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죽음을 기억하기 위해 탈시설에 연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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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씨 30년 거주, 최모씨 25년 거주… 서울 광화문 광장 해치마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놓인 영정들과 그들의 이름 옆에 햇수가 적혀 있다. 10년이 훌쩍 넘는 사람이 많다. 그들이 살다간 햇수가 아니다. 그들이 감옥에 복역했던 시간도 아니다. 시설에 갇혀있던 세월들이다. 아니, 감옥보다 더한 지옥 같은 장애인시설이었다. 2010년 1월부터 2016년 8월까지 6년 7개월 동안 대구시립희망원에서 죽어간 사람들이 309명이다. 전체 정원의 26.9%, 연평균 46.9명이 죽었다.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이는 들어간 지 1년 만에 죽기도 했다. 학살이다.
시설에서 산 한평생, 금지된 삶
평생을 시설에서 살다 죽었다. 그런데 시설에는 삶이 없다. 삶이 자기의 생각과 감정을 타인에게 표현하고 주변과 나누며 관계를 맺는 것이라면, 그것은 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하 시설생활인)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것들이다. 살다보면 어떤 날은 밥이 먹히지 않고 어떤 날은 잠을 더 자고 싶기도 하고, 어떤 날은 친구와 떠들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시설생활인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그건 모두 규칙위반이고, 맞아야 할 이유가 되고 독방에 처박힐 이유가 됐다.
희망원은 1,150명이 거주하는 대형시설로 노숙인재활시설인 희망원, 노숙인요양시설인 라파엘의 집, 정신요양시설인 성요한의 집, 장애인거주시설인 글라라의 집으로 나눠 있다. 대형시설이니 시설 측의 편의를 위해 비상식적인 규율과 폭력과 인권침해가 가능했을 것이다. 실제 희망원에서 생활인들은 장애인과 노숙인이라는 이유로 갇히고 최소한의 생존과 안전조치가 없어 더위를 못 이겨 죽고, 목욕하다 넘어져 죽기도 했다. 희망원은 ‘심리안정실’이라는 이름으로 규율을 어긴 생활인들을 가뒀다. 식사시간과 화장실에 갈 때를 제외하고는 문을 밖에서 잠가 밖으로 나갈 수 없게 감금해놓고도 방 이름을 ‘심리안정실’이라고 지어놓았다. 폭력의 가해자들이 폭력을 감추기 위해 언어를 오염시키는 건 오랜 전통인가 보다.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생활인 302명이 총 441회에 걸쳐 평균 11일, 최장 47일까지 강제 격리됐다. 폭력은 규율을 어길 때만 일어난 게 아니었다. 희망원 생활재활교사 재판에서 공개된 사실에 따르면 생활교사 A씨는 심심하다는 이유로 시설 생활인을 벽에 세워놓고 고무 탄환을 장전한 경품사격용 공기총을 수차례 발사했다. 교사 B씨는 지적장애인 팔과 몸을 노끈으로 묶어서 건물에 있는 안전봉에 3~4시간 동안 묶어뒀다. 그러나 법원은 그들이 현재 반성하고 있다며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사람을 때리고 죽여도 반성하면 구속되지 않는다. 생활교사들만의 잘못은 아니지만 그래도 ‘반성’했다고 사법부가 일상적 폭력을 관용하다니! 이를 정의로운 처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장애인이기에, 시설이기에 그 정도의 폭력은 가능하다고 생각한 감수성 때문은 아닐까? 비장애인사회에서 주류의 인권감수성은 노력하지 않으면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원장이나 재단에서도 반성하지 않는데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오죽할까. 희망원을 그렇게 운영한 전 원장인 배모 신부를 감싸고 있는 곳이 천주교대구교구이다. 대구교구는 반성은 고사하고 대형로펌의 변호사를 선임했으며 신부 구명을 위한 탄원서까지 돌렸다. 배 신부는 파문(破門)도 당하지 않았으며 25명의 기소자들 중 한 명도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 배 신부는 시설에 있던 장애인과 노숙인들의 인권을 침해했을 뿐 아니라 국고보조금을 허위 청구하고 급식비를 횡령하며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했다. 희망원은 2011년부터 2016년까지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닌 생활인 177명에 대한 생계급여를 허위로 청구해 6억5,700만 원의 보조금을 부정 수령했으며, 급식비의 단가를 조정해 5억8,000만 원 상당을 횡령했다. 대구시 달성군청은 허위사실임을 알면서도 이를 지급했다. 하지만 이 돈의 종착지라고 할 수 있는 사목공제회와 교구 관리국, 천주교유지재단의 이사장에 대한 수사는 하지 않고 있다.
뻔한 시설인생, 뻔한 국가와 시설의 공모
이건 희망원, 아니 천주교 신부의 일탈로 생긴 문제가 아니다. 장애인복지에서 장애인수용시설이 주를 이루고 있는 사회에서 빈번한 범죄다. 빈번해서 범죄로 인식되지 않는 것일 뿐이다. 이러한 사실도 희망원처럼 극단인 경우에만 드러날 뿐이다. 시설인생이 뻔하듯, 시설의 존재는 국가와 복지시설의 공모라는 뻔한 공식에 따른다. 국가가 복지의 의무를 탈피하기 위한 쉬운 창구가 시설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담당해야 할 공공영역, 공공서비스를 민간에 떠넘기고 있으며 거기에 사회복지시설이 위치한다. 사회복지시설 대부분이 민간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주체이고 국가는 관리감독만 한다. 그런데 사회복지시설의 수가 증가하는 것에 비례해 국가가 지원하는 재정도 같이 늘어났지만 국가는 관리감독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국민의당 김광수 의원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희망원은 2005년, 2008년, 2011년, 2014년 등 연속 4회 A등급을 받았다. 그런데 보건복지부의 노숙인복지시설 평가지표 중 인권관련 문항은 형식적인 문항 하나에 불과했다. 2014년 희망원이 평가에서 A를 받으면서 지원금을 많이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들은 사회복지법인을 만들고 법인이름으로 땅을 사고 시설운영에 필요한 건물만 지어 놓으면, 시설의 운영비는 국가의 각종 지원으로 충당할 수 있다. 희망원처럼 수탁을 받으면 땅과 건물 비용도 들지 않는다. 희망원처럼 기초생활자 숫자를 뻥튀기하거나 급식비를 허위로 하면 더 많은 ‘돈’(국고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복지활동을 하는 좋은 이미지도 얻을 수 있다. 사실 국가가 철저히 관리감독만 했어도 생활인들의 죽음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에바다복지회, 성람재단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회복지시설에서의 인권유린은 관리감독기관인 중앙정부, 지방정부와의 부당한 유착으로 은폐된다. 특히 종교시설의 경우, 정부는 종교적 봉사정신으로 인권침해가 없을 거라는 가정 하에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지 않는다. 법원조차 종교권력의 눈치를 본다. 신부든 목사든 스님이든 간에 원장은 시설장으로 여겨지기보다 종교지도자로 여겨져 쉽게 그의 언행이나 정책을 비판하기 쉽지 않다. 내부건 외부건 같다. 그렇다 보니 시설의 인권침해가 밖으로 드러나기 어렵다. 한국에서 노인, 장애인, 아동, 여성 등 시설 사회서비스의 70% 정도를 종교계가 담당하고 있다. 사실 천주교대구교구가 희망원의 운영권을 넘겨받은 때는 1980년으로 전두환 독재권력에 협력한 덕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309명의 죽음이 80년대 독재정권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 2010년 이후에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전두환 독재정권 아래서 벌어진 부산형제복지원의 사망자수가 12년간 사망한 사람은 513명인데 희망원은 6년 7개월 동안 사망자가 309명이다. 그럼에도 권영진 대구시장은 지역 시민사회가 꾸준히 제기해 온 직접 운영과 책임 있는 탈시설 추진 및 수용시설 폐쇄를 받아들지 않고 있다. 지난 3월말에는 민간위탁을 위한 수탁공고 절차를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죽음을 막을 수 있을까? 먼저 장애인을 시설에 넣어놓고 이를 ‘보호’라고 말하는 접근을 바꿔야 한다. 그리고 장애인이 시설이 아닌 다른 곳을 선택할 수 있는 정책과 사회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갈 곳 없는 장애인들과 노숙인들에게 시설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와 폭력은 그저 감내해야 하는 일로 여기기 쉽다. 그렇게 시설 생활인들의 권리는 배제된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들은 복지사업의 이름으로 ‘사회복지재테크’를 하며, 국가와 시설의 침묵의 카르텔은 지속될 것이다.
왜 몰랐을까?
“어떻게 사람을 저렇게 죽일 수가 있어? 대구면 구미에서 가까운 곳인데, 난 왜 몰랐지?”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기념집회에 함께 참가한 노동자가 광장에 설치된 희망원 추모공간을 둘러보고는 묻는다. 그는 구미에서 매각에 반대하며 500일간을 고공농성한 싸움꾼이다. 대구면 구미에서 가까운 곳인데 자신은 지금까지 몰랐다며 놀라움과 미안함에 한숨을 내쉰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국가는 장애인정책을 만들기 위해 고심하기보다 싼 비용에 처리하려고 하고, 사람들은 장애인시설의 문제점을 잘 모르니까 시설은 장애인을 돌보는 자애로운 곳이라 생각한다고.
장애인을 볼 기회도 없는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인을 인간으로서 동등하게 대우하는 정책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기회조차 차단당한다. 그것은 장애인에 대한 동정과 시혜의 시선으로 이어진다. 장애인도 스스로 결정하고 생활하는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은 사라지고 그저 ‘보살핌의 대상’으로만 상정되는 순간, 시설은 보살피는 기관으로 탈바꿈된다. 장애인들의 존재를 아예 모르고 사는 비장애인들이 너무 많다. 수도권이야 장애인이동시설도 조금 돼 있고 투쟁하는 장애인들의 모습도 간간히 시내에서 접할 수 있으니 장애인의 삶에 대해 조금은 생각할 기회가 있다. 이렇게 많은 장애인들이 있는지 몰랐다고, 이렇게 비참한 삶을 사는지 몰랐다는 노동자들을 종종 본다. 상경투쟁을 하고서야 알았다며 쑥스러워하는 노동자들을 보며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 많이 만나야 한다. 어쩌면 우리가 많이 연대해야 하는 이유다. 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들도 ‘자립생활’, ‘탈(脫)시설’에 대해서 듣는 기회는 매우 적다. 장애인도 사회적 지원을 받으면서 지역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다는 것을, 그게 자신의 권리라는 사실도 모른 채 살아간다. 평생 자신이 장애인인 걸 비관하며 모든 모욕과 고통을 감내하며 ‘삶 밖의 삶’을 살다 무기력을 익히게 된다. 그러다 희망원에 갇힌 사람들처럼 폭력에 희생된다. 탈시설정책이 국가정책이 되지 않는다면 장애인이 탈시설의 기회는 일부 장애인들이 만나는 행운에 그칠 것이다. 행운은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않는다. 인권이 보편적이듯 탈시설의 권리가 보편적으로 이뤄지려면 국가가 탈시설정책을 공식화해야 한다.
희망원 추모 영정을 보며 생각한다. 그들에게도 어제와 오늘의 삶이, 오늘과 내일의 삶이 다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30년, 20년의 세월이 다르게 흘렀을 것이다. 그들의 삶을 기억한다는 것은 309명이 살아있는 동안 견딘 폭력과 고통, 그들이 흘렸을 눈물과 삭혀왔던 감정들을 떠올리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기회인 탈시설을 보편화시키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탈시설에 연대하는 것이 그들의 억울한 죽음을,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삶을 기억하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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