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2] 14대 총선 평가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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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5-6년 간 우리의 정치적 삶을 규정하게 될 14대 총선 및 대선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장선거 둥 3대 선거는 사회 변혁적 차원에서 장애인 운동의 향배에도 상당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발전 정도가 뒤쳐진 장애인 운동의 입장에서는 선거공간 속에서의 대중정치집회 및 선전, 선동의 파급효과는 다른 부문운동에 비해 크다고 봐야 한다.
즉 일정한 단계에 오른 노동운동, 농민운동 둥 다른 부문운동의 경우에는 선거국면이 갖는 의미가 제한적일 수 있으나 그 토대가 취약한 장애인 운동의 경우에는 획기적인 발전을 모색할 수 있는 계기를 선거공간에서 잡아낼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에 장애인 단체들은 지난 14대 총선이 있기 훨씬 전부터 선거에 대한 상당한 기대감 과 함께 대응책 마련에 고심해 왔으며, 또한 나름대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그 결과를 따져본다면 허무하다는 결론을 내 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미 선거전부터 일정부분 예상됐던 것으로 우리는 선거공간에서 아무런 성과물도 얻지 못했다. 단 이번 초 선공간에서의 장애인계의 대응에 대한 평가를 통해 우리는 다시 한번 장애인 운동의 실질적인 역량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통합논의 무산으로 대중적 기반 열세>
지난 3월 총선은 민자당의 패배와 국민당의 부상, 그리고 진보정당의 의석수 확보 실패 등 몇 가지의 특성들이 있으나, 이는 4백 만 장애인의 현실과는 관계가 없는 기존 정치 구조의 현상적인 변화에 불과하다. 또한 운동적 입장에서도 발전의 가능성들을 담아낼 만한 계기조차 잡아내지 못 했다. 이는 다시 말 해 장애인들의 열악한 현실을 개선시킬 수 있는 객관적인 조건으로서의 정치적인 역학관계 가 과거와 크게 다를 바 없으며, 장애인 운동 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 인적, 물적 토대의 확보도 얻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지난 총선국면에서 뚜렷한 결과물을 담보해 내지 못했던 장애인계는 14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연대틀 또는 단일조직의 구 성을 통해 정치세력화를 꾀하고자 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대구와 강원도지역의 협의체 구성 및 한국 맹인복지연맹(현재 한국맹인복지연합회)의 결 성, DPI한국지부와 한국장애인총연맹의 통합 논의, 전국장애인운동청년연합회 발기인대회 예정 등이 이러한 움직임의 구체적인 사례다. 1차적으로 그간의 고립, 분산적인 활동으로는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었던 이들 단체들은 주어진 선거공간 을 통해 발전적인 기틀을 마련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결과를 검토해 볼 때 이와 같은 단기적인 전망은 상당부분 관념적인 것에 불과했다. 기성단체로서 일정한 전망이 기대됐던 DPI와 장애인총연맹과의 통합논의 및 진보적 측면에서 많은 기대가 모아졌던 전청 발기인대회가 명확한 일정제시도 없이 공중에 떠있는 실정이다. 전자의 경우는 논의조차 공개화 되지 않은 채 상층부만의 결합으로 총선 전 통합을 추진했으나 결국에 가서는 상호간의 이해 대립으로 중단되고 말았다. 그리고 후자는 선거공간을 적극 활용해 대중적 기반을 다지고 그 여세를 몰아 4월 장애인의 날을 전후로 발기인대회를 갖겠다는 것이 지도부의 계획이었으나, 이 역시 주체적인 역량의 취약함으로 실패에 그치고 말았다.
이 두 축은 선거공간에서의 장애대중의 정치적 자각과 전국적 단일대오에 대한 내적 욕구분출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 이를 동력으로 통합 혹은 단일조직의 건설을 추진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객관적인 상황의 유의미성 만을 내다 봤을 뿐이다. 즉 주체적인 관점에서 선거공간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지 못함으로써 통합은 말할 것도 없고 최소한의 기대치인 역량강화조차도 이룰 수 없었던 것이다.
<관변단체의 친여 성향 노골화>
이는 장애인계의 현재 역량을 고려할 때 당연한 결과로 봐야 한다. 다시 말해 선거국면을 유용하게 활용할 만한 조직적인 역량이 준비되지 못했으며, 또한 낮은 수준이나마 조직력을 강화시킬 만한 구체적인 계획도 세우지 못했다. 기존의 주체적인 조건 하에서는 선거 공간 등과 같은 객관적인 정세를 능동적으로 활용할 정도의 조직적인 역량을 기대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지난 3월 12일 장애인 복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위원장 김성재)에서 14대 선거에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데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이와 같은 열악한 주체적인 역량에 대한 문제제기와 동일한 맥락이다.
한편 선거공간을 통해 조직력 강화를 꾀했던 이러한 움직임들과는 별도로 형식적이나마 조직적 기반을 갖추고 있는 부산, 이리 등의 지역 및 한국지체장애자협회, 한국신체장애자협회 등 개별단체들은 복지정책의 제시 촉구와 함께 특정후보에 대한 지원활동에 나서는 등 능동적인 태세를 취하기도 했다.
부산장애자연합회와 이리 익산지역 장애인단체협의회는 지난 2월 28일과 3월 18일 각각 기자회견을 통해 현안 해결을 주장하는 동시에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해 줄 수 있는 정당이나 후보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양식은 실질적 인 조직력에 기초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일회적인 제스처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한 아래로부터의 참여과정이 없이 상층부만의 구상에 의해 진행되어 조직적인 대응이라고 볼 수 없는 상황이었으며, 실질적인 내용에 중점을 뒀다기보다는 세 과시를 통한 입지강화가 주목적이었다고 분석된다.
그리고 여당후보에 대해 직접적인 지원활동에 나섰던 지장협과 신장협 등 관변조직의 경우는 부산, 이리지역에서 보여준 공개적인 입장표명조차 없이 전체의 이해와는 무관한 모습을 보였다. 이들 단체는 앞서의 조직들과는 달리 친여적인 정치적 성향이 노골적이며, 집단 이기주의적인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애초부터 이들의 적극적인 선거참여는 4백만의 현실개선과는 거리가 먼 내용일 수 밖에 없었으며, 또한 운동적 차원에서도 결코 바람직한 상황이었다고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단지 단체의 이익만을 목적으로 한 관변단체의 선거 개입은 궁극적으로 본질을 호도 하는 것이었으나, 현재로서는 이에 대한 견제세력조차 형성되어 있지 못한 열악한 상황이다.
이렇듯 우리는 지난 총선을 맞아 정치세력화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한편 일정부분에 있어서는 제도적인 개선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있었다. 선거공간에서 조직적인 역량을 강화시켜 정치적인 지위를 향상시키는 동시에 그 구체적인 성과물로 정치권으로부터 정책적 대안을 담보해내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를 평가해 볼 때 우리가 얻은 것은 기대치 이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현실이다. 현실적인 욕구만 상승했을 뿐 그것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해줄 만한 세력을 갖고 있지도 못했으며, 또한 선거라는 유리한 정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자신들의 정치적인 입지를 강화시킬 만한 태세도 갖추지 못했던 것이다.
이 같은 부정적인 결과는 이미 지적했듯이 예측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장애인계의 조직적인 수준이 객관적인 정세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만한 정도의 체계를 갖고 있지 못했으며, 또한 장애 대중의 현실적인 이해 및 정서조차도 올바로 이해하고 있다고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선거정국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정리조차 없이 그 유용성만이 강조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었다.
<대중적 기반 확보가 과제>
이렇듯 장애인계는 지난 14대 총선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이는 앞서도 지적한바와 같이 필연적인 귀결로 장애인 운동이 아직은 객관적인 정세를 주체적인 관점에서 활동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현재의 조직적 역량으로는 객관적인 정세가 유리하게 전개될지라도 그 공간을 능동적으로 활용해 가시적인 정치세력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와 같은 주체적인 조건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이 당위적으로 대선에 대한 조직적 대응만을 강조한다면, 이 역시 지난 총선 하에서 드러난 한계를 그대로 반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중적 기반의 확보에 대한 지난한 노력과 지도중심의 구축이 단행되지 않는 한 장애인 운동의 질적 발전 혹은 정치적 입지의 강화라는 당면과제는 요원한 것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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