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문제다] 장애우의 "노동 상실률"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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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촉진법 등 장애우의 노동권리 보장을 위한 정부의 각종조치가 뒤늦게나마 시작되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법원의 판결이 나와 장애우의 분노를 사고 있다. 이 사회가 강제하고 있는 장애우 차별 그 반인간적인 모습을 살펴본다.
<10분의 1(?)>
1989년 8월 29일 오후 5시30분 인천시 북구 부평2동 성동농아학교 앞 횡단보도를 건너던 서용덕(당시 12세)군이 오주영씨(19)가 운전하던 인천 7 너 1611호 봉고트럭에 치어 이틀 후인 31일「뇌경막혈종(속칭 뇌진탕)」으로 죽은 사건이 일어났다.
사고 지점은 학교 앞 왕복 6차선 도로로 평소에도 신호위반 등이 잦은 사고 위험이 높은 곳이었으며 서군은 이날 개학식을 마치고 친구들과 놀다 소나기 오는 바람에 급히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사고 직후 가해자측 보험회사와의 합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서용덕의 아버지인 서순모씨는 인천 지방법원에 소송을 냈다.
그러나 90년 7월26일 인천지방법원 제5민사부 이진영 판사는 "국가배상법시행령" 제2조1항 별표 2의「씹는 것과 언어의 기능에 현저한 장애가 남은 자 3. 고막의 점부의 결손이나 그 외의 원인으로 인하여 두 귀의 청력을 전혀 상실한 자의 노동상실률은 90퍼센트」라는 규정을 적용, 서용덕군에 대한 피해보상 액수를 사고 당시인 89년 9월 현재 도시일용 노동에 종사하는 성인 남자의 임금인 하루 8,150원의 10분의 1인 815원으로 계산 "…위 사고 이전에(이미) 그 노동능력의 90퍼센트를 상실하고 있었으므로 위 망인(죽은이)은 위 사고가 없었더라면 20세가 될 때부터 60세가 끝날 때까지 도시일용 노동에 종사하여, 매월 금 2십만375원(8,150원×25일)의 수입에서 국가배상법 시행령 소정의 언어와 청각장애가 있는 자의 노동능력 상실률에 따른 금 2만375원(20만3천750원×100분의 10)의 수입을 매월 얻을 수 있었을 것인데 위 사고로 말미암아 매월 위 금 2만375원의 가득 수입 중 생계비(1/3)을 뺀 금 1만3천583원(20,375×3분의 2)씩을 얻지 못하게 되는 손해를 원차적으로 입게 되었다 할 것인바, …위 망인이 20세가 될 때부터 55세가 끝날 때까지의 손해를 위 사고 당시의 기준으로 …산정하면 금 2백67만580원이 된다"고 판결해 충격을 주었다.
이 판결대로라면 제기한 서순모씨는 "정상인보다 농아인이 못한게 뭐가 있느냐"고 반문하여 "끝까지 투쟁해서 장애인의 권리를 되찾겠다"고 흥분했다.
<평범한, 너무 평범한…>
2살 때 폐렴을 심하게 앓으면서 소리의 세계를 등지게 된 서용덕군은 당시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와 함께 강원도 원주로 내려가 그곳에서 일반 유치원 과정을 마쳤다.
원주에서 다시 사업기반을 복구한 서순모씨는 원주에 청각장애특수학교가 없어 보육원으로 보내 공부를 계속 시키려고 했으나 아들의 교육에 헌신적인 어머니의 반대에 부딪혀 다시 인천으로 올라오게 된다.
총명한 서군은 학교에 다니면서 날로 말문이 터져 "아빠" "엄마"등 간단한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자라 학교와 집에서 모두 귀여움을 받는 평범한 어린이였으며, 보청기를 낀 뒤부터는 조금씩 말을 알아들어 집안 식구들과 말하는데 불편이 없을 정도로 평범하게 자랐다.
서순모씨 또한 아들의 이러한 모습을 보며 "남들 못지 않게 가르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서초동 고등법원 409호실에 만난 서순모씨는 지리한 법정싸움(이날도 원고측이 보사부·노동부에 요구한 "청각장애인 취업실태 현황보고서"가 도착하지 않아 다시 연기되고 말았다)에 지친 듯 다소 허탈한 표정으로 "처음에는 대여섯달이면 끝날 거라고 했는데… 보험회사에서 뭘 같고 물고늘어지는지 알 수 없다"고 억울해 하면서 "처음에는 담당형사까지 가세해 횡단보도가 아니라고 했다가 동네 초등학교 아이가 증인으로 나타나자 횡단보도 사고라고 고치고 또, 병원에서도 빨리 손을 썼으면 살아날 수 있었는데 오씨가 수술보증금을 마련하느라 우왕좌왕하다 사고가 난지 여섯시간이 넘은 밤 9시 반에야 수술을 받아 결국 죽고 말았다"고 주장해 사고처리뿐 아니라 치료 과정에서도 문제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국가배상법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번 재판에서 청각장애인의 노동상실률을 90%라고 규정하고 있는(실은 적용대상과 취지를 잘못 해석하고 있는) 국가배상법은 어떤 법이며 문제가 되고 있는 별표 2의 내용은 무엇인지 알아보기로 하자.
국가배상법 제1조에 의하면 "이 법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손해배상의 책임과 배상절차를 규정함으로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으며, 제2조 배상책임 항목을 보면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공무원이 그 직무를 수행함에 당하여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에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하거나, 자동차손해 배상보장법에의 규정에 의하여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는 때에는 이 법에 의하여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고 되어있어 적용대상이 국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공무원인 민법상 특별법인 것이다.
또한 문제가 되고 있는 시행령의 별표 제2는 바로 이들 국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에 의해 신체 장애를 입은 사람의 노동력 상실에 대한 보상기준으로 사실상 이번 재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표 1>신체장애 등급과 노동력 상실율 표
<일 하기도 전에 노동력을 잃고 있다(?)>
다시 1심 판결문으로 돌아가자.
당시 판결문에 의하면 "…피고는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소정의 자기를 위하여 자동차를 운행하는 자로서 그 운행으로 일으킨 위 사고로 위 망 및 원고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으나 곧이어 …위 "사고 이전에" 그 노동능력이 90%를 상실하고 있었으므로…(인용부호 필자)라는 부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번 재판이 단순히 법조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건을 맡은 인천지방법원 이진영 판사는 장애우는 "당연히" 노동능력의 "상당부분"을 잃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그에 해당하는 법조문을 찾다 문제가 된 국가배상법 별표 2 신체장애 등급과 노동력 상실률 표를 서용덕군에게 적용한 것이다.
과연 그런가?
서용덕군은 정말 태어나면서부터 남들의 10분의 1밖에 일을 할 수 없는 것일까?
"장애인은 개인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으며, 이에 상응하는 처우를 받는다" "누구든지 장애를 이유로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모든 장애인에게는 국가·사회를 구성하는 일원으로서 정치·경제·사회·문화 기타 모든 분야의 활동에 참여할 기회가 보장된다"는 장애인복지법 제3조의 조항은 공염불에 그치고 마는 것인가?
인천지방법원의 판결은 이러한 모든 물음에 대해 확실하게 "그렇다"고 대답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를 분노케 하는 또 하나의 판결>
한편 서용덕군보다 두 달이 빠른 89년 6월2일 서울에서는 4살 된 김명현 어린이가 자신이 살고 있던 구로동 미성아파트 단지 내 길에서 놀다 최모씨가 운전하던 소형화물차에 치어 죽은 사고가 일어났다.
김명현 어린이의 아버지 김재천씨는 사고 당시 모엔지니어링 과장으로 중류정도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 사건에 대해 90년 8월28일 서울 고등법원 제17민사부 김학세 재판장은 판결문을 통해 "…위에서 본 가정환경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해 볼 때 최소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어 군복무를 마친 후인 만 23세부터 60세가 될 때까지의 기간 동안 취업하여 그 기간을 통틀어 매월 적어도 사고 무렵인 1988년도 노동부에서 조사한 직종별 임금실태 보고서에 따른 고졸 남자의 평균 임금인 금 48만5천87원 정도의 수입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도시에 거주하는 유아인 망인의 일실수입은 예측 가능한 장래의 최저 수입인 도시일용 임금을 기초로 산정 하여야 한다고 보건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액을 산정 함에 있어 피해자의 장래 수입은 사고당시 피해자가 일정한 수입을 얻고 있을 경우에는 그 수입을 아무런 수입을 얻지 못하고 있을 경우에는 누구나 종사할 수 있는 일반일용임금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기는 하지만, 이미 실제로 취업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아무런 수입을 얻지 못한 자와는 달리 아직 취업 가능한 연령에 도달하지 않아 수입 획득의 기회를 가져보지 못한 저 연령의 피해자들에게 일률적으로 장차 최저수준의 수입밖에 얻을 수 없으리라고 간주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판시하고 가해자인 최모씨에게 약 7천만원의 손해배상을 선고했다.
<들끓는 여론 그러나…>
한편 1심 판결문이 발표되자 장애관련 언론과 청각장애우들은 일제히 이번 판결이 "장애우의 인권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한국청각장애자부모회 임경자 회장은 "장애인이든 병약자든 살아있는 모든 사람은 그 사회 속에서 다 같이 한 인간으로서 최소한 인간적인 삶을 존중받을 권리가 있음에도 발달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도시 일용자 노임의 10%만 인정하는 것은 법 이전에 비인도적인 판결이며, 재판관의 엄청난 오류이며 착각"이라고 주장했으며, 언론에서도 "장애인의 실업은 장애인 개인의 능력에 기인하는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의 모순에서 일어난 문제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해결 역시 사회 전체가 공유해야 함에도 국가배상법의 적용은 재활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것" 이라고 판결을 반박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 재판의 결과가 가지는 크나큰 의미에 비해 장애우들의 조직적인 대응은 너무나 무기력해 사건 발생 3년이 지나도록 이번 판결이 범하고 있는 잘못을 반박하는 성명서 한 장 내지 못하는 형편인 것이다.
이것은 바로 지금까지 각 장애우 단체의 "너 따로 나 따로"식의 관계가 가져올 수밖에 없는 결과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단체간의 문제만이 아닌 장애우 자신이 사회가 강제하는 "관계의 필연성(장애우는 모두 똑같은 소외와 차별을 당하고 있다는)"에 대해 깨닫지 못한 무지의 소치인 것이다.
<"장애해방"을 촉구하는 경종으로…>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번 판결은 장애우에 대한 이 사회의 차별이 인간을 오로지 "노동력(결국은 얼마나 일을 시킬 수 있느냐는)"이라는 자본주의적 가치기준에 따라 움직이고 있음을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었으며 역설적으로 "더 높이, 더 멀리, 더 빠르게"라는 자본주의적 가치기준에 이르지 못하는 모든 장애우들의 "운명"이 맞닥뜨리게 되는 지극히 현실적인 결과인 것이다.
따라서 서용덕군 사건은 단순히 한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장애우와 자본주의적 가치기준의 싸움인 것이며 이 사회에서 장애우가 얼마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판결"인 것이다.
법의 탈을 쓴 이런 야만적인 "결정"앞에서 우리가 할 일이 그저 "좀 더 봐주는" 너그러움을 구걸하는 것인가?
장애우로서 "탈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길이 그저 교통사고 안 당하도록 조심하고, 무조건 합의를 보는 길 밖에 없는 것인가?
서용덕군 사건은 장애우의 사람값을 제대로 인정받는 일조차 "장애해방"이라는 우리의 목표와 무관하지 않음을 잘 드러내고 있으며, 이러한 절대 명제를 앞에 두고 지리멸렬하게 분열되어 있는 장애우와 장애운동 단체의 긴 잠을 깨우는 종으로 울리고 있는 것이다.
글/전흥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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