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를 찾아서] 온기와 사랑으로 숨쉬는 곳 "맑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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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해로 짜들은 서울 도심에서 한차례의 폭설로 눈 덮인 도로를 밟는다는 것이 신비스럽고 설레기까지 했던 1월 눈 내리 어느 날, 푸른 솔이파리 위에 소담스럽게 핀 눈꽃마냥 맑은 눈망울을 가진 그녀들을 만났다.
아이라고 하기에는 나이가 많고 숙녀라고 하기에도 어색한 그녀드리 함박웃음 머금은 고운 자태로 기자를 반겨주었다.
함께 생활했던 친구들 여럿이 방학을 맞아 엄마 아빠가 있는 집으로 휴가를 떠나고, 자원 활동을 하러 오는 대학생 선생님들의 발걸음도 뜸해진 요즘 같은 날, 용옥양(22)은 웬지 쓸쓸하다. 1년에 한두 차례 들릴 가정도, 친척집도 없기 때문이다. 들어온 지 몇 개월 되지 않은 지연양(18)도 갈 곳이 없기는 마찬가지, 조금은 낯 설계 방학을 보내고 있다. 마침 합정동 집에서 통학을 하는 수경양(20)이 놀러 왔다. 혼자서 버스를 타고 왔다갔다 할 수 있을 만큼 똑똑하고, 이야기하고 떠들기 좋아하는 활달한 성격의 수경양이 방안이 훈훈한 바람을 몰고왔다.
용옥양 지연양 수경양 모두에게 "맑음터"는 따뜻한 "집"이다.
옹기종기 모여사는 "가정"
서울시 마포구 대흥동 서강대학교 담벼락을 끼고 복개천 공사 중인 좁은 골목길을 한참 들어가면 주택가 중간에 슬라브로 된 조립식 공간이 2층 옥상에 우뚝서 있는 곳, 아담한 양옥 집 한 채가 이들 정신지체 여성 장애우들이 한 식구로 살고 있는 집 "맑음터"이다.
정기적으로 미사를 드리며 매일 1시간씩 하는 교리 공부로 말씀과 생활을 함께 나누는 신앙 공동체. 일상생활에 필요한 교양과 기본적인 학습 내용을 교육하고 잠재능력을 개발하여 직업재활로까지 이어지게 하는 작업 공동체. 함께 자고 함께 먹고 함께 일하는 여성정신지체 장애우들의 생활공동체.
이런 구구한 설명이 없이도 한 "가정"처럼 보이는 것이 맑음터의 소박한 모습이다.
기숙사 시설을 완비한 특수학교나, 치료와 교육을 표방하는 수용시설의 성격과는 전혀 판이한, 요즘 정부가 추진하려고 하는 지역 복지 서비스 형태의 그룹 홈(Group Home)과는 차이가 있는 이런 형태의 "집"이 과
정기적으로 미사를 드리며 매일 1시간씩 하는 교리 공부로 말씀과 생활을 함께 나누는 신 앙 공동체. 일상생활에 필요한 교양과 기본적인 학습 내용을 교육하고 잠재능력을 개발하 여 직업재활로까지 이어지게 하는 작업 공동체. 함께 자고 함께 먹고 함께 일하는 여성정 신지체 장애우들의 생활공동체. 맑음터의 소박한 모습들을 담아보았다.
연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전문화된 시스템과 재원이 뒷받침되지 않은 다소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운영으로 "또다른 수용"의 모습에 지나는 것은 아닌가. 그녀들에게 필요한 적절한 교육과 직업 재활의 가능성은 과연?
꼬리를 무는 기자의 생각에 강타를 가하듯 권원란(여·38)원장은 이렇게 일축한다.
"설사 가정이 있다 하더라도 공동체 생활이 필요한 아이들이 바로 우리 맑음터 식구들이요. 집안이 가난하고 부모의 관심에서조차 멀어져서 교육 혜택에서도 방치되고 사회성을 기를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가 없죠. 이런 여건에서 정신지체 장애우의 자활은 더 더욱 꿈꿀 수가 없지요.
"뭔가" 할 수 있는 일 있다.
88년 4월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산하 기관으로 출발, 5년째를 맞고 있는 맑음터에는 현재 10여명의 정신지체 여성들과 두 명의 자원활동가, 그리고 권원장이 함께 살고 있다. 이외에도 10여명이 자기 집에서 이곳까지 매일 학습·작업을 하러오고, 이들 18명의 정신지체 여성들의 교육과 작업활동을 시간 별로 담당하는 자원활동 교사들이 25명 가량 된다. 방학 기간이 얼추 지나가면 맑음터의 학습장과 작업장, 아래층의 숙소인 방과 거실에는 서로 부대끼는 사람들의 소리들로 늘 북적거린다.
권원장이 공동체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시작한 것은 1988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독 가정과 사회 속에서 소외되어 있는 사람들이 주로 눈에 띄었고, 그들과 함께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그의 신앙고백이 되기에 이른다. 나이가 어린 정신지체아를 둔 부모들은 그나마 자식에 대한 작은 희망이라도 갖지만, 성인이 된 정신지체인을 둔 부모들은 좀 더 나아질 가망이 없다는 희박한 가능성 때문에 절망하고 결국은 자식을 배척하고 포기한다. 이런 부모들의 모습이 권원장은 답답하기만 했다. 그의 이러한 답답함은 마음속에서 신앙고백으로 울려왔고 이들 장애우들이 모여 살 수 있는 장소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한다. 그리고 이들에게도 뭔가 할 수 있는 일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처음에 시작한 것이 목공예를 하는 기술교육장 "늘 푸른 나무" 공동체다.
열 다섯 살에서 서른 살 안팎의 남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훈련 가능급"을 설정 기준으로 했으나 매우 어려웠고, 유동성도 많았다. 목공예에 대한 기술교육을 제대로 받은 기능공이 있었으면 훨씬 수월하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다.
""늘 푸른 나무"에서 깨달은 것은 기술 훈련과 함께 체계적인 특수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특수교육이랬자 국민학교 과정 중 초보적인 학습과정이고 주로 사회생활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는 생활교육 위주니까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88년부터 새롭게 시작한 맑음터에서 권원장은 대상을 여성정신지체 장애우로 바꾸고 이들의 자활 능력을 키워주는 교육과 직업 재활에 보다 역점을 두었다.
특수교육 전공자를 교육 전담교사로 두고 작업장의 일 역시 수직이나 봉제, 염색 공예 등에 전문적인 자질을 가진 자원활동가를 배치하여 실시하고 있다.
"직업 훈련을 통해 능력이 쌓이고 직업 재활까지 이어진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지만, 그런 날이 요원하더라도 무엇보다도 일하는 것의 재미를 느껴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며 작업을 통해 인간답게 사는 것을 꾀하게 해주는 것이 목표라면 목표"라고 권원장은 말한다. "내가 싫은 것은 이 아이들은 싫은 것이며 작업을 통해 대단한 수익을 올리겠다고 생산량에만 치중할 때 오히려 인간성 상실이라는 역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건강한 성장 도우는 교육
맑음터에서는 지난 해 12월 성탄카드를 2천여장 만들었다. 어떻게 하면 산뜻하고 눈에 띄는 카드를 만들까, 제품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직접 손으로 만들었다. 오리는 것 하나, 붙이는 것 하나 도장찍는 것 하나 하나에 이르기까지 이곳 식구들의 손이 가지 않는 것이 없다.
내게는 "식구" 개념 이외는 없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을 인연이라 생각하고 오랫동안 가족 이 되어 고락을 함께 할 이들이라 여깁니다. 한솥밥을 먹는 식구지요. 장애인 비장애인이라는 구분 같은 건 없어요.
처음에는 어눌하고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차츰차츰 익숙해지고, 하나의 제품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 이들에겐 그리 즐거울 수가 없다. 그래서 오리고 붙이고 매만지는 작업의 과정이 곧 훈련이며 교육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카드는 몇 년간 정성스레 제작해 온 명성(?) 때문에 가톨릭 기관이나 성당, 또 교우들의 주문에 금방동이 났다. 판매를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적당량에 대한 주문만 받는다.
이들 식구들의 정성은 카드에서 끝나지 않는다. 손지갑, 필통, 손수건, 베개카바, 보석함 등을 만들어 내고 작품들마다에 이들 식구들의 바느질과 뜨개질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수직과 봉제 일을 가르치고 도와주고 있는 최태경(32)씨는 척추장애우로 직업재활원에서 익힌 기술을 이곳에서 십분 활용하고 있다. "바느질 하나 익히는 데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식구도 있지만 차근차근 해나가면 언젠가는 자신의 직업을 찾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작년 8월부터 이들의 교육을 전담하고 있는 특수교사 이지은(28)씨는 올해 교육 프로그램의 방향과 커리큘럼 때문에 고심이다. 대체로 가벼운 중상의 경도 정신지체장애우들이고 뇌성마비와 함께 중복장애를 입고 있는 이들도 있어 이러한 장애 정도 차이를 고려한 효율적인 교육에 대한 고민이 늘 앞섰다고 한다.
국어·사회·자연·음악·체육·가정 등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들을 정해 놓고 언어 교육과 감수성 훈련, 자기 표현 방법 등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한다. 될 수 있으면 짧고 쉽게 설명하고 아주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체득할 수 있게 시청각 교재를 많이 이용하는 편이다.
매일 5교시의 학습시간은 그 이후의 작업시간들과 조화를 이루어 실시하고 있으며, 자원활동을 하는 대학생들을 교사로 두고 적성과 전공에 걸맞게 가르치도록 하고 있다. 이제 막들어와 교육을 받기 시작한 신입반과 2∼3년간 교육을 받았던 이들과는 차이가 있어서 이들을 몇 그룹으로 나누어 지도하고 있다. 과목에서 맞추어 억지로 지식을 습득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생활 속에서 건강하고 건전한 인격체로 살아갈 수 있는 데 역점을 두었다.
"학령기가 지나 학교 교육에서도 배제되어, 최소한의 권리인 교육 권리조차 누리지 못한 이들, 조기교육이라도 받았으면 훨씬 더 빠르게 능력이 주어졌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늘 있어요."
"전문 인력과 특수교육에 필요한 기자제가 요구된다"는 이지은씨는 "인간성 회복에 주안점을 두지 않는 큰 시설의 조직화된 교육보다는 덜 체계적이고 덜 전문화되어 보이는 이러한 소규모 형태의 집, 공동체에서의 교육이 어쩌면 더 의미있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한솥밥 먹는 식구일 뿐이지요"
이곳 식구들이 맑음터에서 와서 살게 된 데는 각자마다 사연이 있다. 가족들이 있거나 통원하면서 교육을 받는 이들에게 위탁급 형식의 일정 정도의 돈을 받지만, 이런 규정이 지켜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체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가난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권원장이 참을 수 없는 것은 부모에게서 버림받는 아이이다. 자기 자식이라고 하며 내맡기듯 책임져달라는 식의 요구를 할 때는 기가 막혀 말문이 막히기도 한다. "부모가 어쩌면 저렇게 무책임할 수가……" 아이의 생일이 되어도 찾아오지 않는 부모에게 속으로 울화가 치밀었던 적도 여러 번, 그러나 권원장은 이런 부모들의 관심을 끌어들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집안 경제사정이 여의치 못하여 멀쩡하지 못한 자식에게 쏟을 여건들이 주어지지 않는 형편을 알기에 때로는 부모들이 가엾기까지 하다. 그래도 자꾸 찾아오고 성장하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봐 달라고 호소하곤 한다.
재활원에서 쫓겨 온 이, 기도원에 수용되어 있다 온 이, 부모의 이혼으로 갈 곳 없어 온 이, 이런 갈 곳 없어 온 이, 이런 갈 곳 없는 이들이 있어야 할 요람으로 맑음터가 존재한다면…… 권원장의 소박하고 넉넉한 마음은 좁은 공간과 시설의 부족으로 오고자 하는 다른 이들을 더 데려올 수 없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늘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왜 이런 이들이 자꾸만 생각날까 하는 착잡함도 한 구석에 있다.
"내게는 "식구"개념 이외는 없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을 인연이라 생각하고 오랫동안 가족이 되어 고락을 함께 할 이들이라 여깁니다. 한솥밥을 먹는 식구지요. 장애인 비장애인이 라는 구분 같은 건 없어요."
사글세방부터 시작, 전전긍긍하며 지금까지 지내온 날들이 권원장에게 아직까지 눈물겨운 것을 결코 허황된 기대나, 욕심을 부리지 않고 "일용할 양식"에 만족하며 사는 넉넉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함께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는 맑음터 식구들의 미소가 곱게 내리쬐는 아침 햇살 아래서 더욱 빛나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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