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문제다]넘어지는 정립회관, 바로 서는 장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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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립회관이 또다시 몸살을 앓고 있다. 90년 6월, "회관 비리 척결"을 주장하며 벌어졌던 45일간의 점거농성에 이어 같은 장소에서, 같은 문제로 두 번씩이나 농성이 벌어지는 초유의 기록을 남기며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한국에서 장애우복지의 "산증인" 황연대 전 관장과 그의 분신과도 같은 "정립회관"이 과연 바로 서기를 할 수 있을 것인가.
<다시 타오르는 불꽃>
지난 3월 29일 김응준 정립회관 이사장은 비롯 아홉명의 이사 앞으로 다음과 같은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존경하는 이사님께. 이 협회는 이사님의 장애의 아픔을 우리들 후배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장애체험의 고귀한 산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숭고한 정신은 특정인 저질렀던 수많은 비리와 비행에 의하여 탈색되어 갔습니다.
더 이상의 몰락과 타락을 막으려던 90년 봄 사태는 잘못을 저지른 당사자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준엄한 최초의 심판이었습니다. 또한, 다시 태어날 것을 지시한 엄숙한 명령이었습니다.
(중략) 분노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은, 이사님의 관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고 진지한 개선을 위한 최소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회관에 관련된 수많은 비리에도 불구하고 인내하여 왔습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치명적인 잘못에도 침묵하였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직원들의 무능함에 원인을 두는 억울한 누명마저도 참았습니다.
인내로써 점철되었던 지난 3년을 통하여 얻은 결론은 특정인의 가치와 정치적인 목적을 위하여 복마전이 되어버린 회관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하략)
편지의 발신인으로 되어있는 "직원일동"은 또 "회관운영의 원칙을 재는 잣대가 될 상여금 문제가 약속과는 달리 2년 이상 지켜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수년간 각 부서별로 지급된 부서운영 판공비가 관장의 판공비에 흡수되고, 촉탁의사와 관장에게 이중 지급되던 의사수당을 파격적으로 인상"한 점 등 "회관운영의 무원칙성과 사안의 불공정한 처리"를 해결하기 위해 "이사회의 용단"을 호소했다.
이 편지를 신호탄으로 4월 23일 정립회관 직원, 회원 대표 그리고 장한협등으로 구성된 공동대책위원회는 "정립회관 정상화"와 "비리주범 황연대 구속"등의 요구를 내걸고 이사장실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감으로써 그동안 침묵 속에서 불씨를 키워왔던 정립회관 사태는 다시 불이 붙기 시작했다.
<드러난 "사실" 감춰진 "진실">
다시 쟁점이 되고 있는 정립회관 사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삼년여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90년 6월 "뜨거웠던 여름"을 다시 한번 정리할 필요가 있다.
지난 90년 6월 8일 당시 서울장애인운동청년연합 장애우 삼십여명은 정립회관을 비롯한 "한국장애인복지시설에 대한 전면 국정감사"를 요구하며 상임이사실을 점거하고 45일 간의 기나긴 농성에 들어갔다.
농성장애우들은 정립회관과 보사부 그리고 국회에 "국정조사권을 발동 장애인복지시설에 대한 전면 감사" "공금횡령 및 유용과 세습운영을 획책하는 정은배의 구속, 처벌" "정립회관 사태의 책임자 황연대 관장의 퇴진" 그리고 "관장선출과 회관운영에 대해 직원 및 장애인 대중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의사결정기구를 신설" 등 아홉 가지 요구안을 제시했다.
또한 이들이 대표적인 비리의 온상으로 지적했던 정립회관에 대해서는「비리백서」를 통해 "황연대와 정이사 소유의 안성 배밭 등의 자금출처와 재산내역 공개" "직원들의 재형저축기금, 직원상조회 기금을 비롯 퇴직적립금 등 공금 횡령 및 유용 내용 공개" "정립전자 기숙사시설 보강비 1억 5천만원 중 증발된 1억 3천만원의 사용내역을 공개" "정립회관의 비민주적 운영"등 열 가지 항목에 대한 각각 그 내용을 공개하고 개선책을 세울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45일이나 되는 기나긴 농성에도 불고하고 "정립회관의 민주적 운영"과 "황연대관장 퇴임, 구속"이라는 목표와는 달리 "90년 5월 직원들의 임금 평균 14만원 이상"과 "정은배 상임이사, 김원기 한국소아마비협회 이상장의 퇴진"이라는 기대이하의 성과를 거두고 말았다.
또한 당시 회관직원과 정립전자 직원들의 소극적인 태도로 홀로 농성을 주도해야 했던 서장청연은 이러한 사실상의 "패배" 때문에 그 뒤 심한 후유증을 앓기도 했다.
이처럼 90년 당시 상황은 수많은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진실"은 전혀 밝혀지지 않은 채 꺼지지 않는 불씨를 품고 침묵의 나락으로 가라앉고 말았던 것이다.
<치밀한 준비, 허술한 반격>
정립회관 "직원일동"이 이사회에 "용단"을 촉구하는 편지를 보내고 소리 없는 움직임을 시작한지 보름이 지난 4월 16일 장애인복지신문(제193호)는 "황연대 윤상장학금 횡령"이라는 내용을 머리기사로 이틀 전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의 이사장에 오른 황연대 관장의 회계비리 내용을 공개했다.
황관장의 회계비리가 신문에 공개된 지 닷새만인 4월 21일 정립회관 "직원"은 물론 "회원대표"그리고 이용주체인 "장애우와 자원활동연합회" 회원들은 "정립회관 정상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만들고 "정립회관의 정상화"와 그 정상화의 최대 걸림돌로 지적된 "황연대 관장"의 비리를 밝히기 위한 본격적인 싸움이 다시 시작됐다.
이틀 뒤인 4월 23일 "공동대책위원회"는 관장실을 점거하고 농성을 시작하면서 "비리주범 황관장의 구속과 장애인복지시설로서 정립회관의 운영 정상화가 이루어지는 그 날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히고 90년 당시 제기된 것 이외에도 "91년 4월 18일 협회기본자산 2천 2백만원을 무단 인출 횡령하는 등 회계관련 비리가 계속 자행됐다"고 90년 이후 저질러진 새로운 비리내용을 폭로했다.
그러나 당사자인 황연대 관장은 농성이 시작된 4월 23일 아침에도 회관에 나와 업무를 보는 등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고 이들의 주장을 "터무니없는 것"으로 묵살해 버려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90년 농성사태 때와는 다르게 직원총회를 열어 "적극참여"를 결정한 이주영 정립회관 총무부장은 "이번에 제기된 황관장의 비리들은 90년 농성 때 이미 제기됐던 문제들이기는 하지만 당시 명확히 해결되지 않았던 것들이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분명히 밝혀져야 하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장애인들을 위해 일하고 싶어 농성참여를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정립회관 회원번호 1천 번이면서 회관 초창기 청년모임인 "정진회" 초대회장으로 이번 농성에 "회원대표" 자격으로 참가한 최수영씨(40·신우통상 대표)는 "회관은 황관장 등 몇몇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기 때문에 그 설립목적에 맞게 장애인들에게 되돌려져야 한다"고 말하고 "이사회 등 기존의 기구들을 통해 합리적으로 개혁을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책위는 90년 농성의 경험을 되살려 보사부나 서울시의 "감사" 정도로는 오히려 황관장에게 공식적인 "면죄부"를 줄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이사회"에 황관장의 사퇴는 물론 이사에서도 물러날 것을 요구하도록 압력을 넣는 한편 신문, 방송 등 언론매체를 이용한 "홍보전" 그리고 국회차원의 진상규명을 통한 사법처리 등 총력전을 펼쳤다.
싸움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이미 한번 다 훑어봤던 내용이라 새로운 것이 나올 가능성이 없다"는 일반의 예상을 뒤엎고 황관장 장남의 "광운대 부정입학의혹" 90년 농성 이후 2배 이상 늘어난 수영장 운영을 둘러싼 "횡령의혹"등 새로운 사건들이 터져 나오면서 농성측이 이번 싸움에 대비해 사전에 치밀한 준비를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하듯 실제로 지난 1월경 황관장에 대한 세밀한 기록이 담긴 "유인물"이 돌기도 했으며 농상 참가자 중에도 "이번 일은 회관직원들이 문제제기를 하기 이전에 이미 "밖"에서 준비되고 있었다"는 말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황관장은 사태의 파장이 의외로 커지자 해명자료를 통해 문제가 된 "윤상장학금"은 "기탁인 이정식씨가 지급여건상 또는 회관운영 여건상 여의치 못하면 협회 또는 회관에서 임의로 보조 사업수행에 따른 운영비로 전용하여도 이의가 없다는 전제하에 기탁했다"고 주장했다.
장학금 지급을 중단한 이유는 "은행예탁금리 인하로 인한 이자수익 감소"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보조사업기관은 장학사업을 하지 말라는 지도방침"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85년 12월 31일자로 15, 171, 177(이자포함)원을 운영협찬성금조로 전용하여 85년도 회관 일시가수 18건의 부채를 상환" 했다고 농성측의 횡령주장을 부인했다.
황연대, 정립회관 그리고 장애우
"불구아의 어머니"(1966년 6월 4일 대한일보), "소아마비아 위해 계속 헌신, 명예 아닌 더 일하라는 멍에 -올해의 장한 어머니상 탄 황연대 여사-" (1972년 2월 18일 한국일보), "지체부자유아들 대변, 희망 갖는 계기 돼 기뻐-5·16 민족상 수상한 황연대씨-"(1985년 5월 18일 한국일보)…
"한국장애우 복지사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까지 평가받고 있는 "대모(代母)" 황연대(55·전 정립회관 관장·현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이사장)의 17년 통치는 이제 막을 내리는가.
지난 90년 6월 "한국장애인복지시설에 대한 전면 국정감사"를 요구하며 벌어졌던 45일간의 점거농성에도 끄떡없이 되살아났을 뿐 아니라 오히려 올해 4월 14일 장애우 노동정책의 사령탑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이사장에 임명된 황연대 정립회관 전 관장이 자신의 전 인생을 통털어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4월 24일부터 "윤상장학금 횡령" 등 그동안 회관 운영을 둘러싸고 벌어진 회계비리와 파행적인 회관운영을 문제로 또다시 농성사태를 빚고 있는 이번 정립회관 문제는 한 기관에서 같은 내용으로 두 번이나 점거농성 사태가 벌어지는 초유의 기록을 남기며 한국장애우 복지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 되고 있다.
1938년 황문철씨의 7남매 중 장녀로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태어난 황연대씨는 3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이때부터 장애우들과 길고도 숙명적인 인연을 맺게 된다.
1944년 금화초등학교 진학하기 위해 시험을 치른 황연대 전 관장은 "달리기"를 강요하는 일본인 교장의 강요에 못 이겨 달리다 쓰러져 입학이 거절되었으며 이때부터 일생을 소아마비 아이들을 위해 바칠 것을 결심했다고 한다.
진명여고와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한 황연대 전 관장은 이대부속병원 인턴과 세브란스병원 재활원의사를 거쳐 1966년 한국소아마비 협회 상임이사로 재직했다.
1975년 10월 30일 성동구 구의동 16번지 현재의 자리에 정립회관을 세우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황연대씨는 1977년 정립회관의 이사겸 관장을 시작으로 17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굴곡 많은 이 땅의 장애우 복지 역사를 대변하는 "한 얼굴"로 존재해 왔다.
황연대씨는 이기간 중에 국민훈장 석류장, 국민훈장 동백장, 5·16민족상 등을 수상했으며 1976년 당시 연세대학교 신학과에 응시했다가 신체장애를 이유로 탈락한 서정민씨의 "구제"를 시작으로 당시 커다란 사회문제였던 장애우 대학입시 탈락을 비롯 1982년 법관임용탈락 사건 등 소위 "일"이 벌어질 때마다 이를 해결하는데 앞장서 자연스레 장애우들의 "대모"로 자리잡았다.
1969년 9년간의 교재 끝에 정은배씨와 결혼한 황연대 전 관장은 개관과 함께 남편을 상임이사로 영입하면서 회관 운영의 "전권"을 행사하게 되지만 회관운영을 둘러싼 의혹의 불씨 또한 이때부터 서서히 싹트기 시작했다.
1988년 장애인올림픽을 끝으로 침체의 늪에 빠져들기 시작한 정립회관은 1989년 7월 중증장애우를 위한 자립작업장 "정립전자"를 설치 운영하면서 새로운 활로를 찾아보기도 했으나 더 이상 장애우 이용시설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표류해 왔다
1990년 6월 마침내 정립회관은 비리와 파행으로 흐르는 한국장애우복지시설의 대표주자로 몰려 점거농성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으며 이때 회관비리의 주역으로 지목된 황연대 전 관장 부부 중 정은배 상임이사가 물러나는 것으로 일단 발등의 불을 끄는 듯 했으나 이는 진상규명이 없는 미봉책에 불과했다.
이후 황연대 전 관장은 정립전자 운영을 비롯 회관 직원들과의 불협화음 등으로 사실상 회관운영에서 손을 떼다시피 하고 있었으며 지난 3년 동안 이처럼 불안한 침묵 속에서 불씨를 키워온 정립회관은 올해 4월 14일 황연대 전 관장이 김창지 이사장 후임으로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의 이사장에 취임하면서 또다시 폭발하고 말았다.
정립회관, 아니 황연대라는 이름은 육·칠십년대 척박한 이 땅의 장애우 현실의 한 시대를 대변하는 "상징"이었으며 많은 장애우들이 그의 "눈물어린 호소"로 삶의 기쁨을 되찾기도 했다.
그러나 쉼 없이 흐르며 새로운 줄기를 만들어 가는 역사의 강물처럼 최근 정립회관 사태는 90년대 장애우 복지는 더 이상 "황연대식"으로 풀어갈 수 없다는 한계와 새로운 과제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정립회관 사태와 황연대 전 관장의 문제는 단순히 농성과 해명의 차원을 벗어나 국회에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등 마지막 고개를 넘기 위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수사에 착수한 검찰의 "현실적 평가"와 함께 어제를 청산하고 내일의 좌표를 세우기 위한 "역사적 평가"의 장에 서 있는 황연대 전 관장의 문제는 한 개인의 부정과 비리를 넘어서 파행을 조장하는 정부의 장애우 복지정책과 이에 편승해 시설을 사유화하면서 손을 더럽히고 있는 운영자들이 악순환의 굴레를 깨고 새롭게 태어나는 이 땅 장애우 복지의 한 전환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1965. 10. 1 소아마비 성인모임 "삼애회" 발족
1666. 4. 19 사단법인 한국소아마비아동특수보육협회 설립허가
1970. 10. 28 정립회관 건립 착공
1975. 10. 30 정립회관 준공 개관
1977. 6. 21 "사회복지법인 한국소아마비협회"로 법인 및 명칭 개편
1979. 12. 10 인권옹호단체로 대통령 표창
1983. 5. "정립회관"심신장애자 복지시설 허가
1987. 10. 30 정립 종합체육관 준공
1989. 7. 장애인 자립작업장 "정립전자" 신설운영
황관장은 또 "2차 기탁금 10,000,000만원은 기탁 당시 회관자체 부담금 충당금조로 사용해 달라는 제의가 있었으나 기탁인의 뜻을 감안 이를 일단 접수하고, 이후 협의를 거쳐 87년 3월부터 이를 회관일시가수 대체금으로 현재 가수금으로 보관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빠른 시일 내에 이사회 의결을 거쳐 기탁금 전액을 원상회복 시킬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협회재산예금 2,200만원의 무단인출에 관해서는 "87년 자립작업장 설치를 위해 당시 협회 상임이사인 정은배씨의 집을 담보로 1,450만원을 그리고 90년 7월 정은배씨의 퇴직금 지급을 위해 800만원을 각각 대출 받았으나 은행으로부터 대출 상환독촉을 받아 협회 재산이자 수익금으로 대출금을 상환하고 추후 이사회의 승인을 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무너지는 30년 신화>
대책위의 단계적이고 치밀한 행동에 위기감을 느낀 황연대 관장은 "현재 대책위가 주장하고 있는 비리내용들에 대한 상세한 반박자료를 준비중"이라고 밝히고 "농성자들의 뒤에 배후조정자가 있다"고 협회 이사로 있는 송영욱 변호사를 지목했다.
황관장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송영욱 변호사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며 더 이상 그런 문제에 대해 거론하고 싶지 않다"고 말해 황관장의 말을 한마디로 일축했다.
이러한 와중에 사태는 빠르게 진행돼 4월 26일 열린 긴급이사회에서 황연대 관장의 관장직 사표를 수리했으며 후임 관장으로 백일영씨(전 서울시 법률과장)를 임명했다.
농성측은 이러한 이사회의 결정에 "황관장의 사임이 사실상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것이 아니라 공단이사장으로서의 "겸직금지조항" 때문이며 정립회관과 아무런 연고가 없는 백일영씨를 관장으로 지명한 것은 2년 뒤 공단 이사장을 그만두고 다시 관장에 복직하려는 수순"이라고 반발하고 27일 서울시우회 사무실로 김응준 이사장을 찾아가 "백일영씨의 관장임명을 취소하는 한편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이사장직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농성대표들의 거센 반발에 김응준 이사장이 30일 긴급이사회를 열고 전격적으로 사퇴의사를 표명했으며 백일영씨의 관장임명 역시 최소 돼 후임 이사장과 관장 선출에 나섰으나 선출에 실패하고 변충근 사무장을 관장 권한대행으로 임명하는 선에서 일단 사태 수습의 실마리를 잡아 나갔다.
공전을 거듭하던 정립회관 사태는 농성 13일만 인 5월 7일 긴급이사회를 열어 송영욱, 이완수 이사를 각각 위원장과 관장으로 선출해 본격적인 사태수습에 나섰다.
이러한 이사회의 결정에 농성참가자들은 "이사회의 결정에 일단 환영의 뜻을 보낸다"고 말하고 "새로 선출된 이사장, 관장과 협의해 회관이 정상화될 때까지 계속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앞으로의 일정을 밝혔다.
농성측은 이와 함께 정립회관 정상화를 위한 "수습대책위원회"등의 기구가 만들어지고 "황연대 전 관장의 이사직 사퇴와 공단이사장 사퇴는 물론 비리문제에 대한 사법처리와 재산환수" 등 후속조치가 뒤따라야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칫 90년 농성사태 때와 마친 가지로 비리사실에 대한 구체적인 진상규명이 이루어지지 않고 황연대씨가 관장직에서 물러나는 선에서 유야무야될 뻔한 이번 사태는 임시국회에서 정식 거론됨으로써 새로운 양상으로 번져갔다.
<"20억 횡령"과 "적극적 대응"그리고…>
5월 12일 제161회 임시국회 노동위원회 정책질의에서 민주당 신계륜 의원은 "황연대씨가 75년부터 93년 4월 장애인고용촉진공단 이사장으로 임명될 때까지 17년간 사단법인 한국소아마비협회 정립회관 관장으로 재직하면서 남편 정은배씨와 함께 최소한 20억 이상의 공금을 횡령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주장하고 "이와 같은 비리인사가 노동부 산하 장애인고용촉진공단의 이사장으로 임명된 경위를 추궁하고 이사장직의 즉각 사퇴뿐만 아니라 명확한 진상규명과 범법사실이 확인될 경우 사법 처리할 것"을 요구했다.
신의원은 이밖에 황연대 이사장이 정립회관이 어려움을 겪고 있던 83년에 경기도 안성군 공도면 마정리 일대에 대지 120평(시가 1억 2천만원), 84년에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외기천리 산 45번지 일대에 임야 5,280(시가 28억 6천만원)을 구입하는 등 40억 상당의 부동산 투기를 했다고 주장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날 상임위원회에서 이인제 노동부장관은 "황이사장 임명 당시 이 문제에 대해 몰랐다"고 대답하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해 진상이 밝혀지는 경우 엄중 조치하겠다"고 다변했다.
더욱이 신의원이 제출한 자료 가운데 황 이사장 운전기사의 "활동 메모"가 들어 있어 주목을 끌었다.
날짜별로 지출내용과 액수가 적혀있는 이 메모를 살펴보면 "1월 10일 보사부재활과 식사 5000,000(식대 180,000), 1월 30일 시청사회과 박계장 노씨 봉투전달"등 관계 공무원들과의 접촉 내용이 적혀있어 "시설과 공무원의 유착관계"를 증명하고 있었다.
또한 이보다 앞서 10일 열린 보사위원회 정책질의에서 민주당 이해찬 의원은 서면질의를 통해 황 이사장이 윤상장학금 관련해 제출한 해명서 내용을 반박하며 "기탁인 이정식씨와 사전협의를 했다는 증거가 없으며, 85년도 회계장부상 18건의 가수반제 내역이 기록되어 있지 않는데 이의 구체적인 내역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이의원은 이와 함께 "정립회관 사태가 한 달 이상 지속되고 있음에도 주무부처인 보사부가 사태파악과 대책수립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90년 7월 27일부터 8월 10일 사이에 서울시와 성동구청이 합동특별감사를 실시한 결과 사회복지법인 기본자산에 대한 이사회의 처분승인 없이 임의로 1억 7천여 만원을 임의 처분하여 전용해 91년 8월 30일까지 회수 관리하도록 시정조치 받았으나 시정되지 않은 이유와 이에 대한 보사부의 대책"을 물었다.
황연대 이사장은 이에 대해 "환멸을 느낀다"며 "새로운 해명자료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하고 이제까지의 수세적인 입장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적극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제 정립회관과 황연대 전 관장의 문제는 단순히 회관내의 부정과 비리 차원을 넘어서 한국장애인복지시설의 현주소를 점검하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이와 함께 지난 30년 세월을 장애우복지를 위해 몸바친 "황연대 시대"를 시험하는 거센 소용돌이 한 가운데 있으며 이를 올바르게 평가해 내는 일만이 남았다.
1975년 10월 30일 "소아마비 청소년들의 소망, 꿈의 도장(한국일보 75. 10. 29)"으로 화려하게 문을 열었던 정립회관이 바로 서는 그 날이 바로 이 땅의 장애우 복지가 바로서는 날이 될 것이다.
글/전홍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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