에게만 편리하고, 금전적 이윤을 남기고, 만족을 주게끔 지어진 건물은 비윤리적이며 비사회적이다. 다행히도 이러한 비윤리적이고, 비사회적인 건물은 우리 주위에 그리 많지 않으며(예외적으로 교도소 건물이 있기는 하다), 건축가들이 설계를 할 때에는 일차적으로 사용자의 편의와 만족을 최대한 고려하는 것이 상례이다.
그렇다면 건물의 사용자란 과연 누구일까? 여의도의 63빌딩의 예를 들어 살펴보자. 이 빌딩을 "사용"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빌딩 내에 있는 많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명백한 사용자이지만, 그 외 식당가에서 일하는 주방장, 기념품상점 점원, 주차장 관리인들도 이 63빌딩의 사용자들임에 틀림없다. 또한 이 빌딩에서 일 하는 사람을 만나러 오는 방문객도 사용자임에 틀림없고 지방에서 버스를 세내어 이 빌딩구경을 하러 오는 사람들도 사용자이다. 결국 어느 건물의 사용자란 그 건물을 규칙적으로 장기적으로 쓰던지 혹은 잠시만 쓰던지에 상관없이 그 건물을 "사용"할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도 정의 내려져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어느 건물의 사용자란 그 건물이 속해있는 사회의 일반 구성원인 "불특정 다수"이며, 이 건물이 그 사회의 불특정 다수를 아무런 문제없이 포용할 수 있어야만 비사회적이란 비판을 면하게 되는 것이다.
건물의 설계에 있어서 고려되어야 하는 불특정 다수 중에서 흔히 무시되고 넘어가는 사용자 집단이 있다. 장애인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 장애인들이 건물이 포용해야 하는 불특정 다수의 사용자에서 소외된 "특정의 소수"로 남아있는 한 그 건물은 그 사명을 다한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서울의 지하철 역사(驛舍)를 보자. 지하철 역사는 도시의 보행자를 주 대상으로 하는 공공건물이므로, 63빌딩과는 달리 불특정 다수의 포용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건물이다. 그럼에도 계단을 마음대로 오르내리지 못하는 사람들-휠체어 사용자, 노약자 등-이 철저하게 소외당하는 곳이 바로 이 지하철 역사이다. 서너 층에 이르는 계단만이 있을 뿐, 엘리베이터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건축환경에는 이러한 물리적 장벽이 너무도 많이 존재하고 있고 또 새로이 지어지는 건물에도 장애인들이 마주쳐야 하는 장벽이 여전히 남아있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부끄러운 현실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아마도 가장 큰 원인은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못한 까닭이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 사회는 금세기 후반에 걸쳐 놀랄 만큼 빠른 속도의 산업화를 이룩해 왔고, 그 과정에서 경제성, 효율성 위주의 자본주의 가치관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즉 무슨 일이든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한의 이득을 얻어내는 것이 우리 사회의 규범이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혹자는 전체 인구의 작은 비율을 차지하는 장애인들을 위해 지하철 역사마다 엘리베이터를 설치한다는 것은 지나친 낭비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생각 자체가 사회의 불평등을 조장하는 자본주의의 역기능이라는 점을 접어두더라도, 이런 식의 주장이 자본주의의 논리 안에서조차도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것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산재해 있는 건축장벽으로 인해 불편을 겪고 있고 또 이로 인한 사회적, 경제적 손실-지하철로 충분히 갈 수 있는 곳을 할 수 없이 택시를 타서 불필요한 경비를 들이거나, 저마다 승용차를 이용하여 교통체증을 유발하는 등의-이 얼마나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2. 건축편의시설의 확보전략>
오늘 우리가 목표로 하고 있는 장애인을 위한 건축편의시설의 확보에는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의식 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위에서 잠시 살펴보았듯이 의식의 개혁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현 상태로는 편의시설 확보를 위한 사회 각 집단(건축주, 설계자, 시공자 등)의 자발적인 참여는 기대할 수 없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우리가 시작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는 것일까?
최선의 방법은 될 수 없지만, 의식의 개혁이나 자발적인 참여가 안 되는 곳에서는 법을 내세워 법의 강제성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건축관련 법규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에 대한 조항이 엉성하나마 여기저기 들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현행 법규에는 법규적용의 기술적 어려움과 법규 자체의 미비 등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많다. 그러나 아쉬운 대로 현행 법규의 조항만이라도 제대로 지켜지게끔 하여 현행법이 보장하는 최소한의 장애인 편의시설이라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만약 우리가 어떤 공장의 화장실에 장애인용 대변기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사살을 건축주에게 알리고 그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이때 관련 법 조항, 특히 벌칙규정을 같이 알려주면 건축주의 대응이 더욱 빨라질 것이다). 그래도 건축주가 장애인용 대변기를 설치하지 않는다면 다음 단계로서 우리는 지방자치단체장에게 그 사실을 고발하여 공권력으로 하여금 이 문제를 강제적으로 해결하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방법에도 문제가 몇 가지 있다. 우선 장애인 편의시설에 관련된 법 조항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고, 체계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아 건축 및 법률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적재적소에 관련 법 조항을 적용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다음으로 어떤 법 조항은 아주 개략적으로 되어 있어 실질적으로는 그 위반사항을 지적 또는 검증할 수가 없다. 위의 화장실 예를 들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건축물의 설비기준 등에 관한 규칙 제15조(지체부자유자용 화장실) 제2호에 "지체부자유자용 대변기 간막이의 규격은 휠체어의 사용에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되어 있는데, 지장이 없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지장이 없으려면 어떻게 되어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세부규정이 없어, 현실적으로 이 조항의 위반여부를 객관적으로 증명할 방도가 없다. 다시 말해서 위의 법 조항은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하므로 이익이 상반되는 집단 사이(즉, 건축주와 장애인)의 갈등해소에 아무런 도움을 줄 수가 없다.
위 두 문제를 감안하여 "건축 편의시설 확보를 위한 건축법규 체크리스트 및 행동지침"이 개발되었다. 건축관련 법규에 흩어져 있는 편의시설 관련조항을 모두 추출해 내어 이들을 체계적으로 재구성하고, 난해한 법률용어와 기술용어를 쉽게 풀어써서, 누구라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체크리스트에 의해 검증된 기존법규 준수여부의 결과에 따라 위반사항의 시정을 위한 행동지침(action plan)도 여기 포함되어 있다. 즉 문제가 되고 있는 시설물이 정확하게 어느 법규를 위반하고 있는지를 명시하며 또 어느 법규에 의거, 어떻게 시정을 해야 하는지를 제시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 초래하게 되는 벌칙에 대해서도 언급하게 된다.
이 체크리스트에 의한 기존 시설물 검증작업이 완료되면 우선 건축주에게 이것을 제시한 후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최후의 수단으로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완성된 체크리스트를 첨부한 고발장을 제출하여 문제되는 시설의 개선을 유도하게 된다.
<3. 결론>
이 글에서 우리는 우리 주위에서 장애인을 위한 건축편의시설이 제대로 확보되지 못하는 이유로 사회전반의 인식부족과 자발적 참여결여를 생각해 보았다. 또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법 집행의 강제성을 적극 활용하는 방안이 제시되었다. 즉 단기적으로 현행법이 보장하는 최소한의 장애인 편의시설이라도 확보하는 방안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실행방법으로 건축편의시설 관련 제 법규의 준수여부를 체계적이며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도구를 개발하여 누구나가 다 쉽게 이것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여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적절한 행동(건축주에게 시정 요청, 관련기관에 고발)을 취할 수 있는 지침을 제공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이 방안은 최선의 전력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을 돌아볼 때 시급히 해결해야 할 장애인 편의시설 결여라는 문제에 가장 효율적으로 대처해 갈 수 있는 차선의 방안으로서의 역할은 해내리라고 본다.
글/최재필(명지대 건축학과 교수)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