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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이야기] 4월 20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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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의 날이 4월 20일로 정해진 것은 바로 이날 "대통령의 결재"가 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4백만 장애우의 인간선언과 이를 위한 피나는 싸움이 맥맥히 살아 숨쉬지 않는 한 4월 20일은 결코 "장애우의 날"이 될 수 없다.

  가수들의 화려한 무대와 환호성 그리고 축하와동정의 꽃다발 속에서 열두 번째 맞는 "장애우의 날"이 저물었다.
  이날 하루 온 나라의 신문과 방송에서는 "장애우"가 얼마나 가까운 이웃이며 얼마나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지 새삼 끄집어 내 되씹어가며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문화시민의 척도"인양 떠들어대는 연례행사를 치렀으며 여기에 많은 장애우들이 동원되어 그들 "비장애우"의 동정과 호기심의 눈요기 거리로 일년 중 단 하루 주인행세를 하면서 지냈다.
  그러나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불행하게도(?) 4월20일은 장애우의 날이 아니다. 불행하게 도라는 말에 의문부호를 붙인 것은 개인적으로는 사실 다행스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4월20일이 장애우의 날이 아닌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것일까.
  일년에 하루 장애우를 위 한 날이 있는 것조차 부끄럽게 생각할 정도로 속이 좁은 탓일까 아니면 남들이 즐겁게 노는 "꼴"을 못 보는 못된 심보 때문일까.
  어쨌든 10월 25일이 크리스마스가 아닌 것처럼 4월20일 역시 장애우의 날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가 어떤 날에 무슨 무슨 이름을 붙이고 이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 날과 관련이 있는 주체들의 행동이나 업적을 기념해야 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하며 그러한 이유가 사회적으로 타당성을 인정받기 때문인 것이다.
  예를 들어 5월1일은 전 세계 노동자의 권리와 역사적 사명을 되새기는 귀중한 날인 "노동절(메이데이)"이다.
  그러나 일년 365일 중 왜 하필 5월1일이 노동자의 날이 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이날이 더 이상 "노예"가될 수 없다고 선언하고 "8시간 노동과 일요일 휴무"를 주장했던 "노동자의 인간선언"을 기념하는 날인 것이다.
  1886년 5월1일 당시 하루 13이상의 중노동에도 불구하고 지옥 같은 삶을 살수 밖에 없었던 임금노예들이 8시간 노동제를 쟁취하기 위해 최초로 시위를 벌인 역사적인 날이었으며 이날을 시작으로 전 세계의 노동자는 자신을 짓누르고 있던 어둠과 억압의 사슬을 끊어버리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움직이는 주인으로 스스로를 자리 매김 했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께 5월1일은 전 세계 노동자가 스스로의 권리와 의무 그리고 역사적인 사명에 눈을 뜨게 된 "기념비적인 날"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현실은 노동자의 각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3월 10일(이날은 우리나라 최초의 자생적 노동운동 단체인 "전국노동자평의회"를 이승만의 지시로 깨버린 "노총"의 창립기념일이다)로 정하고 이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최근 전노협 등 진보적 노동단체에서는 정부와는 상관없이 5월1일을 노동절로 지키는 새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으며 이러한 "제 날"을 찾는 것이야말로 또 다른 의미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되찾는 "싸움"이 되는 것이다.

  4월 20일이 장애우의 날이 아닌 이유는 이처럼 "그 날"을 만들어가야 하는 주체인 장애우의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실로 우연하게(?) 정해졌다는 데 있다.
  장애우의 날이 4월20일로 정해지게 된 것은 바로 이날 "대통령의 결재"가 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장애우의 날은 12월 9일인데 이는 1975년 12월 9일 유엔이 "장애인헌장"을 처음 제정했던 날을 기념한 것이다.
  이처럼 최소한도의 근거도 없이 대통령의 결재도장이 찍힌 날을 "장애인의 날"로 정한 정부도 문제지만 이날을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들의 날로 받아들인 "장애우"들 역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하기는 누구도 이런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지 않으니 모르는 것도 당연할 수밖에‥‥    귀를 찢는 굉음과 모처럼 가수들의 진짜 얼굴을 볼 수 있는 행운(?)에 넋이 빠져버린 우리 장애형제들의 열광을 뒤로하고 씁쓸한 심정으로 체육관을 나서며 우리 장애인의 절절한 삶과 의지가 배어있는 진정한 "장애우의 날"을 되찾아야 한다는 새로운 과제에 어깨가 무거워 짐을 느낀다.
  우리의 4백 만 장애우의 인간선언과 이를 위한 피나는 싸움이 맥맥히 살아 숨쉬지 않는 한 4월20일은 결코 "장애우의 날"이 돼서도 안 되며 될 수도 없는 것이다.
  84년 9월 19일 당시 서른 넷의 지체 장애우인 김순석씨는 자신의 마지막 발버둥을 적어버 린 "서울"이라는 이 사회의 반장애우적 현실을 고발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통령의 결재도장이 찍힌 4월 20일과 한 장애우가 반장애우적 현실을 고발하며 죽어간 9월19일 중 과연 어떤 날이 참으로 장애우의 사람됨을 되새기고 장애해방의 그 날을 앞당기기 위한 "장애우의 날"이 될 자격이 있는 것일까.
  4월 20일은 장애우의 날이 아니다.  그리고 "그 날"을 되찾는 일이야말로 바로 우리 장애우가 당당한 한 인간으로, 역사의 주인으로 바로 섰음을 선언하는 것이 될 것이다.

4월 20일 잠실에서 - 참다운 장애우의 날을 바라는 어떤 장애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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