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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연재] 장애해방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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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연 운동의 제문제>

 70년대를 통하여 투쟁한 장애우 해방운동은 암흑의 장애우 역사에 있어 진전의 발걸음을 내딛었다고 할 수 있다 전장연 운동의 개시는 장애우 해방운동을 일본 계급 투쟁의 중요한 일익으로 끌어 올렸다고 해도 결코 과언은 아니다.
 또한 기존에 있었던 장애우 운동의 대개가 조직의 "형태 만들기"를 우선시하여 실제로는 일부 간부요원의 청부로 끝난 것에 비해 일반 해방운동은 개별 문제나 지역 직장운동을 창시하는 형태를 취해왔다.
 이런 사실은 금후의 장애우 해방 투쟁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도, 정부 지배자 계급의 총 노선과 대결해 나가기 위해서도 단호히 견지해 나가지 않으면 안될 필요한 점이었다.

 석유 파동이래 정부 지배자 측으로부터의 공격이 날로 강화되었고 게다가 장애우 단체의 대개가 정부의 기만 정책을 간파하지 못하고 혹은 의식적으로 융화운동만을 되풀이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지금까지는 주로 개별적으로 진행되었던 운동 차원에서 전체 장애우가 일치하고 단결하여 투쟁을 진행할 필요성을 통감하게 되었다. 이러한 통일을 위한 기운이 고양되는 가운데 전장연의 결성을 보게 되었다. 말할 나위도 없이 전장연의 결성은 장애우 해방의 미래에 밝은 전망을 여는 데 큰 힘이 되었다. 말한 바와 같이 종전의 해방운동은 개별, 분산적이어서 지배자 계급이나 융화주의자들에게 주는 영향과 타격도 미약했는데 전장연의 결성은 힘의 집중을 가능케 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개별적으로 분산되어 전개되었던 논쟁이 공통의 장에서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해방이론의 심화에도 궁극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요인은 겨우 6년이라고는 하지만 전장연의 눈부신 발전 가운데서 매우 현저하게 나타났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결성 당시 우리들이 가장 중요한 과제로서 다루어 온 것은 "양호학교 의무화" 저지투쟁이었다. 그 당시는 "양호학교 의무화"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장애우 문제에 다소라도 관심이 있거나 관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이 "의무화"를 성과라고까지 파악하는 것이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전장연을 선두로 "의무화"저지투쟁이 진행됨에 따라 찬·반의 세력 관계는 눈에 띄게 변화하여 흐름을 형성했다. 이러한 사실은 특히 최근 1∼2년 사이 일본 교원 노조의 교육 연구집회 가운데서 현저하게 볼 수 있다. 또 우리들이 진행해 온 행정투쟁 가운데서 금정(金井) 매곡(梅谷)시 등을 비롯한 선구적인 부모들의 싸움은 많은 부모들에게 "장애아"를 지역 교구의 보통학급에 입학시키는 것의 중요성을 주지시키는 한편 용기를 주고 이것이 교육노동자의 의식변혁에 큰 역할을 했다고도 할 수 있다. 또한 75년 1월의 "문부성 투쟁"이나 아다찌(足立) 투쟁에 있어서 우리들이 전개한 실력투쟁은 장애우 자신에게 투쟁의 위대성과 보람과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정부, 행정, 경찰의 강권적 본질을 스스로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이런 일들은 벌써 사실 무고라는 것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사병으로 몰아넣고자 하는 법무성, 재판소, 경찰의 야망에 대한 투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매년 개최되는 전국대회의 참가자를 보더라도 특히 장애우의 수가 점차 증가하고 있으며, 우리들의 주장이 바르게 전달되기만 한다면 장애우 동료에게 확실히 지지를 받을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또 공동 투쟁 관계의 확산도 두드러져서 협산(狹山), 삼리촌(三里塚)과의 공동투쟁을 통해서도 부락해방동맹이나 삼리총 공항 반대동맹은 물론, 자치로나 총평 등의 노동조합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이런 공동 투쟁의 형태도 애매한 원칙이 아닌, 장애우 해방운동의 질을 대담하게 내세워서 관계의 강화를 초래하게 되어서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눈부신 성과의 한편으로 70년대 운동은 몇 가지 문제를 부각시키고 있다. 우리는 이제 이러한 문제 하나하나를 겸허하고 바르게 재인식하면서, 운동의 새로운 발전을 지향해야 한다.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로 통일 투쟁으로 진행했던 "의무화" 저지투쟁 및 아까보리 차별 재판소 규탄 투쟁만으로는 많은 장애우의 결집을 형성하는 것이 곤란하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권력의 질을 선명하게 했다는 점에서는 획기적이었다. 그러나 장애우의 일상적인 과제로 제기하지 못했고, 또한 생활이나 노동에 관한 과제까지도 다루어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운동의 방법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전국 통일투쟁은 말하자면 "중앙집권형"의 방향을 가지고 진행하였다. 이는 권력의 장애우 분단정책에 의하여 차별과 싸울 수 있는 장애우가 "점"(点)으로 밖에는 존재하지 못하고 따라서 이러한 "점"과 "점"이 단결하여 힘을 집중시켜 정부 문부성이나 법무성, 나아가서는 사법 권력과의 투쟁을 할 수 없었으며, 그렇게 함으로서 전장연 운동의 일정한 힘을 잃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80년대에 들어와서는 정부 지배자계급의 공격이 "일본형복지사회 구상"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매우 치밀하고 체계화되고 있는 지금 우리들의 운동도 이것과 정말로 대결할 수 있는 실체와 내용을 갖추어야 한다. 즉 적의 지역관리 체제와 대결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중앙집권중형"의 싸움만으로는 극히 미약하다. 우리들도 지역에 확실히 뿌리를 내린 조직과 운동의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기 장애우 피차별 실태에 의거하여 구체적인 요구를 투쟁으로 조직화해낼 수 있는 일상활동을 기본 축으로 깔고 학습활동의 조직화를 꾀하며 보다 큰 장애우 대중의 통일투쟁을 낳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개개인이 자기 입지를 가지고 운동 가운데서 강화되어 가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 특히 의의가 깊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운동의 개별·분산화를 낳게 되고 개인주의나 섹트주의(종파주의)의 발현을 허용하고 그것이 운동의 통일을 방해하는 결과를 가끔 야기한다는 점도 지적될 사항이다. 이것이 제2의 문제이다. 이와 같은 경향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전장연을 결성한 것인데 솔직히 말해서 그것은 충분히 극복할 수 없었다. 또 교사나 부모단체가 자칫하면 자기 지역이나 직장에 폐쇄적으로 머물러 전체적인 면제나 장애우 자신의 운동과의 공동 투쟁을 외면하게 되는 경향이 뿌리깊다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교사가 현장의 실천에만 급급하여 자기들을 에워싼 사회 정세의 파악, 노동자 계급의 한 사람으로서의 자각적 투쟁을 회피한다는 것은 주관적으로는 어떻든 객관적으로는 "고지식한 성직자"의 역할 밖에는 할 수 없고, 따라서 차별로 괴로워하는 장애우를 해방하는 전망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셋째로, 기존의 운동이 단순한 처우개선만을 요구하는 것에 그친데 대하여 우리들 운동은 본질적인 문제에 다가서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반대로 요구의 구체성을 결여하게 되었고 현실에 입각한 운동을 경시하는 관념적 경향을 낳게 하였다. 우리들 운동이 여러 계층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강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면서도 아직 설득력이 부족하여 보다 많은 장애우 동료들을 결집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이러한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될 것이다. 돌출 된 개개 장애우의 투쟁에서 출발하여 우리의 운동은 위협에 굴하면서 투쟁에 궐기하는 조건을 갖지 못하는 많은 장애우를 조직할 수 없었으며, 역시 "일부 장애우 운동"이라는 지적을 면할 수 없는 관계를 가지는 것도 사실이다.
 넷째로, 장애우와 건상자(노동자와의 연계 형태) 및 장애우 해방운동에 있어서의 건상자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서도 아직은 불명확하다. 장애우가 건상자와의 공동투쟁을 진행하고자 할 때 건상자의 대행주의나 정치 이용에 의해 농락 당하거나 반대로 건상자가 단순한 보조 역할로서밖에 진합할 수 없게 된다면 투쟁을 통한 상호 발전은 결코 쟁취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피차별 대중, 특히 부락 해방운동의 공동투쟁의 문제에 관하여 보다 올바르고 예리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다섯째로 다른 장애우나 부모들끼리의 단결의 문제가 있다. "신체장애우"라고 할 때 "시각장애우" "청각장애우" "뇌성마비 장애우"등이 있다. 이들 장애우들이 함께 운동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의사소통의 문제 하나를 두고 보더라도 매우 어려운 점을 내포하고 있다. 하물며 "신체장애우"와 "정신장애우" 와의 사이에는 깊은 강이 가로놓여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또 해방운동을 진행하는 부모나 교사들 가운데도 이 강을 메꾸려고 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이 밖에도 수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으며 그 어느 것이나 쉽게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에 맞서는 것은 포기하거나 책상 위에서만 해결방법을 논한다고 해서 결코 좋은 결과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오랜 운동 가운데서 진지하고 끈질기게 대처하는 이외에 극복하는 길은 없다고 생각된다.

3. 80년대 장애우 운동의 비약을 위해서

<"국제 장애우의 해"에 대한 입장>

 1981년 UN이 정한 "국제 장애우의 해"의 요란한 캠페인이 정치 분야에 있어서나 매스컴 사이에 있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러나 정부의 구체적인 시책을 "장애우 지능 경기회"의 개최로 상징되는 몇 가지 행사 규칙을 제외한다면 별로 보잘것없고 오히려 복지의 실질적 후퇴조차 현저하게 나타났다. "국제 장애우의 해"의 기본 이념에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도 현재의 일본 정부의 자세로 볼 때 먼 구름 위의 이야기로밖에 생각되지 않는 것은 나 하나 뿐일까. 정부가 이 "국제 장애인의 해"를 요란하게 선전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소위 "발전도상국"이라면 모르지만 국민총 생산액도 이제는 미국과 1, 2위를 다투고 있는 일본이 복지 수준에 있어서는 10위 이내로 든 적이 없었으므로 UN에서의 "장애우 대책의 지연"의 지적을 받고서 어쨌든 겉모양만이라도 취하지 않을 수 없어서 서두르게 된 것이다. 게다가 헌법 개악, 군사대국화, 신사국영화, 형법개악, 보안처분신설 등 극우 반동적 자세를 강화하고 있는 자민당 정부가 이번의 "국제 자애우의 해"를 이용하여 복지 축소, 장애우 해방운동의 입살 등 여러 가지 의도를 기도하고 있다는 것도 용이하게 추측할 수 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비판은 다음에서 언급하기로 하자. 그러나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장애우 단체의 대부분이 정부의 의도를 간파하지 못하고 과대한 환상을 가지고 "이 기회에 무엇인가 쟁취하자"라는 식으로 결사적으로 달려들고 있다.
 어쨌든 지금 필요한 것은 단지 요구 조건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이 시기야말로 정부의 의도와 대결할 수 있는 사상과 운동으로 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UN의 "국제 장애우의 해"의 기본 이념에 대한 평가를 한마디로 표현하기에는 매우 곤란하다. 참고로 "국제 장애우의 해 일본추진협의회"에 참가하고 있는 대부분의 장애우 단체지도부는 이념의 내용을 충분히 검토하지도 않은 채 무조건적으로 평가하여 과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이 점에서는 스스로 "진정한 개혁"을 자칭하는 일본 공산당·전장연도 거의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본질적으로 전장연 이론은 "국제 장애우의 해" 이념과는 일치하지 않는 것이지만).

 한편 "혁명적 좌익"을 표방하는 그룹의 대결은 이 이념을 "결국은 제국주의자가 지배하는 UN에서 만든 것"이라 간주하고 오히려 "국제 장애우의 해 분쇄"를 스스로의 입장으로 취하고 있다. 즉 전자의 사람들은 "성과"로 파악하고 후자는 "공격"으로 파악하고 있어서 양쪽 평가는 극히 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우리들로서는 그 어느 쪽도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대개 이 이론의 기초가 되는 것은 "정상화"(Normalization)사상은 지금부터 십수년 전부터 이미 스웨덴 등의 북구라파 제국이나 영국·프랑스 등에서도 어느 정도 실시했던 것이며, 그 배경에는 체제의 모순을 은폐하려는 지배자의 음험한 의도와 동시에 그들에게 이 정도의 양보를 강요한 각종 장애우 단체의 끈질긴 투쟁이 있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또 "국제 장애인의 해" 제정이나 "세계 인권 선언"의 성립 과정을 보더라도 명백한 바와 같이 거기에는 침략전쟁의 결과로서의 기아·빈곤에 괴로워하는 리비아 등 제3세계 제국의 힘이 작용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또 "국제 장애인의 해"의 행동 계획의 내용을 세밀하게 검토해 보면 문제를 포함하고 있지만 많은 부분에 있어서 전장연의 지금까지 주장하는 내용과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상으로 미루어 보아 우리는 "국제 장애우의 해"를 단지 "제국주의자로부터의 공적"으로만 파악하여 이를 "분쇄한다"는 입장에는 서지 않는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이 사상이 장애우 차별의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계급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이상 그 한계성에 대해서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무조건적으로 지지하지도 않지만 허무한 환상을 갖지도 않는다.

 이상의 분석을 정리한다면 우리들의 입장은 "국제 장애우의 해" 내용에 관해서는 일정한 평가 위에 서서, 특히 이 이념조차 왜곡하여 장애우의 차별의 확대 조장을 꾀하는 일본 정부·지배 계급과의 투쟁의 수단의 일부로 이용하면서 그 결정적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우리들의 자립과 해방 사상을 대치시켜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 표현들도 애매성을 갖고 있지만 그보다 우리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일본 정부·지배자 계급의 공격의 본질을 뚜렷하게 간파하여 그와 대결하는 내용 및 체제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다음에 그 사이 정부의 공격의 특징을 검토하여 비판을 가하고자 한다. <계속>

글/구스노끼 도시오
 

작성자구스노끼 도시오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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