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문제다] 밀려나는 장애우 복지시설, 설 곳이 없다.
본문
장애우 복지시설 건립이 좌절되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다. 대도시에서 밀리더니 이젠 지방에서 마저 신축을 거부당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상의 추방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라파엘의 집" 사태와 중증장애인 노인요양원 건립좌절 사태를 조명해 봄으로써 위기의 실체를 살펴본다.
<종로구청 이전 촉구 공문 보내>
지난해 10월 24일 서울 종로 구청은 관훈동에 있는 장애우 복지시설 라파엘의 집(원장 윤제송·47세)에 "최후 통첩"의 성격을 띤 공문을 보냈다. "장애인 임의시설 이전 촉구 및 시정지시"라는 제목의 이 공문은 "91년 12월 말까지 시설을 이전하지 않을 경우 관계법에 의거 조치할 재차 통보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종로구청 측의 이러한 협박(?)은 내용만 달라졌을 뿐 90년 12월부터 이어진 것이었다. 종로구청이 이해 12월 26일에 보낸 공문을 보면 "인근 주민 40여명으로부터 시설이 불법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주민들이 많은 피해를 입고 있으니 의법 조치를 요망한다는 내용의 진정서가 접수되어 조사한바 귀 시설은 시설허가를 득하지 않은 임의수용시설로서 의법조치대상"이라며 "그러나 현실 여건상 수용시설이 부족하고 비영리시설임을 감안하여 시설이전 및 이전 시까지 안전을 위하여 몇 가지 지시사항을 통보하니 이해해주기 바란다"며 지시사항으로
" 시설을 조속한 시일 내에 이전토록 하고 이전 전까지 인근 주민들에게 안면방해 등의 피해가 없도록 소음을 방지하고 수용자들의 인근 주택가 집단 산책과 교육상 체벌 등은 주민들의 감정을 고려하여 최대한 억제할 것이며 화재 예방을 위해 소화기 설치와 안전점검을 받을 것"을 각각 열거하고 있다.
그 뒤 종로구청이 두 차례에 걸쳐 더 보낸 공문도 이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네 번째 공문에 이르러서는 지시사항보다는 "시설이전 촉구"와 "의법조치"가 유난히 더 강조되고 있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바로 골치 아픈 민원의 소지를 한꺼번에 제거하겠다는 의지의 과시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라파엘의 집은 어떤 죽을죄를 졌기에 이렇듯 수모를 겪으며 공공연한 추방의 위협을 당해야 하는 것일까?
<근거 없는 지시 사항>
종로구 관내 평동에 있던 라파엘의 집이 관훈동 현 가옥으로 이전한 시기는 90년 5월이다. 라파엘의 집은 사회복지법인 하상복지회(회장 나종천) 산하 시설로 되어 있지만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임대시설이라 같은 법인 산하 여주 라파엘의 집과는 달리 정부의 인가를 받지 못하고 임의로 운영되고 있는 시설이다.
현재 낡은 한옥에 21명의 시각장애와 자폐의 중복장애를 가진 3세부터 10세까지의 아이들을 수용 교육하고 있으며 10명의 직원과 3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이들을 돌보고 있다.
라파엘의 집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정부의 인가 하에 운영이 이루어지는 합법적인 시설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종로구청 측의 지적대로 불법시설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는 것이 원장 윤제송씨의 설명이다. 즉 라파엘의 집은 장애우복지시설이지만 교육에 주안점을 두고 운영하는 일종의 조기교육센터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아동들을 수용하고 있는 것은 "반 이상이 지방 아동들이기 때문에 여건상 그렇게 된 것이지 결코 의도적으로 수용을 목적으로 시설 운영을 하고 있지는 않다"고 그는 이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서울 시내에 널려 있는 수많은 조기교육센터가 모두 다 비인가로 운영되고 있는 실정을 감안하면 형평의 원칙에서 볼 때 라파엘의 집이 유독 문제시될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이 나온 김에 종로구청 측이 시정을 지시한 개개의 사항들에 대한 해명도 아울러 들어보자.
원장 윤씨는 소음발생으로 인한 주민들 안면 방해 지적에 대해 "저녁 8시가 아이들 취침시간이기 때문에 주민들 안면을 방해할 여지가 없으며 오히려 주변술집들이 소음 공해를 일으키고있는 실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이들 체벌 운운 지적에 대해서는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장애가 심해서 체벌 효과를 기대할 수 없고 구타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자원봉사자들이 더 잘 안다"고 일축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이 인근·주택가를 산책함으로써 주민들에게 혐오감을 주니 자제하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산책이 아이들이 하루 중 유일하게 운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라며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백화점을 가본다든지 지하철을 타보는 것은 아이들의 사회성 교육을 위한 더없이 좋은 기회인데 이걸 가지고 혐오감 운운하는 것은 명백한 인권 침해" 라며 "더욱이 공무원이 이런 지시를 한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반박하고 있다.
<실제 이유 영업 방해(?)>
라파엘의 집이 있는 관철동 부근은 한옥이 밀집되어 있는 준 상가 지역이다. 주민들이 나열한 것처럼 터무니없는 이유들을 내세우며 추방을 주장하는 속내는 다름 아닌 라파엘의 집이 자신들의 이해(利害)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정서를 내는데 주도적으로 앞장섰던 주민 몇 사람의 면면을 살펴보면 라파엘의 집 추방이 왜 그토록 주민들에게 절실한 현안으로 다가섰는지를 단박에 알 수 있다.
윤원장에 의하면 라파엘의 집 추방을 극구 주장했던 주민은 4명이었다. 이중 처마를 맞대고 있는 옆집의 유 아무개 할머니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은 전부 다 부근에 산재해 있는 요정 주인들이라는 것이다.
기자는 주민 몇 사람을 만났다. 라파엘의 집으로 인해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한 주민은 솔직하게 말한다며 "재산상의 피해가 막심하다 집을 내놔도 사러 오는 사람이 없다"며 흥분했다. 그에 따르면 "주택가에 라파엘의 집 같은 장애인 시설이 있다는 게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으며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1년 내에 동네 분위기가 침잠 되는 쪽으로 바뀔 것"이라는 것이다.
근처 요정 여주인은 한 술 더 떴다. "라파엘의 아이들이 화단에 심어놓은 나무와 꽃을 망가뜨리고 그것도 모자라 손님들이 세워놓은 차에까지 손상을 입혀 장사에 막대 한 타격을 받고 있다"고 울상을 지은 그이는 이어 시각장애우와 관련된 속담을 들먹이며 "손님들이 아이들을 보면 술맛이 나겠느냐"고 오히려 반문했다. 근처에 있는 30여 개 요정주인들도 말은 안하고 있지만 전부다 자기와 같은 심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 그이의 설명이었다. "아이들을 위해서도 라파엘의 집 같은 시설은 한적한 시골로 이전시켜 넓은데서 마음껏 뛰어 놀게 해야 합니다." 그이가 말미에 덧붙인 친절(?)이다.
<고발 조치할 예정>
이러한 주민들 주장에서도 알 수 있듯이 종로구청 측이 공문에서 지적한 시정되어야 할 지시사 항들은 상당부분 그 근거를 상실하고 있다. 문제가 되는 건 안면 방해와 체벌 그리고 산책이 아니라 재산 손해를 입고 있다는 피해의식과 영업이 방해받고 있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는 주민들의 집단 이기주의가 보다 더 본질적 인 요인인 것이다.
이쯤에서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과연 종로구청 측은 이러한 내막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집단 민원에만 무기력해 일부 주민들 진정을 여과 없이 공문에 반영시키는 처사가 라파엘의 집을 실의에 빠트리고 나아가 장애 우들의 자존심을 짓밟는 월권행위라는 사실을 진정 몰랐던 것일까 ?
꼬리를 무는 의문을 풀기 위해 종로구청을 찾아 사회복지과 시설 담당자를 만났다. 그는 이전강요 근거를 묻자 "라파엘의 집은 법에서 요구하는 기본 시설을 갖추지 않은 무인가 시설이다"라며 "계속 이전을 거부하면 어느 시점에 가서는 사회복지 사업법 위반으로 고발조치 할 것"이라고 분명하게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어 라파엘의 집이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보호하고 있는 게 아니라 부모들에게 일정 액수의 돈을 받고 아이들을 대신 맡아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있다"며 이는 명백한 위법행위라 고 덧붙였다. 주민 진정내용의 확인 여부에 대해서는 "조사해본 결과 터무니없는 진정은 아니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이유야 어찌됐던 라파엘의 집과 종로구청의 이전을 둘러싼 공방전은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라파엘의 집은 이전을 하고 싶어도 여건이 안 돼 이전을 할 수 없는 실정이라며 현실적인 어려움 을 토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 한 라파엘의 집 사정은 아랑곳없이 지역주민과 종로구청 측은 줄기차게 이전을 강요하고 있다.
우리는 이 공방전을 어떻게 이 해해야 할 것인가?
백보 양보해 주민들이 제기하는 주장들을 일정부분 인정한다고 치자. 그러나 가진 자들의 여 흥과 술맛을 좋게 하기 위해 장애우 복지시설이 이전해야 한다 는 그 논리에는 끝까지 찬성할 수 없다는 것이 기자의 생각이다.
<지방이전은 문제가 없는가?>
이전을 강요당하는 시설은 비 단 라파엘의 집만이 아니다. 이 사회에 팽배해 있는 집단이기주 의는 자신들의 안마당에 장애우복지 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사실상 장애 우들을 변방으로 추방하고 있다. 그리고 주지하다시피 이러한 "사실상의추방" 현상은 대도시에서 더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주민들은 겉으로는 "산 좋고, 물 맑은 곳에서의 건강한 생활"이라는 배려의 측면을 강조하고있다. 그러나 실제 이유는 이해타산에 민감한 동물적인 본능의 발로에서 한치도 비껴나지 않고 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상기하자.
라파엘의 집 사태 취재 때 만난 요정 여주인도 그런 말을 했다. "장애인들을 위해서도 장애인 복지시설은 한적한 시골로 이전해야 한다"고. 이 논리에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대 따져본들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차라리 비감한 심정으로 "여주인이 술을 왕창 팔 수 있게" 장애우 복지 시설이 지방으로 이전한다는 가정을 해보자. 약육강식의 논리가 횡행하는 살벌한 사회에서는 당연히 약자가 밀리게 돼있다. 이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속편하지 않겠는가.
라파엘의 집을 비롯한 많은 장애우 복지시설이 더 이상 쫓겨나지 않으려고 산 좋고 물 맑은 땅에 정착하기 위해 지방으로 이전했다. 시골 주민들은 순박해서 쌍수를 들고 장애우 복지 시설을 환영하며 물심양면의 도움을 아끼지 않는다. 시골사람들은 대도시 사람들처럼 장애 우들을 배척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장애우는 더불어 살아야 할 진정 한 이웃인 것이다‥‥‥
참으로 허탈하다. 이 생각만 해도 행복한 시나리오는 그러나 현실에서는 한푼 어치의 값어치도 없는 몽상가의 꿈꾸기일 뿐이라는 데에 비극이 있다. 대도시에서 밀린 장애우 복지시설이 아무문제 없이 지방에 정착하리라는 예상은 명백한 착각인 것이다.
이제 장애우 복지 시설은 지방에서도 배척을 당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굳이 사례를 열거할 필요 없이 최근 발생한 중증장애인 노인 요양원 건립 좌절 사태만 봐도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중증장애인 노인요양원 건립좌절>
서울 잠실에 있는 선한목자재단(회장 서천석·54세)이 사회복지법인 중증장애인 노인요양원을 건립하기 위해 부지를 알아보러 다니기 시작한 시기는 지난 90년 말이다.
재단 산하 시설로 운영하고 있던 시각장애 노인 시설 루디아의 집(원장 서천석, 오금동에 있으며 최우지 할머니 등 10여명을 수용 보호하고 있다)이 협소하고 수용을 하는 대기자가 많아 이 참에 복지시설인가를 받아 시설을 확충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서원장에 따르면 처음 부지를 물색하러 다니기 전에 보사부 가정복지과를 찾아가 자문을 구했다고 한다. 가정복지과 담당자는 "강원도에 복지시설이 부족하니까 쉽게 건립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일러 주었고 그래서 다시 강원도청엘 찾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건립부지로 적당한 장소를 묻자 도청 사회과 담당자는 친절하게 "도심지역에는 들어서지 말고 복지시설이 한군데도 없는 영월군이나 명주군 그리고 횡성군 쪽을 알아보는 게 좋겠다"며 장소를 찾는 데 협조할 뜻까지 비쳤다는 게 서원장의 주장이다.
용기를 얻은 서원장은 다음날부터 명주군 쪽을 알아보다 땅값이 너무 비싸 포기하고 횡성군을 이잡듯이 뒤져 마침내 91년 4월5일 횡성군 안흥면 안흥 1리 41번지 4필지 인삼밭 9천 평을 매입할 수 있었다.
땅을 구입한 서원장은 곧바로 5월 6일 횡성군청에 시설건립 허가 신청서를 냈다. 3일 후인 5월9일 횡성군청은 구비서류 미비라는 이유를 내세워 신청서를 반려했다. 5월 25일 관계서류를 보완해 2차로 신청서를 보냈으나 이번에는 지역주민 반대와 관계법접촉 등의 이유로 "설립불가"라는 보다 확실한 거부 통보만을 들을 수 있었을 뿐이었다.
군청 측이 내세운 이유 중 관계법 저촉은 핑계에 지나지 않고 주민들 반대로 인한 민원발생이 보다 근본적인 이유임을 간파한 서원장은 이때부터 주민설득에 나섰다. 실제로 파악한 사실에 의하면 이때부터 안흥면에서는 "전국의 병신들은 다 안흥에 모여든다. 안흥 거리는 이제 거지들만 우글거릴 것이다"라는 근거 없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던 것이다.
서원장은 하루걸러 안흥을 찾았다고 했다. 시설을 짓기 위해서 원장이 쏟은 노력은 차라리 눈물겨운 것이었다.
서원장은 우선 동네 사람들을 상대로 봉사활동을 펼쳤다. 그곳 교회를 빌려 서울에서 시각장애우 침술 사들을 데려와 주민들에게 침을 놔줬다. 10여명의 안마사들을 데려와 안마시술을 해주기도 했다. 심지어는 없는 돈에 식당의 식권까지 사서 주민들에게 나눠주는 선심을 베풀기도 했다. 이런 봉사활동을 작년 여름에서 가을까지 서너 차례 지속했다. 그렇게 해서 장애인들이 주민들의 우려대로 구걸하지 않고 잘 산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나중에는 지방의회에 협조를 요청하기 위해 안흥면에서 양조장을 운영하는 군 의원 김아무개씨를 찾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군 의원은 만나기로 약속해 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군 의원은 개인적으로는 만날 수 없고 공청회를 열면 만나겠다고 했다.
그래서 올해 1월 22일 안흥면사무소 대 회의실에서는 중증장애인 노인요양원 건립을 둘러싼 지역주민 공청회가 열리게 되었다. 이 자리에서 서원장은 그동안 나돌던 뜬소문을 일일이 해명했다.
우선 장애인들이 안흥면에 와서 들끓고 구걸을 할 것이라는 소문에 대해서는 "길거리에 나을 수 있는 장애인들은 전부다 서울에서 직업교육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런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장애인들이 구걸을 한다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대도시에서 하지 시골에 와서 하면 벌이가 되겠느냐"고 서원장은 반문했다. "우리가 모시려는 분들은 장애를 가진 노인들이다. 동네 노인들도 중풍에 걸려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면 우리가 모실 수 있는 것이다," 서원 장은 시설이 지역주민을 위한 복지시설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자녀교육에 나쁠 것이라는 소문에 대해서는 "시설이 건립되면 전국의 자원봉사자들이 와서 봉사 활동을 펼칠 것이다. 노인들을 모시는 모습을 보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경로효친 사상을 배우게 될 것이 아닌가. 자녀교육에 좋으면 좋지 결코 나쁘진 않다"고 설명했다.
서원장은 해명에 그치지 않고 지역발전을 위한 시설건립도 약속했다. 동네아이들을 위한 청소년 시설이 없는 점을 감안해 "마당에 수영장과 롤러 스케이트 장을 지어 개방하겠다"고 했고 "요양원내 목욕탕도 동네 노인들에게 무료로 개방하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그러자 주민들은 더 이상의 빈대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취지가 그렇다면 한 번 더 공청회를 열어 시설 건립을 확정짓자"고 주민들은 얘기했다.
<생각만 해도 혐오감을 느낀다?>
1월 28일 2차 공청회가 같은 장소에서 열렸다. 서원장은 요양원이 건립되면 "많은 방문객들(찾아와서 돌아갈 때는 지역특산물을 사갈 것이기 때문에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됐으면 줬지 저해요소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며 "직원 채용도 서울에서 데려오지 않고 지역주민을 채용하도록 할 테니 제발 입지를 반대지 말고 받아줄 것"을 호소했다.
서원장이 말을 마치자 군의원 김아무개씨가 나섰다. 그는 "여기는 치악산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면 같이 발전할 지역이다. 그런데 중간에 장애인 요양원을 지어 놓으면 지역 발전을 망치는 것은 물론 동네 전체가 병들어 보여서 안 된다"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김의원은 흥분했는지 "아무리 시설이 좋으면 뭐 하냐, 나는 제아무리 최신식 건물이 지어진다 해도 그 안에 병든 장애노인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만 해도 혐오감을 느끼는 사람이다"라며 모멸의 말까지 서슴지 않는 것이었다.
서원장은 울컥 울분을 느꼈다. 그러나 흥분하지 않고 조용히 말했다. "그러냐. 우리는 전에 약속했지만 청소년 시설을 더 크게 지으려고 했다. 청소년 시설이 왜 병들어 보인다는 건지 이해가 안 간다. 우리가 요양원만 짓는다면 땅 5백 평이면 충분하다. 청소년 시설을 짓기 위해 더 많은 땅이 필요했는데, 그렇다면 요양원은 아무 구석에나 지어도 상관없다. 이 지역에 요양원을 건립할만한 다른 장소가 있다면 추천해달라‥‥‥
이날 공청회는 서원장의 거듭된 호소에도 불구하고 김의원의 반대 발언이 내내 지속돼 결국 아무 결론도 내리지 못하고 끝나고 말았다.
< 재정 부담이 반려 이유>
2월 11일 서원장은 3차 시설건립허가 신청서를 횡성군청에 보냈다. 예전 2차 신청 때 반려 받은 이유 중 하나가 건축비와 운영비 일부를 강원도와 횡성군 예산으로 충당할 계획이라는 내용을 명시해 횡성군에서 예산 지원을 겁내 신청서를 반려했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어 이번에는 서울시와의 협의를 거쳐 횡성군에서는 땅만 빌리는 것으로 하고 건축비와 운영비 전액을 자비부담과 서울시 예산으로 충당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러나 횡성 군청은 4월 14일자 회신에서 또다시 건립허가 신청을 반려했다. 횡성군청은 공문에서 반려 이유를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다.
건립예정 지역은 산림보전지역과 경지지역으로서 전(田)과 임(林)의 구분이 어려운 지역으로 건축물 신축시 별도 측량 필요지역, 임야 대부분이 농지로서 경기지역 내에서의 건축물 신축이 불가 산림 훼손이 토사의 유출 예상 신축예정지는 면소재지에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관계로 하천 오염, 인접 지역의 땅값 하락 등을 이유로 상당수의지역주민이 반대하는 등 의견으로 중증요양원 신축예정지로 부적합함.
이 회신에 대해 서원장은 "이미 개간된 임야를 가지고 임야훼손이니 뭐니 하는 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며 "3천 평 남짓한 경작지는 훼손하지 않고 밭으로 나눠도 그만이다"라며 반박하고있다. 서원장에 따르면 지역 주민 반대도 구실에 불과하고 보다 본질적인 이유는 군 의원 김아무개씨의 반대와 회신말미에 언급되어 있는 "지방비 부담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어 어려움"이라는 내용에서 보듯 재정부담이 뒤따른다는 횡성군청의 오해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선택이 남아 있을 것인가>
기자는 횡성군청 사회과 담당자와 전화통화를 했다. 반려 이유를 묻자 담당자는 "요양원 건립이 서울로 치면 일반 주택지에다 상업시설을 지으려는 것과 똑같다"며 "지역 주민들 반대는 큰 문제가 안되며 관계법에 저촉사항이 많아 반려시켰다"고 말했다.
예산 부담이 우려가 돼 반려를 시킨 게 아니냐고 묻자 "당장은 서울시에서 예산을 댄다지만 장애인 복지법에 나와있는 지원 시책을 보면 지방비 부담 규정 지침이 있다"며 "장애인 시설이 들어서면 지방에서 모른다고 할 수 없지 않느냐"고 반문하며 이를 시인했다.
군 의원 김 아무개 씨의 반대를 예로 들어 복지시설 건립이 지방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사항이냐는 질문에는 "주요사안이니까 지방의회에다 문의를 하는 게 타당하다"며 "의원들이 심의해서 안 된다고 하면 못 짓는 것이다"라고 담당자는 대답하는 것이었다.
횡성군청 사회과 담당자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선한목자재단이 정성군에 낸 중중장애인노인요양원 건립 신청은 주민들 반대보다는 예산 부담에 위기감을 느낀 행정관청의 거부와 김아무개 의원으로 상징되는 지방의회의 두터운 벽에 부닥쳐 좌절됐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새로운 "불길한 징후"로서 향후 장애우 복지시설이 들어서는 데에 제약으로 작용할 소지가 농후 한 걸림돌들이다. 즉 이제 장애 우 복지시설이 들어서려면 만연 된 집단 이기주의 외에 행정관청 의 높은 벽과 본질상 지역이기주 의를 도모할 수밖에 없는 지방의회의 반대를 극복해야 하는 삼중고를 겪은 후에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결국에는 장애우 복지시설이 들어설 수 있는 곳은 깊은 산 속이 아니면 서해, 혹은 동해바다의 외딴 섬에 국한될지도 모른다는, 이 심각한 위기감은 결코 과장된 우려가 아니다.
라파엘의 집 사태에서 보듯 행정관청과 주민들은 장애우 복지시설을 어떻게든 대도시에서 밀어내려고 기를 쓰고 있다. 그리고 건립이 용이하리라고 믿어마지 않았던 지방에서는 지방 나름대로 온갖 이유를 내세워 장애우복지시설 입지를 꺼리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의 주거, 이전 자유를 보장해야 할 정부는 오래 전부터 장애 우만은 예외로, 장애우가 누려야 할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무참하게 짓밟고 있다.
이제 어떤 선택이 남아 있을 것인가 ?
극약처방으로 장애우 복지시설건립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산재해 있는 소규모 장애우 복지시설의 조기양성화를 위해 특별법인 장애우 사회복지시설 설치법 제정을 서둘러 추진해 야 할 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을 문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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