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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우리이웃]쓰레기 산의 뒤안길, 난지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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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취만 그득한 쓰레기산의 뒤안길>
 찬바람이 옷속을 파고들며 한겨울을 예고하던 1월 중순, 말로만 들어오던 난지도를 찾았다. 78년 3월부터 15년 동안 서울시의 쓰레기를 묵묵히 받아오던 난지도가 92년 10월로 폐쇄되어 "쓰레기 매립장 난지도"는 이제 역사의 뒤안길에 묻히게 되었다. 이곳 주민들이 작년 10월 이후에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며 세월에 묻어버린 그들의 아픔과 지금의 소망은 무엇일까. 그것을 알아보는 것은 3천 5십여명 주민들의 애환이 서린 난지도의 역사를 기억하고자 하는 우리들의 책임일 것이라 여겨진다.
 합정 전철역에서 10여분마다 운행되는 상암동행 마을버스를 타고 소요시간 20여분, 성산대교를 지난뒤 상암동 종점에 내리면 40여개의 조립식 건물에 824세대가 살아가고 있는 난지도에 닿게 된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뿌연 연두빛의 오수가 죽음처럼 고여있는 샛강과 그 뒤로 장대하게 솟아있는 쓰레기산이다. 군데군데 심어 놓은 나무와 풀로 지탱되는 이 산은 난지도 전체 1백만 10여평 중 52만 9천여평을 차지한다. 그 높이는 80여미터, 8.5톤 청소차 1천2백35만3천대의 청소차량을 일렬로 세울 경우 서울과 부산을 2백47회 왕복할 수 있는 거리에 해당하는 쓰레기가 거대한 산을 형성하고 있다. 이 산 정상에는 쓰레기에서 배출되는 가스에 의해 불꽃이 군데군데 피어오르고 있으며 호흡이 곤란할 정도의 악취를 풍기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산의 오수가 샛강으로 스며들고 있어서 시급한 대책이 요구된다. 한편 쓰레기 매립량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폐쇄된 이곳은 한강을 바로 내려다보고 있어 전망이 뛰어난 데다 서울도심으로부터 불과 7∼8km지점에 위치해 있어 택지로 개발될 경우 1급 거주지가 될 것으로 서울시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그 외에도 토지안정화공사 후에 공원으로 조성하거나, 자연부패를 기다려 4∼50년 경과 후에 택지개발을 한다는 등의 도시계획도 거론되는고 있다. 이러한 계획에 따라 92년 9월 28일 서울시의회 제57회 임시회의에서 이상배 서울시장은 난지도 조립식건물에 거주하는867세대(당시) 주민들에게 시영아파트 입주권을 부여할 계획이며 생활보호대상자 86가구는 영구임대아파트 공급계획에 따라 이주시킬 계획도 밝힌 바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난지도 이주계획은 구체화되지 않았다. 다만 이와는 별도로 서울시 전체 영세민을 대상으로 난지도를 떠난 영세민이 90년 말부터 현재까지 133세대에 이르고 있을 뿐이다.

<난지도 주민들의 삶과 소망>
 아직 영구임대아파트로 이주하지 못한 영세민인 지체4급 장애우 김종석(52)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내 고향은 김포인데 6.25 전쟁전에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고 망우리에 있는 고아원에 7살 땐가 들어갔어요. 9살 때부터 나와서 신문장사, 구두닦이 등 안 해본 것이 없어요. 기술이 있어요, 뭐가 있어요? 결혼도 못했죠. 여기 오기 전에는 종로에서 종이 줍고 살다가 난지도에 온지 10년이 넘어요. 그전에 하꼬방 짓고 살다가 조립식 건물이 지어진 84년부터 이 집에서 살아요. 쓰레기일 하다가 일이 끝난 뒤로 취로사업 나가서 하루에 만이천원씩 벌어요. 열흘 일하고 열흘 쉬게돼 있어요. 낙엽도 줍고, 하수도 파러 댕기고‥‥‥. 별놈의 것 다하죠. 여기 많아요. 영세민들이. 상암동 전체에서 취로사업 나가는 사람이 100명쯤, 난지도에서는 50명정도 되요. 병신이라고 다른 일 안시켜줘요. 사람이 남아돌아 가는데 누가 병신 쓰냐 이거야. 영구임대 아파트는 꼭 준다고 했는데 나는 혼자 산다고 아직 안 나왔어요. 식구 많은 사람들은 먼저 나온거구 혼자 사는 사람들은 맨 나중에 나온다고 했는데 모르겠어여. 주는지, 안 주는지, 안 주면 마는거고. 임대아파트 안 나오면 시골에 가서 뭐라도 해먹고 살아야지. 지방으로 가면 친구들 많아요. 이런 생활했던 사람들이지 뭐. 바라는 것 없어요. 노력해서 먹고 살아 가지고‥‥‥, 일을 못할 적에 그때가서 죽는 것이 소원이니까." 날이 푸근하다고 연탄불을 넣지 않았던 그날, 혼자 살면서도 깔끔하게 정돈된 방안이 눈길을 끌었다. 영세민이 아닌 박상녀(40)씨의 경우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박상녀씨의 가족은 남편(50)과 아들 기범(15), 세 식구이다. 난지도에 산 지는 10년 정도 됐는데 이곳에서 합동결혼식을 치렀고 쓰레기 분리일을 계속해 왔다. 그러다가 평소부터 개를 좋아했던 박상녀씨가 3년 전부터개를 키우기 시작했고 쓰레기일이 끊긴 올해부터 남편도 이 일에 매달리고 있어 이제 "개 키우기"는 세 식구의 생계수단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이 개장도 2월로 철거하라는 난지도 관리사무소의 경고로 그럭저럭 개를 팔 수 있는 여름까지 버티기도 어려운 상태이고, 개60여 마리를 팔아 조금의 돈을 마련한다 해도 그후의 대책이 없는 상태라 그저 막연하고 답답하다고 한다. "여기서 3∼4년 더 버틸수도 없어요. 자체 건물이 낡아서 지붕이 다 세고 개인적으로 슬라브를 올린다 해도 그렇게 갈까? 수명이. 여기 공장도 마비됐어요. 공장이고 어디고 딴 데로 가라, 2월까지 마감하라 했으니 물렝이(플라스틱류)공장도 문 다고 지금은 외부에서 들어온 종이를 압축해서 부피가 작은 덩어리로 만드는 일과 조금씩 현장에서 나오는 고철을 수집하는 공장이 있지만 소수가 일해요. 15명도 안될 꺼요. 아줌마들이 식당이나 시내로 일을 다녀요. 난지도는 끝났어요. 거의 다. 끝나니까 아쉬움도 남고, 없이 살아도 인심은 후하니까 먼 친척보다 이웃사촌이 낫다고 오랫동안 가깝게 지내고 산 사람들이 흩어지니까 아쉬움도 있고, 먹고 살 길이 막연하니까 답답함도 있고, 우리는 애기 아빠가 나이가50이 다 되어 걱정스러워요. 직업도 없고 노동일하는 것도 어렵고. 내 생각으로는 여기에 벌이도 없어졌고 여태 여기에 살았으니 자체 땅을 불하해 주면 더 좋지만 그것이 안된다면 분양아파트라도 주면 해요. 집문제만 해결되면 우리는 애가 하나니 장사라도 해서 뭐이든 먹고 사는 거야 하겠죠." 적게는 3년, 많게는 20년 넘게 난지도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 마음은 한결같다. 시유지기 때문에 개발이 된다면 20여년씩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은 당연한 것이다.

<하루 빨리 확실한 이주대책이…>
 "난지도의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고 떠났다", "자가용을 굴리며 잘 살더라", "아파트 분양권을 바라는 투기꾼이 많다더라"‥‥‥ 등 외부인의 의혹에 찬 눈초리는 이곳에 와서 주민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리고 쓰레기산 위로 한번 올라가보면 그 생각이 달라진다. 실상 호경기에 돈을 벌었다 하더라도 폐품 값은 2∼3년 주기로 급하락하기에 돈이 모아지지 않으며 89년 이후부터는 돈벌이가 안 돼서 건축현장 등으로 노동력이 많이 이동된 실정이다. 난지도에 12년째 살고 있는 이상용(48)씨의 말을 들어보자. "옛말에 물건값이 좋을 때 PVC 한 마대에 1만 4천원에서 1만 5천원 나갔어요. 그런데 재작년 내가 그만둘 때에는 한 마대에 3천원이어서 마대값7백원을 제하면 2천7백원 받았어요. 마대는 정부미 80킬로그램 부대를 짖어 여러장 꼬매는데, 높이는 사람의 키보다 더 높고 넓이는 1미터 오십센티 정도, 다 채운 무게는 5∼60킬로그램 됐어요. 그거 하나 채우려면 얼마나 힘드는데. 종이 고철을 수입하기 때문에 달러도 줄이고 쓰레기도 줄이려면 이중곡가제 마냥 대책을 세워 고물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생계가 보장돼야 해요." 모 재벌이 벌써 난지도 시유지의 개발계획을 세웠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돌기는 하는데 막상 소문 뒤에는 항상 현실화 되어왔던 여러 사례들 때문에 설마하고 지나칠 수 만은 없는 것이 주민들의 마음이다. 이곳 주민들 마음을 이상용씨는 떨어진 사과에 비유했다. "쉬운 말로 사과나무에 사과가 열렸으면 떨어진 사과라도 근처에 있는 사람들이 주워 먹어야 하는데 외부 사람들이 와서 뺏어 먹는단 말이죠. 돈이 없고 오갈 데 없어 여기서 살아도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 버텨 왔어요. 쓰레기가 끝나고 여기는 시유지니까 누군가가 살아야 된다, 즉 과실을 걷는 입장이라면 여기서 살았던 사람이 혜택을 받아야죠. 그렇게 못하는 게 우리나라 현실이니까 언제나 없는 사람이 이리저리 쫓겨 다니는 거죠. 전 솔직히 그래요. 드리는 얘기로는 서민아파트 분양권을 주더라도 1천5백만원 정도 가져야 된다고 하는데 그 돈이 잇는 사람들은 극히 작은 숫자일 꺼예요. 난 10원도 없어 못 들어갈 입장이니 시간이라도 벌어 그 돈을 만들 수 밖에 없죠. 나같은 입장이 많아요. 사람사는 데 뭐든지 숨김없는 통로가 중요한 거거든요. 정부에서 몇 년 몇월까지 이런 계획이 있으니 열심히 돈을 버시오. 그런 말을 해주면 좋겠어요. 그런게 없으니 겨울에 일이 없을 때 이런저런 사람끼리 어울려 술이나 먹게 되고 성질급한 사람은 자포자기도 되고 그렇죠." 복지미용실을 운영하는 백소연(20)씨도 가족들과 함께 이곳에 산지가 8년이 되는데 분양권이 확실히 주어질 것이라는 기대 속에 손님 없는 미용실의 한낮을 지키고 있었다.

<난지도의 열림 공부방>
 이주계획 얘기로 불안한 난지도의 한켠에는 지역주민과 아이들의 좋은 생활공간이 되고 있는 "열림 공부방"이라는 다사로운 천막집이 있다. 이곳은 88년 당시 대학교 1학년생이었던 김승번(26)씨가 지역문제에 관심을 갖고 난지도를 찾은 뒤 어렵게 마련한 곳으로 그간 중학교 과정을 끝낸 1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지금은 30여명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에는 무허가 건물이라 철거위협도 만만찮았고 주민들의 의심에 찬 눈초리도 있었으나 지금은 매주 수요일 밤이면 수지침으로 건강을 유지하려는 주민들이 찾아와 단란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아이들은 의례 4시가 되면 꼬마애들부터 중학생까지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로 떠들썩하니 몰려와서는 교과공부며 환경, 공해, 역사, 성문제, 등 생활에 밀접한 교육프로그램에 열심히 참여한다. 학생들에게 이주계획 상황을 물어보니 어린 학생들은 난지도가 좋아서 떠나기 싫다 하고 고등학생들은 부모님과 행동을 같이 하거나 직장을 갖게 되며 거처를 달리할거라고 얘기한다. 난지도의 유일한 지역단체라 할 수 있는 열림 공부방은 군제대 후 다시 돌아온 김승범씨 외 대학생 교사8명, 전 공부방 교사로 구성된 후원회 "열린자리", 졸업한 학생들, 말없이 지켜봐주는 난지도 주민들과 이곳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의 힘으로 튼튼히 뿌리내려 있었다. 공부방 교사로 4년째 활동하는 정순희(25)씨는 난지도 이주계획에 깊은 우려를 나타내면서 "열림 공부방"은 한명의 아이라도 찾아오는 한 끝까지 지켜갈 것이며 이후 주민대책위가 구성된다면 지역주민과 함께 행동을 맞춰가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지금 공부방 교사들은 이곳 학생이었던 이지연(17·여·서현중2년중퇴)양의 신장이식수술 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지연양은 악성신부전증으로 수술이 빠를수록 좋은데 환경미화원인 아버지의 수입으로 월 사십만원 정도의 치료비 부담이 힘들고 어머니의 신장을 이식하기 위한 1천여만원의 수술비 마련도 시급하기 때문이다. 일일주점을 열어 기금을 마련하는 한편 병원의뢰, 심장재단과의 협의 등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훈훈한 인정이 모아져 하루 빨리 건강한 지연이의 모습을 되찾기를 기대하고 있다.

<주민자치회의 주체적인 움직임>
 그간의 난지도 주민들은 힘을 모아 지역문제에 공동대응했던 몇 번의 경험이 있다. 처음은 84년 물난리와 화재로 집을 모두 잃은 주민들이 성산대교쪽에서 시위를 하여 상하수도 시설과 지금의 조립식 건물을 얻어냈던 것이다. 이주계획이 거룬되면서 91년 초에는 주민자치회를 구성하여 6백여명이 2백만원 한도의 개인통장을 만들어 정부에서 땅을 불하해주면 집을 자체적으로 짓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때 마포구청장으로부터 영구임대아파트 입주 및 시민아파트 분양 약속을 받아냈었다. 92년 초에는 백오십원으로 인상된 마을버스 요금이 다시 오른다는 말이 있자 주민자치회는 여덟대의 봉고차를 무료로 운행하여 일주일간 개인업자와 팽팽히 맞섰다. 당시 130원으로 요금을 조절하고 마을버스 개인업자가 일년에 1백만원씩 주민자치회 지원금을 내기로 합의, 타결되어가다 주민자치회로 그 운영권이 넘겨졌었다. 92년 5월부터 합정동-상암동으로 운행구간을 넓히고 150원 요금으로 현재는 다시 개인업자가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단결된 모습으로 대응했던 주민들이지만 점차 이주계획이 불확실하여 주민자치회는 현재 흐지부지되어 앞으로의 대응은 난감하기만 하다. 뿐만 아니라 조립식 건물의 25%에 해당하는 세입자와 근처의 판자집들은 더욱 대책이 어렵다. 한편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의 안정화작업은 "서울시 청소사업본부"에서 담당하고 있다. 이곳의 계획2과 장운우씨의 말을 들어보면 환경오염 방지시설 용역업체인 "대우엔지니어링"에 의뢰하여 그 사업을 계획중이라 한다. 그 내용은 화재와 폭발의 위험 때문에 가스를 별도 추출하여 처리하고 쓰레기에서 나오는 지하오수가 주변 한강으로 흐르지 않도록 지하차수벽을 설치하는 것인데 94년에 기초 준비를 하고 95년부터 계획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지금 쓰레기 매립장은 하루에 15톤 덤프트럭으로 실어온 천여대분 흙으로 볼썽사나운 쓰레기더미를 평평히 다지고 있는데 이 일은 올 2월로 끝날 예정이다. 한편 난지도 이주계획은 마포구청이나 청소사업본부에서도 알지 못한다는 답변을 하였으며 영세민의 영구임대아파트 입주는 이와 무관한 것으로 올해 중으로 남은 영세민 46세대가 입주하게 될 것이라 밝혔다. 그리고 청소사업본부 시설관리과에서는 주민들이 난지도 도시개발 계획실시 인가일인 78년 3월 이후에 조립식 건물에 살고 있고, 인가일 3개월 전에 거주지 신고가 되어야 분양권이 가능하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분양권을 받을 권한이 없다고 덧붙였다. 행정기관의 답변을 통해서는 난지도 이주계획의 구체적 일정과 대책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단지 95년을 쓰레기 매립장 안정화계획 추진년도로 보면 94년부터는 조립식건물 철거의 움직임이 있지 않을까 추정해 볼 뿐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주민 스스로의 대책마련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자신의 문제를 적극 해결하려는 모습으로부터 문제 해결의 열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난지도 주민의 소망과 바람이 꼭 이뤄지기를 바랄 뿐이다.

글/오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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