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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문제다]예산"에 덜미 잡힌 지하철 편의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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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 지하철 무료승차 정책을 계기로 지하철 편의시설 설치 여부에 대해 장애우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수년을 끌어온 이 문제에 대해 정부는 어떤 복안을 가지고 있고 장애판에서는 어떤 대응 방침을 세워야 할까. 지하철 편의시설 설치 여부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공방전의 내막을 살펴본다.

<바뀐 정부의 특혜, 지하철 무료승차>
 김영삼 정부, 소위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꼭 한 달여 만에 정부는 "4월 20일부터 장애우는 지하철을 무료로 승차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는 언론에 의해 대서특필되었고 이 소식을 접한 장애우판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라는 반응과 함께 "기만적인 정책"이라는 평가가 잇따라 터져 나왔다.
 왜 그럴까?
 "지하철을 탈수가 없는데 무슨 무료승차냐"라는 반발에서부터 "그 많은 계단을 내려가서 도대체 어떻게 지하철을 타느냐, 그리고 하차한 후에는 어떻게 계단을 올라가느냐, 차라리 승차비를 다 받더라도 지하철을 타게 해달라"라는 분노의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여기에서 이 정책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한국장애인복지체육회 이완우 과장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논리이지요. 허울 좋은 정책 발표보다는 장애우가 실제로 필요한 편의시설을 먼저 설치해야 하는데 더구나 문민정부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가 지금까지의 어느 정부보다도 큰데 장애우 문제에 대한 고민이 너무 없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한편 여태까지 지하철 공사가 실시해 온 장애우 지하철 승차시 50% 감면혜택은 국가차원의 예산충당이 된 배려가 아니라 지하철 공사가 자체 예산을 조달해온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그리고 역시 무료승차 부분도 지하철공사가 책임을 떠맡게 될 가능성이 농후해지고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지하철 무료승차 정책은 요즘 문민정부가 토로하는 "고통분담"보다는, 노력하지 않고 장애우에게 선심 쓰듯 민심을 얻어내려 하는 정부의 얄팍한 속임수 정책에 다름 아니다. 어떤 장애우는 "장애우 수첩을 가지고 50%로 할인된 승차권 하나 사려해도 승무원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데 이제 무료승차니 아예 걸인 취급할 것 같아 장애우 수첩을 버리든지 아니면 일반 승차권을 사야 할 것 같다"고 분노를 표시한다.
 이런 장애우들의 불만에는 아랑곳없이 정부는 오는 4월 20일부터 장애우 지하철 무료승차 제도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대통령이 한번 지시하는 일은 무조건 실시되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정권이 바뀌면서 장애우는 남들이 다 차지하고 남은 그야말로 "떡고물"을 얻은 것에 지나지 않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윗사람이 바뀌면 정책도>
 여기서 서울시 지하철 편의시설 설치에 얽힌 과거의 사실을 들추어보자.
 "앞으로 건설될 지하철 5·6·7·8호선 전역에 각 역사의 실정에 맞는 장애우 편의시설을 설치하시오. 처음 설치할 때보다 보수공사를 하려면 더 많은 예산이 투입된다는 점을 상기하여 이번에 신설되는 모든 역사에는 꼭 장애우 편의시설을 설치하시오."
 91년 부임한지 몇 달되지 않은 때 당시 서울시 이해원 사장은 "장애우 편의시설 설치"에 관한 엄중한 지시를 내린 적이 있었다.
 당시 서울시는 장애우의 편의시설과 관련한 민원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시기였다. 이때 느닷없이 떨어진 이 지시는 서울시의 장애관련 업무담당자들에 의해 즉각 받아 들여졌고 곧바로 추진되었다. 
 서울시는 즉시 지하철건설본부와 협의체계를 마련했다. 그 후 지하철건설본부는 수도권지역에 건설되는 지하철 2기 5·6·7·8호선 82개의 각 역사에 맞는 편의시설모델을 선정했고 설계에 들어갔다. 각 역사의 여건에 맞추어 장애우용 승강설비(엘리베이터 25개, 휠체어리프트, 체어메이트 등)를 적절히 배치, 설치하며 93년 하반기부터 발주되는 모든 역에 설치하도록 하여 장애우의 사회통합에 초석이 되게 한다는 원칙을 세운 것이다.
 서울시와 지하철건설본부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신설될 82개 역에 엘리베이터 12개, 휠체어리프트 13개, 이동형 휠체어리프트 57개를 설치할 예산으로 총 100억여원의 금액을 예산으로 책정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예산이 승강설비 뿐만 아니라 시각장애우용 유도블럭과 휠체어 개찰구, 청각장애우용 안내방송, 공중전화 등 부대시설을 포함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계획안은 채 실행되기도 전에 유야 무야 되고 말았다. 실무자들의 숨가쁜 준비작업은 그야말로 잠깐동안의 해프닝처럼 아무 의미도 없이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이해원 시장이 전격 경질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재가 안 된 이 계획안은 서류함 깊숙이 처박혔고 모든 작업이 중단되었다. "지하철 내 장애우 편의시설 설치계획"은 서울시와 지하철건설본부 내부자료로 서류함 속에 갇혀 고이 보관되어야 했다.
 허탈감을 애써 가라앉힌 실무자들은 장애우 편의시설 관련 민원서류를 처리할 방법만을 생각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차기시장의 의지를 기대해 보기도 하였다.
 그러던 지난해 6월, 신설되는 각 역사에 최대한 장애우 편의시설을 갖추되 현실적인 여건이 어려우면 모든 역사에 체어메이트(이동형 휠체어리프트)라도 설치한다는 최종안에 대한 이상배 시장의 결재가 떨어졌다. 그 후로부터 지금까지 실무자들은 어렵게 결정된 안을 가지고 신설될 각 역사에 대한 사전조사와 아울러 설계 작업에 시간과 정열을 쏟고 있다.
 그런데 이미 토목공사에 착수한 5호선부터 8호선까지의 지하철공사에 과연 장애우 편의시설이 설치될 것인가에 대해 많은 장애우들은 아직도 믿을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다시 말해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윗사람이 다시 바뀌었을 때" 결정된 이 안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불쑥 예산 타령이나 하지 않을지.

<예산에 꺽이는 계획>
 현재 서울시를 비롯한 경인지역 곳곳에서는 지하철과 전철 건설을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과천으로 넘어가는 남태령 고개 역시 지하철 공사로 인해 먼지와 소음에다 교통 혼잡까지 온통 난리법석을 피우고 있다. 일산과 분당으로 가는 길목도 마찬가지다. 공사 현장 곳곳에는 황량한 벌판의 사목(死木)처럼 철근 콘크리트가 서 있는가 하면 도로 중앙이나 한켠에 "공사현장" "우회하시오"라는 팻말이 눈에 쉽게 뜨인다. 서울시 외곽지역 전철 공사는 철도청이 맡고 있다.
 여기서 한가지 사실을 짚어 보자. 지난해 "장애인복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새롭게 건설되는 과천, 일산, 분당선의 모든 역사에 장애우 편의시설을 설치할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철도청에 발송했다. 이에 철도청은 "과천·일산·분당선 전철역에 장애우 승강시설 설치는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므로 그 설치여부는 예산사정을 감안하여 검토중이니 우리 청의 어려운 재정 형편을 헤아려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왔다.
 이에 지난 3월 29일 공대위는 또다시 오는 6월 발주예정인 과천선의 9개 역에 장애우 편의시설을 설치할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하였다. 이에 대해 철도청은 "약 5억여원의 예산으로 장애우 편의시설을 설치할 계획이 있다. 과천선의 아홉 개 역 중에서 정부 제2종합청사로 들어가는 과천 역과 대공원 역에 휠체어리프트를, 나머지 일곱 개 역에는 체어메이트(이동형 휠체어리프트)를 설치할 계획이 있다"며 "아직 결정 나지 않은 사안이기에 뭐라 말할 수 없으나 계획만은 일러줄 수 있다"고 답변했다.
 발주를 두 달여 앞두고도 아직 결정 나지 않았다니, 아무래도 장애우 편의시설 설치는 실행되지 않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가 없다.

<아직도 심의, 보류 중>
 더구나 "과천선과 연결되는 사당역에 장애우 편의시설이 없어서 과천선에 편의시설을 설치하더라도 그 효과는 크게 없을 것으로 안다. 먼저 환승역을 비롯하여 1호선부터 4호선까지의 기존역사에 장애우 편의시설을 설치한 후 과천선이나 일산선, 분당선 등의 역사에 편의시설 설치가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철도청 관계자가 밝히고 있어 신설될 과천선의 역사에 장애우 편의시설 설치는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이미 완공된 과천선의 일부 역인 금정역까지의 세 개의 역에는 장애우 편의시설이 전혀 설치되지 있지 않다. 다시 말해 "계획이 계획에서 끝날 수 있다"는 예를 드러낸 것이다.
 철도청의 한 관계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장애인복지법 등 어느 법을 보아도 장애우 편의시설을 설치 "하라"는 강제규정이 아니라 "할 수도 있다"는 임의규정이다, 만일 법에서 강제하면 철도청은 당연히 시행할 것이나 법이 그렇지 않은데 우리가 무리해서 설치할 필요는 없다"며 강변하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철도청 관계자가 언급한 장애인복지법의 관련 조항을 살펴보자.
 장애인복지법 제33조의 제①항은 "국가 및 지방단체는 장애인이 교통시설 기타 공공시설을 이용함에 있어서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시설의 구조, 설비의 정비 등에 관하여 적절한 배려가 되도록 필요한 시책을 강구하여야 한다"라고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즉 "필요한 시책을 강구해야 한다"라는 단어가 문제인 것이다. 이 임의규정은 우리나라의 장애우 복지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렇듯 장애우가 이 사회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험준한 산"이 도처에 깔려있다.

<꼭 설치돼야 할 지하철 편의시설>
 4백만 장애우는 편견과 정책부재로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소외되고 있음을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앞서 들은 예로서 장애우의 현실을 쉽게 그려볼 수 있다.
 이렇게 발생하는 문제들을 우리나라에서는 늘상 벌어지는 일이라고 체념한다면 별 문제가 없다. 그냥 그렇게 정부가 하는 대로 십년이든 이십년이든 장애우들은 집안에 갇혀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장애우는 이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되기 위한 기본적인 여건조차 윗사람의 생각에 따라 좌우되며, 예산타령이나 늘어놓는 비효율적인 "행정의 틀"을 수용하고 참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가.
 그러나 참고 수용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장애판의 유일한 연대조직인 공대위는 철도청이 보낸 회신에 대한 반박을 통해 "과천선의 모든 역사에 예산상의 이유를 들어 장애우 편의시설을 설치하지 않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며 "정히 예산이 문제라면 장애판의 모든 인적, 물적 요인을 총동원해 기금마련이라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서 "철도청이 계속해서 문제해결책을 찾지 않는다면 장애계의 결집된 힘을 보이겠다"는 입장도 천명하였다.
 지하철역사의 편의시설 설치는 장애우에게 있어서 "사회로 진출하기 위한 첫 디딤돌"이라는 점에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편의시설 설치문제를 놓고 그냥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한 장애우의 소리 없는 외침은 우리가 어떻게 이 문제에 대응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을 가르쳐 주고 있다.

글/박옥순
 
   

 

작성자박옥순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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