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취재] 인권의 사각지대 "신생정신요양원" 을 가다.
본문
정부는 다시 정신보건법 제정을 서두르고 있다. 요양원 인정과 정신질환자들의 강제 수용이 주목적인 이 법은 인권침해 소지가 많아 본 연구소에서도 제정을 반대한바 있다. 국회에서 이 법의 저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이철용 의원과 함께 대전 신생원의 실태를 조명해 봄으로써 정신보건법 제정의 문제점을 따져본다.
<격리 수용만이 대안인가?>
토요일이었다. 그리고 이른아침이었다. 일행을 태운 봉고차는 고속도로로 가는 지름길을 찾아 골목길로 변두리 가파른 언덕길을 넘어 내달리고 있었다.
거리에는 안개인지 스모그 현상인지 회색 연기가 짙게 깔려 있었다. 출근길을 서두르는 시민들이 분주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고 교통 체중으로 길이 막힌 자동차는 연신 경적을 울려대 잠이 덜깬 거리를 깨우고 있었다.
서울에서 대전까지는 두시간여의 거리였다.
정확하게 오전 11시, 일행은 대전 유성에서 이철용 의원과의 합류가 예정되어 있었다. 때문에 봉고차가 서두르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의자에 파묻혀 간단없이 스쳐지나가는 거리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이나 가방에서 스크랩해둔 신문 기사를 꺼내들었다.
11월 29일자 일간신문은 일제히 "정신보건법 다시 추진"이라는 기사를 중요 기사로 다루고 있었다.
기사와 내용은 "정부가 86년 인권 침해 시비 끝에 제정 방침을 보류했던 정신질환자의 강제격리치료를 위한 정신보건법을 다시 제정하기로 해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며 이나라 법무장관이 28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현재 전체 인구 2%인 90만명 가량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고, 이가운데 10만여명은 당장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면서 정신보건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고 인용하고 있다.
법무장관에 따르면 "현재는 범죄자 중 정신질환자들을 공주치료 감호소 등에 입원시키고 있으나 이들 질환자 가운데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적지않은 상태여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며 내년 중에 정신보건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할 것이라고 보고했다는 것이다.
이 기사 내용만 본다면 정부는 다분히 정신질환자들을 범죄인 취급하고 있고, 그래서 정신질환자들을 모조리 강제수용 하겠다고 칼을 빼든 것으로 보인다.
인권침해를 이유로 국회와 인권단체, 대한 신경정신학회 등에서 반대해 제정이 보류됐던 정신보건법의 망령이 정부의 범죄와의 전쟁의 실효성을 빌미로 마침내 다시 살아난 것이다.
그런데 이 기사 내용에 대한 반박도 만만치가 않아 주목을 끈바 있다.
법무부장관의 국민 중 90만명 가량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주장이 틀린 통계이고 숨겨진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이는 국회의원 이철용씨이다.
이의원은 12월 초 열린 국정감사에서 "정신보건법의 재추진 인권탄압용 아닌가?"라는 제하의 질의를 통해 "한나라의 법을 책임지고 있는 법무부장관이 특히 정신질환이라는 중대한 의료적 안건을 취급함에 있어 주무장관이 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법무부장관 독자적으로 입법을 추진하는 것은 권력납용이요, 월권 행위일 뿐만아니라 이미 시기가 지난 옛날 자료, 그것도 정신보건법 입법을 위한 목적으로 조사된 것이 아닌 자료를 이용하여 전국민의 2.2%가 정신병자라는 말을 운운함으로써 대다수 국민을 정신병자화 시켰다는 것, 그리고 정신질환을 치료가 아닌 격리수용으로 몰고 간다는 것 자체에 숨겨진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수 없다"며,
△ 정신질환자 범죄 운운하는 것은 제2의 삼청교육대를 만들겠다는 의도이며 △정신질환자 범죄율 90% 증가 운운은 법무부 산하 형사정책 연구원의 연구논문에서도 증거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법무부가 인용한 정신질환자 통계는 신경성 위염환자까지 포함한 신경증 환자에 대한 자료를 역산 추계한 부정확한 통계이다. 라며,
특히 법무부가 전국민의 2.16%인 93만3천명이 정신질환자이고, 이중 11.6%에 해당하는 10만8천명이 당장 입원해야 한다고 발표를 한 것은 인용논문의 오류를 그대로 정책에 반영하려는 행정당국자의 무책임으로부터 비롯된다며 이 논문의 제목은 "정신질환의 이환상태와 관리방안에 대한 연구"라는 것으로 정신보건법을 제정하기 위해 조사한 자료가 아니라, 서울대 대학원에 보사부가 위탁하여 1988년도(전국민의료보험전) 의료보험통계를 근거로 정신질환의 용어규정에 광범위하게 적용, 전체환자의 90%이상인 신경증환자를 주대상으로 한 연구이다.
이 논문은 정신질환의 유병을 인구 10만명당 남자 1439명, 여자 2851명으로 평균 2156명을 백분율로 환산하여 2.16%를 정신질환 유병율로 추산한 것이다. 그러나 이중 1.5% 가량은 신경증이고 기타 신경증을 제외한 정신분열증, 조울증등 실제적인 정신질환자는 0.233%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는 9만8천여명이 정신질환자이고 이중 11.6%인 1만1천명이 입원대상 자가 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정부에서 모를리 없으면서도 오류를 범하는 것은 강제입원대상환자를 늘려 격리 생활을 하는 국민의 수를 늘리려는 의도로 밖에 볼 수 없다.
아니면 입원 및 수용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집단의 로비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도 않고 정부에서 모르고 정신보건법을 입법한다면 국민은 불안 할 수 밖에 없고, 국민이 불안한 것은 정신질환자 범죄 때문이 아니라 위와 같이 잘못된 통계와 정신질환에 대한 그릇된 편견을 갖고 있는 정부 때문일 것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신보건법 문제있다>
정부가 제정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힌 정신보건법은 도대체 어떤 법인가?
90년 10월 보사부가 내논 안을 보면 대강의 내용을 유추할 수 있다.
이안은 총 37조항 중 정신요양원에 대한 조항이 9개 조항이고 정신질환자의 강제 입원과 관련된 조항이 20여개나 된다. 그 외에 5개의 목적 및 정의조항이 있을 뿐이다.
즉, 정신요양원에 대한 법적 지위를 보장해주고 환자의 격리수용을 위주로 한 내용이 정부의 정신보건법안의 핵심인 것이다.
때문에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이 법안이 정신보건법이 아닌 정신질환자를 입원 및 수용시키기 위한 정신질환자 수용법이라고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철용 의원은 이 법안에 대해 이 법안의 어디에도 정신질환자의 인권조항은 한군데도 없고 현대정신보건에서 주요한 과제로 생각하는 정신질환자 재활이나 사회복귀는 선언적 의미로도 보인지 않으며, 정신질환자 치료는 입원에 대한 조항만 있지 외래치료 부분 입원, 재활 및 가정에서의 치료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들어,
"이 법이 정신질환자를 인권을 가진 인간이 아닌 갖다버려야 하는 폐품이나 쓰레기로 취급하는데 가장 커다란 문제점이 있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덧붙여 이의원은 이 법이 △정신질환자의 범위가 막연하여 부당한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고 △정신질환자를 판단하는 절차에 인권 유린의 소지가 있다며 특히 정신질환자를 판단하는 절차가 단지 정신과 전문의 2명의 판단에 맡기어 있는바 정신보건법에 의하여 강제로 수용을 하건, 법원의 영장에 의해 사람을 구속하건 그것은 단지 〈수용〉과 〈구속〉이라는 용어의 차이만 있을 뿐 수용된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신체의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신질환자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법에 적정절차를 보장받을 수 있는 헌법 차원의 장치가 있어야한다고 주장하며,
"복지법적 요소 및 인권침해를 막기위한 최소한의 선행요건이 충족되지 않는한 정신보건법은 복지법의 가면을 쓴 채 인권탄압을 위한 정권의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신생원 인권유린 물의 빚어>
서류에서 눈길을 때 다시 창 밖을 쳐다보았다. 어느새 일행을 태운 봉고차는 중부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구릉진 야산 가득히 헐벗은 잔나무가 추위에 떨고 있었고 가을걷이가 끝난 논은 메마른 가슴을 트러낸채 겨울잠을 자고 있었다. 그날따라 군데군데 박혀 있는 인가는 한없이 왜소하게만 비쳐졌다.
일행의 목적지는 대전에 있는 정신질환자 수용시설인 신생원이었다.
대전 유성에서 이의원과 합루해서 정부의 정신보건법 재제정 언급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정신요양원의 실태를 직접 확인하는 것이 이 여행이 가지고 있는 또한 목적이었다.
그리고 신생원 방문에 굳이 국회의원과 동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정신질환자 수용시설의 폐쇄적인 운영으로 제 아무리 기자라도 단독으로는 시설에의 접근에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신생원은 어떤 시설인가?
신생원 측이 내논 설립취지에 따르면 박연룡(70세) 현 이사장이 1951년 제주도에서 기도하던 중 하느님의 계시에 따라 1956년 현 위치에 정신질환자 1명을 오두막초가에서 같이 기거하면서 치유사업을 전개, 1976년 사회복지법인 인가를 받고 1986년 3백 병상의 정신 병원을 설립,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신생원의 정식법인명은 사회복지법인 구원선 신생원이다. 박이사장의 아들인 박상국(40세)씨가 현재 원장을 맡고 있고 이웃한 역시 정신질환자 보호시설인 심경장원은 박연룡씨와 사실상 부분관계인 김금란(58세)씨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신생원은 남자 3백 69명 여자 2백34명 총 6백12명 수용에 1년 국고 보조로 9억4천3백41만원을 지원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특기할 만한 점은 대표이사인 박연룡씨는 대전시 시의회 의원으로 대전의 10대 부자중 한사람으로 꼽히고 있을 정도로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신생원은 그동안 여러차례 인권유린을 자행한 대표적인 시설로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켰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근래에 들어서만도 신생원 인권유린 사례는 커다란 사회문제화가 된 전력이 있다.
91년 7월 1일 밤 신생원 남자숙소인 사량촌 2층 1호실에서 잠자던 원생 김성겸(35세)씨가 온 몸에 멍이 든 채 실신, 병원에 옮겨 수술과 치료를 받았으나 이틀 뒤인 2일 소장파열과 복막염, 폐열성 쇼크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김성겸씨 외에도 91년에 신생원에서 의문사한 원생은 6명이나 된다.
원생 사망외에 신생원이 자행한 것으로 의심을 받고 있는 사건으로 정신질환자가 아닌 정상인 강제 수용 문제도 있다.
주로 재산 문제나 가정불화 문제등이 관련된 사람들로 가족들로부터 의뢰가 오면 가스총으로 무장한 직원들이 봉고차에 무조건 태워 신생원으로 끌고가며 반항하면 구타와 입에 재갈을 물려 제압, 반항이 심하면 감시와 상습구타, 약물 복용 등으로 속칭 순화교육을 실시했다고 자식들과의 불화로 신생원에 강제 수용됐다고 주장하는 이재용(72세)씨는 경찰에 진정한바 있다.
이밖에도 신생원에서 저질러진 인원유린사례는 수없이 많다. 이철용 의원은 신생원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원생들의 급식비등 운영비 지출시 영수증 변조와 장부조작으로 매년 8억여원의 정부 보조금을 절반이상 횡령했다는 진정이 들어옴, 직원들에 따르면 한동안 장부에 원생들 몫으로 구입한 부식을 박이사장 개인 소유인 신생정신병원의 입원환자 식사로 빼돌렸다고 한다.
△전액 정부보조를 받는 시설 신축공사를 자주 벌여 수용원생들을 공사에 동원한뒤 일을 시키고 노역에 대한 댓가 지불안함. 국고유용이라 할 수 있다.
△원래 주변환경정리, 농사일 등이 1일 2∼3시간 동안 작업치료 요법으로 희망자에 한해서 실시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작업치료라는 명목으로 1일 5∼6시간 동안 쌀, 고구마 등을 재배하는 등 강제노동시킴. 이 과정중 일사병으로 쓰러지는 이도 있었다고 함. 쌀, 고구마등은 전량을 외부로 수매하고 있음에도 불구, 노역에 대한 댓가는 전혀 지급안하고 있다. 특히 상태가 양호한 환자 2백여명은 농약 살포, 밭매기 등과 전문기술자들이 할 수 있는 우사건축등 건축공사에까지 매일 동원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음. 이 때문에 근처 심경장원에서는 7명의 집단탈출사건 발생하고 지난해 3월에는 철야로 우사신축작업에 동원된 원생 안영철씨(66세)가 몰래 탈출, 인근 부락을 돌아다니다 굶어 숨지기도 함.
△이들 원생중 진이화씨등 2명이 신생원 이사장집과 심경자원 김금란 원장이 동거하는 집에 무보수 가정부로 있음.
△신생정신병원 김관상원장이 촉탁의료되어 있으나 정작 진료를 받은 원생들은 최근 2∼3년 동안 20명정도뿐이고 의학상식 조차 없는 직원들의 지시에 따라 원생들은 정신질환 치료제인 클로로프로마진을 강제복용하는 경우가 많음. 일부 원생들은 수용생활을 비관 이 약을 몰래 숨겨놓았다가 다량복용해서 자살기도.
△부실한 급식으로 영양실조 시달림.
△절대적인 직원부족과 환자50명당 1인의 간호사가 있어야 된다는 약관에도 불구, 가호사가 한명도 없어서 환자들의 발병시 응급처치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용된 원생들 중 일부가 정상인인데도 임의퇴소가 어려워 사실상 강금상태에 있으며 입소때 정신이상이었어도 현재는 거의 정상이 되었으나 가족 중 보호자가 외면해서 출소하지 못하고 있으며 신생원측도 이를 이유로 출소를 거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직원들의 부족으로 원생사이 구타행위 횡행하다고 함. 직원중 신생원 수용원생 출신 13명, 이들의 구타행위도 의심됨.
△관할구청인 유성구청의 신생원 감사자료에 회계감사자료 누락, 관리감독 겉치례에 불과, 국고보조금 횡령 의심됨. 우리나라는 현재 정신요양원에 수용된 일인당 보조금이 한달에 66,327원이 지급되고 정신병원에는 의료보호대상자에 의해 한해 한달에 일인당 330,000원이 국고 지급되고 있음.
이런 점을 이용, 신생원측은 정신병원을 설립, 요양원에 수용된 원생들을 의료보호대상자로 정신병원에 입원시킨뒤 이에 대한 국고 지원금을 착복하고 있음.
△박연룡 이사장. 신생원내 연못 위에 원생원을 동원 2층짜리 집무실을 짓고 퇴근시 직원들을 도열시켜 절을 하게 하는 등 신격화와 시의 비호를 받으면서 자신의 소왕국화 하고 있음.
<화장실에서 식사하는 원생들>
예정된 시간에서 1시간 늦은 정오경 유성에서 이철용 의원과 합류했다.
유성 시내에서 학하동 신생원을 찾아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마중나온 신생원 원장 박상국씨가 모는 캐피탈 승용차를 앞장세우고 그 뒤를 20여분을 달리다보니 오른편으로 낮으막한 야산을 끼고 몇동의 현대식 건물이 늘어서 있는게 보였다.
일행이 차에서 내려 들어간 곳은 신생정신병원이었다. 그 병원 이층에 원장의 집무실이 있었다. 집무실에서 원장과 마주 앉아 이의원이 잠시 자신이 신생원을 찾아온 이유를 설명했다. 박원장이 이의원에 말을 받아 한동안 정신질환자들의 실태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고,
박원장의 설명이 길게 이어질조짐을 보이자 이의원이 중간에서 말을 잘랐다.
"시설 먼저 보고 나중에 얘기 합시다."
"그러죠."
박원장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섰다.
일행이 박원장의 안내로 제일 먼저 둘러본 곳은 병원 남자환자 식당이었다. 때마침 점심시간이어서 50여명의 환자가 식탁을 사이에 두고 앉아있는 식당 안에는 식기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이의원이 환자에게 다가가 몇마디 질문을 던졌다.
식당 바로 옆은 환자 병실이었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몇 십개의 침상이 길게 이어져 있었는데 한 젊은 환자가 침대에 손발이 묶인채 버둥거리고 있었다. 가까이 살펴보니 눈동자가 이미 초점을 잃은 상태였다.
남자 입원실을 대강 둘러본 후 병원 직원 사무실 문을 밀고 들어섰다. 거기에는 감시 모니터가 10여대 설치되어 있었다. 사무실에 있던 직원에게 주로 어디를 비추냐고 물어보자 그 직원은 화장실을 비춘다고 대답했다.
여자 입원실은 식당과 같이 붙어 있었다. 식사 시간임에도 식사를 안하고 침상에 그냥 누워 있거나 앉아 있는 환자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이의원이 한 환자에게 "여기온지 얼마됐어요?"하고 물어보았다. 질문을 받은 환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2년 됐어요." 큰 소리로 대답했다. 외관상으로는 정신질환자인지 아닌지 쉽게 구분이 되지 않았다.
박원장의 안내로 일행은 병원 1층으로 내려갔다.
임상병리실, 원무과, 약제실을 차례로 둘러봤다. 그리고 작업치료실에 들려 작업치료사에게 "어떤 프로그램이 있습니까?"라고 이의원이 물었다.
"종이접기와 음악, 미술 프로그램등이 마련되어 있다"는게 작업치료사의 대답이었다.
작업치료실을 나오면서 이의원이 혼자 말로 중얼거렸다. "강제노역도 작업치료의 일환으로 시킨다던데……"
병원 로비에서 한차례 승갱이가 벌어졌다. 박원장은 굳이 병원 지하실을 보여주겠다고 고집했다. 이의원은 병원은 더 이상 볼 데가 없으니 요양원으로 가자고 원장을 재촉했다.
일행 또한 요양원으로 갈 것을 주장해서 별 수 없이 박원장은 일행을 요양원으로 안내할 수밖에 없었다.
정신병원 뒤편으로 신생정신요양원이 있었다. 한결같이 십자가가 그려진 왼쪽 3층건물, 오른쪽 2층건물이 가운데 굳게 닫힌 철문을 품고 길게 누워 있었다. 병원에서 요양원까지는 약 50미터 거리였다.
요양원에 다가가자 파란색 철문에 박힌 빨간 십자가형상이 섬뜩하게 가슴에 다가왔다. 인기척은 어느곳에도 없었다.
박원장이 일행을 안내한 곳은 요양원 사무실이었다. 요양원 관계서류를 보여주겠다는 것이었다. 이의원이 시설을 먼저 보자며 이를 거절했다.
철문 안에는 문을 열어준 두명의 직원만 서 있을 뿐 원생들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기분 나쁜 적막만이 가득 고여있을 뿐이었다.
일행은 한동안 의아해 해야했다. 원생들이 보이지 않다니? 그 의아함은 곧 풀렸다. 원생들은 요양원안의 별도 건물에 각각 분리되어 수용되어 있었던 것이다.
요양원 직원이 일행을 안내한 처음 장소는 철문안 바로 왼쪽 남자 숙소였다.
역시 철문이 열리자 길고 좁은 복도가 있고, 그 복도에서 열대여섯명의 원생들이 서서, 또는 쪼그리고 앉아 식사에 열중하고 있었다.
흰머리 노인도 있고 20대 초반인듯한 청년들도 있었다. 하나같이 상하 푸른색 옷을 걸쳐 입고 검은 얼굴에 굳은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놀랍게도 화장실 문을 열어보니 그 안에서 한 원생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일행중 한 명이 따라 온 직원에게 물었다.
"왜 화장실에서 밥을 먹입니까?"
"오늘은 그렇게 됐습니다."
그 직원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숙소에서 한 원생을 붙잡고 이의원이 물었다.
"여기 온지 얼마나 됐습니까?"
"22년이요."
붉은 십자가와 찬송가
식당에도 못갈 정도로 힘이 없는 원생들을 따로 수용하고 있다는 그 숙소의 지독한 악취를 뒤로하고 나왔다.
그다음 직원이 일행을 이끈 곳은 대다수의 남자 원생들이 수용되어 있다는 오른쪽 남자 숙소였다.
빨간 십자가가 박혀있는 철문이 열리자 쇠창살로 된 문이 있고 그 문이 열리자 또 하나의 쇠창살 문이 가로막혀 있었다. 일행이 그 안으로 들어가려하자 직원들이 가로막았다.
쇠창찰 안쪽에 서있는 일행들 눈 앞으로 충격적인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하나의 원형돔안 손바닥만한 운동장에 역시 푸른색 상하이와 검은 얼굴 일색들인 원생 수십명이 바글대고 있었고, 1층과 2층 또한 쇠창살문으로 된 수십개의 숙소안에서 숫자를 추정할 수 없는 많은 원생들이 갇힌 채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언뜻 감지하기로도 살벌한 기류가 숙소안 가득히 넘쳐나고 있었다. 들어간지 몇분도 안돼 직원들이 서둘러 일행을 밖으로 몰아냈다.
철문이 닫히자 그제서야 일행들의 벌린 입이 다물어졌다.
요양원측은 이번에는 여자 숙소로 일행을 안내했다. 마당을 가로질러 가는 도중 중앙에 연못 위에 지은 번듯한 2층 집이 있어 일행중 한명이 직원에게 물었다.
"저 집은 누구 집입니까?"
직원은 "원장 사택"이라고 대답했다가 얼른 말을 고쳐 "법인사무국"이라고 둘러댔다.
멀리 요양원을 둘러싸고 있는 4미터 높은 가량의 콘크리트 담 아래에서 남루한 빨래들이 널려 있는 채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일행은 역시 빨간 십자가가 박혀 있는 철문인 여자 숙소입구에 섰다.
직원이 "열어라-"해서 철문이 열리자 난데 없는 찬송가 합창이 쏟아졌다.
"십자가 십자가 내가처음 볼 때……" 직원들의 지휘로 여자 원생들이 부르는 합창 소리였다.
쇠창살 문을 밀고 들어섰다. 직원들은 일행의 출입을 막지 않았다. 마당 오른편으로 일률적으로 커트 머리를 하고 검은 얼굴들 일색인 1백50여명 가량의 여자 원생들이 늘어서 앉아 손뼉을 치며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다.
요양원측에 의해 계획된 연출임이 분명했다.
원생들 뒤로 옆으로 수십개의 쪽방이 있었다. 두평이나 될까 좁은 공간에서는 악취가 진동했다. 한 직원에게 "저 방에서 몇 명이 잡니까?" 물어보았다. "3명에서 5명가량 잔다"는게 그 직원의 대답이었다.
일행은 마당을 가로질러 갔다. 쪽방 뒤편으로 또 다른 여자 숙소가 있었다. 7평에서 8평 사이의 방이 대여섯개 늘어서 있었는데 한 방에서 열대여섯명이 생활 한다는게 직원의 설명이었다.
일행이 방에 있는 원생들에게 다가가 "어디서 왔냐"고 묻자 "부산, 서울, 대구 인천"이라 는 대답이 쏟아졌다.
<왜 안보여 줍니까?>
여자 숙소를 나오며 다시 한번 찬송가를 부르고 있는 원생들을 쳐다보았다. 의외로 치매중에 걸린듯한 할머니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잠시 후 일행들 뒤로 쇠창살 문이 닫기자 요란했던 찬송가 합창은 거짓말처럼 뚝 그쳤다.
일행은 박원장이 이끄는대로 요양원 정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 지점에 이르러 이의원이 박원장에게 "남자숙소 안 구조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박원장이 "구조가 똑같은데 구태여 보실려고 그러느냐"며 난색을 표했다. 그러자 이의원이 발끈했고, 한동안 이의원과 박원자이 사이에 실갱이가 벌어졌다.
"이유가 있는 거예요? 왜 의심받을 행동을 합니까"
"다 보여줬지 않습니까. 지난번 일로 남자원생들이 데모를 했어요, 무슨 사고라도 나면 어떡합니까."
"데모를 할 정도면 정상적인 사람들 아니예요? 내 보내야죠. 왜 격리 수용합니까"
"다 보시고 나서 이러시면 저희들은 어떡합니까"
"이거 인권 사각지대라는 의식을 원장이 받게 하고 있구먼. 용인, 송추 정신병원 다 가서 봤어요 이러니까 사회에서 어떤 의심을 하고 있는지 알아요? 사회에서 운동좀 하던 사람 들 가둬 논다는 소문도 많아요 아시겠어요."
"그런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으면 제가 어떤 처벌도 받겠습니다."
"그러니까 보여 달라는 거예요. 찬송가 부르는 건 보여주고 남자 원생들이 갇혀 있는 방은 안보여 주는건 무슨 이유입니까. 봐야지 정책을 만들지. 내가 요양원 폐지운동 하려고 여기 온 사람이예요."
"폐지라면 더욱 좋습니다. 저도 운영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교도소보다 못한 돈을 지급 받으면서 그보다 낫게 운영할려고 무진장 노력하고 있어요. 그런데 의심이나 받고……"
"의심 안받을려면 다 보여 주면 될 거 아니에요……"
이의원이 남자 숙소를 보여줄 것을 요구했지만 박원장은 완강하게 이를 거부했다. 결국 이의원은 "이거 안되겠구만 좋아요. 내가 수용된 사람들 수용동기, 실태, 서류로 다 조사해 볼 겁니다. 아시겠어요."
일갈하고 요양원을 벗어나야 했다.
일행들 뒤로 신생원 철문이 굳게 닫혔다. 마치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무심하게.
시간을 재보니 신생원 철문이 열리고 닫힌데 걸린 시간은 고작 20여분이었다.
신생원을 빠져나오며 기자는 어쩔 수 없이 탄식을 내뱉어야 했다.
햇빛은 정녕 고루 비취고 있는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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