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장애자부모회가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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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4년 학교별 자모회의 수준을 넘어서 장애문제 해결의 또 다른 주체로 일어섰던 "한국장애자부모회"가 흔들리고 있다. 장애우의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써 "부모"의 역할은 과연 무엇이며 "부모회"는 지금까지 그 일들을 어떻게 해왔는가. 천안인애학교사태를 통해 드러난 이땅의 장애우 부모운동 그 오늘과 내일을 점검해 본다.
<거듭 태어나야 한다>
천안 인애학교문제로 대표되는 장애아의 교육권리 문제로 장애판이 뜨겁게 달아올랐던 지난 10월 26일 여의도 63빌딩에서는 3백여명이 넘는 장애아와 부모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7회 전국장애자 부모대회"가 화려하게 막을 열었다.
"장애인복지 어디까지 왔나" "선진국 장애인복지실태"를 주제로 3시간이 넘게 진행된 이번 대회는 역대 대회와 마찬가지로 "장한어머니상 수상"에 이어 관계장관의 치사와 축사가 어우러진 가운데 진행되었으며 결의문을 낭독하는 것으로 행사를 마무리 지었다.
이날 한국장애자부모회(이하부모회)의 이우천 회장은 대회사를 통해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직시할 때 우리 부모들의 역할이 가일층 절실히 요구되고 있으며 이 역할은 우리들의 사명감에 의해서만이 훌륭하게 수행될 수 있다"고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무모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장애인 복지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힘을 모아 더욱 결속되고 조직화하여 정당한 요구를 관철시키는 노력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절실" 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이번 대회는 예년과 다르게 이제까지 1년에 한번 부모대회를 여는 것으로 간신히 그 명맥을 유지해 왔던 부모회를 비판하는 유인물이 장내에 뿌려지는 등 부모회 자체에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 중요한 대회였다.
전국지체부자유대학생연합회, 전국특수교육과학생연합회 등 7개 장애관련 단체는"한국장애인부모회는 거듭 태어나야 한다"는 성명서를 통해 "과연 지금까지 부모회 집행부가 장애인을 위해 무엇을 얼마나 했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최소한 부모의 역할은 탁상에 앉아 머리로 하는 사업이 아니라 장애인의 불이익이 있는 곳이면 어느 곳이나 달려가 발과 손과 땀으로 문제를 풀어가야 할 것" 임에도 발로 자신들 자녀의 교육권과 직결된 인애학교사태에 대한 부모회의 무관심과 외면을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이들은 "한국장애인부모회는 더 이상 장애인 부모들을 구구절절한 호소와 눈물로 기만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반장애인적 행위에 대해 분연히 떨쳐 일어날 것"을 촉구했다.
한편 이날 대회에 참석한 많은 부모들은 이들이 나눠주는 유인물을 받아 삼삼오오 둘러 않아 읽어보고는 "오늘 참석 못한 다른 어머니께 갖다주고 싶은데 더 없느냐"고 묻기도 하는 등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부모회의 탄생>
"본 회는 장애자 자녀 양육에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는 전국의 부모들이 하나가 되어 자녀 재활의 정보를 교환하며, 서로가 격려하고 또한 자녀들이 한 사회인으로서 정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복지사회 기틀 마련에 장애자 부모로서 기어코자 함을 목적"으로 이땅에 처음 공식적인 부모운동단체가 만들어진 것은 지난 85년 2월 26일이었다.
당시 엄요섭씨를 초대회장으로 378명의 정회원과 48명의 후원회원 등 모두 426명의 회원으로 창립총회를 갖고 활동을 시작함으로써 부모회는 그동안 각 학교에 개별적으로 흩어져있던 장애아 부모들의 요구를 대변 할 수 있는 최초의 조직이 된 것이다.
60년대 후반 특수교육기관이 점차 늘어나면서 형식적으로 조직되기 시작한 각 학교의 부모회, 자모회, 어린이교실 등 초보적인 부모들의 모임은 그 욕구와 기대에 비해 활동과 운영 방법에 있어서는 미온적이고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좀더 포괄적이고 강력한 부모회에 대한 욕구가 팽배해 있었으나 이러한 일에 장애아의 부모임을 스스로 밝히고 주도적으로 나서는 것은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로서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1981년 유엔이 정한 "세계장애자의 해"를 맞아 장애 문제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점차 높아지면서 이러한 욕구들이 점차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함께 당시 자녀교육문제에 열성적인 몇몇 사람들을 중심으로 논의되던 부모회는 권화자씨(황지형 시인의 어머니)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84년 사회복지연수에서 6개월기간의 3급 사회복지사 과정을 공부하던 권화자씨는 교육과정중 집단, 지역사회복지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설문 조사를 통해 흩어져 있는 각각의 부모회를 통합하는 안을 작성했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부모회가 탄생하게 된 "싹"이 된 것이다.
<첫발부터 잘못 내딛어(?)>
당시 부모들의 호응은 대단히 높아 거의 모든(조사대상 200명의 91.8%) 사람이 부모회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었으나 이중 70%는 조직의 필요성을 느낌에도 "누군가 주최를 하면 참가할 수 있다"는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출범 당시부터 이처럼 양면성을 가지고 있던 부모회는 조직과 운영에 있어서도 소위 명망가인 아버지(의사, 변호사, 정치인 등)를 대표로 내세워 사회적인 영향력을 행사는 것을 주요 활동내용으로 규정해 이미 그때부터 오늘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부모회의 정과(제4조)에 기록된 사업을 살펴보면 △장애자의 전문적인 치료와 교육을 위한 상담사업 △장애자부모의 친목과 결속을 통한 장애자분류별 정보교환 및 연구사업 △장애자 부모을 위한 교육사업 △장애자들의 결혼상담사업 △장애자마을 건립을 위한 촉진사업 △장애자를 위한 재활교육 및 작업 알선 상담사업 △장애자들의 보호를 위한 입법사업 △국제교류 및 친선도모사업 △기타 본 회의 목적수행을 위한 부대사업 등으로 되어있으나 실지로 시행되고 있는 사업은 부모호의 회보인 "한마음"지를 부정기적으로 내는 것과 1년에 한번 부모 대회를 여는 것 외에는 별다른 내용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부모회가 초기의 의욕적인 사업계획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활동이 부진한 이유에 대해 부모회 초기 활동에 관계 했던 이청자씨(한국재활재단)는 "당시 부모회 창립에 관계했던 사람들은 뭔가 해야 한다는 열정만 있었지 실지로 부모회를 어떻게, 무슨 내용을 가지고 끌어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또 현재 부모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으로 전문성의 결여의 재정적인 취약성 그리고 부모회의 실질적이 주인인 부모 스스로의 이해부족을 들었다.
현재 부모회의 임원과 각 분과의 이사들은 없는 사람이 겪어야 하는 "뼈에 사무치는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부모회 자체의 성격과 활동 역시 느슨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청자씨는 "회장이 바뀔때마다 실질적으로 부모회의 프로그램을 담당해야 할 사무국장, 간사 등이 매번 바뀌어 일의 연속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임원 몇몇이 자기 돈을 내면서 운영하는 방식으로는 한계에 도달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되묻고는 "부모 스스로도 장애별로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아직도 자녀들의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런 것들이 결국 오늘날 부모회가 이토록 불신을 받는 결과로 나타난 것 같다"고 말했다.
<파행적 운영에 반발하는 부모들>
그러나 부모회의 성격과 활동을 결정짓는 보다 중요한 요인은 바로 부모회를 이끌고 있는 임원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라는 지적 또한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현재 부모회의 임원과 각 분과의 이사들은 모두 사회에서 내노라 하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으로 이들은 자신들의 자녀교육을 자신의 힘으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없는 사람이 겪어야 하는 "뼈에 사무치는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부모회 자체의 성격과 활동 역시 느슨할 수 밖에 없는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모회의 성격은 인애학교사태에서도 여실히 드러나 당시 많은 장애단체가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리며 장애아의 교육권 쟁취를 위해 힘을 모았음에도 부모회의 한 이사는 "개인적으로는 공대위 결성을 찬성하지만 부모회의 이름을 걸고 참여할 수는 없다"며 거절해 자녀들의 교육권리를 위한 싸움에 당사자인 부모들이 빠져버리는 웃지 못할 사태를 초래하고 말았다.
이와함께 부모회의 또다른 문제점으로는 파행적인 내부운영을 들 수 있다.
초기부터 부모회 활동에 참여했던 한 한부모는 "현재 부모회는 임원 몇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비민주적인 모임"이여 "일년에 한번여는 자모회의도 자녀교육에 대한 문제보다는 오로지 부모대회 티켓을 팔기위한 자리로 전락했다"고 부모회의 파행적인 운영을 비판했다.
이 때문에 많은 부모들이 "아무 하는 일이 없는" 부모회 가입을 거절하고 있으며 이들 중 일부는 독자적인 조직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마져 보이고 있다.
지난 90년 6월 미온적이고 파행적인 부모회 활동에 한계를 느낀 정신지체분과 부모들은 "정신지체아 부모회"를 결성하고 부모회와의 분리를 선언함으로써 부모운동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찬종(주몽학교부모회)씨를 중심으로한 정신지체아 부모들은 "정신지체분과가 부모회 재정의 70% 이상을 떠맏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어 우리의 요구를 대변해 줄 새로운 조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91년도 사업계획과 지부조직까지 어느정도 마쳤으나 지도부간에 부모회화의 관계를 둘러 싼 이견으로 현재 활동이 중지된 상태다.
그러나 이들 부모들은 올해부터 활동을 재개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으며 인애학교싸움 등을 통해 부모회 본회의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한 천안지역의 장애아 부모들 역시 독자적으로 부모회를 꾸리고 지역활동에 나설 것으로 알려져 이들 조직이 정식으로 출범할 경우 부모운동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너무나 열악한…>
현재 각 학교의 부모회가 하는일은 크게 "학교재정후워"과 "월례회의"로 나눌 수 있다.
재정후원의 경우 각 학교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략 1인당 만원 안팎이며 이돈은 주로 "스승의 날" 이나 "추석" 등 행사때에 선생님의 선물을 사거나 회식을 하는데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달에 한 번 정도 열리는 월례회의는 자모회의 회계보고와 각종 건의사항을 접수 학교측에 전달하고 있으나 이 또한 학교측에 운영상의 문제점이나 비리등을 지적할 경우 자신의 자녀들에게 돌아올 "불이익" 때문에 다분히 형식적인 내용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교는 이러한 자모회의 형식적인 활동마져 귀찮게 여겨 "어머니 합창단"등의 전시적인 모임으로 바꿀 것을 종용하는 등 부모들이 교육 과정이나 학교운영에 참여하는 것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다.
이렇듯 학부모들이 학교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열악한 특수교육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현재 특수학교의 경우 턱없이 모자라는 시설 때문에 국민학교에서 중학교 또,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전학하기가 어려워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하늘의 별따기"로 통하고 있다.
이는 대부분의 학교가 가르치기 쉬운 일반학교의 특수학급 출신들을 우선 선발하기 때문인데 보통 15명 한 반중에 특수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진급하는 학생은 한두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 때문에 많은 부모들이 학교 운영상의 문제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당장 자신의 자녀가 진급등에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에 입을 다물 수 밖에 없는 현실인 것이다.
<목적이 조직으로>
일본의 경우 부모운동이 처음 싹튼 것은 1950년대 이며 60년대 들어 전국적으로 급속히 확대되었다.
현재 일본의 부모운동을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은 "전이본정신박약자육성회"와 "전국지체부자유부모회연합"의 양대기구라고 할 수 있다.
"전일본정박자육성회"의 경우 1952년 동경 센다이에 살던 3명의 부모들이 처음 시작했으며 이들은 법, 제도, 교육, 취업 등 정신지체를 포함한 모든 장애우의 권리를 요구할 정도로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전국지체부자유아부모회연합회"는 1961년 개별적인 단체의 한계를 절감하고 보다 강한 정치·사회적운동을 위해 각지에 퍼져있는 부모회가 결합한 것으로 현재 일본의 대표적인 부모운동 단체라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일본에는 "전국언어 장애아부모회" "자폐증아부모회" 등 수 십여개의 부모회가 활동하고 있다.
한편 미국의 경우는 교육권 소송(밀리스 대 교육부 1972: 펜실바니아 지진아연맹 대 펜실바니아보건국 1972)과 교육전문가와 부모의 연대를 통한 대중운동에 힘입어 모든 장애아들에게 공적인 비용으로 자유롭고 적절한 교육을 제공하도록 한 미국공업 94-142(P,L 94-142)이 제정됨으로써 부모운도의 차원을 한 단계 높였다.
1975년 11월 의회에서 통과된 이 법은 모두 여섯 개 항으로 되어있는데 그 주요내용은 △모든 장애아들에게 자유롭고 적절한 공교육 제공해야 하며 △장애아에 대한 평가절차는 광범위하고 공평하게 부모에게 제공도어야 한다 △장애아의 능력과 요구에 맞는 적절하고 의미있는 교육이 제공되어야 하며 △비장애아와 차별없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장애아를 대신해 부모나 전문가가 교육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으며 △부모는 이런한 모든 결정에 참여하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새로운 지평을 찾아서>
이처럼 각국의 장애아 부모들은 자신과 자녀들의 정당한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조직을 꾸리거나, 또는 전문가와의 연대를 통해 시민운동의 힘으로 법률을 제정하는 등 힘겨운 싸움을 해 나가고 있다.
물론 이 땅의 수 많은 장애아와 그 부모들역시 일본이나 미국에 비할 수 없이 척박한 우리의 현실속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수 많은 몸짓이 있었다.
"한국장애자부모회"는 바로 이러한 우리의 부모운동을 반영하는 한 역사인 것이다.
이제 우리의 부모운동은 장애인을 영원히 장애인으로만 살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절대적인 소외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우리 모두의 아들, 딸과 함께 팔 걷어 부치고 새로운 지평을 찾아서 도약해야 하는 전환점에 서 있다.
이제 더 이상 "근검절약하는 사회적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앞장서는" "상부상조의 아름다운 전통을 회복하기 위해 앞장서는" 허구적인 부모회가 아니라 "장애인복지국가 건설을 우리세대에 완수할 수 있도록 우리의 힘을 합치는" 참다운 부모들의 함성을 듣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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