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1]정신보건정책의 개혁이 시급하다.
본문
<역대 3위의 대형 화재사건(?)>
얼마 전 논산에 있는 정신과 개인의원에서 불이나 36명의 환자가 불에 타 죽는 사고가 일어났다. 인명 화재 사고로는 역대 3위에 해당하는 대형 화재사건이었는데 화재 규모에 비해 사망자가 많았던 것은 환자들이 밀폐된 공간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건이 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벌써 개인의원을 포함해 정신과를 둔 병원에 화재보험을 들도록 강제화 하는 등 관계기관에서는 사고 원인을 찾고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지만 아마도 근본적인 원인은 찾지 못할 것으로 생각된다.
하루는 보건소에서 찾아와 환자들의 비상 탈출계획을 작성했느냐고 물어 여태까지 마련 못했다고 하니까 행정위반이라고 한다. 비상구가 있느냐고 물어 우리 병실은 문이 허술하기 때문에 따로 비상구를 만들 필요성을 못 느꼈다고 하니, 이번에는 병실 문이 허술하니까 또 문제라고 한다.
이번 사고를 당한 환자와 보호자의 고통은 대단히 클 것이다. 특히 정신병을 앓고 있거나, 알콜중독에 시달렸던 환자들은 사회의 곱지 않은 눈총을 받아오다가 한 많은 세상을 하직했을 것이다.
이 사건은 병원이 화재비상대책을 세우지 않았거나 화재보험에 들지 않아서 생긴 것은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병실에 환자들만 있었기 때문이다.
의료진이나 병원직원의 보호를 받지 않고 있는 환자들은 화재 이외에도 다른 사고를 언제든지 당할 수 있다. 직원이 없어도 야간병실이 운영되는 현실이 바로 우리나라 정신보건의 현실이다.
<가장 어두운 곳에, 가장 나쁜 환경으로>
정신과병동은 대학병원이든, 일반병원이든 그 병원의 가장 후미진 곳에 있거나, 그 병원에서 병실환경이 제일 나쁘다. 그래도 일반병원의 정신과병동은 병동으로서의 기본적인 환경은 유지하고 있다.
정신병원이라고 불리워지는 곳은 병원마다 다소의 차이는 곳은 병원마다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이곳이 환자를 치료시키는 병동이라는 말을 들어야만 병원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병실 환경이 열악하다.
관리를 쉽게 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병실과 병실 사이의 벽을 없애거나, 벽을 반쯤만 만들고, 화장실의 벽 또한 반을 제거하여 환자가 용변 보는 것을 누구든 관찰할 수 있게 만든 곳도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좁은 공간에 환자를 더 많이 채우기 위해 내무반식 병동이 유행하고 있는데 지방자치단체의 시립정신병원을 사립정신병원에 위탁 경영시키는 곳일수록 이런 내무반식 병동이 유행하고 있다.
한때는 정신요양원의 열악한 환경이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요양원식 병원이 세워지고 있는 현재는 정신요양원보다는 낫지만 환자를 치료하는 곳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열악한 병동이 정신병원 내에 지어지고 있다.
일반병원의 100병상 이상쯤 되는 거대 병동인 경우도 요양원식 병동으로 탈바꿈해 왔으며 마찬가지로 개인의원의 경우도 병상 규모가 어느 정도 큰 경우에는 예외 없이 요양원식 병동으로 운영해 왔다.
1984년 일본 우쯔노미아 정신병원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병원에 입원 중이던 환자 2명이 직원에 의해 구타당하여 살해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전 일본이 발칵 뒤집혔고, 결국에는 UN에서까지 일본의 열악한 정신병원 환경을 지적할 정도로 커다란 반향이 일어났으며 사건이 수사되면서 일본정신병원의 열악한 치료현실이 집중적으로 발표되었는데 환자의 밀잡화, 비의료인력의 채용 그리고 환자혹사가 그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은 어느 나라 정신병원 역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선진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1950년대 후반부터 정신병원의 열악한 환경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정신병원 정신과 환자를 단독으로 입원시키면서도 병상 수는 전체 의료병상의 반을 차지했기 때문에 그 많은 병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의료진이 적을 수밖에 없었고, 환자를 적정 수 이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격리수용과 반비례하는 비용이론>
환자들은 치료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사회로부터 격리 수용을 당하는 대상이었다. 수많은 임상과 중의 하나에 불과한 정신과의 병상 수가 다른 과 전체병상 수와 동일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입원비는 수용차원에 머물도록 최소한의 비용만이 지불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정신병원은 나날이 숫자가 늘어가고 수용인원이 늘어 비용은 엄청나게 커져 가건만 환자의 치료에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정신질환자를 치료하는 약물이 개발되었다 동시에 "정신질환자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민으로서의 기본권을 누릴 대상"이라는 인식이 거역할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이러한 의학의 발전과 인식의 변화로 환자들은 사회에 나가 생활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지난 30년 동안 정신병원은 규모가 사 분의 일로 축소되었다.
환자 수가 대폭 줄어들면서 많은 정신병원이 경영의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어떤 병원은 폐허화되기도 하였다.
1992년 영국정부는 정신병원을 2000년도까지 더욱 축소시킬 계획을 발표했는데 현재 5만 명의 정신질환자가 수용된 90개의 정신병원을 2000년까지는 45개로 축소시키고, 평균 600명이 수용되고 있는 한 정신 병원의 규모를 1995년까지는 400병상 규모로 축소시키며 2000년까지는 250병상으로 축소시킨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그 계획서는 영국정신보건의 향후목표를 궁극적으로 정신병원을 폐지시킨다고 밝히고 있으며 이와 같은 정신병원의 강제축소 내지는 폐쇄정책은 선진국에서는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거꾸로 가는 한국의 정신보건정책>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가?
정신요양원은 전국에 73개소가 있고, 정신병원은 25개소가 있다. 숫자상으로는 영국을 능가할 정도로 많다. 더욱이 이처럼 많은 수용소를 가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지방자치단체의 위탁경영이라는 명목으로 정신병원의 규모가 커져가고 있다.
영국은 앞으로 7년 안에 모든 정신병원의 규모를 250병상 이하로 축소시키는데 우리는 지난해 2,800병상이나 되는 정신병원의 규모를 더 크게 할 계획까지 세운바 있다.
선진국의 경우 정신병원이 폐쇄되거나 축소되고 있는 경향이 보편적인데 반해 아직 변하고 있지 않는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은 자국의 언론기관이나 UN등에서 아무리 정신병원의 문제와 정신질환자의 인권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여도 정신병원의 규모를 축소시키지 못하고 있다.
일본 후생성에서는 향후 5년 간 8만 병상을 축소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하여도 일본정신병원협회에서는 꿈적도 하지 않는다. 이유는 일본의 정신병원은 90%이상의 사립병원이기 때문에 병원의 폐쇄나 축소가 거의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더욱 불행한 것은 우리의 정신보건정책이 일본을 따라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신병원은 사기업화되었고, 아직도 정신질환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는 국민들의 잘못된 인식에 편승하여 열악한 환경의 대규모 정신병상을 짓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에서 활성화되고 있는 일반병원 정신과의 정신과 병동은 "수지가 안 맞는다"는 현실적인 제약에 의해 속속 폐쇄되고 있다. 1991년 4월 전국 189개 일반병원에 정신과가 개설되었다가 1992년 9월에는 156개로 줄어들어 1년 반만에 총 33개의 일반병원에서 정신과 병동을 폐쇄시켰다. 선진국과는 정반대의 현상이다.
<제2, 제3의 논산을 막기 위해>
이번 논산 개인의원의 화재사건은 한밤중에 정신병동에 직원이 한 명도 없었기에 일어난 사건이며 이는 정신병동이란 환자를 치료시키는 곳이 아니라 수용시키는 곳이라는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편견이 지배하는 한 온 나라의 정신병동이 논산의 병동 같을 수밖에 없으며 실제로 의사 인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정신병원의 의사 인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정신병원의 경우 논산의 개인의료원보다 더욱 열악한 것이 현실이다.
보호자는 환자를 장기 수용시키기를 바라고, 국가나 의료보험은 정신질환자의 치료를 위해 환자를 격리시킬 시멘트 건물을 짓는 데에는 막대한 돈을 들이면서도 치료를 위해서는 최소한도의 수용비용밖에 주지 않고 있다 .
실제로 이번 사고가 난 논산 병원에는 반정도의 환자가 월 45만원의 의료보호환자였다. 월 45만원은 한 사람의 한달 생활비로는 가능한 비용이지만 병원에서 정신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비용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적은 비용이다.
의료보험인 경우도 1991년도 보험통계에 의하면 월 46만원에 불과해 의료보호와 다르지 않은 반면 전체의료 평균은 132만 이었다. 이처럼 현재 정신질환자의 의료체계는 일반의료와 같은 체제를 유지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일반병원에서는 정신병동이 없을수록 경영에 유리하기 때문에 정신과를 개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이 결국 수용소인 정신병원만을 키우고 있으며 논산의 화재사건은 바로 이러한 의료체계가 불러온 "필연적"인 결과였던 것이다.
일반병원 정신과에서 단기 치료중심으로 정신보건정책을 전환할 경우 우리나라의 경우 2만 병상 미만의 정신병상으로도 환자를 치유시킬 수 있다 그러나 정신병원 중심의 수용정책을 시행할 경우 실제로 서구의 1950년대처럼 우리에게도 10만 병상이 필요할지 모른다.
10만 병상을 유지하면서 환자들에게 인간 이하의 열악한 삶을 살게 하느니, 2만 병상 이하로 의료다운 의료를 제공하는 것이 국가나 환자 모두에게 유익함에도 우리나라의 현실은 전혀 개선의 여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논산의 사고는 화재보험이나 비상탈출구를 세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정신병동이 최소한 일반병원의 흉내만이라도 낼 수 있을 정도로 운영되었다면 이런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정부의 정신보건정책이 지금처럼 수용화 정책만 고집한다면 제2, 제3의 논산 사건이 또 다시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글/김병후<정신과 전문의·연회신경정신과 의원 원장>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