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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봅시다] 장애우 올림픽과 스포츠 정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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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4일 장애우올림픽의 폐막과 함께 하계올림픽을 시작으로 두 달 이상 전 세계를 들끓게 했던 스포츠 전쟁도 4년 간의 휴전(?)에 들어갔다. 현대 사회의 가장 대규모적이고 대표적인 문화활동인 스포츠는 과연 인간정신을 순수하게 구현해 내는 실험장인가, 아니면 돈과 권력으로 타락한 세계를 은폐하는 거대한 "사기극"인가. 그리고 그 속에서 장애우 스포츠는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방향을 바꾼다">
  지난 7월 바르셀로나 하계올림픽은 개막 첫날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한국의 여갑순 선수가 사격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우리를 홍분 시켰으며 마지막 날 마라톤에서 황영조 선수가 손기정 선수 이후 56년 만에 세계를 제패하면서 절정에 올라 애국가로 시작해서 애국가로 끝나는 가슴 벅찬 감격을 온 국민이 만끽했던 한편의 드라마였다.
  바르셀로나 하늘 높이 펄럭이는 태극기는 바로 우리 민족의 가슴 벅찬 자긍심이었으며 선수 한사람 한사람은 바로 텔레비전 앞에서 눈을 비벼가며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는 우리 모두의 분신이었던 것이다.
  전 세계 20억이 넘는 사람들을 텔레비전 앞에서 울고 웃게 만드는 스포츠(딱히 적당한 우리말을 찾지 못해 그대로 서양말을 쓰게 됨이 좀 찜찜하긴 하다)의 "힘과 매력"뒤에 숨어있는 본질은 과연 무엇이며 이와는 대조적으로 지난 9월14일 막을 내린 제9회 장애우올림픽의 철저한 외면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이제부터 스포츠가 갖고 있는 또 다른 얼굴을 살펴보자.
  고도로 조직화된 프로야구 등 프로스포츠에서부터 망국병이라고 지탄을 받고 있는 화투놀이에 이르기까지 스포츠의 범위는 거의 인간 활동의 모든 부분에 걸쳐 있다.
  보통 체육활동이나 운동경기의 넓은 뜻으로 사용하고 있는 스포츠(sports)란 말은 원래 "방향을 바꾼다"라는 중세 영어인 스포텐(sporten)에서 갈라져 나왔으며 이외에도 "오락"과 "싸움"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스포츠는 이처럼 무엇인가 지금하고 있는 것(주로 일)과는 다른 것이며 또한 그것은 재미와 함께 다른 사람과 승부를 겨루는 경쟁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학자들은 스포츠란 일과 놀이라는 얼핏 보면 전혀 상반된 두 가지 행위의 연장선 위에 있으면서 "경쟁적 성격을 갖는 정신적·신체적 활동으로서 제도화된 규칙에 의해 지배되는 현상"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간단한 정의에도 불구하고 스포츠의 본질적인 의미와 그 역할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스포츠를 보는 두 가지 시각>
  스포츠의 본질적인 의미와 사회구조와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스포츠가 "이차적 사회제도로 개인과 사회에" 대해 여러 가지 좋은 기능을 한다는 입장과 스포츠가 "지배이데올로기에 의해 그 본래의 모습이 왜곡되어 있다"는 입장으로 나눌 수 있다.
  스포츠가 사회통합의 좋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스포츠는 산업사회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가장 필요한 노동에의 헌신을 지속시키는 성취동기를 부여해 주기도 하며, 또 운동경기라는 대행물을 통해 공격적 에너지의 분출구를 마련해 줌으로써 긴장을 해소시키는 등 정신건강 문제를 관리하게 할 뿐 아니라 사회성원들에게 전체 사회의 규범과 가치를 심어줌으로써 체제 유지에 기여하는 스포츠의 기능을 그 이유로 들고 있다.
  또한 이들은 스포츠가 사람들에게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한 정체의식을 부여해 국민적 통일성과 연대감을 조성해 주는 사회통합에 중요한 역할을 할 뿐 아니라 경쟁, 계획, 조직, 근면성과 같은 기존의사회가치를 내면화하도록 도와주고 신체적 단련과 기술의 습득을 통해 환경에의 적응을 위한 건강과 힘을 제공하는 사회의 균형과 안정을 위 한 중요한 기능적 부분이라는 점 역시 스포츠의 사회통합 기능이라는 본래 목적에 충실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이와는 대조적으로 스포츠가, 지배이데올로기에 왜곡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스포츠가 사회 구성원들에게 표준화된 규칙과 경직된 구조를 강요함으로써 개인의 소외를 가져오며, 중요한 사회문제에 대한 인식을 마비시키고 그러한 문제 해결의 집단적 시도를 저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더욱이 자본주의 사회의 경우 스포츠는 자본축적을 위한 도구로 상품화되어 상업주의와 물질주의의 만연이라는 사회문제를 야기하며 국력의 과시를 통한 대중 동원과 사회통합을 위한 과도한 민족주의를 조장하는 등 지배이데올로기에 의해 왜곡되고 있다는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삶에 있어서 거의 드물게 진실한 것"이라는 찬사와 함께 "그 자체로서 구속이며 동시에 또 다른 구속을 위한 준비"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는 스포츠와 장애우와의 만남 역시 상반된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

<치료와 검투사 그리고 올림픽>
  기록에 의하면 고대 그리스 히포크라테스(460-377BC) 시대부터 장애우를 대상으로 한 운동경기가 의료목적으로 실시되어 왔던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장애우 스포츠가 치료의 방법으로 시도된 것과 거의 동시에 고대 로마시대에는 여자와 왜소증 장애우간의 격투기 경기가 열렸다는 기록도 있어 장애우가 스포츠 활동에 참여하는 형태가 단순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장애우 스포츠 활동이 현대적인 모습을 띠게 된 것은 스포츠 자체의 발전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으로 장애우 문제가 본격적인 사회 문제로 등장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는 것도 장애우 스포츠의 성격과 역할을 짐작할 수 있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현대적 의미의 장애우 스포츠는 2차대전 후에 전상자의 재활수단으로 영국의 스토크 맨드빌 병원에서 척수장애우에 대한 종합관리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획기적인 발전의 계기가 마련되었다.
  스토크 맨드빌 병원의 구트만 박사는 1948년 척수장애우 체육대회를 제창하여 영국 국내대회를 매년 개최하게 되었으며, 이 대회는 1952년부터 도이칠란트, 스웨덴, 노르웨이 등 유럽지역의 국제대회 로 확대 발전하여 마침내 "국제스토크델드빌경기연맹"(ISMCF)이라는 스포츠기구가 탄생되게 되었다.    이와 함께 장애 유형별로 절단자 및 기타 장애우경기연맹(ISOD), 뇌성마비인 경기대회(CP-ISRA), 시각장애우경기연맹(IBSA)이 각각 설립되었고, 마침내는 이러한 장애우 스포츠기구를 조정하기 위한 "세계 장애우스포츠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가 1982년 3월 12일 조직되었다.
  이러한 기구들이 설립되면서 국 제대회의 종류도 지역 친선경기를 비롯해서 세계선수권대회, 하계올림픽대회, 동계올림픽대회 등으로 나누어 실시되고 있다.
  국제조정위원회가 발족되기 이전에는 스토크맨드빌경기연맹에서 장애우스포츠의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으나 1960년 로마올림픽대회 때부터 장애우올림픽 (Paralympics)을 동반 개최하게 된 것이 지금까지 국제관례로 이어져 오고 있다.

<장애우올림픽과 스포츠 신문>
  바르셀로나에서 장애우올림픽이 열리는 기간 동안 우리는 "한 달 전의 난리법석에 비해 너무한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릴 정도로 신문, 방송에서는 철저하게 이 대회를 무시했을 뿐 아니라 간혹 실리는 기사도 스포츠 면이 아닌 생활 면에서 다뤄 장애우 스포츠를 보는 언론매체의 시각을 여실히 드러냈다.
  당시 스포츠 신문에는 "과연 장종훈의 40번째 홈런이 언제 터질 것인가"하는 것이 주먹만한 글씨로 연일 1면 머리기사를 차지했는가 하면 하다 못해 낚시란에 금주의 월척으로 뽑힌 붕어 사진까지 큼지막하게 실리는 판이었음에도 장애우올림픽에 관한 기사는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장애우 스포츠가 이처럼 사회의 관심 밖으로 벗어나 푸대접을 받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단순히 장애우들이 하는 경기라 재미가 없어서 일까. 장애우들의 경기가 재미가 없다면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장애우 스포츠가 언론매체의 철저한 무시를 당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관에 맞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더 높이, 더 멀리, 더 빠르게"라는 스포츠, 아니 우리 사회 전체의 이념적 가치에 도달하지 못하는 장애우 스포츠가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고도화된 상품인 언론매체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기까지 한 것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들이 도저히 해낼 수 없는 빠른 속도와 더 강한 힘,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갖춘 "영웅"이지 그 기준에서 떨어지는 "장애우"가 아니며 또한 스포츠의 형태에 있어서도 "스피드, 힘"그리고 이 두 가지 조건이 어우러진 "폭력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스포츠 신문에 장애우올림픽에 관한 기사가 실리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상품가치"에서 뒤떨어지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과연 스포츠 신문, 더 나아가서 우리 사회가 스포츠를 통해 드러내고 있는 가치체계가 올바른 것인가, 그리고 그러한 장애우들이 맹목적으로 그러한 가치체계를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에서 생각해 볼만한 문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앞으로 장애우 스포츠의 방향을 결정하는 이념적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로에 선 장애우 스포츠>
  최근 국제장애우올림픽위원회 (IPC)는 국제올림픽위원회 (IOC)에 공문을 보내 1996년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리는 올림픽 대회에 남자휠체어 마라톤, 남자 휠체어 농구, 여자수영 100미터 자유형, 남자탁구단식 등 4가지 종목을 정식종목으로 채택해 줄 것을 요청했다.
  장애우 올림픽위원회는 제안서를 통해 "장애를 이유로 차별하는 것은 인종·피부색·성(남녀)·종교 그리고 정치적 신념 때문에 차별하는 것과 전혀 다를 게 없는 바람직하지 못한 것"일뿐 아니라 "장애우의 신체적 특수성은 유도·조정·레슬링·역도·권투에서 키, 몸무게, 성별 차이를 두는 것과 같은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위원회는 "장애우종목의 추가로 올림픽이 비대화 될 것"이라는 일부의 걱정에 대해 "현대 도시는 장얘우용 시설을 갖추는 것이 일반적이라 장애우 종목을 신설해도 대회비용이 크게 더 드는 것이 아니며 모든 장애우올림픽 종목이 정식종목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올림픽 비대화에 대한 우려는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일축했다.
  애틀랜타 올림픽조직위와 이미 2 백여 명의 선수단 규모까지 협의해 거의 확정된 것으로 알려진 이번

이제 장애우 스포츠는 "상품화"와 "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의 스포츠 문화를 바로잡고 전체 사회의 발전을 위해 새로운 인간형을 만들어내는 "생활체육" "민중체육"의 한  가닥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결정대로 장애우가 하계올림픽에 정식으로 참여하게 된다면 이는 "올림픽 1백년 사상 최대의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그에 못지 않게 장애우 스포츠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가장 먼저 일어날 변화로는 장애우 스포츠의 활성화(?)를 들 수 있다.
  특히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4가지 경기의 경우 앞으로 장애우 스포츠의 대표적인 종목으로 자리 잡아 장애우 스포츠 전체의 판도변화를 일으킬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과연 장애우 스포츠의 발전과 직결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단언할 수없는 것이 우리의 상황이다.  기존의 장애우 스포츠가 전무한 상태에서 선택된(?) 일부 종목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올림픽 중심의 엘리트 스포츠 정책이 가뜩이나 위축된 나머지 종목에 대해서 어떠한 자세로 나오리라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더욱이 올림픽 자체가 상업주의와 과도한 민족주의로 치달아 그 본래의 목적 자체가 극히 의심스러운 상태로까지 변질된 상황에서 일부 장애우가 여기에 참가한다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의미가 있겠는가하는 지적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생활체육, 민중체육으로>
  이처럼 극심한 변화를 겪고 있는 장애우 스포츠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길은 과연 무엇일까.
  현대사회의 가장 대규모적인 문화활동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스포츠는 무엇이든 돈이 되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상품화하려는 "상업주의"와 뛰어난 사람만이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더 좋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체제유지"적 이데올로기를 가장 현실 속에서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이제 장애우 스포츠는 "사회성훈련"과 "기능회복"의 의료적 차원을 넘어서 "기록"과 "경쟁"이라는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는 우리 사회에서 스포츠가 가지고 있는 그리고 매일 매일 반복해서 수행하고 있는 역할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연구가 뒷받침 될 때에만 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장애우 스포츠는 "상품화"와 "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스포츠 문화를 바로잡고 전체 사회의 발전을 위해 새로운 인간형을 만들어내는 "생활체육" "민중체육의 한 가닥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장애우 스포츠, 과연 또 하나의 새로운 다른 "상품"이 될 것인가 아니면 "변화의 싹"이 될 것인가.  

작성자전흥윤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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