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장애우 박승학, 쉰여서살의 비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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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상으로 노점상으로 거리에서 보낸 삼십년>
또 한사람의 장애우가 세상을 버렸다.
이 척박한 땅에 장애우로 태어나 어려서는 가난 때문에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커서는 직업을 구할 수 없어 무려 삼십 여년이라는 세월을 찬이슬을 맞으며 행상으로 노점상으로 거리를 떠돌아야 했던, 그래서 번번이 정부의 단속이라는 생계수단을 박탈하는 무지막지 한 공권력으로 인해 좌절해야했고, 이제 그 자신이 설 수 있는 삶의 자리가 이 세상에 전혀 없는 최악의 상태로 내몰리자 마침내 죽음이라는 최후 수단으로 이에 항거한 박승학씨. 그의 일생은 한마디로 고통의 가시밭길이었다.
그는 일천구백삼십육 년 일월 삼일 가난한집안의 삼남 이녀 중 넷째로 당시만 해도 허허벌판이었던 서울 고덕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았던 그는 평생을 오른발을 절며 살아야 했는데 지금의 상일동 구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그가 한 일은 형들과 함께 농사를 짓는 일이었다.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형 집에 얹혀 살던 그는 스물한 살에 장가를 들어 따로 살림을 났다. 장가는 들었지만 다른 생계대책이 없었던 그는 형들이 자신의 몫으로 떼어준 땅에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역시 뼈 빠지게 농사를 지어 한동안을 먹고살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농사일이 힘에 부쳐 결국 삼년 만에 논을 팔고 그 돈으로 답십리에 작은 집을 사서 옮겨갔다. 농사일 외에는 배운 기술이 전혀 없었던 그는 먹고살기 위해 그 무렵부터 거리의 행상으로 나서야 했다.
허리띠, 쥐약, 멸치, 라이터‥‥‥ 그는 가리지 않고 온갖 잡동사니를 둘러매고 다니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고단한 나날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십 년 전 아무래도 사람이 많이 오가는 데서 장사를 해야 할 것 같아 어느 정도 발전이 이루어진 고덕동으로 다시 돌아왔다.
열 한 평짜리 강동 시영아파트에서 살면서 그는 천호동 구사거리 시장 입구 농협건물 앞에 좌판을 벌려 놓았다. 그가 버는 것만으로는 세 딸을 제대로 키울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즈음부터는 아내도 옆자리에서 같이 좌판을 벌려 놓고 인삼을 팔았다.
오 년 전 그는 오토바이를 구입해 산 닭 장사를 시작했다. 부부가 비지땀을 홀리며 노점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은 많아야 하루 삼만 원이었다.
단속반원들에게 쫓기면서 장사를 해야 됐기 때문에 더 많은 수입은 애초에 기대 조차할 수 없었다. 그래도 예전에는 단속반원들이 그가 장애우라고 여러 차례 편의를 봐주곤 했다. 일제 단속이 언제쯤 시작된다고 미리 귀띔해 주기도 했고 불시에 단속이 시작되면 단속반원들이 나서 그의 기물을 길옆으로 치워주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정부의 노점상 철거 방침이 강경 입장으로 선회하면서 그의 노점도 더 이상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단속반원들은 형평의 원칙을 내세우며 그가 노점을 못 벌리게 강제로 막았다. 몇 차례 강동구청을 찾아가 항의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급기야 그는 한 달 전인 유월 초 기물을 강동구청에 강제로 빼앗기는 사태에 다다르고 말았다.
<왜 나는 쫓겨다녀야만 하는가>
그는 분노했다. 단순히 먹고 살길이 막혀서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신이 왜 이렇게 이 사회에서 천대받으며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너무나 억울했다. 자신이 장애우라서 당하는 것만 같아 그는 터져 나오는 울분을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냉엄한 현실은 그로 하여금 울분마저 속으로만 삭히도록 강요했다. 어찌됐건 그는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었기 때문이다.
유월 중순 그는 뻥튀기 기계를 구입해 오토바이에 싣고 다시 행상으로 나섰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장사밖에 없었다. 부근의 아파트 단지를 돌며 쌀이나 옥수수를 튀겨주고 약간의 돈을 받는 것이 수입의 전부였다.
일주일을 넘게 일을 나갔지만 예상외로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 하루 오육천 원을 버는 게 고작이었다. 어쩌면 이미 한물 간 뻥튀기 장사를 시작한 것부터가 잘못인지도 몰랐다.
장사가 안 되자 그는 자신이 두고 온 자리인 천호동 구사거리 노점이 못내 그리웠다. 그리고 노점 생각을 하면 연이어 "나는 욕심이 없다 평생을 먹고살려고 발버둥 쳤을 뿐이다. 그런데 왜 이 사회는 나를 쫓아내려고만 하는가?" 억울함이 저절로 목을 메이게 했다.
그는 자신이 뻥튀기 장사를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당장이라도 장사를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주저되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생계는 둘째치고 무엇보다 가족들 얼굴을 볼 면목이 없었다.
그는 고민했다. 그러다가 칠월 일일 새벽 금년 쉰 여섯 살인 그는 강동구 상일동 주몽재활원 원산에서 나무에 목을 맨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다.
그는 그와 마찬가지로 역시 소아마비 장애우인 부인 조병남(쉰한 살) 씨와 미진씨등 세 딸을 남겨두고 한 많은 이 세상을 떠나면서 다음과 같은 유서를 남겼다.
"장애자로서 노점상을 하는데 당국의 단속이 심해 이제 장사를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벌어먹으려고 뻥튀기 기계를 가지고 다녔는데 기술이 없으니까 자꾸 태워먹기만 하고 다리에 힘이 없어 이 짓도 못해 먹겠다. 내 생각엔 내가 선택할 길은 이 길밖에 없는 것 같다. 먼저 가서 미진이 엄마에게 미안하다."
<그의 죽음은 명백한 타살>
가족들에 따르면 그는 유월 삼십일일 밤, 저녁을 먹고 난 후 뻥튀기 장사가 잘 안 돼 고민이라며 울상을 짓더니 바람을 쐬고 오겠다며 오토바이를 몰고 집을 나갔다는 것이다.
그의 자살은 결코 우발적인 충동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매우 절박한 심정으로 자살을 생각해 왔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가족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그가 죽고 싶다는 말을 처음 꺼낸 것은 올해 초로 강동구청 측의 노점상 단속이 강화되면서 단속반원들과 잦은 마찰을 빚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오토바이까지 실려 가는 사태까지 발생하자 자신의 처지를 몹시 비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지체장애자협회 강동지회(지회장 장성용)에서 금년 일월 작성한 그의 상담카드에는 "부부 맞벌이로 본인은 천호 구사거리 시장입구 도로변에서 오 년여 동안 닭 장사를 하고 부인은 옆에서 인삼 및 건강식품을 판매해 판매수익으로 의지 안 하고 도움 없이 살고 있는데 관청의 단속으로 장사를 못해 생활에 어려움이 있다"고 어려움을 호소한 기록이 남아있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부근에 사는 형 박숭동씨를 찾아가 "나 같은 장애자도 장사를 못하게 하니 당국이 너무 하는 것 아니냐. 이렇게 해서라도 먹고살려고 하는데 당국은 쫓아내려고만 한다. 도저히 당국을 못 믿겠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정말 앞날이 캄캄하다"며 여러 차례 침울한 표정을 짓곤 했다고 한다.
실제로 단속으로 인해 강동 구청을 찾아갔을 때는 약봉지를 손에 들고 이 자리에서 죽어버리겠다고 한 적도 있어 아내 조병남씨가 이런 일로 죽으면 어떡하느냐고 눈물로 호소하며 말린 적도 있다는 것이다.
큰 딸 희진씨는 "을 해 초 어느 날 아버지가 장사가 안 되는 데 뭘 해먹고 살아야 하느냐고 한탄하신 적이 있어 아버지 몸이나 건강하고 먹고살면 됐지 뭘 그래요 했더니 그렇게 못하게 하니까 그렇지 ! 화를 벌컥 내신 적이 있었다"며 "생전 그런 말씀을 안 하시던 분이 재작년 다르고 작년 다르고 올해는 아주 못살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아버지가 그 일 때문에 돌아가실 줄은 정말 몰랐어요" 흐느끼며 생존의 그를 추억하고 있다.
우리는 이상 살펴본 그의 삶에서 지금 이 순간도 먹고살려고 발버둥치는 빈민장애우의 전형을 볼 수 있다. 지금처럼 생존권이 보장되지 않고 가난한 장애 우들이 거리로 내쫓겨야 하고 내쫓긴 거리에서 또다시 추방되어야 한다면 얼마 안가 우리는 삶의 자리를 찾지 못해 좌절하는 제 이 제 삼의 박승학씨를 연이어 목격하게 될 것이다.
박승학씨의 죽음은 누가 보아도 명백한 타살이다. 이 사회가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의 죄는 장애를 가진 것밖에 없는데 정부는 너무도 매몰차게 그를 짓밟고 쫓아낸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러는가? 정부는 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삶이나마 살려고 몸부림치는 가난한 장애 우들의 소박한 소망을 무참하게 짓밟는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다른 것은 몰라도 정부는 박승학씨의 죽음 앞에서 이런 의문에 대한 대답만은 분명하게 해야 할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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