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이웃] "코리안 드림"을 찾아나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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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노동자 문제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구인난속의 인력난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 실정에서 필요불급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제살깎아 먹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난도 만만치 않게 제게기되고 있다. 특히 직업을 구하지 못해 애태우고 있는 장애우의 입장에서 볼 때 외국인 노동자 문제는 이제 두고 볼 수 없는 중요한 사안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의 수는 얼마이며 그 실태는 어떠한가. 외국인 노동자의 빛과 그늘을 조명해 본다.
휴일의 동대문운동장, 몇 명씩 무리지어 즐거운 표정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동남아인들이나 서울역지하도 안에 늘어서서 한약재를 내밀고 있는 중국교포들의 모습은 이제 낯익은 풍경이 되어버렸다.
이제 신문지상에도 외국인이 저지른 살인사건과 사기사건이 거의 매일 오르내릴 정도로 피부색과 말씨가 다른 이들 외국인은 어느틈에 우리곁에 다가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지난 90년 3월 해외인력 수입을 검토하겠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은 지 3년이 흐른 뒤 나타난 새로운 풍속도이다.
"코리안 드림"을 찾아 우리 켵으로 달려온 이들 외국인 노동자들의 애환과 문제점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해외인력 수급"이라는 안이한 발상>
정부의 해외인력 수급안은 침체된 우리 경제를 국내 노동자의 계속적인 희생을 메꾸겠다는 반도동자적인 발상에 기초한 것이다.
호경기도 잠깐, 잠시 회복돼 가는 듯하던 국내경기가 89년말부터 침체되기 시작하면서 정부와 기업은 저임금, 노동력 중심의 산업에서 국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기술중심의 산업으로 이전하고 자동화의 범위를 넓히는 산업구조 조정을 서두르게 되었다.
여기서 기반이 취약한 중소기업은 부당한·폐업으로, 그리고 문어발식 확장으로 자기 몸조차 주체할 수 없게 된 대기업은 대량감원을 통해 각각 살길을 찾아 나섰다.
통계에 의하면 1989년에서 1991년까지 3년동안 10만여 업체에서 30만명이 일자리를 잃었으며 지난해에는 3개월 동안 무려 1,800여개의 중소기업이 도산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고용불안이 점점 심각해지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상대적으로 임금이 싸고 노동조건이 열악한 광업, 목재, 섬유, 의복, 가죽 등의 사양산업에서 1989년에 15만명, 91년에 25만명이라는 인력부족 현상을 보이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이처럼 "대량 실적사태 속에 인력난"이라는 기현상을 보인 것은 노동자가 보다 나은 조건을 찾아 다른 일을 찾아 떠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이들 직종의 전망이 어둡고 중소기업의 상황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이유로 들어 정부가 "새로운 대안"으로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이 바로 "해외인력 수입"인 것이다.
<"일석삼조"의 외국인 노동력>
현재 국내에는 240만에 달하는 잠재적 노동력이 있다고 한다. 이 가운데 65퍼센트가 여성이며 장애우와 55세 이상 고령 노동력도 50만명이나 활용 가능하다.
그런데 이 많은 잠재 노동력을 외면하고 외국에서까지 노동력을 들여와야만 하는 상태가 되었을까. 이는 모자란 인력을 형식적으로만 채우려는 인력수급 정책이 실패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 실태를 살펴보자.
먼저 여성인력을 활용하려면 취업을 장려하는 사회 분위기와 함께 적절한 시간제 근로지침을 마련하고 동시에 직장 탁아소와 국공립 탁아소가 충분히 보급되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약속한 것은 95년까지 저소득층 지역에 이천여개의 탁아시설을 늘리겠다는 미흡한 것 뿐이었다.
고정인력 수급정책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풍부하고 전문적인 노동 경험을 살리지 못하고 "빌딩주차원" 이나 "경비직"등 주로 저임금의 서비스직에 편중되어 생산 현장에서 겪고 있는 구인난 해소에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이들 직종의 저임금을 계속 유지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한편 군 복무기간을 면제하는 조건으로 건설현장과 제조업에 군보충력을 활용하겠다는 시도도 "말도 안 된다"는 당사자들의 반응에 시들해졌으며 3백인 이상 기업체에 일정비율 이상의 장애우를 고용하도록 의무화하는 "장애인고용촉진법"은 기업과 정부의 회피로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체계적이고 과학적이지 못한 인력 수급정책으로 제조업의 인력난이 덜어지지 않자 이용하는데 부담이 적고 바로 효과를 볼 수 있으며 고용불안을 계속 유지해 국내 임금을 묶고 노동조합을 약화시킬 수 있는 "해외인력수급"에 눈을 돌리게 되었으며 정부 스스로가 "불법체류 외국인"을 눈감아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계획에 따라 정부는 외국인노동력의 수입을 적극 추진하게 되었는데 91년 2월 노동부장관이 외국인 광부의 수입을 공식적으로 건의했다가 각계층의 반발로 철회한 것을 비롯해 91년 10월 노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법무부가 "외국인 산업기술연구사증제도에 관한 업무 처리지침"에서 기술연수생으로 국내에 취업하는 외국인 수를 해당 기업 종업원 수의 1%에서 5∼10% 올리고 해당 업체도 확대하는 등 본격적으로 노동시장의 문을 열었다.
이틈을 타고 덩달아 관광비자로 들어온 외국인이 여행 목적과는 다르게 불법체류하여 제조업, 건설업 등에 취업하는 사례가 급증했다.
통계를 보면 현재 기술연수생은 불과 3,680여명인데 비해 불법체류 취업노동자는 이들 합법적인 노동력의 30배가 넘는 10만여명에 이르고 있다.
한편 정부는 이들 불법체류외국인이 취업현장에서 각종 사고·사건은 물론 인권유린 등으로 물의를 빚자 92년 6월부터 7월 31일까지 "불법체류 및 취업 외국인 자진 신고기간"을 설정하고 대책 수립에 나섰다.
<산재보험조차 안 돼>
"우리 한국인은 4명이었고 필리핀인은 5명이었는데 주간은 8시 30분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야간은 오후 7시 30분부터 오전 8시 30분까지 2교대로 일했어. 한국인은 초봉이 33만원, 그들은 30만 9천원 받았는데 한국인은 6개월마다 3만원씩 인상되고 1년에 50%의 상여금을 주는데 그들은 전혀 없어. 하지만 주거환경은 좋았지. 더운물 나오고 목욕탕 있고 회사에서 사장이 부식값 줘서 2층 부엌에서 음식도 해먹을 수 있게 해 줬으니까."
이 경우는 그나마 좀 나은 편에 속하는 예외적인 경우였지만 대다수는 비좁고 답답한 주거환경과 입에 맞지 않는 음식으로 고생하고 있다.
92년 5월 전노협 등 노동단체의 조사에 의하면 외국인 중에서 필리핀인의 비율(31%)이 중국교포(36%)다음으로 밝혀졌으며 이들이 한국에 오기 위해 들인 비용은 3백 50여만원 정도이며 우리나라에서 받는 평균 임금은 34만 3천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고졸 이상의 고학력자인 이들 필리핀 노동자들은 섬유, 의복, 플라스틱, 조립금속의 영세 중소사업장에서 높은 산재의 위험과 사용자의 폭언, 희롱을 감수하며 10∼14시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릴 뿐 아니라 실컷 일만 시키고는 돈을 떼먹고 달아나는 기업주와 여권을 빼앗고는 몇 달씩 임금을 주지 않아 고통을 겪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92년 9월 이후 이들 불법체류 외국인에게는 산재보험조차 적용되지 않아 성동구 에이아트 공업사에서 일하던 필리핀인 아키노 시바은(26)등 많은 사람들이 치료조차 변변히 받지 못한 채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들 필리핀인은 국민의 85%가 카톨릭이라는 점 때문에 "자양동 성당"이나 "필리핀 공동체"(건대역 근처)를 통해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구로 희년교회, 가리봉 중앙침례교회, 순복음중앙교회 등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자구책을 준비하고 있다.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고급식당에서 일하고 있는 중국교포 김오순씨(54)는 대구의 언니를 만나러 한국을 방문했다가 불법체류하고 있는 경우이다.
돌아갈 경비를 마련하고 이왕 온김에 돈도 벌겠다는 생각으로 92년 9월 이후 식당에서 먹고 자면서 아침 7시부터 밤 11시가 넘도록 일하고 월 63만원을 받고 있다. 고국관광을 하는 것이 소원이며 몇 년 더 일하다가 가고 싶다는 김오순씨와 중국에서 고등학교 교사였던 그의 남편은 부인과 떨어져 약수동의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몇 달치의 임금을 받지 못한 상태이다.
동남아인에 비해 그나마 "한민족"이라는 이유로 비교적 좋은 보수와 대접을 받고 있는 교포들은 여성인 경우 서울역 근방에서 한약재를 팔거나 가정부, 식당일을 하고 남성인 경우는 주로 남대문 근처의 인력시장을 통해 건설현장에 취업하고 있다.
이들 불법체류 외국인들은 대부분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의 열악한 현장일수록 많이 볼 수 있으나 점차 도심지로 들어오고 있으며 심지어는 정부에서 발주하는 지하철 공사장에까지 진출해 있다.
<돈벌이가 되는 한국(?)>
그렇다면 왜 이렇게 필리핀 사람들이 부쩍 우리나라로 몰려드는 것일까.
"필리핀의 민주화운동단체들은 필리핀의 사회정황을 식민지 상태라 보고 있죠. 미국으로부터 독립은 했지만 실질적인 정치, 경제는 그것과 다른 바가 없다고 봅니다. 마르코스 군부독재 정권이 60년대 초에 들어섰는데 그때 군부가 굉장히 커지고 타락해서 외세에 편승해 대토지를 가진 지방족벌과 결합을 합니다. 따라서 스페인과 미국의 식민지를 거치면서 게릴라 운동의 경험을 가지고 있고 대농장에 속한 농업노동자들입니다. 산업노동자는 2백만 정도 밖에 안 되죠."
한국천주교 노동사목회에서 일하고 있는 이대훈씨(33)는 필리핀인들의 대거 유입은 바로 그들의 정치·사회적인 상황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굶어죽는 사람, 군대에 납치되어 재판도 받지 않고 총살되는 사람, 산 속에 남치된 여자들은 나쁜짓 당해 죽고, 사람들의 분노가 커지면서 4·19와 같은 분위기가 60년대 말부터 일어납니다. 후크단(항일인민군)으로 존재했던 구무장 조직이 69년 좌익사상을 가진 신인문(NPA)의 게릴라 조직으로 발전하고 새로운 공산당이 결성되죠."
전체 인구 5천만 중 게릴라만 1∼2만, 실제 활동하는 게릴라군 사이에 내전이 20년 넘게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 필리핀의 오늘이다.
내전상태라 사회가 불안해 마닐라를 비롯 수도권 지역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어 심각한 사회문제를 빚고 있어 우리나라 돈 20만원이면 중산층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날로 심해지는 빈부격차는 국민을 서로 갈라놔 총을 찬 경비원이 지키고 있는 수퍼마켓 입구에는 한 아이는 업고 또 한 아이는 옆에 재운 채 길에서 먹고 자면서 날개 담배를 파는 여인들이 있으며 주식인 쌀 대신 가난한 사람들은 바나나만 먹고살기도 한다.
이처럼 불안정한 사회구조에 가족을 위해서는 자신이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전통적인 가족문화가 결합해 동생 학비, 부모 생계비 등을 벌기 위해 우리나라로 건너온다는 것이다.
한편 중국의 경우 91년 한해에 각 40만이 방중, 방한을 했고 92년 8월 한중수교 이후 교포들의 국내방문이 더욱 많아지고 있다.
"지역정보센타"의 대외정책연구원 안종식씨(33)의 말을 들어보자.
"지난 92년 10월 중국공산당 제 14기 전국대표자대회 때 중요한 결정사항이 있었는데 "시장경제를 주로한다"는 것이었어요. 이는 시장 경제체제의 내용에 주안점을 두고 78년 개혁, 개방이후 중국경제가 점진적으로 변해왔다는 결론을 나타내는 겁니다. 현재 중국에서는 부에 대한 욕구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북경대학의 한 교수가 낮에는 강의하고 밤에는 빵을 만들어 팔아서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요즘 중국사람들은 자신들의 평균 노동자 임금 오만 오천원인데 한국에 가서 백만원만 벌면 일년 살 수 있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 공산당에 비해 현 14기에는 개혁주의자들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시장과 개혁을 다 가질 수 있다"는 입장으로 정책의 근간은 여전히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중국교포 김오순씨도 중국에서 의료보험의 일부를 개인이 부담하게 되고, 땅값은 없지만 주택과 가게의 점유권과 이용권은 개인에게 있다고 한다.
과거의 평생직장에서 원하면 다른 직장으로 옮겨다가 다시 돌아올수도 있고 농촌거주자가 도시로 와서 일정기간을 살 수 있게 하는 등 중국은 변하고 있고 이에 따른 국민의 개인적 문화 욕구도 커지고 있다고 보여진다.
결국 필리핀과 중국의 상황을 봐서는 이들의 입국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늘어나는 외국인 노동자, 뒷걸음치는 노동조건>
그렇다면 현재 국내 노동자들의 생활은 어떠할까?
여기서는 직접적 관련이 있는 건설노동자와 제조업노동자를 중심으로 외국 노동인력의 유입이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자.
2백만호 주택건설로 건설관련 업종이 한창 활기를 띠던 지난 90년, 12월 30일자 매일경제신문에는 "건설인력 부족, 해외인력 수입을 관계부처와 논의하기로 한다"는 식의 기사가 심심치 않게 등장했으며 91년 1월 8일 KBS 9시 뉴스에서는 "용접공 월수입이 300만원, 배관공 월수입이 250만원"이라고 말해 마치 이들이 떼돈을 벌고 있는 것처럼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러한 보도와는 전혀 달라 건설일용노동자가 일할 수 있는 날은 장마철과 겨울철을 빼면 180여일에 불과하며 아침 7시부터 저녁 6시까지 11시간의 힘든 노동에다 안전시설 미비로 하루 평균 두사람 정도씩 죽어나갈 정도로 거칠고 삭막한 것이다.
벽돌 뒷일꾼의 경우 벽돌 한 장의 무게가 1.8키로그램인데 한번에 보통 마흔다섯장씩을 지고 삼·사층 높이의 건물을 하루평균 1백번 정도 오르내려야 하며 쌓기 기술자의 경우 하루 이·삼천장의 벽돌을 쌓아야 한다.
이렇게 힘든 일을 하지만 이들이 받는 임금은 기술자의 경우 하루 6만∼6만5천원이고 쌓기 기술자는 3∼4만원을 받는 것이 고작이다.
더욱이 일자리 자체도 불안정한 데다가 현재는 2백만호 주택건설이 거의 끝나감에 따라 조건은 더욱 나빠지고 있지만 이나마 일자리가 부족해 놀고 있는 사람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형편이다.
한편 이처럼 건설경기가 부진해지면서 많은 일손이 놀고 있음에도 일부 중수·영세업체의 경우 심각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는데 그 이유는 워낙 노동조건이 나쁘고 직종자체의 전망이 어둡기 때문에 보다 나은 환경을 찾아 노동력이 이동하기 때문이다.
종업원 1백여명 정도의 중소 봉제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김미화(25)씨는 "배웠다는 사람일수록 쉬운 일만 찾고 힘든 일을 안 할려는 사고방식도 문제지만 하루 10시간 이상씩 일을 해도 최고급 미싱사 월급이 50만원 정도이니 최저생계도 안되지 않느냐"며 실밥과 먼지로 뿌연 형광등 불빛 아래서 시다일까지 해야 하는 미싱사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결국 건설현장이나 중소·영세 사업장의 임금수준과 노동조건이 나아진다면 생산직을 기피하고 서비스업으로만 빠져나가는 인력을 막을 수 있어 우리나라 사람만 가지고도 아직은 충분하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해외인력이 들어오면서 건설현장의 경우 뒷일꾼의 30퍼센트 정도가 중국교포로 대치되었으며, 식당일의 경우 저임금도 마다 않는 이들 때문에 칠·팔십만원하던 월급이 육십만원 정도로 떨어지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들 저임금 외국근로자가 점차 늘어나면서 국내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벌어지는 부당한 일에도 항의조차 제대로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노동조합 등의 활동도 위축되는 등 부작용이 점차 커지고 있어 이들 중소·영세사업장과 건설현장 노동자들의 위기의식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코리안 드림을 위하여…>
결국 외국이 노동자들의 불법체류를 막는 근본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는 한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밀려드는 이들의 발길은 더욱 거세질 것이며 이들 불법체류자가 늘어날수록 영세·중소기업의 노동자들은 해고의 위협에 열악한 노동환경을 감수할 수 밖에 없고 산업구조조정 역시 늦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정책위원 윤우현(34)씨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현재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용에 따른 동일임금, 동일한 근로조건이 실질적으로 적용되기 어려운 게 객관적인 상황입니다. 필요한 인력 수급이 계획적이고 공식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무작정 들어온 외국인들이 출입국관리법을 어기고 취업한 것이므로 정부는 우선 이들을 차단해야 한다고 봅니다" 라고 노동계의 입장을 밝혔다.
윤씨는 이와 함께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은 체류기간이나 연장 기간이 지나면 일정기간 여유를 둬서 다 내보내도록 해야해요. 이대로 그냥 두면 교육적으로나 사회, 문화적으로 갈등으로 많은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사용자나 정부가 사회발전 수준에 따라 임금수준이 높아지면서 기술혁신과 자동화를 통해 생산성을 높일 생각을 하지 않고 정경유착이나 투기를 일삼는 우리의 기업풍토가 더 문제"라고 산업구조 자체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불법체류자의 노동시장 침투를 막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부에 대해서는 만약 외국인 노동력의 수입이 불가피하다면 "기본적으로 인력수급에 대한 명확한 계획을 갖고 특정한 업종이나 기업에 한정해야 하며 이때 공식적으로 수입되는 부분에 한해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노동자체에 대한 최소한의 보장은 같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생각한다면 똑같은 사람인데 강제적으로 못오게 한다는 게 웬지 비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는 한 국내 노동자의 말은 저임금을 미끼로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기업주와 이들 기업주의 요구대로 무분별하게 노동력을 수입하고 있는 정부당국보다 훨씬 "인간적"이고 "소박"하기까지 하다.
오늘도 인천항과 김포공항에는 옷 보따리 하나만 달랑 든채 낯선 땅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버리고 코리안 드림을 움켜쥐기 위해 중국과 필리핀에서 몰려드는 우리 이웃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바로 얼마전 우리가 월남으로 사우디로 그리고 미국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떠나던 그 모습 그대로…
글/ 오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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