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껍데기뿐인 이슬람복지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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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 복지를 목적사업으로 해서 정부로부터인가를 받은 복지법인이 탈법의 온상으로 전락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최근 문제화되고 있는 사회복지법인 이슬람복지재단 사건은 개인이 사회복지사업법의 허점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법인을 치부의 수단으로 삼으려했던 흔적을 역력하게 드러내고 있다. 함께 걸음은 하나의 생생한 사례로서 이슬람재단 사건을 재구성해 보았다. 참고로 아래 내용은 재단 차상진 이사장 및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서 쓰여진 것임을 밝혀둔다.
<사라진 기본재산>
이슬람복지재단 사건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대략 6명 정도이다. 재단 차상진(71세) 이사장, 홍중기 이사. 문세주 이사, 최일수 이사와 재단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곰두리봉사대 김만융 회장과 장애우 김영기씨가 바로 그들이다. 그밖에 조연으로는 사채업자와 부동산업자 2-3명을 꼽을 수 있다.
여기서 먼저 언급할 것은 이 부분은 주로 이사들에 의해 집중적으로 작업이 이루어졌으며 그 시기는 88년 중반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당시 이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렇다.
자칭 평생 교육사업에 헌신해 왔다는 차상진씨는 학교법인 경남학원 이사장으로 있었다. 경남학원은 구로동 81-3번지에서 경남실업기술 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말뿐인 학교에 지나지 않았고 어떻게든 시가 1백억원에 달하는 학교부지 1천 2백평을 팔고 외곽지역으로 이전을 해서 시세차익을 남겨야 할 입장이었다.
홍중기씨는 차상진씨가 경영하는 학교의 영어교사로 재직하고 있었으며 최일수씨는 주한 아랍에메레트 대사의 개인 운전사였다. 그리고 문세주씨는 이태원에 있는 한국 이슬람제단 이사장을 역임했던 인물로 약국을 경영하고 있었다. 특기할 점은 차상진씨 외에 나머지 세 명은 모두 이슬람교 신자라는 것이다.
법인 설립의 발단은 문세주씨가 한국이슬람재단의 내분으로 이사장직을 물러나면서 시작된다. 평소 친분관계가 있었던 세 사람은 곧 한국이슬람재단에 대항할 수 있는 별도의 법인을 만들어 아랍권의 지원을 받기로 합의했고 자연스럽게 역할을 분담해 최일수씨는 아랍에메레트 대사의 후원을 이끌어 내고 홍중기씨는 법인에 돈을 댈 물주를 물색하는 일에 나서게 된다.
이때 홍중기씨에 의해 선택된 인물이 바로 차상진씨였다. 당시 차상진씨는 학교를 이전하기 위해 사채업자 신아무개씨의 돈을 차용해 지금 노원구 구의회 의원으로 있는 최아무개씨 소유 중계동 129번지 일대 자연녹지와 공원용지 4천평을 등기를 하지 않고 매매계약서만 작성해 구입해 놓고 있었다. 매매가격은 4억 5천만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차상진씨는 이전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던 중계동 땅이 녹지로 묶여 있어 관할 구청의 불허로 이전이 이루어지지 않자 애를 태우고 있었는데 이 사실을 안 홍중기씨가 접근해 "중계동 땅 일부에 복지법인을 설립, 복지회관을 짓는다고 서울시에 녹지 해제를 요청하면 나머지 땅도 충분히 대지로 변경이 가능하다"고 부추겼다는 것이다.
녹지를 대지로 변경할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진 차상진씨는 복지법인을 만드는데 동의했고 그 후 법인을 만들기 위한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차상진씨 말을 빌리면 "처음 생각에는 노인이나 아동복지 법인을 만들려고 했는데 마포에 있는 법인 연구소에 상의해본 결과 그 분야는 법인이 난립해 법인인가를 받기 힘들다고 해서 법인연구소에서 추천한 인가를 받기가 비교적 쉽다는 장애우 분야로 결정했다."
그래서 수수료 2백만원을 법인연구소에 주고 법인인가에 필요한 제반서류를 만든 다음 차상진씨는 89년 1월 자신은 경남학원 돈이라고 주장하지만 이아무개씨로부터 잠시 빌린 돈으로 확인된 5억 4천만원 잔고증명과 명목상 최아무개씨로부터 중계동 땅 4천평 중 1천평을 목적사업용으로 기증 받은 것으로 해서 이를 법인의 기본재산으로 보사부에 사회복지법인 설립인가신청을 했다. 이때 중계동 땅 일부를 법인 재산으로 넣은 것은 법인인가를 받고 난 후 그 땅에 복지회관을 짓는다고 관에 지목변경을 요구하기 위해서였음은 물론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서류 상으로는 하자가 없었던 이슬람복지재단은 이 해 2월 14일 보사부로부터 지체부자유자 재활시설 설치 운영, 지체부자유자 직업 훈련 및 직업보도 사업, 그밖에 이 법인의 목적달성에 필요한 사업을 목적사업으로 못박은 사회복지법인 설립인가증을 받는다.
이상 언급한 이슬람복지재단 설립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법인 설립에 참여한 인물들의 불순한 동기이다.
살펴보았듯이 장애우쪽과는 아무연관도 없고 관련도 맺고 있지 않을뿐더러 사회복지사업에 대한 의지도 갖고 있지 않으면서 문씨와 최씨와 홍씨는 아무 법인이나 만들어 끈을 가지고 있던 아랍권의 지원을 받아 치부를 하기 위해, 그리고 차상진씨는 불법으로 구입한 땅의 지목변경을 위해 각각 사회복지 법인 이슬람복지재단 설립에 발벗고 나선 것이다.
<땅 투기를 위해 법인 이용>
사회복지사업법에 의하면 사회복지법인 인가를 받은 법인은 설립인가를 받은 날로부터 3주 이내에 반드시 법인등기를 마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인 등기를 마친다는 것은 쉽게 말해서 설립인가 신청 때 넣은 기본재산을 정부에 귀속시킨다는 것을 뜻한다. 이 점에 있어서 이슬람복지재단도 예외는 아니어서 재단도 당연히 3주 이내에 법인등기를 마쳐야만 했다. 그런데 차상진 이사장을 비롯한 이사들은 이 규정을 어겼다. 아니 정확하게 말한다면 지킬 수가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물론 동기에서 시작한 법인이고 보니 도처에서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 먼저 차상진 이사장에게 돈을 빌려 주었던 사채업자 신아무개씨가 돈의 반환을 요구했다. 당연히 차상진 이사장은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고 그러자 신아무개씨는 땅에다 근저당권을 설정해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애초 차상진 이사장에게 땅을 판 최아무개씨도 차상진 이사장이 잔금을 마저 주지 않는다는 것을 빌미로 등기 이전을 거부했다. 이래서 중계동 땅은 법인 재산으로 등기를 마칠수가 없었다.
땅 외에 기본재산 5억 4천만원은 또 어떤가. 만약 이 돈이 차상진 이사장 개인 돈이었으면 문제는 있지만 사유서를 쓰고 돈만이라도 법인의 기본재산으로 등기를 마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가상은 말 그대로 가상에 그치는 것이고 실제로는 차상진 이사장 자신도 인정하고 있지만 도무지 그럴 마음이 없었을 뿐더러 그럴 여건에 처해 있지도 않았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그 돈은 잔고증명을 만들기 위해 이아무개씨에게서 잠시 빌려온 돈에 지나지 않았기에 곧 돌려주어야 했던 것이다.
사장이 이러하다면 애초 법인설립인가신청 때 넣은 기본재산은 모두 다 허구라는 말이 된다. 즉 법인의 대표 차상진 이사장은 지목변경이 가능하다는 말만 믿고서 남의 돈을 끌어다가 어떻게 해보려다가 벽에 부닥친 것이다.
그때 일이 그쯤에서 끝났으면, 보사부가 나서 직권으로 등기를 마치지 않은 것을 이유로 법인을 해산시켰으면 더 이상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보사부는 어떤 이유에선지 직무를 유기 했다. 보사부가 취한 조치는 휴면법인으로 이슬람복지재단을 분류해 놓은 것 정도였다.
그래서 그 후로 이슬람재단, 특히 중계동 땅을 둘러싼 잡음은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 이제 그 전말을 추적해보자.
90년 3월 차상진 이사장이 사기죄로 덜컥 경찰에 구속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내막은 88년 초 차상진 이사장이 우진기업이라는 회사에 구로동 학교부지 1천2백평을 팔기로 하고 매매계약서를 체결했는데 약속대로 학교를 이전하지 않자 우진기업에서 그를 사기죄로 경찰에 고발한 것이다.
꼼짝없이 유치장에 갇힌 차상진 이사장은 자신의 말에 의하면 "변호사를 선임할 돈이 없어" 동생을 시켜 중계동 법인 재산을 포함한 땅 4천평을 전아무개씨에게 7억원을 받기로 하고 우선 계약금으로 5천만원을 받은 뒤내다 팔았다.
땅을 판 다음 차상진 이사장은 문교부로부터 공원녹지에도 학교를 건립한 사례가 있다는 유권해석을 받아내 "중계동으로 학교를 이전할 수 있었는데 서울시가 거부를 해서 이전을 못했지 처음부터 사기를 칠 생각은 아니었다"는 요지의 판결을 받아내는데 성공해 경찰서에서 나왔다.
경찰서에서 나온 후 한동안 차상진 이사장은 전아무개씨로부터 땅 값을 받아내는 일에 골몰해야 했다. 전아무개씨가 차상진 이사장이 근저당 설정을 해지 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이유로 잔금 지불을 차일피일 미뤘던 것이다. 결국 차상진 이사장은 2억 8천만원을 받고 나머지 돈은 받을 수가 없었는데 왜냐하면 근저당 설정을 했던 사채업자 신아무개씨가 돈을 받을 수 없게 되자 중계동 땅을 법원을 통해 경매에 부쳐 버렸기 때문이었다. 땅에 대한 1차 경매는 91년 12월에 이루어졌고 이렇게 해서 차상진씨의 중계동 땅에 대한 투기는 실패로 끝났다.
한편 중계동 땅과는 별개로 차상진씨는 말뿐인 복지법인을 이용해 본격적인 땅 투기로 나선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데 김영기씨에 의하면 "차상진 이사장이 법인 설립인가를 받은 후 아무 사업도 하지 않고 면목동, 서초동, 신촌 등등 여러 군데에서 땅 투기를 자행한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른 지역은 생략하고 대표적인 사례로 면목동 부분만을 살펴보기로 한다. 계약서에 따르면 차상진 이사장은 89년 5월 면목동 산 32번지 일대 자연녹지 4천평을 부동산업자 김아무개씨로부터 11억원에 구입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로부터 두 달 후인 7월 7일 차상진 이사장은 보사부에 협조 공문을 보내는데 특이하게 주한 이슬람권 대사의 추천서 1부를 곁들여 발송한 공문에서 차 이사장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구구절절이 읊고 있다.
"존경하는 사회국장님, 20여년간 기술학교를 운영해온 경험을 토대로 장애자를 위한 재활 및 직업기술학교를 건축하려고 면목동에 약 4천평의 자연녹지 및 공원지역 대지를 구입했습니다. 서울시청 시설계획과로부터 건축허가 과정에 어려움이 있어 사회국장님의 협조 및 추천을 서울시장에게 해주시면 본재단 사업목적을 수행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본 재단에서 알아본 결과는 자연녹지 및 공원용지에 20%의 건축이 사회복지시설은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현재까지 건축허가를 얻지 못하여 본 재단의 사업이 지연되므로 국장님의 협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현 국가시책으로 장애자를 위한 직업 훈련에 인가 내지는 확장을 권장하면서 일선 관계자와의 협조 부재로 인하여 본 재단의 어려운 사정을 국장님께 간곡히 청원합니다."
이상 언급한 사실은 복지법인이 땅 투기에 이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비록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그 과정 자체는 심각성을 일깨우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다시 언급하지만 보사부의 직무유기는 너무나도 많은 문제점을 파생시키고 있다. 이슬람복지재단의 경우만 보더라도 단순히 땅 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는 장애우들을 끌어들여 피해를 줌으로써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재활원 원장만 세 명>
이슬람복지재단 이사 홍중기씨는 90년 10월 구로동 경남기술학교교내에 문아무개씨를 끌어들여 화장지 제조 공장을 세웠다. 장애우 십여명을 데려다 놓은 공장 이름을 이슬람복지재단 산하 "안사리재활원"이라고 붙였다.
김만융씨가 회장으로 있는 "곰두리봉사대"가 역시 구로동 건물로 들어온 것은 이보다 늦은 91년 9월이다. 김만융씨에 의하면 당시 안면이 있던 장애우 임필선씨로부터 "내가 이 법인의 책임자인데 혼자 할려니 벅차다. 형님이 같이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처음 제의를 받았는데 마침 봉사대 회원들이 "곰두리봉사대가 임의단체니까 활동에 지장이 많다. 어떻게든 법인 모자를 쓰고 정상적인 활동을 하자"고 독촉을 해오던 터라 법인 산하로 들어가기로 마음먹고 차상진 이사장을 만나 3개월에 걸친 줄다리기 끝에 법인 부설로 들어가기로 합의를 봤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당시 차상진 이사장이 곰두리 봉사대를 순순히 받아준 것은 자기네 사업실적으로 우리를 이용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김만융씨는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당시 서울 마천동 종합복지관에서 성물을 제작하는 장애우 자립작업장을 운영하고 있던 김영기씨는 92년 4월초 이사 홍중기씨를 만나 재단에 들어가게 됐다. 주목할 점은 홍중기씨가 김영기씨에게 접근한 이 시기는 문제의 중계동 땅이 4회 유찰을 거듭한 끝에 5차 경매를 불과 보름 앞두고 있었던 때라는 것이다.
홍중기는 이사는 김영기씨에게 "내가 법인 상임이사다. 애써서 장애우 복지법인을 만들어 놨는데 최아무개라는 사람이 땅을 기증해 놓고 서류를 안 해줘 지금 보사부에 법인등록을 못시키고 있다. 장애우들을이 들어와서 땅을 점거하고 있으면 최아무개가 서류를 해주게끔 되어 있다. 그것만 받아내면 땅을 장애우들을 위해 쓸려니까 어차피 김선생 거나 마찬가지니 들어오도록 하시오"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김영기씨 입장에서 보면 솔깃한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며칠 후 차상진 이사장이 복지관으로 직접 찾아왔다. 차상진 이사장은 한술 더 떠 "내 평생 숙원 사업을 이제 이루는 것 같다. 하루속히 작업장을 중계동으로 옮깁시다"라고 말한 후 이어 "내가 복지법인을 내서 여태 운영하느라고 돈이 없습니다. 대신 사업자등록증을 내면 누가 돈을 주기로 했는데 중계동 근거가 없어서 지금 사업자등록증을 못 내고 있어요. 거기 작업장을 세워서 최아무개가 서류를 해 주면 내가 지을 테니 우리 복지회관을 지읍시다. 그럴려면 먼저 중계동에 가건물을 만들어 놔야 하는데 김영기씨가 그걸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어왔다.
김영기씨는 "우선 비닐하우스를 치겠다"고 대답했다. 차상진 이사장은 "좋습니다 복지회관을 지으면 한 부분은 김선생 걸로 해서 떼줄테니 우선 법인의 이사로 들어오십시오"라며 웃으며 제의는 거절했다. 대신 법인 사무국장 임명을 요구했다.
이렇게 해서 그로부터 며칠 후 김영기씨는 차상진씨로부터 법인 사무국장 임명장을 받았고 임명장을 받자마자 손수 자비를 들여 중계동 땅에 터를 닦고 비닐하우스 가건물 두 동을 지은 다음 마천동 자립작업장 시설을 옮겨왔다. 이어 5월 8일 비영리 사업체로 사업자등록까지 마쳤다.
김영기씨가 중계동 땅이 문제가 있는 땅이라는 사실을 안 시기는 유월 초이다. 뒤늦게 사실을 접하고 대책마련을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6월 22일 7차 경매에서 땅이 전아무개씨에게 1억 5천만원에 팔린 것이다.
김영기씨가 속았다는 사실을 알고 차상진 이사장은 "최아무개가 땅을 팔아먹었다. 그 옆에 최아무개 땅이 또 천오백평가량 있으니 무슨 수를 써서든지 그 땅을 뺏어야 한다. 그 땅을 뺏으면 거기로 옮겨주겠다"고 둘러댔다. 이 제의는 어떻게든 반발을 무마하려는 술수에 지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차상진 이사장이 거기서 그치지 않고 막판에 끌어들인 장애우는 곽병준씨이다. 차상진 이사장은 곽병준씨에게 이슬람복지재단 기능재활원 원장 임명장을 주고 실제로는 앞서 언급한 전아무개씨에게서 받지 못한 중계동 땅 대금 4억여원을 받아오게끔 위임장을 써주었다.
차상진 이사장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인물인가는 최근의 예에서도 잘 드러난다. 김만융씨에 의하면 차상진 이사장이 법인을 팔려고 내놨는데 브로커들에게 "요새는 옛날 같지 않아서 법인을 인가 받기 힘들다"며 처음에는 30억 작금에 이르러서는 10억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차상진 이사장은 겉으로는 "복지법인 인가를 받아 건물을 신축하려다 안돼서 나는 전혀 법인에 관심이 없다 그러니 능력이 있으면 누구든지 와서 법인을 운영하라"고 말하고 있다.
보사부 정의에 의하면 "휴면법인은 법인인가는 받았지만 현재 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 법인"을 칭한다. 보사부는 이 단어로 이슬람복지재단을 규정짓고 있다. 그러나 살펴본 대로 이슬람복지재단에 적용되는 이 단어는 전혀 어울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슬람복지재단은 법인의 기본적인 책무인 기본재산을 출연하지 않았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자면 복지법인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보사부는 이슬람복지재단을 방치해 결과적으로 차상진 이사장을 비롯한 이사들이 땅 투기와 명백한 사기 행각을 벌이는데 법인을 이용하도록 협조했다. 이 모두는 법인에 대한 감독 책임이 있는 보사부가 현행 사회복지사업법에 규정된 법인 해지를 이행하지 않아 파생된 결과라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보사부는 더 이상의 피해자가 속출하기 전에 하루속히 이슬람복지재단에 대한 법인인가를 취소하고 관계자를 고발하는 발빠른 대응을 해야 할 것이다.
글/이태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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