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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우리 이웃]시립아동병원의 버려진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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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지는 장애아들이 가는 시립아동병원이 있다. 단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버려지는 장애아들, 그들의 실태와 시립아동병원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았다.

<김정순씨의 다섯 살 때의 기억>
 "저는 전라도의 시골에서 2남 1녀 중 제일 맏이였어요. 시골이라 약장사가 자주 왔어요. 어느 날 저희 집에 약을 대주는 아주머니가 아버지한테 서울에 나 같은 뇌성마비 장애아를 맡아서 먹을 것도 주고 입을 것도 주는 곳이 있다는 얘기를 하는 것을 들었어요. 엄가가 외가댁 가자고 해서 업혀서 오다가 내가 잠든 사이 엄마는 중간 휴게실에서 내렸고, 엄마가 화장실 간 줄말 알았는데 깨어보니 어떤 모르는 아줌마가 옆에 앉아 있었어요. "너를 적당한 데다 내려 주라"고 하면서 엄마가 부탁하고 갔대요. 그 아줌마는 옛날 사직동에 있었던 시립아동병원 앞에 나를 내려놨어요. 점심때쯤 하얀 옷을 입은 의사 선생님이 나오셨는데 "오늘, 또 하나 버려졌네"라는 말을 하면서 나를 데리고 들어갔어요. 그때가 다섯 살이었어요."
 지난 88년 서울장애자 올림픽 때 투포환과 투곤봉 종목에서 4위를 했던 김순정씨(24)는 어릴 적에 겪었던 일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김순정씨는 그렇게 "버려진 아이"가 되어 시립아동병원에 들어와 살았다. 지난 85년도에 강동구 상일동에 있는 주몽 재활원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시립아동병원은 김순정씨의 주거지였다.
 뇌성마비 장애를 갖고 있는 이은정씨(21) 역시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10살이 되던 해 고모와 새엄마랑 같이 서울로 올라왔는데 일주일 후 찾으러 오겠다며 삼육재활원 문턱에다 자기를 놓고 가더니 소식이 없었다. 그 후 부모가 없다는 처분을 받고 경찰서로 넘겨졌고, 시립아동병원에서 청소년기를 보내야 했다.
 김순정씨와 이은정씨의 가슴에는 엄마 아빠의 모습보다는 하얀 옷의 간호사 엄마와 글자를 가르쳐준 특수교사가 더 많이 남아있다. 버림받은 장애아들의 고향 "시립아동병원"은 어떤 곳일까.

<시립아동병원 2층 병동 아이들>
 양재역에서 성남행 버스를 타고 10여분 가노라면 길 오른쪽으로 "시립아동병원"이란 커다란 간판이 붙은 높지 않은 흰색 건물이 논에 들어온다. 군데군데 보이는 비닐하우스와 나지막한 야산의 나무들, 물씬 풍겨오는 흙 냄새가 한가로움을 느끼게 한다. 정문을 들어서면 이 병원이 예사로운 병원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우선 병원 안으로 들어와도 진료를 기다리는 손님이나, 돌아다니는 환자가 눈에 띄지 않고 매우 조용한 것만 봐도 색다른 병원임을 알 수 있다.
 건물 2층에 있는 병실 복도로 들어서면 양옆으로 즐비해 있는 병실안에 갖가지 형상을 하고 침대에 누워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투명한 유리창을 통해 보인다. 이 병원은 서울에서 버려지는 장애아들이 들어와 치료를 받고 다른 수용시설이나 입양기관으로 가기 전까지 살아야 하는 "장애아수용병원"이다. 버려지는 장애아들을 데려다가 치료를 해주는 장애아 진료소로는 전국에서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2층에 있는 병실에는 신생아부터 스무살이 넘는 사람들까지 병실에 누워 치료를 받고 있다. 장애우와 무관하게 살아온 사람의 눈에는 "설마 저런 아이들이 있었나" 할 정도로 충격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어찌 보면 기형으로 보이기도 하는 일그러진 모습부터 뇌성마비, 정신지체, 자폐 등의 중증 장애를 복합적으로 안고 있는 아이들이 갇혀서(?) 치료를 받고 있는 것이다.
 조산아실에 있는 한 달이 갓 넘은 옥동이와 한 달도 채 안 된 경성이는 지난 3월에 동부시립병원과 종로구청에서 넘어왔다. 옥동이는 별다른 장애가 아직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경성이는 귀가 하나 없고 머리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입술이 파여 우유를 제대로 못 빨아 코부터 위까지 연결된 고무호스를 통해 우유를 받아먹고 있는 경성이는 핏덩이 신생아여서 애처로움을 더해 준다.
 
세형이는 이제 넉 달이 넘은 아기이다. 92년 11월 미숙아로 태어나 태어난 지 하루만에 버려져 강동경찰서를 통해 이곳 병원으로 넘겨졌다. 별다른 장애 증상이 없어 시립아동상담소를 통해 국내 입양이 결정되어 있다.
 올해 스물 두 살인 김미라씨는 뇌성마비 장애우로 79년 2월 21일에 입원했으니 벌써 14년이 넘었다. 7살 때 남대문서를 거쳐 이곳으로 왔는데 병원 규정대로라면 18세가 넘어 퇴원해야 하는데도 달리 갈데가 없어 머물러 있다. 김미라씨는 4∼5세 가량 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어린아이의 신체구조를 가지고 있다. 전혀 거동을 할 수 없어 하루종일 누워 있어야 하지만 늘 얼굴에는 미소를 잃지 않는다. 이름과 나이를 물으면 똑똑하게 대답한다.
 이렇게 각종 장애를 안고 있는 220여명의 장애아들이 조산아실에서, 영아실에서 또 중증장애아실에서 치료를 받으며 또 무작정 누군가 데려가 주기를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다.
 "중증장애아실에 있는 아이들은 약이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는 아이들이에요. 중환자들을 많이 보긴 했어도 우리나라에 이런 애들이 있었는지 처음엔 많이 놀랐어요. 하지만 이름을 부르면 다 알아듣고, 만져주면 웃고, 우유가 오면 좋아서 엎지르기도 하는 것을 보면서 "이 아이들도 할 수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드니까 보면 불쌍하기만 해요. 버리는 부모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아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그저 막막하죠."
 중환자 병실에 있는 간호사 양미녀(27)씨의 말이다.

<버려지는 아이 한 해 5천명>
 시립아동병원은 48년, 개원 시부터 기아·미아들의 전문진료기관으로 출발하였다. 서울시가 사직동의 경성산부인과를 인수해서 보건병원, 보육병원 등의 명칭으로 불리다가 69년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고 78년에 서초구 내곡동의 현 위치로 옮겨왔다. 
 일반 아동환자의 진료도 받지만 이들 외래환자는 아주 일부이고, 입원자 중 대부분은 갈 곳 없는 장애우들이 치료를 받고 있다.
 현재 입원한 아이들의 수는 340여명, 이중 대부분의 아이들이 기아와 미아들이다. 그러니까 경찰서나 구청 등으로부터 넘겨진 아이들로 치료도 받게 하고 다른 곳으로 옮길 때까지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92년 말 통계로 보면 5세 미만의 아이가 29.6%, 6∼10세가 29.9%, 11∼15세가 20.5%이고 입원 기간이 지났지만 달리 갈 데 없어 계속 있는 18∼25세의 장애우도 8.9%나 된다.
 이들의 평균 입원기간은 6∼9년이 29.7%, 10년 이상이 22.2%로 장기 입원해 있는 중증의 장애우들이 많다. 뇌성마비, 정신지체, 영양소모증, 골조송증, 선천적뇌수종, 선천적소두증, 다운증후군, 심장질환… 등 그 병명이 60여 개나 되고 보통 한 아이가 평균 6개의 장애와 질병을 갖고 있어 중복장애아가 많다. 심한 경우 16가지의 장애와 질병을 갖고 있는 아이도 있다.
 "한 해에 100∼150명 정도의 장애아들이 우리 병원으로 옵니다. 처음 84년도에 부임했을 때는 350여명의 아이들이 입원해 있었어요. 아이들 연령도 평균 4∼5세로 낮았고 장애 정도도 그리 심하지 않았어요. 10년이 지난 지금은 중증의 장애아동들이 많고 평균 연령도 5∼6세로 높아졌어요. 89∼91년 즈음에는 환자가 4백 명이 넘어설 만큼 많았던 적도 있었죠. 좀 상태가 나아졌구나 싶어 수용시설로 보냈던 아이들이 있었는데 제 삶을 충분히 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 안타까웠어요."
 
시립아동병원 간호과장 최징자씨(50)는 "88년 장애자 올림픽을 계기로 장애아 수용시설이 많이 늘어나 대부분의 아이들이 시설로 보내진다"고 덧붙인다.
 보사부 통계를 보면 91년 기아 수는 3, 630명, 92년에는 3, 294명이고 미아 수까지 합치면 한 해에 평균 5천명에 이른다고 밝히고 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매년 1만 2천명에서 1만 3천명 정도의 기아가 발생했는데 90년대 들어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한국어린이재단 복지부장 이근배씨는 "산아제한을 통한 절대 아동수가 많이 줄었고 경제적 수준이 많이 향상된 것에 또 여성들의 직업이 많이 안정된 것과 지역탁아시설의 증가 등으로 어머니 혼자서도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된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전체 기아발생 수는 줄었다 하더라도 분만과정에서 발생하는 장애아동 수는 한해 71만 여명의 신생아 중 4%인 3만 여명으로 점차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장애아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이상 상당수의 아이들이 버려지고 있어 버려지는 장애아의 수는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장애아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만…>
 버려져서 시립아동병원으로 온 아이들은 다시 여러 곳으로 보내진다. 92년 한해동안 1백 여명의 기·미아가 들어왔고 사망까지 포함하여 병원을 나간 수는 145명이었다. 이들 중 어느 정도 질병이 치료되고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한 아이들은 주로 장애우 수용시설로 보내진다.
 92년도에는 서울에 있는 수용시설인 상계동의 쉼터요양원, 은평구 구산동의 은평아동복지천사원, 송파구 문정동의 충현복지원등에 총 65명이 보내졌다.
 12명의 아이들은 다행히 부모가 되찾아 갔고, 국내 입양된 아이가 33명. 국외입양자가 3명이었다. 또한 사망자가 32명이나 되어 신생아 상태에서 아니면 태어난 지 몇 년 되지 않아 죽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내입양의 경우는 비장애아로 신생아상태에서 6개월 이내에 시립아동상담소를 통해 이루어진다. 미국이나 스웨덴 등의 국외입양은 주로 입양전문기관을 통해 입양되는데 정부의 해외입양 금지조치로 92년에는 3명에 그쳤다.
 하지만 수용시설에서조차 제대로 살아가기 힘들 정도로 중증의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더 이상 갈곳이 없다. 18세를 넘기고도 병원에 입원 수용되어 있어야 한다. 이 아이들은 언제 죽음을 맞을지 모르는 운명 속에서 하루 하루를 살고 있다.
 
"저의 바람은 부모님이 자식을 어쨌든 버리지 말아달라는 거죠. 끝까지 지켜봐 주시면서 우리가 혼자 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정 안될 때만 도와주시면 되지 않아요?"
 김순정씨는 "버려진 아이라는 사실로 인해 더 깊은 상처를 안고 살수밖에 없다"고 덧붙인다.
 "저는 장애아를 내 아이처럼 돌보자, 왜 버리는가, 장애우를 차별하지 말아달라고 말할 수가 없어요. 국가의 책임이 크기 때문이죠. 우리 병원에 많은 중증장애아 들을 국가가 병원을 지어 치료를 해주고 재활에도 도움을 준다면 버리는 부모가 줄어들지 않겠어요? 시설에 수용될 수 있는 아이 정도면 부모가 키우면서 그 아이를 양육하고 치료시키고, 교육도 시킬 수 있다고 봐요. 그에 대한 충분한 경제적 지원 역시 국가가 해주어야겠죠. 그것만이 버려지는 장애아가 생기지 않게 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최징자 간호과장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글/오숙민
 
 

작성자오숙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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