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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독자의 글1]일본 후쿠오카 시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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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후쿠오카 시 방문기
                                      이복남 (부산장애인연합회 사무국장)

 일본 후쿠오카시 (민생국 장애복지과)의 초청으로 부산시 장애관련 담당자 4명 (재활계장, 천성아동재활원 총무, 천마재활원 총무, 본인)이 1993년 11월 3일부터 11월 14일까지 후쿠오카시의 장애인복지 실태를 시찰하였다.
 후쿠오카 도착 첫날 동물원과 식물원을 구경하였는데, 턱없는 경사로와 시각장애인을 위한 유도블럭이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었고 곳곳마다 점자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1년에 시각장애인이 몇 명이나 동·식물원 구경을 하겠는가마는 그래도 곳곳마다 유도블럭과 점자 안내판이 설치된 것을 보니 가슴이 뭉클하였다.
 이튿날 후쿠오카 시청에서 장애인복지 현황에 관한 설명회가 있었다. 일본에서 본격적인 장애인복지는 1968년 "1일 진료"로 시작되었으며, 우리 일행을 초대한 것도 1993년부터 시작되는 "아시아 태평양 장애인 10년"의 첫 사업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했다. 1992년 12월 중국의 북경에서 열린 ESCAP 회의에서 장애인의 권리회복에 관한 회원국들의 결의를 모으고 보다 효율적인 행동계획을 만들기 위해 1993년부터 2002년까지를 "아시아 태평양 장애인 10년"으로 결의하였는데 우리는 과연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
 일본의 장애인 의무교육은 1979년부터 시작되었으며 임산부는 임신 5개월부터 진료소에 등록하여 산모의 건강과 장애아 출산을 예방하고 만약 장애아가 출산될 경우 3세부터 18세까지 유아원 양호학교, 특수학급에서 교육을 받고 18세가 넘으면 직업재활원 또는 수용시설에 입소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장애복지과에서 할 일은 18세 이후부터는 직업재활 등 사회교육이라고 하는데 후쿠오카시의 역점사업은 조기예방, 조기발견, 조기치료라고 했다.
 우리는 이번에 통과된 특수교육진흥법이 개정작업 기간동안 의무교육 조항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은 경험이 있던 터라 더욱 관심이 갔다. 부모가 교육에 대한 열의가 있고 장애인이 혼자서 활동 가능한 경증장애일 때만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교육현실이다. 장애아가 출생하면 교육은커녕 양육조차 어려워 내다 버리기까지 하는 우리의 현실은 또 어찌하라.
 "장애인을 교육시키지 않는 것은 이중의 장애를 안겨주는 것이다. 의무교육은 해결되어 지금은 통합교육을 논의 중이다. 집 옆에 학교가 있는데 왜 멀리 있는 특수학교까지 가야하느냐는 부모들의 항의가 많다." 꿈같은 얘기도 들려주었다. 우리에게도 그런 날이 오겠지.

<조기예방, 조기발견, 조기치료>
 후쿠오카시는 인구가 1백 27만명인데 장애인 수첩소지자는 장애인(18세 이상) 3만 5천 47명 장애아동(18세 미만) 1천 8백 5명, 정신지체인이 4천 97명으로 등록장애인은 총 4만 9백 49명 (1993년 3월말 현재)이었다. 이들은 담당하는 후쿠오카시 민생국 장애복지과 직원은 12명이고, 각 구에도 복지사무소가 설치되어 있었다. 모든 장애인은 태어나면서부터 수첩을 교부 받고 소지자는 의료비, 교육비, 시설이용료 등은 무료인데다 각종 연금을 등급에 따라 받고 있었다. 최고 9만엔 까지 연금을 받고 그 대신 보호자가 소득에 따라 의료비, 교육비, 시설이용료를 복지사무소에 납부해야 하는데 최고가 3만엔 이니 1급 장애인인 경우 설사 소득이 잇다 해도 부담금은 연금으로 충당하고도 남았다.
 부산의 경우 등록장애인은 1만 8천 7백 84명 (93년 7월말)이고, 이를 담당하는 직원도 계장을 비롯하여 3명뿐이다. 일본과는 여러 가지로 장애 기준이 다르기는 하지만 우리의 등록율이 이렇게 저조한 것은 홍보부족이기도 하겠지만 등록을 해도 별다른 혜택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의 경우 1급 또는 2급 중복 장애인에게 생계보조 수당이 월4만 5천원(다른 지방은 2만원)이 지급된다. 대상도 재산 1천 3백만원 이하에다 월수입이 13만원 이하인 생활보호대상자로 한정하고 있어 일반 장애인은 별다른 혜택이 없을 뿐 아니라 그 혜택이란 것이 이용하지도 못할 지하철 무료승차 등에 불과하다. 더구나 의무교육은 아니라도 무상교육이라는 교육비도 고등학교의 경우 연 11만 8천원 가량의 육성회비를 부담하고 있는 실정이다.
 후쿠오카시의 장애인복지시책은 신체장애인과 정신지체인으로 나누어 재택 대책과 시설 대책으로 50여 가지가 실시되고 있었다. 일본의 복지시책은 정부 (후생성)에서 여러 가지 복지시책 (복지메뉴라고 함)을 제시하고 지역의 자치단체에서 지역실정에 적함하고 시행가능 한 메뉴를 골라 선택하면 정부에서 50%를 지원하고 자치단체에서 50%를 부담하여 시행하고 있었다.
 우리는 보사부 정책이 전국에 일률적으로 실시되는데 정부에서 시행하라는 시책도 제대로 실시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예로 부산시에서는 가정복지과 직원들의 노력으로 다른 지방은 2만원인 생계보조 수당을 두 배가 넘는 4만 오천원을 지급하고 있지만 광주직할시에서는 장애인이 하기로 법적으로 통과된 "공공시설의 매점, 자동판매기 장애인 우선분양권"이 아직도 결정을 못해 또 해를 넘기고 있다.
 다음날부터 복지시설과 특수학교 등을 시찰하였다. 후쿠오카시에서는 반관반민 사업으로 사회복지사업단에서 22개의 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제일 관심이 가는 곳은 스포츠센터였다. 장애인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을 완벽하게 구비하였고 수영장을 비롯하여 배구, 농구 등을 하루 수 있는 구기장과 각종 헬스기구, 다도실까지 있어 후쿠오카 장애인은 누구도 무료로 이용하고 있었다. 1984년에 설립되어 하루에 2백 60명 정도가 이용한다고 했다.
 장애인을 위한 문화 체육공간 하나 없는 부산의 현실을 돌이켜 볼 때 부러움에 앞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다행히 12월부터 부산 사회체육센터에서 장애인을 위한 수영교실을 무료로 개최해 주고 있어 이 시간을 빌려 감사를 드린다. 장애인은 생활이 아니라 목숨을 연명하는데 급급 삶을 살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고 보면 어쩌면 사치 같다는 자괴감도 들지만 장애인일수록 문화, 체육부문의 욕망이 더욱 절실하다는 것을 누가 알아줄까.
 그리고 어느 시설이나 자원봉사자실이 따로 있어 사회통합과 인적 자원활용에 주력하고 있었다. 자원봉사자실에는 휴식공간은 물론이고 도서실도 마련하여 봉사자들이 문화 또는 장애인복지 등의 정보에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이웃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었다.
 3일째인 11월 5일에는 시이노미 학원을 방문하였다. 시이노미 학원은 25년 전에 장애부모인 쇼오찌 선생이 자식이 적령기가 되어도 받아주는 학교가 없어 애를 태우다가 사재를 틀어 설립한 장애 학원인데 지금은 모두가 의무교육이므로 장애유아원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학원 앞마당에는 지난날 종으로 이용하였다는 커다란 포탄피가 걸려 있었는데 선생의 아이들이 종지기였단다. 원장이 사재를 털어 운영하는 터라 관리인을 따로 둘 형편이 못 되어 아들이 기어다니면서도 학원의 관리를 맡아왔는데 언젠가 NHK방송 프로듀서가 취재를 나왔다가 월급 한 푼 없는 관리인 아들을 보고 월급을 자기가 대신 주겠다고 자청을 하며 몇 년 전 아들이 죽기까지 매월 월급을 보내주었다고 한다. 종지기 아들도 월급을 한 푼 쓰지 않고 모아두었다가 누군가의 동상건립에 기부하였단다. 눈물겹고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쇼오찌 선생은 장애인의 대부로 많은 사람들의 칭송을 받고 있었으며 정신지체 부문에서는 한국에도 알려진 분이라고 했다.

<교사와 학생 일대일 교육>
 첫날부터 느낀 점이기는 하지만 8일에 방문한 이마즈 양호학교는 크고 깨끗해서 탄성이 절로 나왔다. 후쿠오카시의 서쪽 바닷가에 위치한 학교인데 1만 8천 2백 8미터의 땅에다 23억엔을 들여 지었으며, 78명의 교사가 75명의 학생을 가르치고 있었다. 땅 값 비싼 나라, 모든 것을 작게 작게 한다는 "축소지향"의 일본이지만 필요한 공공시설은 우리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크고 넓었다. 우리가 숙박한 호텔만 해도 방이나 욕조는 한 사람이 사용하기에도 너무나 작다 싶었는데 여러 사람이 쓰는 로비는 넓었으며 특수학교나 장애인시설도 목욕탕, 운동장, 복도 등은 썰렁할 만큼 공동공간을 배려한 저이 우리와는 다르다는 느낌을 주었다.
 휠체어가 몇 대나 한꺼번에 지나갈 수 있을 만큼 넓은 복도며 교실마다 세면장이 갖추어져 있는 크고 깨끗한 교실에서 갖가지 생활교육을 받고 있었다. 그래도 기숙사 없이 아무리 중증인 장애아라도 봉사자의 도움으로 아침에 학교에 와서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텅 빈 교정을 돌아 나오며 시민들의 휴식공간이나 문화행사장이 되기도 한다는, 광안리 바다 백사장만큼 이나 광활한 후쿠오카 시청 앞 관장에서 한국 제 2의 도시라는 부산역 광장이 주차장에 밀려 코딱지 만해진 걸 생각하며 잘 사는 나라의 넉넉함에 코끝이 찡해지던 기억이 새로웠다.
 9일 저녁에는 사회복지관에서 장애인관련단체들과의 간담회가 있었다. 일본에서는 일찍부터 민간단체들의 활동이 활발하였으며 특히 부모들의 활동이 활발했던 것 같다. 후쿠오카시에서도 최근에야 여러 가지 유형의 장애관련단체들 중에서 28개 단체가 협의체를 구성하여 "아시아 태평양 장애인 10년" 기념사업으로 시민공개강좌를 열고 있었다.
 협의회는 지체, 시각, 언어, 청각, 부모회 외에 척추장애, 심장병장애, 호흡기장애, 맹도견협회 등으로 유형이 세분화되어 있었다. 이들 단체는 사회복지관에 사무실을 갖고 있었으며, 각 단체마다 사업에 대해서는 사업비를 지원 받고 있었다. 언어장애인단체 (성대 절제수술로 말을 못하는 장애)가 몇 개나 있어 이상하다 했더니 수술병원별로 단체를 구성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병원동문인 셈인데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아직 우리나라에는 병원동문 단체가 있다는 얘기는 못 들었으니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를 일이다.
 협의회 회장이 장애인 자동차협회 회장도 맡고 있어 운전면허에 관한 얘기가 있었는데, 장애인은 주정 차 위반에서 제외되고 있으며, 장애인의 운전면허도 법적으로 제한하고 있지는 않고, 장애인을 고용하는 택시회사도 있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었다.
 "장애인 1종 면허!" 93년 새해 벽두부터 1종 면허를 위해서 국민의 기본권 측면이나 직업재활 면에서도 제발 제한하지 말아달라고 각계에 진정도 하고 눈물로 호소한 것이 얼마였던가. 그 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 지난 11월 24일 경찰청 발표에 의하면 "보조장구 미착용자에게는 94년 1월부터 허용한다"고 했는데 오토메틱은 보조장구로 취급할 모양이다.
 첫술에 배부르랴, 이것도 큰 성과다 싶지만 외국에서는 운전면허 시험을 오토메틱으로 치르고, 생산되는 자동차도 오토메틱 추세인데 국제화를 추구한다는 대한민국에서 왜 유독 운전면허시험은 구시대적인 수동기어를 고집하는지 모를 일이다. 오토메틱도 제외라면 1종 면허가 허용된다 하더라도 손가락 장애인 정도나 혜택을 볼까. 정말로 운전만을 생명으로 알고 기다리는 대다수의 장애인에게는 또다시 실망만 안겨줄 것 같다.

<"도끼메끼 페스티발 93">
 10일 아침 그 동안 TV나 책자를 통해 익히 알고 있었던 "태양의 집"을 향해 벱부시로 떠났다. 비가 내렸고 어느 일본인이 벱부시에 가면 단풍구경을 할 수 있을 거라 했지만 고속도로를 3시간 정도 달렸으나, 그 어떤 물감으로 칠하거나 그 어떤 어휘로도 형용하기 어려운 내장산이나 지리산의 단풍을 알고 있기에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단풍은 끝내 볼 수 없었다. 고속도로 주변은 거의가 삼목이라는 상록수였고 안개비속에 어쩌다 퇴색한 갈색이 가끔씩 나타날 뿐이었다. 벱부시가 다가오자 하얀 연기가 곳곳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는데 온천증기라고 했다 온천관광지 벱부시의 한 귀퉁이에 그 유명한 태양의 집이 있었다.
 태양의 집은 1965년에 장애인의 직업재활을 위한 수산시설로 설립되었으며 전국에 네 곳이 있고 벱부시 태양의 집이 규모면에서도 제일 크다고 했다. 태양의 집은 세계 여러 곳에서 견학을 오기 때문에 견학 담당자가 따로 있었으며 우리가 온다는 것을 알고는 태극기를 달아 놓았고 한글 팜플렛도 준비되어 있었다. 너무나 크고 어마어마해서 다 둘러보는데도 몇 시간이나 걸렸다.
 작업내용은 전자제품, 자동차 부품 등이 주류를 이루었고 규모가 크다보니 슈퍼마켓과 은행까지 운영하고 있었다. 슈퍼와 은행은 일반시민들도 이용하고 있어 사회통합 차원에서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되었다. 벱부본부의 직원은 1천 15명이고 장애인이 6백 67명, 비장애인이 3백 58명이었다. 사무국직원은 1백 38명인데 장애인은 7명이 있었다.
 "이 세상에 심신장애인은 있어도 일에는 장애가 있을 수 없다. 태양의 집에서 일하는 장애인은 보호받는 자가 아니라 근로자이며 후원자는 투자자이다."라는 슬로건 아래 기업은 경영과 시술을, 태양의 집은 인사를 전면적으로 협력하는 특이한 시스템이라는데 장애인은 1만 3천엔에서 3천 5백엔 정도의 훈련수당을 받고 있음을 볼 때 돌아서 나오는 발길이 씁쓸하였다.
 마지막 날인 11월 13일 후쿠오카돔(지붕 있는 체육관)에서 열리는 "도끼메끼 (가슴 뛰는) 페스티발 93"을 구경하였다. 장애인, 자원봉사자 그리고 시민 등 모두 3만명 이나 참가하는 대축제였다. 아침 10시 기념식도 없고 부시장이 참석하여 다 함께 춤추는 것으로 행사는 시작되었다. 한편에서는 시설 또는 단체별로 경기가 벌어지고, 다른 한편에서는 시설, 양호학교 봉사단체 등의 작품바자회가 열리고, 또 다른 곳에서는 무용, 노래 등의 공연이 다채롭게 펼쳐지고 있었다. 비가 내렸으나 지붕이 닫혀있어 걱정이 없었고 장애인이나 구경나온 시민이나 마냥 즐거워 보였다.
 이 행사는 후쿠오카시 장애복지과에서 2천만엔의 예산으로 7천명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한 장애인의 날 행사인데, 12월 3일 세계장애인의 날을 전후하여 열리며, 언제나 일반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다고 하였다. 유명인사 몇몇이 차례로 나오는 기념식에다 장애인은 먹을 것과 경품이 있어야 겨우 참가하는 우리네 장애인의 날을 생각하고 무엇이 이들을 스스로 참여시키는지 궁금하였으나 잘 알 수가 없었다.
 일본의 한 귀퉁이 후쿠오카시를 며칠간 둘러보고 일본의 장애인복지를 어찌 알겠는가. 만은 각종 시책이나 시설은 우리보다 앞서 있었다.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장애복지에 관심을 가지고 많은 예산을 지원하고, 시민 모두가 장애인의 각종 사업이나 행사에 스스로 참여하고 있는 점은 우리도 하루빨리 본받아야 할 것 같다.
 우리 일행이 뭐 그리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환영리셉션에는 부시장이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같이해 주었고 장애복지과 직원들의 환대는 송구스러울 만치 정성스러워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라 여겨져 고개가 숙여졌다.
 이번 시찰 평가회때 "시에서 하는 일은 장애인의 일을 장애인이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차원에서 한다."는 장애복지과장의 마지막 얘기도 무척이나 감동적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들이 바라는 마지막 목표인 "완전 참여. 완전 평등"과는 거리가 있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작성자이복남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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