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가 보내온 글] 우리는 정상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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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9일 방영된 문화방송의 저녁 프로 "인간시대"는 "비가 오면 비를 맞는다"는 호소력 있는 제목이었다. 평소 텔레비전을 거의 보지 않기 때문에 그냥 스쳐버렸을 텐데 그 제목이 나를 붙들어매고 며칠동안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었다.
"비가 오면 비를 맞는다(?), 그러면 나는?", "비가 오면 비를 피한다. 혹은 다른 어떤 방법? ‥‥‥‥."
비를 피할 도리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과 비를 맞는다는 적극적인 삶의 태도가 벌써 제목에서부터 풍겨왔고, 스물 다섯 살 하반신 소아마비 정수화씨의 삶이 화면에 펼쳐지는 한 시간 동안은 감동과 부끄러움이 연속되는 시간이었다.
동네 노동자 세 사람과 장안동근로청소년 복지회관의 기타강습생을 가르치는 강습비 월 336,600원으로 성수동 조그만 자취방에서 오랜 꿈이었던 자립의 생활을 하고 있다. 목요일에는 장애인과 함께 하는 모임인 "사랑의 친구 우리" 사무실에 나가고, 나머지의 모든 시간을 "음악"에 쏟으면서 요즘은 세계 장애인 음악축제 참가 준비에 전력하는 모습을 그렸다.
마포구 노고산동 작은집에 살면서 고아였던 어린 시절을 보내고, 대학입학의 꿈으로 모아온 300만원을 선뜻 작은아버지 병원 비로 내놓고 그 진학의 꿈까지 포기했던 정수화씨. 10년 동안 정들은 보장구를 정성스레 신고 벗는 모습에서 실로 파란만장한 시간 속에 뼈 깎는 아픔을 감당했으리란 느낌이 확연했다. 그의 단정한 머리와 깨끗한 얼굴, 잘 웃고 농담도 잘 하는 밝은 모습은 25년 간 어려운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의 생활철학에서 나온 것이리라. 음악에 전념하여 살아가는 정수화씨, 강습생에게는 친구와 형으로서 모든 정성을 기울이며 살아가는 정수화씨. "비가 오면 비를 맞는다(?)." 설사 비를 피하지 않고 맞아도 그의 앞에 활짝 개인 내일이 보이는 것은 아니다. 또다시 "비가 오면 비를 맞는다"는 자세로 담담히 오늘을 살고 내일을 맞을 것이다.
나는 장애인의 세계에 대한 약간의 지식과 경험, 심지어는 친한 사람조차 없다. 내 스스로 그들과 거리를 두고 살아온 결과가 된 꼴이다.
장애인 하면 먼저 전철역 근처나 시장에서 하반신이 없거나 눈이 멀어 불편한 몸으로 잡화를 팔거나 적선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서 "불결하다, 혹은 돈을 벌려고 일부러 불쌍하게 보이는 것이다"라는 부정적 인식이 앞선다.
얼굴이 비뚤어지고 사지가 뒤틀린 지체부자유자들을 보았을 때 추악하고 무섭다는 감정으로 피해 다녔고, 재활원이나 고아원에서 운영 금을 떼먹거나 원생들을 폭행·학대하는 사건에도 무신경했다. 이제 아주 늦었지만 장애인에 대한 나의 잘못된 생각을 바꾸고 싶다.
엊그제 찾았던 한국구화학교 "우성원"의 최병문 원장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대학까지 나와서 두려움을 느꼈다는 것, 장애인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정상인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상인을 이해하면장애인을 이해할 수 있어요. 또 장애인을 이해하면 정상인을 이해할 수 있어요. 높은 곳을 알려면 낮은 곳을 알아야 하고 깨끗한 것을 알려면 더러운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일부 신체의 장애가 있다고 "전인격체"를 장애라고 굳게 믿어왔던 인색한 생각을 따끔하게 혼내고 인간존중의 중요함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 말이었다.
신체적인 장애를 "1차적 장애"라 한다면 그 장애인의 성장과정 중 몸에 익혀온 학습의 축적과 사회적 냉대, 소외·거부 등으로 생기는 마이너스 요소인 "2차적 장애"가 더욱 크다고 한다. 결국 우리는 정상인들끼리의 사회생활을 고집하는 잘못된 인식과 사회적 구조로 2차적 장애를 만들어왔던 것이다. 정서적으로 불안하거나 성격이 유별나서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점들도 넓은 의미의 "장애"라 본다면 우리에게도 "정상인만 인간이다"라고 생각하며 장애인들과 두터운 벽을 쌓고 살아온 심각한 "정신적 장애"가 있는 것이 아닐까.
장애인들과 정상인이 함께 배우고 생활하면서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회를 꿈꾸며 내 주변의 장애인들을 나와 똑같이 생각하고 함께 살기 위한 노력기울여야겠다.
작성자오숙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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