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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잘못된 언어구조가 빚는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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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언어구조가 빚는 폭력(?)

 말은 그 나라의 문화척도다. 그래서 언어생활의 중요성은 각 나라마다 그 중요성을 결코 간과지 않는다. 그러나 간혹 이 언어 때문에 한 나라에 사는 같은 사람들끼리 속이 상하는 일이 곧잘 발생하곤 한다. 우리 속담대로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기도 하고" 또 말 한마디에 줄초상을 치는 곤욕도 치른다는 말이겠다.
 필자는 최근 우리말이 담고 있는 멋스러움과 유머감각을 일별해 볼 기회를 가졌는데 놀라운 부분을 발견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속담이 가지는 내용들이 많은 부분 사람 속을 상하게 하는 것들이 눈에 띈 것이다.

<장애인 빗댄 속담>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람을 빗대 풍자하는 속담이나 격언 가운데 유독 장애인을 모독하는 구절이 특히 많았다는 점이다. 앞서 앞에서 말했듯이 "말이란 잘해야 본전"이라는 미묘한 특성을 생각한다면 이는 중대한 잘못이 아닐 수 없다. 또 나아가 사람이 사람을 향해 그것도 약한 자나 신체적 결함이 있는 자를 오히려 약점으로 삼아 희롱하는 언어행위는 마땅히 교정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에 열거하는 속담 내용은 모두 장애인을 소재로 한 것이다. 이 지면에 굳이 소개하는 것은 우리 생활에서 얼마든지 저질러지는 언어폭력이 당사자에게 어떤 상처를 줄 수 있는 지를 점검해 보기 위해서이다. 혹자는 필자의 이런 글을 "공연한 자괴심"으로 몰아 부칠 수도 있겠고 또 "너무 확대 해석하는 게 아니냐"는 사견도 제시하리라 생각하지만 이는 "좀팽이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살이"임을 먼저 지적해 둔다. 그리고 여기 소개하는 내용은 많고 많은 장애인을 비하시키는 속담가운데 극히 일부분인 것도 아울러 밝힌다.
 ·무식하거나 무지한 사람을 일컬을 때 : 소경이점 잘쳐야지 눈치는 왜 봐.
 ·남보다 말할 줄 모르면서 더 떠드는 사람을 지칭할 때 : 벙어리가 두 몫 더 떠든다.
 ·여러 사람이 어울려 노는데 어울려 놀지 않고 가만히 혼자 있는 사람 : 벙어리 삼신(三身)이라(벙어리가 다시 태어났다는 뜻. 三身·부처가 변해 세상에 나타나는 세 가지 모양).
 ·무슨 물건을 옆에 꼭 끼고 있는 사람 : 곰배팔이 담배 목판 끼듯.
 ·일을 대중없이 하는 사람 : 소경이 팔매질하듯.
 ·재간은 없는데 우연히 그 일을 성취했을 때 : 장님이 문(門) 바로 들어갔다.
 ·아무리 보아도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 : 소경 단청 구경, 장님은 빛보기.
 ·남에게 손해 끼치려다 오히려 자신이 손해를 보게 된 경우 : 소경 제 닭 잡아먹는다.
 ·일마다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 : 장님에게 눈 가리고 벙어리에게 속삭인다.
 ·귀먹은 사람을 빗대 : 당나귀 하품한다.
 ·체력이 약함 : 밤비에 자란 사람.
 ·남의 일에 사사건건 참여하는 사람 : 난장이 교자꾼(轎子-) 참여하듯.
 ·헛일하고 그 일로 인해 톡톡히 화를 입은 경우 : 소경 죽이고 살인 빛 갚는다. 문둥이 때려죽이고 새 눈 낼라.
 ·미운데다 미운 짓을 더하는 사람 : 신작로 닦아 놓으니 문둥이 먼저 지나간다.
 ·남들 망신시키는 것을 하는 못난 사람 : 친구 망신은 곱사등이 시킨다.
 ·있으나마나 마찬가지인 사람 : 귀머거리 귀 있으나 마나, 뻗정다리 서나 마나, 앉은뱅이 앉으나 마나, 봉사 안경 쓰나 마나.
 ·장님을 만나도 재수 없는데 어린 장님을 만나서 더 재수 없다 : 초립동(草笠東)이 장님 만났다.
 ·무엇을 주더라도 절대 받지 않겠다 : 문둥이 콧구멍에서 마늘을 빼먹으면 먹었지.

<언어순화 필요한 때>
 위에 소개한 말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속담들이다. 아무 생각 없이 말이다. 장애 자체도 서러운데 가만히 서서 이런 속상한 말을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수백만의 장애인들은 도대체 어떡하라는 말인가.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원 뜻은 "짤막한 경구(警句)로 사람의 마음을 크게 흔든다"라는 의미지만 위의 속담들은 그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은커녕, 그들을 좌절케 하고 심지어 분노케 하기에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사람이 사회를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이다. 우리가 굳이 예의를 지키고 서로를 존중하는 첨병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언어이다.
 속담이나 격언은 그 말을 통해 배금사상, 관리들에 대한 반감 표시, 그 시대적 의미, 인생관, 도덕의식의 함양 등을 표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신체의 부자유스러움을 희롱하는 언어생활은 마땅히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오히려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의미로 사용이 극대화되어야지 부정적으로 조명만 한다면 우리의 목표인 "함께 사는 이웃"은 거짓에 다름 아니다.

<베드로의 말솜씨>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올라가다 날 때부터 앉은뱅이인 자가 성전 미문(美聞)에 앉아 구걸하는 것을 주목했다. 그 앉은뱅이는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일어서서 걸어갔다(사도행전 3:1-8).
 베드로는 그에게 탓하지도 언짢아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말을 했다. 그것이 그 앉은뱅이가 원하는 최고의 목표였으므로.
 그가 병고침을 받은 기적도 중요하지만 베드로가 그에게 한 말이 우선 중요하다. 관계 회복을 위한 진지한 다가섬과 대화, 이런 것이 우리 사회에 넘쳐날 때 왜곡된 언어구조는 제자리를 잡을 것이다.

글/이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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