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봅시다] 컴퓨터로 여는 새로운 세계 "재활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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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낯선 남의 얘기 같지만 "컴퓨터"가 몰고 온 새로운 바람은 이미 우리 안에 뿌리내리고 있다. 최첨단의 "컴퓨터 통신"을 통해 가장 낙후된 "장애우 문제"를 풀어 가는 "재활통신"을 통해 컴퓨터와 장애우의 접목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해 본다.
<컴퓨터 통신의 역사>
"컴퓨터 통신"이라는 최첨단의 방법을 통해 가장 낙후된 장애우 문제를 고민하는 "재활통신"의 시작은 89년 12월 재활협회에서 열린 "전국장애인단체교류대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80년대 들어 그동안 억눌려 왔던 장애우들의 욕구가 폭발해 수백 개의 장애우 단체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났지만 이들 단체는 그 규모나 운영 면에서 수공업적인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이로 인해 서로 정보와 서비스가 중복되는 등 문제점이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었다.
이러한 장애우 단체간의 정보와 서비스를 서로 교환하고 지속적인 교류체계를 만들기 위해 열린 것이 바로 교류대회인 것이다.
대회 마지막 날 각 단체의 참가자들은 평가시간을 통해 "일회적인 대회보다는 지속적인 교류·협력체계를 만드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요구를 했으며 이러한 요구는 한 달 뒤 "지방자치제 실시와 재활계 대응방안"이라는 주제로 열린 시도별 "장애인단체장 간담회"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제기됐다.
당시 참가자들은 "1박 2일 정도의 짧은 행사로는 전국적으로 흩어져 있는 기관, 단체가 한자리에 모이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다양한 수준과 분야에 대한 관심을 채우기 어렵기 때문에 시·도별 장애인단체협의회를 구성 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협의회 구성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이를 위해 부지런히 지방을 오가던 한덕연씨(30·장애인재활협회 조사연구과)는 막상 현실적인 작업에 들어가자 각 단체가 동의했던 대의명분과는 다르게 회의소집을 위해 필요한 비용조차 내지 않으려는 이율배반에 부딪히면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말았다.
협의회 구성이 어려움에 부딪히면서 장애우 단체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속적인 체계 수립에 대해 고민을 하던 한씨는 이즈음 "컴퓨터 통신"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함으로써 장애우단체 조직화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
컴퓨터 통신은 전국 어디서나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서로 연결이 가능할 뿐 아니라 각자의 수준과 관심에 맞는 다양한 내용을 자신이 편한 시간에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어 기존의 직접 접촉에 비해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다.
90년 5월 "재활기관간의 교류협력 활성화를 위한 실무자회의"가 열린 자리에서 컴퓨터 통신 이용 방안을 제의하면서 시범을 보여 만장일치로 협회 중심의 통신망 구성을 요청 받았으며 마침내 지난해 5밀 29일 데이콤의 피시서브를 통해 "재활통신"을 개통함으로써 컴퓨터통신 시대의 막을 열었다.
<동호인 모임이 더 활발해>
당초 한씨가 컴퓨터 통신을 통해 1차 서비스 대상으로 삼았던 사람은 복지단체, 기관의 임직원을 비롯 관련 학계의 학자와 학생 등 장애우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들로 이틀 간의 정보교류를 통해 흩어져 있는 재활정보를 모으고 토론을 유도해 좀 더 깊이 있는 내용의 연구성과를 이끌어 내겠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장애우들이 직접 참여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한씨는 이를 위해 데이콤의 피시서브와는 별도로 지난해 10월 16일 당시 무료로 운영되던 한국피씨통신의 케텔에 장애우와 일반인을 위한 통신망 "재활통신"을 개통함으로써 전문가와 일반인을 망라하는 종합적인 통신망의 구성을 마쳤다.
개통한지 일년 남짓된 현재 운영 상태를 살펴보면 데이콤 피시서브의 경우 현재 60여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나 이들 전문가들이 컴퓨터와 컴퓨터 통신에 대해 아직까지 잘 모르고 있어 새로운 정보나 깊이 있는 토론을 하지 못하고 이미 올라와 있는 정보를 "때가는"초보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을 위한 통신망이 저조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케텔에 개설된 "재활통신"의 경우 처음 20여명의 회원으로 출발했으나 열 달 남짓 짧은 기간에 열배 이상으로 늘어나는 등 날로 커지고 있어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케텔이 유료화 되면서 한때 3백여 명을 넘었던 회원들이 반 이상 떨어져 나가는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현재 2백50여명 정도로 "회복"됐다. 장애우와 비장애우가 반반 정도인 재통이 회원들을 컴퓨터를 통해 편지(전자사서함)나 대화(대화 실에서 직접 얘기를 나눌 수 있다)를 나눌 뿐 아니라 마장동 장애우 복지관 건립 저지 같은 사건이 일어날 경우 자유게시판 등을 이용해 서로 토론을 하는 등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한 동호회는 지난 6월 30일 재활협회로부터 "재통"의 운영자체를 넘겨받아 독자적으로 사무실을 내는 등 새로운 도약을 준비중이다.
<컴퓨터가 가져온 변화>
현재 한 달에 6천여 명 이상이 이용할 정도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재통"을 통해 장애우는 과연 어떤 변화를 체험하고 있는 것일까.
컴퓨터 통신이 가져온 가장 "놀라운 변화"는 그동안 "대화"와 "정보"에서 철저히 단절되어 있던 중증장애우들이 바깥 세계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이다.
일단 정보와 대화의 단절이라는 암흑세계에서 벗어난 장애우들의 변화는 또 그만큼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는데 이는 지난 2월 29일 "전국 컴퓨터통신 장애인대회"에 "한 손 사용자를 위한 자판"을 개발, 발표한 안종혁씨의 경우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재통"의 부시삽(시삽은 시스템 오퍼레이터의 줄임말로 곧 각 통신망의 운영책임자를 말하며 현재 재통의 시삽은 한덕연 씨)이며 회원들 사이에 "맥가이버"로 통하는 안종혁씨는 학교 문턱에도 가본적이 없는 장애우로 대화실에서 만난 다른 회원과 평소 한 손으로 글자판을 치면서 겪었던 어려움에 대 해 얘기를 나누던 중 마침 컴퓨터 관계 일을 하던 이 회원의 도움을 얻어 한 손만으로도 글자판을 다루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자판을 스스로 개발하게 되었다.
더욱이 이러한 "변화"는 그 자신에 그치지 않고 다른 장애우들에게 이어져 안씨의 "한손 자판"이 발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꽃동네에서 일하는 의사(물론 재통회원이다)로부터 "그동안 꽃동네에 수용된 장애우들이 충분히 일할 수 있음에도 수용보호에 머물고 있는데 컴퓨터를 배우면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요청을 받아 "한손자판"에 대한 설명회와 시범을 보이는 등 연쇄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개인적인 "감상" 뛰어넘어야>
현재 하이텔의 "재활통신"에서 운영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회원들이 쓴 작품은 물론 장애우 문제를 소재로 한 영화, 시, 소설 등을 소개하는 "재활문단"을 비롯하여 자원활동시 알아야 할 여러 가지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서로 연결시켜주는 "자원봉사실", 언론 매체에 발표됐던 장애우 관계 기사를 수록한 "재활계 소식 및 홍보" 그 리고 장애우의 가족으로서 알아야할 자녀지도방법 등 부모교육을 위한 "가족교실"과 "주제토론실"등 10여 개에 이르고 있다.
이중 가장 이용률이 높은 것은 "자유게시판"으로 새로 회원이 된 사람들이 고참들에게 바치는 신고식(?)에서부터, 새로운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 그리고 회원들이 겪는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에 대한 상담까지 마치 장터처럼 늘 북적거리는 곳이다.
재통의 시삽으로 있는 한덕연씨는 "재통을 개설하게 된 동기가 장애우들에게는 사회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열어주고 비장애우에게는 재통을 통해 장애우를 이해하는 기회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며 "재통은 단순히 통신상의 교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통신을 통한 교류가 구체적인 인적교류로 이어지고 있는 몇 안 되는 통신망"이라고 재통을 소개했다.
이러한 재통의 단결력은 지난 4월 보라매공원에서 열린 "회원의 날" 행사에 동호인 모임으로는 사상유래 없는 60여명의 회원이 참가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으며 그동안 서로 아이디(안종혁씨의 "맥가이버"처럼 자신을 상징적으로 표시하는 기호나 숫자)로만 알았던 회원들이 보자마자 서로를 알아보고 마치 오랜 친구처럼 얘기를 나눠 컴퓨터라는 기계와 화면을 통해 나누는 대화가 얼마나 "인간적"일까 하는 걱정을 오히려 무색하게 하기도 했다.
한덕연씨는 이와 함께 "컴퓨터 통신의 가능성은 단순히 물리적인 벽을 넘는 이러한 인간적인 교류 차원이 아니라 집에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재택근무 등 그동안 사회참여가 봉쇄되어 있던 중증 장애우와 정신장애우의 직업재활을 모색하는 더없이 좋은 삶의 매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재통에 실리는 많은 글들이 장애우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을 찾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실천적"인 내용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아픔을 서로 달래는 "감상적"인 차원에 머물고 있어 컴퓨터 통신이라는 최첨단의 수단"에 걸맞는 "진보적인" 내용을 담아내는 새로운 "변화"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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