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장애우 현혹하는 피라미드 판매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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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 현혹하는 피라미드 판매사기
<"3일의 약속">
"육개월 전쯤인가 친구가 정보산업을 새로 시작하는데 같이 하자고 말했어요. 처음 시작하는 거라 돈이 조금 필요한데 최소한 오백이상이 필요하다고 말해 그렇게는 안 된다고 했더니 그럼 이백만원이라도 가지고 오라고 하더라구요. 근데 그게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 사람들이 취급하는 자석요 가격인데 당시 산융산업에서 만든 자석요 중에 최고 싼 게 이백십오만원부터였어요."
충무로에서 출판계통의 일을 하는 지체장애우 박정식씨는(26·가명) "기획실"을 같이 해보자는 친구의 제의에 선뜻 "같이 해보자"고 대답했으며 "우선 급하니까 은행에 입금시켜달라"는 친구의 요구에 약속대로 이백만원을 입금시켰다.
"거기서 제가 생각을 했어야 됐는데 친구를 믿었기 때문에…" 다음날 박정식씨가 친구와 함께 간 곳은 기획실이 아니라 양재동 근처의 "다선"이라는 자석요 판매대리점이었으며 커다란 건물의 3, 4층을 모두 쓰고 있던 이 회사가 바로 "유통구조의 혁명"으로 "무한대의 수입"을 보장한다는 피라미드 판매(정확히 말하면 다단계 판매) 회사였다.
"딱 들어가는 순간에 아, 이거 사기다. 피라미드다라는 걸 알게 되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이건 피라미드가 아니다. 이건 엠엘엠(MLM, Multi Level Marketing) 상법이라고 독일에서 들어온 새로운 상법이라고 말하면서 피라미드와 다른 점을 설명하고 일 년 안에 몇 십 억…, 근데 그게 계산적으로 가능하더라구요."
"약속이 틀리니 나가겠다"는 박씨의 항의에 친구는 "거짓말을 한 것은 미안하지만 내 얼굴을 봐서라도 삼일간만 시간을 내달라"고 통사정을 했고 "이런 일로 서로 얼굴을 붉히기도 민망했던" 박씨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달래가며 "일회차(처음 교육받는 사람을 이렇게 부른다)"를 시작했다.
그러나 둘째 날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첫날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었던 "엄청난 수입"이 교육을 받으면서 점차 "현실"로 다가왔으며 삼일 째 교육을 마치자 "조금만 나쁜 마음을 먹으면 큰돈을 만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다행히 박씨는 교육을 받고도 최초에 친구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충격이 더 커 "바이어(판매원)"로 새로운 교육생을 찾아 나서지 않고 회사측에 이백만원을 환불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박씨는 산융산업에서 내준 백이십오만원 밖에는 받을 수 없었다. 나머지 칠십오만원은 이미 박씨를 소개한 친구와 그 친구의 윗사람("업 라인"이라고 한다)들이 나눠 가진 뒤였기 때문이다.
박씨는 아직까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자신의 돈 칠십오만원을 되돌려 받지 못하고 있으나 판매원으로 변신하지 못한 자신의 경우를 오히려 "다행"이라고 말했다.
<"휴거"와 "피라미드" 그리고 "병든 사회">
얼마 전 직장과 학교마저 그만두고 하늘나라에 들림 받기 위해 산 속으로 들어가 세상 끝날을 맞아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었던 "휴거" 소동이 다시 일어나는 것일까. 초근 피라미드 판매 사업이 89년에 이어 다시 무섭게 번져나가고 있다.
더욱이 이번에는 급격한 사회변화 속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는 "대학가"와 "재야운동권"은 물론 "종교단체" 그리고 "장애우"들에게까지 깊숙이 침투해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피라미드 판매방식은 대리점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보통 말 그대로 한 사람이 자기 밑에 두 사람의 새로운 소비자(이들은 소비자가 되는 동시에 새로운 사업가가 된다)를 확보할 경우 그들이 사게 되는 물품가격 중 일부를 "소개비"조로 가져가는 새로운(?)판매방식이다.
한 사람이 두 명의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고 그들은 곧 사업가로 변해 또 다른 네 사람의 고객을 확보하는 그래서 핵분열이 일어나듯 연쇄반응적으로 소비자가 늘어나는, 그래서 기하급수적으로 수입이 늘어나는 "도박"과 같은 것이다.
최근 장애판에도 이러한 "환상적인 수입"을 노리고 피라미드에 뛰어드는 장애우들이 많아지면서 피해자가 급격히 늘고 있다. 이들 안정된 직업과 직장을 갖지 못한 장애우들의 경우 단기간에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생업자금" 융자까지 받아가며 사업에 뛰어들고 있어 더욱 문제가 심각한 상태인 것이다.
그동안 청년운동을 주도했던 장애우의 상당부분이 급격히 피라미드 사업가로 변신하는 등 문제가 의외로 심각한 양상을 드러내면서 피라미드 판매로 피해를 보는 장애우들을 막기 위해 청년들을 중심으로 "피라미드 판매사기 MLM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손복목·장애인운동청년연합 회장)를 꾸리고 전 장애우들의 힘을 모아 피라미드 조직의 확산을 막을 것을 결의했다.
"비대위"는 5월 7일 "피라미드 판매사기(MLM) 장애인계 침투에 대한 긴급제언"이란 성명서를 통해 "최근 사회일각에서 물의를 빚고 있는 MLM(다단계판매, 속칭 피라미드 판매)사업이 수개월 전부터 비밀리에 장애인계에 침투, 급속히 전파"되고 있으며 "한때 장애인 청년조직의 핵심회원이었던 10여명이 MLM사업가로 변신, 사기 행각을 벌이고 있는 현실에 경악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피라미드에 멍들어 가는 청년들의 현실을 고발했다.
"비대위"는 이와 함께 더 이상 피해자를 막기 위해 "MLM 판매사기의 진상과 필요하다면 장애우 MLM사업자들의 명단도 공개할 것"이라고 밝히고 "모든 장애우 단체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 회원관리에 만전을 기하도록" 주의를 촉구했다.
이번 피라미드 소동은 "일확천금"의 꿈이 단 사흘 간의 교육으로 "현실"이 되버리는 우리 사회의 또 다른 "현실"이 빚어낸 소동이며 이러한 소동을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길은 노동의 대가가 제대로 돌아오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길밖에 없다는 평범한 교훈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하는 사건인 것이다.
글/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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