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93년에 바란다
본문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을 위하여
93년 계유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에는 400만 장애인 모두에게 건강과 평화가 충만하기를 기원한다.
92년 한해는 필자에게 매우 뜻 깊은 해였다. 국회 보건사회위원이 되면서 그동안 막연하게만 느껴왔던 장애인복지 문제를 구체적으로 실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93년에는 지난 1년간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장애인복지와 관련된 제반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노력해 볼 생각이다.
필자는 장애인 복지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정책적인 차원, 국민의식의 차원, 장애인 당사자의 차원, 크게 이 세가지 차원에서 입체적으로 그 방안이 모색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국가정책적인 차원은 필자와 같은 국회의원들이 책임지고 떠 맡아야 할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93년 한해 동안은 정책 제도적인 차원에서 장애인 복지의 미비점을 개선해 나가는데 나름대로 정성을 쏟아부을까 한다.
현재 장애인복지와 관련한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지만, 우선 장애인고용촉진법의 실효성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정부기관이나 투자기관에서조차 고용의무비율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기업체들이 장애인을 외면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92년 현재 고용의무대상업체의 77%가 고용의무를 이행치 않고 있다.
또 교육제도면에서도 장애인특수교육기관이 턱없이 모자라 장애인에 대한 재활 직업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장애인 관련 정부예산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92년 장애인 관련 예산은 정부예산의 0.12%인 400억원에 그치고 있다. 이 예산은 장애인복지를 실현하는데 있어 절대적으로 부족한 액수이다.
기타 여러 가지 제도적인 미비점이 있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동일한 인격체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92년 유엔이 정환 "세계 장애인 10년"도 막을 내렸다. 지난 10년 동안 국내 장애인 복지는 제도와 정책에 있어 많은 개선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후진국 수준을 면치 못해 안타깝다.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 더욱 배가하도록 힘써야겠다.
글/이해찬
누구나 이 땅에서 사랑 받는 사람으로 살 수 있도록
일간지에 새로 대통령으로 당선된 김영삼씨가 장애아동이 있는 수용 시설을 방문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는 사진이 기사와 함께 신문에 나와 있는 것을 성탄절 아침에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그분은 소외계층 가운데서도 가장 소외계층인 그들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곳을 방문한 것일까, 아니면 의례적으로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행사를 치루는 마음으로 그곳으로 방문한 것일까.
이번에 들어서는 정부는 처음으로 민간 출신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그래서 모든 국민들로 하여금 무언가 새로운 기대감을 갖게 하는 새 정부임에 틀림이 없다. 군대라고 하는 특수한 사회에서 정신을 훈련시킨 분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민간인으로 삶의 구석구석의 기쁨과 고통을 함께 호흡하며 살아오신 분이라면 장애인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도 남음이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성한 사람도 공부를 못하는 판국에 무슨 당신 같은 사람을, 성한 사라도 일자리가 없는 상황에 무슨 당신 같은 장애인이…" 장애인은 이러한 소리를 들어오면서 국가의 경제적 발전과는 아무 상관도 없이 사회의 주변 인물로 소외계층에 속한 채로 살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새로운 정부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은 우리 인구의 10%를 차지한다고 하는 막대한 수치를 보이는 국민의 생존권을 보장해 달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제는 장애인 자신들도 더 이상 참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상황이 되었고 국가도 더 이상 이 핑계 저 핑계로 미루어 놓을 수는 없는 지경에 와 있는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이는 여러 분야에 걸쳐 사회복지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더욱 더 달아오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가장 기본적인 논리로 생각해 보아도 국가는 국민을 돌볼 책임이 있다. 그 중에 어떤 계층이 그 범주에서 제외되어도 좋다는 법은 물론 성립될 수가 없겠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정부의 태도는 이러한 상식선을 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허울 좋은 장애인 고용촉진법의 실시는 누가 구속력을 발동하여 그 법이 장애인에게 도움이 되도록 한 것인가.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이 땅에서 사랑 받는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그러한 정책을 특별히 장애인을 대상으로 펼쳐 주기를 부탁하고 싶다.
글/이예자
구조적인 장애인문제가 한단계 진전되는 새해
부산에 내려와 한사람의 장애인 변호사로서 업무를 시작한 지 벌써 2년여가 흐른 지금까지 무척 안타깝게 느끼는 것이 한가지 있다면, 부산지역 장애인들이 처해 있는 환경과 문제에 비해 이에 정면으로 대처하려는 노력들이 너무나 미흡하다는 점이었다.
사실 중앙과 지방을 굳이 나누기 전에 장애인 문제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는 몇몇 뜻 있는 이들의 고군분투에 힘입어 조금씩 진전되어가고 있다는 점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모든 문화 여건이 서울에만 집중되어 있는 우리 현실에서 부산이 지방이라는 인식을 떨쳐버릴 수 없다.
내가 사무실에서 가끔 장애인들과 단체장들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어 보면, 부산 지역의 장애인에 대한 실태 파악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을 뿐 아니라 한국 장애인 현실에 대한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접근보다는 지엽적인 문제에 대한 집착만이 강하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예컨대 어떻게 하면 보사부나 부산시 등으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을까에 대해서만 관심을 두는 단체가 태반이라는 데서 착잡한 심정을 금할 수가 없다.
부산은 지역적 특수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문화적으로 보수적인 경향이 매우 강한 곳이다. 그럼에도 이 지역의 장애인들의 절실한 욕구 내지 기대치는 타지방 어느 곳 못지 않게 높은 곳이기도 하다.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 비장애인들의 무관심과 편견 등 참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장애인들은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열심히 땀 흘리며 살고 있다. 보다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서….
이제 1992년도 서서히 저물고 희망찬 1993년이 밝아오고 있다. 새해에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며, 무엇보다 부산 지역의 특성에 맞는 장애인복지 프로그램을 개발해 내어 각종 단체는 물론이고 각 기관별로 적절히 시행하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구조적인 장애인 문제가 한단계라도 진전되는 새해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글/장흥민
장애인의 삶 속에 스며들어가는 장애인운동 돼야
서울 성동구 마장동에 있는 "성동장애인복지관" 건립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한창이었을 때 창립된 본회는, 올 한해 장애인계가 유난히 많았던 사건과 사고로 얼룩졌던 것으로 회고하면서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은 한해였다고 평가를 했다.
물론 많은 장애인 단체들이 장애인의 고단한 삶을 헤쳐나가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아직도 장애대중의 요구를 속 시원히 밀어붙이는 힘을 보여주는 데에는 역부족일 뿐만 아니라, 한편으로 각 단체들간 불신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듯하여 아쉬움이 더하다.
내년에 장애인계는 92년에 이루어 내지 못한 것들에 대하여 다시 도전하고, 93년이 어떠한 형태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전망을 통해 그에 맞는 활동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구체적이지는 못하지만 몇 가지 생각나는 대로 93년에 4백만 장애인과 장애인 단체들이 해야 할 일을 적어보면 첫째, 새 정부에 대하여 장애인의 이해와 요구를 강력히 제기하고 그것이 실현될 수 있는 과감한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선거기간 동안 대통령 당선자는 개혁을 약속했고, 장애인복지 부분에 대한 많은 공약을 내놓았었다. 그것이 전적으로 장애인의 불평등과 차별을 해결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것이 사장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둘째, 92년이 많은 아쉬움으로 다가오는 것은 단체간의 단결이 이루어지지 않아 중요한 시기마다 놓친 것에 많았다는 것이다. 93년에는 반드시 모든 장애유형별, 단체성격별 장벽을 뛰어넘어 모두 하나가 되어 장애인의 보다 나은 삶을 이루기 위해 열배 백배의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셋째, 93년에는 사회적 문제들로 인한 장애인의 죽음이 없는 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아직도 우리들 가슴속에 슬픔과 분노의 덩어리로 남아있는 백원욱, 박승학씨의 죽음이 다시 되풀이되지 않는 93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장애인의 죽음을 막는 것은 살아있는 4백만 장애인의 쉼없는 투쟁일 것이다.
끝으로, 장애인의 삶 속에 스며들어가는 장애인 운동이 되도록 모든 단체가 노력하기를 기원한다.
글/채종걸
"인식"에서 "실천"으로
1993년 올 한해는 2000년대에 추구하여야 할 장애우복지 정책의 지표를 명확히 설정하고 장기적인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정부와 민간부문이 다 같이 노력하는 한 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는 장애우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의 보장을 위하여 각 국이 준수해야 할 사항을 계속 권고하고 있으며, 이러한 국제사회의 움직임은 이제 장애우복지 문제가 "인식의 차원"에서 "실천의 차원"으로 이행되고 있음을 잘 드러내고 있다.
우리나라도 "81년 세계장애인의 해와" 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장애우복지 증진에 많은 성과를 거두었으나 아직도 미흡한 부분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2000년대를 대비한 종합대책의 수립과 장기적인 발전 전략을 체계적으로 수립해 나가는 일이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향후 정부의 장애우복지정책 추진 방향은 장애우의 실질적인 사회참여와 기회의 균등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확충하고 장애우에 대한 국민의 올바른 인식전환과 적극적인 관심을 이끌어내는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장애우복지는 정부, 민간단체, 일반국민, 장애우 모두가 상호협력하여야만 그 목적이 달성될 수 있으며 따라서 공공부문에서의 장애우복지시책과 민간부문에서의 자율적인 노력이 함께 유기적으로 이루어 질 때 장애우복지는 커다란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장애우복지의 기본과제는 일반인과 동등하게 생활할 수 있는 사회적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이다. 이제 사회나 국가의 장애우에 대한 인식과 관심도 많이 좋아져 장애우 문제가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는 1993년 새해를 맞이하여 장애우의 생활환경개선을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다. 정부 시책에 부족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지 따가운 질책을 보내주기 바라며 여러분의 희망찬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올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한다.
글/ 한영섭
적극적이고 현실적인 요구를
매년 해가 바뀔 때면 한번쯤 지난해를 돌아보고 새해에 대한 설계를 하게 된다 나의 경우 지난 해 많은 일을 겪었다. 그래서 그런지 매우 빠르게 한해가 지나간 듯하다. 노동부 장애인고용과에 근무한지도 어느덧 3년을 바라보게 되었고, 장애인 고용의 정착을 위하여 나름대로 힘써 왔으나 기대한 만큼의 성취감은 느낄 수 없었다. 다만, 장애인들에게 놓여진 어려운 현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 것이 큰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나는 성격이 급한 편이어서 무슨 일이든 단시일내에 이루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장애인 고용 문제를 담당하면서 단시일내 간단히 해결되는 문제는 거의 없었다. 그러한 이유는 문제의 원인이 단순하지 않고 복합적으로 연관되어 있고, 또한 오랜 세월 동안 누적된 것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 조급하게 생각하기보다는 문제 해결의 합리적인 순서를 찾는데 더욱 관심을 두게 되었다.
93년을 맞으면서 희망사항이 많지만, 우선 각 회사의 사장님에게 올해 장애인을 단 1명씩만이라도 채용시켜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경기침체로 경영 사정이 어려운 기업이 매우 많은 현실을 무시할 수 없지만 100인 이상 사업체에서 만이라도 신규 채용할 기회가 있을 경우 장애인을 1명씩만 채용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93년에 최소한 6천명 이상의 장애인이 새 직장을 갖게 될 것이다.
또 장애인과 가족 및 그 보호자들이 장애극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길 바란다. "우는 아이 젖준다"는 속담이 있듯이 자기 관심사에 적극적으로 의사 표시를 하고, 또한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자세를 보고 싶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일하고 싶은 장애인은 꾸준한 자기 연마와 함께 취업알선 기관을 찾고, 자신을 채용할 사업주의 입장도 생각해 보면서 현실적인 요구를 하기 바란다.
새해에는 새 정부에서 새로운 각오로 많은 부문에서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장애인 여러분께서는 그동안의 좌절을 잊고 새 희망을 갖고 계속 노력해 주기를 바라며, 세상의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의 처지를 이해하고 함께 하는 새해가 되엇으면 좋겠다.
글/조병기
"덤"으로 얻는 기쁨
내가 이 일을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1992년도 어느덧 지나고 새해를 맞이하게 된다. 매년 계절이 바뀌고 겨울을 맞으면 나는 남다른 걱정에 일기예보를 챙겨 듣게 된다. 진눈깨비가 오고 기온이 급강하하여 땅이 얼면 얼마나 불편한가를 알고 있기에 일기예보에 많은 신경을 쓴다.
하기야 1959년 내가 이 일을 시작했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격세지감을 느낄 만큼 많이 좋아졌다. 장애인이 운전해서 불편 없이 다닐 만큼 생활여건도 많이 나아졌다. 또 옛날같지 않아 보조기나 의족을 만드는 재료나 기술도 많이 향상되었다. 사회의 관심이나 의식도 아쉬운 대로 많이 좋아진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반가운 일은 장애인들의 적극적이고 의욕적인 건강한 정신 자세와 생활태도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이 직업을 가지고 많은 모양의 의수족을 만들었고 내가 만난 환자만 해도 대충 수천명은 되는 것 같다.
국민학교 시절에 나를 찾아와 20년이 넘게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 중 하나는 힘겨운 여건을 딛고 기술을 익혀 인정받는 직장인이 되기도 했다. 어렵게 일하면서 돈을 벌어 대학에 진학하여 휴학과 복학을 수차례 되풀이하면서도 기어코 졸업을 해내 지금은 국가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사람도 있다.
하늘의 별따기라는 어려운 사법고시에 합격, 법관이 되어 활발한 활동을 하는 사람도 몇이나 된다. 설사 나의 가족은 아니더라도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진한 감동과 기쁨을 느꼈는지! 내가 이 직업을 가졌기에 "덤"으로 맛보는 은혜이고, 기쁨이라고 생각이 든다.
불행하게 어느날 장애를 입어 절망하고 좌절하게 되는 젊은이가 있다면 의지로, 노력과 인내로 승리를 쟁취한 선배들같이 그렇게 일어서라고 권고하고 싶다.
맞이할 새해엔 더 많은 신의 은혜와 축복으로 복된 생활 이어지길 기원하면서….
글/홍석화
만나서 반가왔어요
"장애인문제 자체가 다루기 쉬운 일이 아닌 것처럼 그 주변에서 벌어지는 장면들을 영상화하는 작업도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 봅니다."
(중략)
"요즘 제작되는 "사랑의 징검다리" 정말 마음에 들어요.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쉽게 발생될 수 있는 내용들이 특별하게 느껴지도록 하는 묘한 매력이 있어요."
이상은 "부름의 전화" 김정희 대장이 보내주신 편지의 한 부분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이렇게 끝을 맺고 있었다.
"1992년은 사랑의 징검다리와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시년 첫 프로그램 준비로 92년 마지막 날 밤까지 편집실에 남아 있어야 했던 썰렁함을 따스함으로 가득 채워준 편지가 아닐 수 없었다. "사랑의 징검다리" 덕분에 PD인 내가 행복해지는 순간이었다. 더구나 그 사랑과도 같은 고백을 쏟아 놓은 분이 "부름의 전화" 김정희 대장이라니 내가 행복해지는 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김대장과의 만남은 SBS 창사특집 "우리 서로 잡은 손"에서였다. 당시 장애인과 자원봉사자를 이어주기 위해 세시간 생방송으로 마련됐던 이 프로그램에서도 김정희씨는 역시 대장노릇(?)을 했다.
몇마디 인터뷰에 그치는 단순 출연자가 아니라 자원봉사 신청자들의 전화 접수, 봉사내용, 거주지역에 따른 분류, 추후 연결방법까지 그야말로 대장으로서 진두지휘를 멋지게 해주셨다. 그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들의 눈과 귀, 손발이 되어주길 바라는 장애인데 대한 애정이 그를 SBS 공개홀 생방송 현장에서까지 대장으로 자리매김하게 했을 것이다.
92년 한 해 "사랑의 징검다리"를 연출하면서 제법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과의 만남 앞에서 때론 감동하고 때론 반성하며 보낸 시간이었다. 김정희 대장은 "사랑의 징검다리"와 만나 행복하다고 했다.
93년 새해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징검다리"를 만나 행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만남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 아마 "우리 서로 잡은 손"에서 김대장의 열성 앞에 부끄러워하던 스스로의 모습을 떠올려본다면 그 길이 보일 것 같기도 하다.
글/이창태
어두움을 떨쳐버리고 더 멀고 더 높은 곳으로
내가 고향을 떠나 이곳 서울에 올라 온 지도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처음 낯설은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거대한 도시의 화려함보다 두려움과 걱정이 앞섰다. 집에 있을 땐 서울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이 너무도 간절했는데 막상 거대한 도시 앞에 서고 보니 나 자신이 까만점처럼 너무나 작아 보였다.
그러나 3년을 지내면서 무엇인가 흔적을 남기기 위해 열심히 일하면서 노력했다. 낮에는 주어진 위치에서 열심히 일을 했고, 밤에는 쏟아지는 졸음을 쫓아가며 공부를 했다. 그 결과 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할 수 있었고, 지금은 방송통신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준비중에 있다. 그리고 부족하지만 언어를 다루는 한 사람으로서 글도 열심히 쓰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바라며, 어떤 구체적인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그 목표를 이룰 때까지 끊임없이 뛰고 달려야 한다.
93년의 달력을 보면서 92년의 시간들을 너무 낭비했구나 하는 생각을 문득 했다. 이제 12월의 끝에서 6공화국이 깊은 겨울 속으로 저물어가는 것을 보면서 새로 시작되는 93년도에는 서민들과 장애인들을 위한 진정한 민주화가 이루어지기를 빌어본다.
한 나라가 진정한 복지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장애니들에 대한 관심이 무시되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우리나라보다 앞서가는 선진국을 보면 그 나라의 장애인에 대한 복지가 너무나 잘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선진국 대열에 끼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장애인들에 대한 교육, 취업 등 모든 분야에서 많은 기회와 혜택이 주어져야 할 것이다.
나뿐만 아리나 우리 장애인들도 어두운 곳으로 자꾸 숨을 것이 아니라 이제는 모든 아픔을 과감히 떨쳐 버리고 적극적으로 사회에 뛰어들어 정상인들 사이에서 열심히 일하여 그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용기를 길러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 장애인들도 우물안 개구리 같은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더 멀고 넓은 곳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93년에 탄생하는 새 정부에 바람이 있다면, 장애인들에게 기회를 주겠다는 여러 가지 공약이 말로만이 아니라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실천하는 정부가 되었으면 한다.
글/권오철
장애아동의 교육권, 당당하게 주장하자
함께걸음 독자들과 새해 인사를 나누게 되어 무척 기쁘다. 으레 새해가 되면 누구나 새로운 결심과 함께 거창한 소망을 가지게 마련이다. 설령 실현 불가능한 것일지라도 말이다.
새해에는 현장에 있는 특수교사로서 오직 한가지만을 하고 싶다. 가벼운 뇌성마비를 갖고 있는 어떤 아이는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엄마, 다락방에 올라가?"라고 묻는다. 또 어떤 아이는 습관처럼 다락방에 올라가는 아이도 있다.
이런 모습에서 특수교육의 대상은 특수아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장애아동을 둔 부모가 되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학생, 학부모, 교사를 교육의 주체라고 말한다. 그러나 특수교육에서 어느 한 주체만의 노력으로 교육의 성과를 기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반교육과는 달리 장애아동의 교육에서 학부모의 역할은 그 성패를 가능하리만큼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특수교사가 장애아동을 가르치기보다 오히려 장애아동을 둔 부모의 교육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억지일까.
그렇다고 특수교육의 모든 여건이 완벽하여 장애아동의 부모교육 쪽으로 눈을 돌리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의 학교교육 여건은 장애아동들로 하여금 또 다른 장애를 느끼게 하고, 특수학교에서 또 다른 특수학급을 만들어야 할 상황이라고 하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장애아동의 교육뿐만 아니라 장애인을 둘러싼 모든 여건이 소외와 편견, 차별로 점철된 것이다.
장애아동의 교육을 담당하는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를 장애인의 기생집단이 아닌가를 반문해 보고, 절망과 좌절, 안일무사주의와 무기력에서 벗어나자.
그리고 오는 새해에는 장애아동을 가르치기 전에 장애아동을 둔 부모를 만나러 찾아나서자. 수치심과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하여 교육의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하자. 그리하여 당당하게 장애아동의 교육권을 주장하게 하자.
글/신호규
차디찬 땅을 딛고 일어서는 이들과 함께
"마장동 장애인종합복지관 건립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 이라는 오명(?)으로 문을 열었던 92년이 백원구, 박승학이라는 "생채기"를 남긴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장애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맹목적인 편견이 낳은 성동복지관, 양평 은혜의 집, 라파엘의 집 사건을 비롯해서 청주 성화원, 충주 승덕원 등 또다시 되풀이되고만 시설내 성폭행문제, 장애를 이유로 취업의 관문에서 탈락됐던 최일권·이길용씨, 장애와 빈곤이라는 이중의 굴레를 쓴 채 세상을 등진 고 박승학씨… 92년 장애인계는 어찌 보면 이 땅의 장애인들이 그동안 걸어왔던 소외와 편견의 소용돌이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이것만은 기억하자. 얼어붙은 나무껍질위로 새이파리가 돋고 그리하여 나무가 성숙하듯 사회의 언저리에서 차디찬 땅을 딛고 일어서는 이들이 있었음을.
"장애해방의 봄"은 생존권 싸움을 벌이는 노점장애인들의 치열함에서, 장애인을 비롯한 소외 계층에 대한 사회의 모순을 체감하고 분노하는 청년 장애인의 풋풋한 가슴에서, 봉천동 고개 가난한 장애아동을 위한 조기교육실에서 정성껏 프로그램을 짜는 교사의 손길에서, 소리나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 있을 무명의 사람들에게서 그리고 격동하는 현장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울고 웃는 동료 기자의 열정어린 눈빛 속에서도 오고 있는 것이다.
산적해 있는 장애문제의 해결을 위한 실마리가 언제쯤 속시원히 풀릴까. "남의 일이니까"라고 치부해버리는 비장애인이나, 중립성을 원칙으로 내세우는 언론 등 모두가 관찰자나 방관자일 수는 없다.
더욱이 장애문제 발생의 근본적인 원인이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의 굴절에 있음을 깊이 인지한다면 장애와 비장애를 자연스레 연결시키고 사회라는 틀 속에서 화합될 수 있도록 하는 과제가 여론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언론에 주어져 있는 것이다.
제7공화국의 출범과 더불어 찾아오는 93년 새해, 주인의식을 갖고 문제 해결의 주체로서 최선이자 최후인 "삶의 현장"으로 출전할 태세를 갖추자. 장애인·도시빈민·노동자가 주인되는 장애해방, 인간해방의 그날을 약속하며.
글/박종혜
실질적인 복지정책이 이루어졌으면
사백만 모든 장애인들 중에서 특히 정신지체인들은 "장애인 속의 장애인"이라 할 수 있다. 스스로 자신의 장애를 알고 있는 장애인들은 그런대로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외칠 수도 있고 표현할 수 있으며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역할을 부모가 대신할 수 밖에 없는 정신지체인들은 자신이 장애인인지 조차 모른다. 이들의 삶이 타의에 의한 삶이 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은 비참하기 이를데 없는 것이다.
정신지체아들 가족의 구성원으로 두고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가슴아프게 부딪쳐야 했던 것은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의 벽이었다. 그로 인하여 인간교류의 사회성은 움추려 들 수 밖에 없었으며 현실도피적인 태도의 습성에 젖어들기까지 했다. 서글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하물며 요즘 자꾸만 개인주의화 되어가는 이 사회의 의식구조를 볼 때 장애인에 대한 사회편견의 골이 더욱 깊어만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새해는 다른 어느 해보다도 큰 희망을 걸고 싶다. 장애인복지에 대한 기대감이 앞서기 때문이다. 시끌벅적하던 대선에서 대통령후보들은 한결같이 장애인복지에 대한 정책을 펴겠다고 공약으로 내세웠으니 또 많은 기대감을 가져본다.
바다 실질적인 복지시책이 이루어져야 한다. 장애인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인식과 고정관념이 달라져야 한다. 있는 자나 없는 자나, 장애인이나 정상인이나, 모두가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고 상대방의 개성을 살려주며 다함께 공존하는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된다면 복지사회의 건설은 결코 멀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기대로 93년도를 맞이하고 싶다.
글/고선옥
모든 장애인들이 한데 뭉치는 93년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통령 선거를 지켜본 외국인들은 매우 놀랐을 것이다. 주요 3당의 대통령 후보가 모든 장애인이라는 말을 듣고, 한편으로는 한국에 그렇게 장애인이 많은가 놀랐을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장애인인데도 아무런 사회적 차별을 받지 않고 대통령후보로까지 출마할 수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뜻밖의 선진성"에 놀랐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여당의 대통령후보 찬조연설원들이 야당의 후보들을 "절름발이"와 "오줌싸개"라고 부르자 이번에는 야당 쪽에서 여당후보를 "정신지체"라 부르는 일이 벌어졌는데 사정을 모르는 외국인들이 만일 그런 얘기를 들었다면 당연히 "아, 한국의 대통령후보들은 장애인들인가 보구나"하고 생각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 외국인들이 몰랐던-알았다면 이번에는 더욱 놀랐을-사실이 있다. 한국에서는 정상적인 사람들을 장애인으로 부르면 그것이 곧 욕이 된다는 사실이다.
대통령후보조차 장애인으로 불리면 결점이 되는 사회에서 사회문제를 다루는 "PD 수첩"이라는 프로그램을 하는 탓에 나는 자연스레 우리 사회의 대표적 소외계층의 하나인 장애인 문제를 다룰 기회가 많았다. 그리고 내가 얻은 결론은 장애인 문제를 낳고 있는 여러 가지 원인들 중에는 수많은 법적, 제도적 미비점들도 있지만 그것들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다름 아닌 장애인들에 대한 매우 단순한 편견이라는 사실이었다. "장애인들은 보기가 싫다"는 것이었다.
최일권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난산으로 인해 말을 할 때 얼굴근육이 일그러지는 약간의 뇌성마비증세가 있을 뿐 지능을 비롯한 다른 모든 기능은 정상이었다. 대학까지 일반학생들과 경쟁을 하며 좋은 점수로 졸업을 했으나 아무데도 취업을 할 수가 없었다. 공무원시험은 비교적 공정하다는 생각에 응시했다. 필기시험은 합격했으나 면접에서 탈락했다. 여섯 번이나 그런 일이 되풀이됐다. 장애등급에 해당되지도 않는 자신을 어거지를 써서 장애인으로 등록하고 이번엔 장애인 공무원을 뽑는 시험에 응시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결과는 면접탈락이었다. 그와 그를 돕는 장애인들은 한데 뭉쳐 싸웠다.
"PD 수첩"에서 나는 그 상황을 다뤘다. 신문과 방송, 언론을 통해 그의 얘기가 전국에 알려지고 마침내 그는 합격했다. 실로 응시 여덟 번만의 결과였다.
몇 년 동안 우리 사회가 최일권씨에게 강요했던 고통의 세월, 그것은 단지 일반인들의 눈에 장애인인 최씨가 보기 싫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가능했다. 그냥 보기 싫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오직 먹고살기 위해 취직을 해야했던 최씨의 생존권은 처참히 무시되었다.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 밑에서 그가 얼마나 어렵게 살았는지 또 일반학생들과 얼마나 힘든 경쟁을 하면서 대학까지 마쳤는지 하는 그가 걸어온 역정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마치 오랜 세월 독재권력과 싸우다 숱한 고문을 받고 그 후유증으로 다리가 불편한 모 야당후보를 그저 간단히 "절름발이"라고 지칭하며 그것 때문에 그는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것처럼 말한 어느 대학교수 연설원이라는 자의 논리처럼, 최일권씨를 불합격시킨 사람들의 논리는 단순명쾌했던 것이다. 그러나 최일권씨의 안면근육장애가 오히려 그의 빛나는 의지를 더욱 빛나게 하는 상징이 될지언정 시험에서 떨어져야 할 만큼의 결점이 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마치 그 야당 후보의 신체장애가 목숨을 불사한 민주화 투쟁의 빛나는 훈장이지 결점이 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쨌든 다리가 불편한 후보와 침을 흘리고 오줌을 저린다는 "신체장애인" 후보들은 대통령선거에서 탈락했다. 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여당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반대자들의 말을 들을라치면 그 역시 정신지체를 갖고 있는 장애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장애인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말이 된다.
장애인 대통령! 93년부터 장애인들에 대한 사회의 대우가 달라지리라는 희망이 생긴다. 아무렴 대통령이 장애인인데 다른 장애인들을 차별하기야 하겠는가. 혹시 그런 일이 있다면 앞장서서 막아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는 다시 그런 문제로 "PD 수첩"을 안 만들어도 될 것이고‥‥‥. 혹시 아는가. 그렇게 세월이 흐르다보면 사람들의 눈이 많이 무뎌져서 이제는 진짜 장애인이 정말로 대통령이 되는 날이 올지.
그러나 최일권씨의 경우에서처럼 그 날은 결코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장애인들에게는 오지 않을 것임을 장애인들이 더 잘 알 것이다. 단결과 싸움이 없이는 일반인들의 매우 단순한, 두터운 편견의 벽은 쉽사리 무너지지 않을 것이므로 그 벽을 부수기 위해 93년에는 모든 장애인들이 한데 뭉치는 해가 되기를 바란다.
글/송일준
의료인의 편견 버려야
먼저 새로 탄생할 7공 정부가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에 대해 관심을 갖되 특별히 장애우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또한 교통사고 감소 방안을 적극적으로 강구하여 이로 인한 장애발생을 최소화 할 수 있기를 바란다.
92년부터 시행할 예정이었던 신생아에 대한 선천성 대사이상검사가 꼭 시행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국민 모두가 장애우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변화되기를 바라며 특별히 장애우의 교육받을 권리에 대해 인식이 새롭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 의료인들이 장애우를 진료할 때 어떤 편견을 갖지 않고 하나의 전인적 인격체로서 대우하는 자세를 갖게 되기를 바란다.
글/안용태
더 많은 장애인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할 수 있기를
나에게 지난해는 보람이 있었다. 연초에는 자그마하지만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었고 여름에는 내게는 발과 같은 자동차를 마련할 수 있었다. 주행연수도 끝내서 지금은 혼자 힘으로 서울의 어느 곳이나 찾아갈 수 있다. 또한 수주내에 조작이 간편한 휠체어도 마련될 것이다.
그러나 장애인의 한사람으로 만족할 만한 해였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장애인 고용문제라든지 장애인 편의시설 등 나아진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새해에는 장애인 고용촉진법이 활성화되어 더 많은 장애인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또한 신축중인 공공시설은 물론 기존의 것에도 장애인 편의시설이 확충되었으면 한다. 물론 하루아침에 모든 시설이 완비될 수는 없겠으나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편의시설이 미비하여 투표권 행사도 불가능했던 일은 다시는 없어야겠다.
이제 눈을 들어 사회인으로서의 바람을 들어본다면 우선 우리 경제가 회복되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주위에서는 이구동성으로 불경기라 생활하기 어렵다고들 한다. 다음으로 나라의 통일이 이루어져야겠다. 아니 통일을 향한 발자국이라도 내밀어야 하겠다. 마지막으로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기아가 사라졌으면 한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겠으나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어져야겠다. 한편에서는 비만을 걱정하는데 다른 편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이 나오는 일이 제발 이 지구상에서 없어져야겠다.
글/허영일
내 믿음의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신"이라는 낱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여러 가지 뜻이 나와 있다. 그 중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신"은 두서너가지쯤 되나보다.
친구들과 "나이든다"는 것에 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한 친구가 자신이 겪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더 이상 자라지 않는 어른 둘(그 중 한명이 내 친구였다)과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한 어린아이가 한 자리에 있었다. 더 이상 자라지 않는 한 어른이 자신의 부츠를 가리키며 투덜거렸다.
"3년이나 신었더니 이젠 더는 못 신겠어. 하나 새로 사야할 것 같아."
그 이야기에 또 다른 한 어른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곁에 있던 어린 아이는 갸우뚱거리면서 물었다.
"어! 이상하다. 신발이 작아지지 않아요? 어떻게 3년이나 신어요?"
그렇다. 이제 나는 해가 바뀔 때마다 큰, 커질 발 때문에 내 발보다 큰 신을 사지 않아도 되는 어른이 되었다. 신을 살 때엔 발의 크기만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활동하기에 편해야 하고, 쓰임새와 취향 등 여러 가지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신은 그것을 신고 있는 사람을 그대로 반영한다.
그 사람의 믿음(信)까지도 내 발에, 내 마음에, 내 믿음에 꼭 맞는 신을 마련하고 싶다. 나의 일.
1993년에 나는 신을 하나 마련할 것이다. 내 믿음-좀 더 나은 세상을 가꾸고자 하는-을 행하기 위해.
글/이상진
사회복지에 대한 인식의 대변화를 바란다
1993년 새로운 해의 시작과 함께 문민정부가 들어서게 되어 국민 모두의 기대가 크다. 사회복지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새해에는 사회복지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경제 성장과 함께 각종 사회병리 현상들이 속출하여 사회문제로 야기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문제를 예방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사회복지다. 경제 성장 우선이라는 국가정책에 의해 뒤로 떠밀린 채 분배 또한 국가재정이 확보된 다음에야 사회복지에 대한 투자를 할 수 있다는 방향으로 국가정책이 정해져 사회복지 분야의 발전이 다른 분야의 발전에 비해 현저하게 낙후되어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국민들의 다양한 욕구분출과 함께 사회복지에 대한 욕구가 급격히 증대되어 왔으나 그 욕구에 비해 사회복지는 한정된 자원으로는 충족시킬 수 없는 실정으로 국가 정책을 일관해왔다. 사회복지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재정투자가 있어야 하는데 과감한 투자를 하려면 우선 국민과 정부의 사회복지에 대한 인식의 대변화가 반드시 있어야만 가능하다.
물론 국가발전에 있어 경제 성장이 중요한 요인이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과거와 같이 경제발전 일변도의 성장만을 주장한다면 오히려 경제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이제는 사회복지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 우리 사회의 각종 사회문제를 예방하고 해결하기 위해 과감한 투자를 할 때라고 본다.
사회복지의 대상이 되어온 아동·청소년·노인·장애인·부랑인·모자가정·소년소녀 가정 등이 이 사회의 구석진 곳에서 힘없이 소외되고 있는 자들과 이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복지 관계자들만의 문제가 결코 아님에도 사회복지는 계속 정체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사회복지 문제를 나의 일이 아닌 너의 일, 우리 일이 아닌 남의 일이라는 인식이 사회 저변에 깔린 상태에서 당장의 가시적인 효과만을 바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나라 국가 예산 중 많은 예산이 국방비로 지출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소비나 낭비로 보지 않는다. 분단의 역사가 만들어낸 상황 속에서 빚어진 결과였다.
사회복지 분야도 이제는 국방비와 같은 논리와 시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새해의 시작과 함께 출발하는 새로운 정부는 사회복지에 대한 인식을 더 이상 불요불급한 것으로 보아 낭비나 소비로 치부하지 말고 내부의 적으로부터 사회를 지키고 신한국 창조를 위한 사회복지가 "투자이며 생산"이라는 인식의 과감한 대전환이 이루어져 정책이 수립되었으면 한다.
사회복지계 또한 오직 자기 분야만을 생각하는 소극적이고 좁은 범주에서 벗어나 적극적이고도 넓은 안목으로 서로 협력하고 노력하는 새해가 됐으면 한다.
글/김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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